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 창조의 능력이 내 삶을 빚으신다
본문
창세기 1: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3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요한복음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마태복음 13:31-32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시편 19:1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요한복음 8:12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시편 8:1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핵심 메시지
하나님은 태초에 형태도 없고 텅 비어 있던 어둠 속으로 직접 들어오셔서 빛을 말씀하시고 질서를 세우셨다. 이 창조의 원리는 단지 우주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삶이 혼돈스럽고 방향이 없어 보일 때, 하나님은 자리를 피하지 않으신다 — 그분은 바로 그 어둠 속에서 새것을 창조하고 계신다.
상세 메시지
설교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문장으로 문을 연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화자는 이 한 문장이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온 실재의 토대임을 강조한다. 해돋이와 해넘이, 산과 바다, 강과 나무, 그리고 인간 —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행위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말씀으로 이루셨다.
마르틴 루터는 모세가 창조 기사의 서두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되"라는 표현 없이 곧바로 "창조하시니라"고 기록한 점에 주목했다. 빛이나 궁창, 식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되"가 등장하는데, 왜 천지 창조에는 없는가? 루터는 이를 원초 질료(prima materia)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 하나님은 먼저 아무 형태도 없는 근원 물질을 창조하셨고,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아는 모든 세계를 빚어내셨다. 그 재료 자체도 없던 자리에서 재료를 만드시고, 그 재료에 형태와 목적을 입히신 것이다.
화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창세기 1장 2절의 장면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순수한 어둠, 형태 없는 텅 빔,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계셨다. 이것이 설교 전체의 축이다. 하나님은 질서가 잡혀야 비로소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혼돈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 자리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신다. 찰스 스펄전은 말했다: "세상을 무에서 이끌어낸 그 능력이 지금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단숨에 완성된 폭발이 아니라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먼저 원초 질료, 그 다음 빛, 이어서 물과 땅의 분리, 마침내 생명과 아름다움. 루터가 지적했듯, 첫째 날이 곧바로 "완성된 첫날"로 선포되지 않는 것은 세계가 아직 정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 오웬은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일은 그 계절에 완전하다 — 시작에는 미완성처럼 보일지라도." 화자는 이 원리를 청중에게 직접 대입한다. 우리가 즉각적인 변화, 즉각적인 응답을 원할 때,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신다. 그분은 날마다 천천히 우리를 빚어 가신다.
왜 하나님의 역사는 때로 조용하고 보이지 않는가? 화자는 요한복음 1장 1절로 대답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 자신이 살아 있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이 천지 창조 시 "말씀하시되"를 명시하지 않은 그 순간에도, 말씀은 활동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크게 말씀하시든 조용히 역사하시든,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신다. 혼돈에서 아름다움이 나오는 것은 언제나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다.
리처드 백스터의 말은 거칠지만 진실하다: "하나님은 거름더미로도 궁전을 만드실 수 있다." 아무리 깨어진 삶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변형시키실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루터는 태초의 창조를 씨앗에 비유했고,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마 13:31-32)로 그것을 확장하신다.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시작 속에,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 숨어 있다. 첫날의 혼돈이 우주의 서막이었듯, 지금 내 삶의 미완성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재 진행형 창조의 현장이다.
화자는 세 가지 응답으로 마무리한다. 예배 — 창조주의 능력과 지혜를 찬양하라. 신뢰 — 삶이 미완성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소망 —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하나님이 태초에 어둠에 빛을 가져오셨듯, 그분은 오늘 우리 마음에도 빛을 가져오신다.
인용
"The power which brought the world out of nothing is still at work in the hearts of men." (세상을 무에서 이끌어낸 그 능력이 지금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있다.) — 찰스 스펄전
"God's works are perfect in their season, though they may seem incomplete at the start." (하나님의 일은 그 계절에 완전하다 — 시작에는 미완성처럼 보일지라도.) — 요한 오웬
"The world is God's epistle to mankind — a letter written with the finger of God." (세상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편지다 —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인 서신이다.) — 토머스 왓슨
적용
- 오늘 삶에서 "형태 없고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영역 한 가지를 떠올리고,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운행하고 계심을 의식적으로 인정하라.
-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하다 낙심한 기도 제목이 있다면, "하나님은 단계적으로 일하신다"는 진리를 붙잡고 다시 믿음으로 내어 드리라.
- 피조 세계(하늘, 해, 꽃, 사람)를 바라볼 때 "이것은 내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기억하며 하루 한 번 창조의 찬양으로 시작하라.
묵상 질문
- 지금 내 삶에서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어디인가?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계심을 믿는가?
- 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신뢰하며 기다리는가, 아니면 조급하게 내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는가?
- 내 삶의 "겨자씨" — 아직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이 자라게 하실 씨앗 — 은 무엇인가?
기도제목
- 삶이 미완성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소서.
-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감지하는 영적 민감함을 허락하소서.
- 피조 세계를 통해 날마다 창조주의 영광을 발견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