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의 증언: 성령이 예수님을 가리킬 때

Pilgrim Devotions · 2026-09-15

본문

누가복음 3:21-22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로마서 8:16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요한1서 5:6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에베소서 4:29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골로새서 4:6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마태복음 12:34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시편 107:2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핵심 메시지

이 설교는 예수님의 세례 사건, 곧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며 아버지의 음성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선포하신 요단강의 순간을 중심에 둡니다. 화자는 이 사건이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라 성령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신앙의 근거 자체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설득력 때문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분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며, 그 동일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상 우리의 말과 삶도 그 증언의 성격 — 은혜롭고 덕을 세우며 진리를 담은 — 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이 설교의 결론입니다.

상세 메시지

화자는 성경에서 종종 조용히 지나치는 한 장면, 곧 예수님의 세례 사건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요단강에서 요한이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세례를 베풀던 중,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나아오십니다. 요한은 당황하며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항변하지만,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응답하시며 물에 들어가십니다. 화자는 이 행동이 예수님의 회개가 아니라 자기 백성과의 동일시임을 분명히 합니다. 예수님은 거듭난 자들, 곧 주를 사랑하는 이들의 대표자요 대속자요 구원자로서 물속으로 들어가십니다.

바로 그 순간 하늘이 열립니다 —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장벽이 찢어지듯 열렸다고 화자는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열린 틈으로 성령이 비둘기의 형체로 내려오십니다. 화자는 비둘기라는 상징이 순결과 무죄, 온유함과 평화를 나타낸다고 설명하며, 이는 성령의 성품 — 가혹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순결한 — 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말합니다. 청교도 신학자 존 오언을 인용하며, 성령의 강림은 그리스도를 선지자·제사장·왕의 직분으로 기름 부으시는 공적인 위임식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온 세상이 보아야 할 우주적 의미를 지닌 공개적 선포였습니다.

성령의 강림에 이어 하늘로부터 아버지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화자는 이 선언이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기 전, 설교하기 전,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기 전에 이미 주어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곧 아버지의 기쁨은 예수님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 자체, 아들 됨 그 자체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아버지, 두 증언이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하늘에서 땅으로 전달하는 communication(소통)이었다고 화자는 정리합니다.

그렇다면 이 2천 년 전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에 대해 화자는 신앙의 근거 문제로 답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지혜나 논리로 예수님을 납득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예수님을 증언하시기 때문에 믿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6의 "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와 요한1서 5:6의 "성령은 진리니라"를 인용하며, 성령의 주된 사역이 예수님을 증언하고 계시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우리가 믿음에 이른 것은 지적 결단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눈을 열어 예수님을 참모습대로 보게 하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어 화자는 설교의 실천적 핵심으로 넘어갑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우리의 말도 성령의 증언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와 골로새서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를 연결하며, 우리의 언어가 심판의 무기가 아니라 비둘기처럼 온유하게 내려오는 은혜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의 "나는 다시 설교할 기회가 없는 사람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설교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 긴박함이 성령이 하시는 일의 무게를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우리가 성령의 증언에 무언가를 더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반영하고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은혜로운 말을 할 때, 회개와 믿음의 삶을 살 때, 복음을 나눌 때 우리는 성령의 증언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응답으로 믿음(신뢰와 순종), 감사(눈이 열린 것에 대한), 순종(은혜로운 말과 삶)을 제시하며, 마태복음 12:34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와 시편 107:2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로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인용

"The Holy Spirit's testimony to Jesus is the foundation of our faith. There is no other." (성령의 예수님 증언은 우리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른 근거는 없습니다.)

"Our words are to be like the Holy Spirit's testimony. They are to point to Jesus. They are to build up. They are to give grace." (우리의 말은 성령의 증언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가리켜야 하고, 덕을 세워야 하고,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I preach as never sure to preach again, and as a dying man to dying men." (나는 다시 설교할 기회가 없는 사람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설교합니다.)

적용

  • 오늘 하는 말 중 하나를 고를 때, "이 말이 은혜를 끼치는가, 덕을 세우는가"를 잠깐 멈춰 점검해요.
  •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나의 논리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일이었음을 기억하며, 오늘 짧게라도 감사 기도를 드려요.
  • 가까운 한 사람에게 오늘 말이나 삶의 태도로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기회를 만들어요.

묵상 질문

  • 나의 최근 말들은 성령의 증언(은혜·덕·진리)을 닮아 있나요, 아니면 정죄와 가혹함에 가까운가요?
  •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선언이 예수님의 행위 이전에 주어졌다는 사실이 나의 정체성 이해에 어떤 의미를 주나요?

기도제목

  • 나의 말이 소금으로 맛을 낸 은혜의 말이 되도록
  • 성령께서 열어주신 눈으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도록
  • 가까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담대함과 기회가 주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