본다'는 것의 정의를 뒤바꾼 충격적 실험
채널: 심리학고양이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1EmIJItC_jA | 길이: 5:27
요약
🎯 TL;DR — 시각 피질이 손상되어 의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맹시' 환자들이 무의식적으로는 장애물을 피하고 도형을 맞히는 현상을 통해, '본다'는 것이 카메라(눈)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자아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 핵심 논지 — 시각 정보는 시각 피질로만 가는 게 아니라 상구·시상 등 다른 경로로도 전달되며, 의식적 인식은 오직 시각 피질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에 맹시 환자는 "보면서도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화자는 이 현상을 발판 삼아 자아와 의식이 왜 진화했는지에 대한 험프리의 이론까지 확장한다.
🗺️ 영상 구성
- 도입: 시각장애 환자가 복도 장애물을 피해 걷는 실험 사례
- 베이스크란츠의 도형 추측 실험 (정답률 70% vs 확률 25%)
- '맹시' 현상의 뇌과학적 설명 (시각 피질 vs 상구·시상 경로)
- 정답률이 100%가 아닌 이유 두 가지
- 험프리의 빨간 화면 실험과 '무의식적 지각 vs 의식적 감각' 구분
- 의식·자아가 왜 진화했는가에 대한 확장 논의
━━━ 본문 ━━━
맹시라는 역설적 현상 영상은 시각장애 환자가 복도의 장애물을 모두 피해가는 사례로 시작한다. 환자 본인은 "장애물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냥 걷고 싶은 대로 걸었다"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장애물을 다 피했다. 영국의 베이스크란츠는 시야 절반이 사라진 환자들에게 사각지대에 도형(원·사각형·삼각형·X)을 보여주고 추측을 시켜봤는데, 우연이라면 25%여야 할 정답률이 실제로는 70%에 달했다. 화자는 이런 현상을 맹시라 부른다고 설명한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한가 — 두 개의 경로 화자는 눈(카메라)에서 들어온 시각 정보가 원래는 뇌의 시각 피질(스마트폰의 '앱'에 비유)로 이동해 우리가 "본다"는 의식적 감각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맹시 환자는 카메라(눈)는 멀쩡하지만 이 시각 피질 앱이 삭제된 상태다. 그런데도 정보를 알아맞힐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화자는 시각 정보가 시각 피질뿐 아니라 상구나 시상 같은 곳으로도 전송된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든다. 다만 "내가 보고 있다"는 의식적 인식은 오직 시각 피질에서만 가능한 기능이기 때문에, 맹시 환자는 정보를 처리하면서도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고 화자는 설명한다.
왜 정답률이 100%가 아닌가 화자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시각 피질로 가는 직접 경로는 "고속도로", 상구·시상으로 가는 우회 경로는 "자갈길"에 비유되며, 우회 경로의 정보량은 직접 경로의 16분의 1에 불과하다. 둘째, 상구와 시상은 애초에 정교한 이미지를 구현하지 못한다. 화자는 이를 두고 맹시 환자들은 "저화질 세상을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며 살고 있는 셈"이라고 정리한다.
무의식적 지각과 의식적 감각의 구분 캠브리지 대뇌학자 니콜라스 험프리의 빨간 화면 실험이 이어 소개된다. 일반인은 빨간 화면을 보고 "빨간색이 보인다"고 답하지만, 맹시 환자는 빨간색을 의식적으로 감각할 수는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지각할 수는 있다고 화자는 설명한다. 흥미로운 지점으로 화자는 맹시 환자들이 "장애물을 피한 자신의 능력에 개의치 않으며, 그것이 자기 능력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점을 짚는다. 즉 그들은 객관적으로는 보고 있지만, 주관적으로 "보고 있음"을 자신의 경험으로 느끼지 못한다.
자아는 왜 진화했는가 화자는 험프리의 질문 — "생존에 의식적 지각만으로 충분하다면 왜 인간은 의식과 자아를 진화시켰는가" — 을 소개한다. 개구리는 파리(인풋)를 보면 혀를 내미는(아웃풋) 즉각 반응만 하지만, 인간은 인풋과 아웃풋 사이의 "중간 과정"이 길다. 예컨대 사과를 봤을 때 "예전에 먹어본 것 같다", "색이 이상한데 썩은 건가" 같은 판단이 개입한다. 화자는 이 중간 과정 중 아웃풋으로 이어지지 않고 뇌 속에서 "빙빙 도는" 정보들이 바로 자아감을 구성한다는 험프리의 설명을 전한다. "나는 지금 빨간 사과를 보고 있어"와 같은 메타인지적 사고들이 쌓여 자아를 형성하며, 원래는 부산물이었던 이 기능이 이제는 인간 정신의 필수 기능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아가 인간에게 준 것 화자는 자아감·의식적 감각이 없었다면 타인의 내적 경험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일도, 복잡한 사회적 협력도 불가능했을 것이라 설명한다. 원시 생물은 오직 현재의 지각 속에서만 살 수 있지만, 자아는 인간을 과거와 미래로 보내주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희생하게 만들었다. 험프리는 이 자아감이 발전해 "나라는 영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신념이 되었고, 그 신념이 인간의 야망을 증폭시켜 자신과 후손을 위해 더 높은 곳을 지향하게 했다고 말한다.
