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복음을 거부하는 이유 — 감춰진 신비, 그러나 가장 큰 보화

Pilgrim Devotions · 2026-05-06

본문

고린도전서 2:6-7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1:26-27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마가복음 11:24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시편 43:3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핵심 메시지

복음은 세상의 지혜나 논리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는 신비(mystery)입니다. 세상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복음이 약하거나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육적인 마음이 어두워져 복음의 영적 본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눈을 열어주신 자들에게 복음은 측량할 수 없는 보화이며, 그 믿음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변혁을 가져옵니다.

상세 메시지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 성육신, 구원 같은 신비들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 있습니다. 왜 세상은 복음을 그토록 강하게 거부하는가? 설교자는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그의 답은 단순합니다. 복음은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마음은 그 신비를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원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복음이 약속하는 복—부유함, 행복, 평화—은 탐내지만, 그것을 자신의 방식과 욕망의 틀 안에서 얻으려 합니다. 복음이 제시하는 방식, 즉 자기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처음부터 거부합니다. 부자 청년이 그랬습니다. 그는 진정한 풍요를 찾았으나, 가진 것을 팔고 예수를 따르라는 말에 근심하며 돌아섰습니다.

복음이 제시하는 기쁨과 즐거움도 세상이 원하는 것과 다릅니다. 복음의 기쁨은 죄를 슬퍼하는 가운데, 죄를 죽이는 가운데, 육체를 채우는 대신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에서 발견됩니다. 영혼을 살찌우는 기쁨이지, 육체를 살찌우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러니 세상은 말합니다. "필요 없습니다." 복음에는 세상의 어느 책도 담지 못한 신비들이 담겨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자들과 학자들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복음이 화려한 수사학이나 세련된 철학적 개념들로 가득 찼다면, 그들은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지혜는 신비 안에 감추어진 지혜이고, 세상의 지혜는 그것을 꿰뚫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에서 말한 것처럼, 복음의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도, 이 세상의 권세자들의 지혜도 아닙니다.

설교자는 브래드와딘(Bradwardine)이라는 중세 대학자의 이야기를 예화로 듭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전, 바울의 서신을 경멸했습니다. 바울이 형이상학자처럼 글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변화시키셨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탐구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려집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과 화해하시는 방식—하나님이 육신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그 죽음을 통해 죄인이 의롭게 된다는 것—을 어떤 인간이나 천사도 스스로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말구유의 아기, 목수의 아들, 죄인으로 처형된 사람에게서 인류 구원의 장엄한 설계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것은 인간 이성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복음이 신비인 또 하나의 이유는, 복음이 계시되는 대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들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평민들을 업신여겼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 평민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나타내셨습니다. 왕궁을 지나쳐 가난한 오두막을 찾으셨습니다. 헤롯은 예수께 아무것도 받지 못했지만, 우물가의 여인은 생수를 받았습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진리 자체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의 강도는 그분을 찾았고, 그와 함께 낙원을 얻었습니다.

설교자는 나아가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합니다. 복음의 가장 큰 적들은 노골적인 방탕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종교적이면서도 무지했던 자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전형입니다. 그는 엄격한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열심이었으나, 복음의 신비를 알지 못했기에 교회를 맹렬히 박해했습니다. 의는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온다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빛이 더욱 퍼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앎은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복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설교자는 복음을 믿는 자들의 삶 자체가 이 신비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신자들은 가난한 자의 옷을 입은 왕자들처럼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면에는 영광이 있으나 겉모습은 초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옷이 아닌 겸손과 가난으로 오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신자들도 연약함과 가난이라는 덮개 아래 숨겨두십니다. 이는 자기 부인의 은혜를 연습시키기 위함이며, 동시에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복음이 주는 믿음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삼위일체, 성육신, 죄 없는 자가 죄인 대신 벌받음—을 믿게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삶 전체를 변혁합니다. 아이가 이끌 수 있을 만큼 온유하게 만들지만, 불도 두렵지 않을 만큼 강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그 열매에 집착하지 않게 하며, 모든 이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면서도 이 세상 가장 큰 왕과도 자리를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만족하게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이며, 세상이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인용

"The gospel opens a mine of unsearchable riches. But it's all wrapped up in a mystery." (복음은 헤아릴 수 없는 보화의 광산을 엽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신비 안에 감싸여 있습니다.)

"No man, no angel could have thought up the way God chose to reconcile himself to fallen man." (어떤 인간도, 어떤 천사도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과 화해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The greatest enemies the gospel has ever had were not the openly profane and sensual. They were the superstitious and ignorantly devout." (복음이 맞닥뜨린 가장 큰 적들은 노골적으로 불경건하고 쾌락을 좇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미신적이고 무지하게 경건한 척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적용

  • 복음을 세상의 논리나 지적 세련됨으로 포장하려는 유혹을 내려놓고, 복음의 단순함과 신비 그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를 가져요.
  •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의 어두워진 마음을 위해 분노하기보다 성령의 빛이 임하도록 중보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요.
  • 매일 성경을 펴고,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 선명히 보여달라는 간구로 말씀 앞에 앉아요.

묵상 질문

  • 나는 복음을 세상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듬으려는' 유혹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 유혹의 뿌리는 무엇인가요?
  • 빌라도처럼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했던 경험이 내 삶에는 없었나요? 하나님이 그 눈을 어떻게 열어주셨나요?
  • 나는 지금 '가난한 옷을 입은 왕자'로서의 정체성을 붙들고 살고 있나요, 아니면 세상의 인정을 통해 그 정체성을 확인받으려 하고 있나요?

기도제목

  • 복음의 신비를 지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령께서 날마다 새롭게 그 영광을 보는 눈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해요.
  • 복음을 거부하거나 박해하는 이들—특히 종교적 열심으로 가득하지만 복음의 신비를 모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임하도록 기도해요.
  • 연약함과 초라함 가운데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언하는 용기를 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