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이 전하는 위로: 심판 너머의 하나님 마음

Pilgrim Devotions · 2026-09-08

본문

나훔 1:2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나훔 1:3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나훔 1:7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나훔 1:15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5: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시편 46:1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핵심 메시지

나훔서는 짧고 자주 지나쳐지는 소예언서지만, 그 이름 자체가 "여호와는 위로하신다"는 뜻을 품고 있어요.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가 요나의 회개 설교 이후 다시 옛 악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나훔을 통해 그 확실한 멸망을 선포하셨어요. 그러나 이 심판의 메시지 안에는 동시에 위로가 담겨 있는데,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면서 동시에 자기에게 피하는 자를 아시고 지키시는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이에요. 결국 나훔서의 결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니느웨가 받은 그 심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복음적 확신이에요.

상세 메시지

설교자는 나훔서를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그냥 넘어가는 책"이라고 소개하며 시작해요. 소예언서(minor prophets)라는 이름 때문에 덜 중요하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 이 세 장짜리 짧은 책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고 말해요. 특히 나훔이라는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위로하신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서의 이름이 왜 하필 위로를 뜻하는지 그 역설에 주목하게 해요.

역사적 배경 설명이 이어져요. 나훔 당시 앗수르 제국과 그 수도 니느웨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이었고,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여겨질 만큼 부유하고 강했어요. 하지만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양떼처럼 흩어버렸으며, 잔인하고 교만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조롱했어요. 설교자는 여기서 "오늘날 어느 나라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라고 청중에게 되묻는데, 이는 고대 앗수르의 오만함이 현대 사회의 하나님 조롱과 무관하지 않다는 암시예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미 예전에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셔서 회개를 촉구하셨고 니느웨가 실제로 회개해 심판을 면했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나 약 40년 후 그들은 다시 폭력과 교만과 잔인함으로 돌아갔고, 이에 하나님은 나훔을 세워 그들의 확정된 멸망을 선포하게 하셨어요.

이어서 설교자는 나훔 1:2의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는 구절을 직접 인용하며, 이것이 "현대인의 귀에는 거북한 말씀"이라고 짚어요.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만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며 죄를 못 본 척 넘기실 수 없는 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요. 그러나 바로 다음 구절인 1:7에서 반전이 나타나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심판이 악인에게 임하는 동안, 자비는 그분께 피하는 자들에게 베풀어진다는 대조를 설교자는 핵심 메시지로 끌어올려요. 이 대목에서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의 말, "가장 큰 죄인이 가장 큰 자비를 받을 수 있다"를 인용하며 이것이 곧 복음의 핵심임을 강조해요.

설교자는 나훔 1:15을 통해 니느웨의 멸망이 곧 유다에게는 자유와 예배 회복의 소식임을 설명해요.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라는 말씀은 원수가 완전히 끊어졌기에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평안히 예배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그러면서 나훔 1:3의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는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두 속성—인내와 공의—을 동시에 보여줘요. 여기서 초대교회 교부 테오도레투스의 해석을 소개하는데, 하나님이 심판을 지체하시는 이유는 죄인이 회개할 시간을 주시기 위함이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심판은 확실하고 완전하게 임한다는 것이에요.

설교의 중심축은 이제 오늘의 청중에게로 옮겨가요. 우리는 니느웨 사람도 앗수르 백성도 아니지만, 하나님을 조롱하고 불의 위에 왕국을 세우며 약자를 착취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보시고, 기억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리스도께 피한 자에게는 니느웨가 당한 심판이 임하지 않는다는 복음의 소망을 전해요. 예수님이 갈보리에서 그 진노를 대신 짊어지셨다는 사실을 요한복음 5:24("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로 뒷받침해요. 반면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니느웨가 겪은 그 처참한 파괴—전차와 기병과 거리의 피—가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며,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왓슨의 말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만큼이나 완전한 속성이다"를 인용해요.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을 죄를 눈감아 주는 "우주적 할아버지"로 만들어버렸다는 비판도 덧붙여요.

마지막으로 설교자는 나훔서의 교훈을 실제 신앙생활에 적용해요. 첫째,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않으시며 죄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둘째,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는 자비가 있다는 것, 셋째, 나훔이 심판을 선포하도록 보냄받았듯 우리도 이제는 자비와 복음, 즉 도피할 길이 있다는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증인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이에요. 마태복음 11:28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와 시편 46:1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로 설교를 마무리하며, 나훔의 위로란 하나님이 죄를 못 본 척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심판하시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 심판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요.

인용

"The greatest sinner may have the greatest mercy." (가장 큰 죄인이 가장 큰 자비를 받을 수 있다.)

"The Lord is good, a stronghold in the day of trouble. He knows those who take refuge in him."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God's justice is as much a perfection as his mercy."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만큼이나 완전한 속성이다.)

적용

  •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하고 공의를 외면하는 신앙관을 점검하고, 죄에 대한 경각심을 회복하기
  • 매일 성경 읽기와 쉬지 않는 기도로 그리스도 안의 피난처를 일상에서 실제로 경험하기
  • 심판이 아닌 자비와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서, 주변 사람에게 그리스도 안의 도피처를 구체적으로 나누기

묵상 질문

  • 나는 하나님의 사랑만 붙잡고 그분의 공의는 외면하고 있지 않나요?
  • 니느웨처럼 한 번 회개했다가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간 영역이 내 삶에 있나요?
  •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면했다는 확신이 내 일상의 두려움과 불안에 실제로 위로를 주고 있나요?

기도제목

  •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균형 있게 붙드는 믿음을 위해
  • 회개해야 할 옛 습관과 죄를 성령께서 드러내 주시기를
  • 복음의 증인으로 담대히 자비의 소식을 전할 기회와 용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