🔢 핵심 수치
- 도형 추측 우연 정답률 = 25%
- 실제 맹시 환자 도형 정답률 = 70%
- 우회 경로(상구·시상) 정보량 = 직접 경로(시각 피질)의 1/16
💬 결정적 발언
"저는 어차피 안 보여서 장애물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냥 제가 걷고 싶은 대로 걸은 것뿐입니다." "선생님 제가 그쪽 시력을 잃어서요.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추측을 해 보세요." "생존에 있어 의식적 지각만으로 충분하다면 왜 인간은 의식과 자아를 진화시켜 온 걸까요?"
⚖️ 화자가 다룬 반론·한계
- 화자 스스로 "어찌됐든 볼 수 있다면 왜 100% 정답률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우회 경로의 낮은 정보량·저해상도라는 두 가지 이유로 답한다.
- 험프리의 논의 안에서 "자아감 형성이 부산물에서 필수 기능으로 주객전도된 것 같다"는 화자의 지적이 포함되어 있다.
🧩 핵심 용어
- 맹시(blindsight) = 시각 피질 손상으로 의식적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현상
- 시각 피질 = 눈에서 들어온 시각 정보를 의식적 인식으로 변환하는 뇌 영역
- 상구·시상 = 시각 피질을 거치지 않는 우회 시각 경로, 저해상도 정보만 처리
- 메타인지 = "내가 무언가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상위 인지 과정
🔎 보완 & 확인
- 배경 보완: 맹시 연구는 1970~80년대 로렌스 바이스크란츠(Lawrence Weiskrantz)가 환자 'DB' 사례를 통해 처음 체계화했으며, 영상 속 "베이스크란츠"는 이 인물의 한국어 표기로 추정된다.
- 배경 보완: 니콜라스 험프리는 저서 『Soul Dust』 등에서 의식(피현상적 감각, sentience)의 진화적 기원을 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상 후반부의 "자아=진화적 부산물" 논지는 이 저작의 핵심 주장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확인 필요).
- 사실 유의점: "70% 정답률" 수치는 특정 연구·특정 환자 사례에서 나온 수치일 가능성이 높으며, 모든 맹시 환자에게 일반화되는 통계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추정).
- 사실 유의점: "우회 경로 정보량이 직접 경로의 1/16"이라는 구체적 수치는 영상에서 출처가 명시되지 않아, 실제 신경과학 문헌에서의 정확한 수치인지 별도 검증이 필요하다(확인필요).
- 영상 제작자는 인풋-아웃풋 관련 내용을 '김필산의 사이언스피치' 영상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이 환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복도의 다양한 장애물을 두고는 복도를 지나가 보라고 해요. [음악] 놀랍게도 볼 수 없는 환자는 장애물을 모두 피해 갑니다. 연구자들은 장애물들을 어떻게 피했냐고 물어봤지만 환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어차피 안 보여서 장애물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냥 제가 걷고 싶은 대로 걸은 것뿐입니다. 영국의 대각자 베이스크란츠도 시야의 절반이 사라져 버린 환자들을 만납니다. 베이스크란츠가 종이에 어떤 도형을 그리더니 환자 시야의 사각 지대에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뭐가 보이세요? 환자는 대답합니다. 선생님 제가 그쪽 시력을 잃어서요.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추측을 해 보세요. 결국 환자는 화를 내며 삼각형인 거 같다고 말합니다. 사실 연구지는 원사각형 삼각형 X 모양을 준비했고 환자들이 도형을 우연히 맞출 확률은 25%에 불과했지만 실험 결과 그들이 정답을 말하는 비율은 70% 이밖했던 거죠. 분명 볼 수 없는 사람이 보는 현상. 이런 현상을 맹시라고 하는데요. 볼 수 없는 사람이 장애물을 피해다니고 도형을 알아마치고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지금 여러분은이 영상을 보고 계시죠? 두 눈을 통해 찍힌 이런 시각 정보는 어디로 갈까요? 네.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시각 피질이라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쉽게 말해 여러분의 눈이 스마트폰 카메라라면 카메라에 찍힌 정보는 시각 피질이라는 어플로 이동하고 시각 피질 어플을 통해 우리는이 글씨들을 선명에게 감각하고 내가 뭔가를 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맹시 환자들은 어떨까요? 맹시 환자들은 카메라는 멀쩡하지만 시각 피질 어플이 삭제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카메라가 보내는 정보를 알 수 있는 걸까요? 이걸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사실 카메라가 시각 피지 앱이 아니라 다른 백그라운드 앱들에도 정보를 몰래 전송하고 있다는 거죠. 연구 결과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는 실제로 상구나 시상 같은 곳으로도 전송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다는 의식적 인식은 시각 피지 러플에서만 가능한 기능이기 때문에 맹시 환자들은 보면서도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드네요. 어찌됐든 볼 수 있다면 왜 도형 문제에서 100%의 정답률을 보이지 못하는 걸까요?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시각 피지 랩으로 향하는 직접 경로는 고속도로와 같고 상구나 시상 같은 곳과 이어진 우회 경로는 자갈길과 같아서 우회 경로로 전송되는 정보량이 직접 경로에 16분에 불과하 점. 둘째는 상구와 시상은 정교한 이미지를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맹시 환자들은 저화질 세상을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며 살고 있는 셈이죠. 캠브릿지 대뇌학자 니콜라 선프린은 강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이런 화면을 보여줍니다. 무엇이 보이시나요? 그가 묻습니다. 사람들은 빨간색 화면이 보인다고 말하죠. 그럼 맹시 환자들은 어떨까요? 맹시 환자는 빨간색을 의식적으로 감각할 수는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지각할 순 있습니다. 여러분이 장애물을 피해 걸린 맹시 환자 본인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앞도 안 보이는 내가이 어려운 장애물 코스를 빠져나왔다고 믿끼진 않겠지만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재밌는 건 맹시 환자들은 자신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맹시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고 나랑 상관 있는게 아니라고 믿습니다. 한마디로 맹시 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빨간색을 느끼지만 그 느낌을 의식이나 자아하와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그들은 객관적으로는 보고 있지만 주관적으로는 보고 있음이 자신의 경험이라 느끼지 못하는 거죠. 파충류나 어류 같이 인간에 비해 덜 복잡한 생물들은이 화면을 보더라도 아 내가 빨간색을 보고 있구나 이렇게 인식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의식이나 자라는 개념이 없어도 그들은 수천만 년 동안 생존하고 번시켜 왔죠. 험프리는 묻습니다. 생존에 있어 의식적 지각만으로 충분하다면 왜 인간은 의식과 자아를 진화시켜 온 걸까요? 개구리는 파리를 보면 자동으로 혀를 내밀려 잡는 행동을 하죠. 파리라는 인풋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혀를 대미는 아웃풋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인간처럼 복잡한 두뇌를 가진 동물을 다르죠. 고등물들은 인풋과 아웃풋 사이에 중간 과정이 길어집니다. 예를 들어 사과를 봤을 때 단순히 먹어야겠다고 반응하는게 아니라 아이 사과는 예전에 먹어 본 적이 있는 거 같아.이 색깔은 조금 이상한데 썩은 건가? 이런 식으로 인풋과 아웃풋 사이의 중간 과정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이 길어진 중간 과정 중 어떤 코드들은 아웃풋의 정밀하고 좋은 판단을 내려주지만 어떤 코드는 아웃풋까지 도달하지 않고 뇌 속에서만 빙빙 돌다 끝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웃풋으로 이어지지 않는이 정보들은 쓸모 없는 걸까요? 헌프링은 빨간색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이 감각이라는게 우리에게 나라는 존재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능이라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자하감은이 빙글빙글 도는 정보들의 집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지금 빨간 사과를 보고 있어. 나는 지금 사과가 썩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있어. 이런 메타인지적 사고들이 자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것이죠. 하지만 뭔가 주객이 전도된 거 같아요. 왜냐면 시작은 부산물에 불과했던이 자감이란 기능이 이제는 인간 정신의 필수 기능이 되어 버린 거 같거든요. 한번이 자아감이나 감각이 없는 조상들을 상상해 봅시다.이 사람들은 자기가 뭔가를 느낀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내적 경험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무의식적인 지각을 넘어 의식적인 감각이 가능한 조상들만이 서로의 의식적 경험을 나누고 더 복잡한 사회적 협력을 해낼 수 있었을 거고요. 원시 생물들은 오로지 지금 느껴지는 지각을 통해 현재에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아는 우리를 과거로도 미래로도 보내주죠. 이런 능력은 과거의 경우 바탕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미래 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게 만들어줬을 겁니다. 험프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감이 발전에 나라는 영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신념이 되고 그런 신념은 인간의 야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자신과 자신의 후손을 위해 높은 곳을 지향하게 했을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의식이란 뭘까요? 영혼은 정말 존재할까요? 오늘 내용 중풋과 아풋에 대한 내용은 김필산의 사이온스피치님의 영상을 참고했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