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만큼 내 신앙이다ㅣ이정규 목사ㅣ잘잘법 231회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LWyi7KAh4U | 길이: 44:30
요약
헤맨만큼 내 신앙이다 | 이정규 목사 | 잘잘법 231회 요약
제공된 자막은 "우리 모두가 믿고 있는 공통 분모"에서 끝나 있어, 팀 켈러 관련 결론부는 요약에 포함하지 못했습니다.
🎯 TL;DR
이정규 목사는 20대에 성락교회(이단으로 평가받던 교회)에서 강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후 정통 장로교 신학으로 옮겨서도 같은 확신이 우월감과 혐오로 이어졌고, 그때마다 하나님이 그 확신을 흔드셨다고 회고합니다. 다른 교단 사람들과 친구가 되면서 "아는 게 많아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학은 그대로인데 호기심을 갖고 배우려 듣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 핵심 논지
- 확신이 가장 강했을 때 사고가 가장 편협했고, 교리 확신이 가장 강했을 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잃어버렸다.
- 좋은 교리를 인격과 분리해서 배우거나 가르치면 자기 확신과 증오·혐오가 커진다.
- 친구가 없으면 혐오할 만큼만 알게 되고, 친구가 생기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성락교회에서의 확신과 매력
- 20대 초반 대학부 수련회에서 1천 명이 넘는 학생이 찬양·기도·방언하는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무섭기도 했지만 매력적이었다고 합니다.
- 옳고 그름, 같은 편과 아닌 편을 나누는 이분법이 당시에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 병 고침, 귀신 쫓음, 삶의 문제 해결 간증이 넘쳤습니다. 팔·다리 길이가 안 맞는 사람에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늘어나라" 하면 늘어났다고 합니다.
- 공동체성과 환대가 강했고, 명문대생·의대생이 돈과 명예 대신 선교사의 길을 택하는 모습에 "저 사람들이 진리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 교회의 교리 전체를 "베레아"(사도행전 17장의 베레아 사람들)라 불렀고, 2천 년간 아무도 몰랐던 교리를 알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 한국 교회가 자신이 속한 곳을 이단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알고 갈등했지만, 사람들의 확신과 받은 좋은 것들 때문에 머물렀습니다.
부작용: 우월감과 혐오
- 기존 교회는 성경을 모르고, 능력이 없고, 우리를 질투해서 이단 정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다른 교회의 차갑고 냉랭한 예배를 보며 "하나님께서 저들을 떠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 친구에게 들은 말로, 혐오하는 사람은 혐오할 만큼의 지식만 알고 그 이상은 알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본인도 뜨겁게 예배하는 장로교회가 많다는 걸 몰랐고, 알기를 원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성경 읽기와 가르침의 충돌
- 성경을 강조한 점은 지금도 감사하며, 군대(운전병)에서 성경을 여러 번 읽었다고 합니다.
- 그 교회의 핵심 가르침은 귀신이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의 사후 존재이며, 모든 질병과 나쁜 일의 원인이 귀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근거로 든 것은 사도행전 16:16(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과 이사야 8:19(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를 합친 논리였습니다.
- 그러나 영어·원문으로 읽다가 "점치는 귀신"이 헬라어 프뉴마 피도나(Python, 델포이 신전의 뱀신 파이톤)의 의역임을 알았습니다. 뱀신은 살아 있다가 죽은 사람이 아니므로 논리가 깨졌다고 설명합니다.
- 중간 리더들에게 질문했지만 답을 못 듣고 "의심이 많다"고 혼났으며, 질문이 쌓이며 확신을 잃고 힘들어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와 정통 신학
- 20대 후반~30대 초반 직전에 로이드 존스의 『부흥』을 읽고 내적·영적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 이전에는 공로를 쌓지 않으면 하나님이 버리실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있었는데, 그 책의 하나님은 실패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었고 수십 번 읽은 성경과도 맞았다고 합니다.
- 로이드 존스의 책을 모두 사 모으며 장로교·정통 신학을 접했습니다.
- 『교리 강좌』 3권으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교회는 "잘못 해석하면 저주받아 죽는다"고 가르쳤지만, 이 책은 1세기 고난받는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위로로 풀어 주었고 매 페이지를 눈물로 채웠다고 합니다.
-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이신칭의(그분의 의로움이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 죄를 그분이 십자가에서 가져가심)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자신에게 큰 소망이었습니다.
- 이 시기 성락교회에서 리더로서 몰래 모여 공부했고, 로이드 존스·존 파이퍼·박영선 목사의 글을 자기 통찰인 양 가르친 것(표절)을 고백합니다. 이후 사람들을 정죄하고 윗사람을 무시·비난·뒷담화해서 상처를 주었고 친한 친구와도 금이 갔으며,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고 합니다.
개척과 두 번째 편협함
- 교회를 떠나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1학년 때 시관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단 출신이라 환영받기 어려웠고 신천지가 극성이던 때라 감시도 받았다고 합니다.
- 개척 교회는 3년 후 망한다고 생각했고, 고신 측 교회가 되면 "신분 세탁"이 되어 망해도 이득이라고 여겼습니다.
- 3년간 성장은 거의 없었지만 행복했고, 그 후 성장해 등록 기준 약 8900명이라고 말합니다(자막 표기 그대로).
- 이번에는 개혁주의 신학으로 다른 입장을 비판하며 "저 사람들에게 구원이 있을까"까지 생각하는 편협함이 다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친구가 생기며 달라진 것
- 통합 측 출신의 친한 목사가 신학교에서 감리교·성결교를 두고 구원 여부를 논하는 말을 듣고 "쟤는 감리교 친구가 없나?"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 다른 교단 친구를 만나면서 교리가 틀렸다고 여기던 감리교 목사 중에 훌륭한 기도의 용사, 성품과 신앙이 자신보다 훨씬 나은 분들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알려진 고신 측 목사로서 가장 진보적인 한신대학교에 교회 개척 강의를 하러 갔고, 성경의 권위 등 공격적인 질문에도 솔직한 답을 들었습니다. 이해는 했지만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습니다.
- 십일조·주일성수 같은 윤리는 잘 지켜서 그 기준으로 남을 쉽게 판단했지만, 약자·이방인을 돌보는 성경의 윤리는 그분들이 훨씬 섬세하게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큰 죄임을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 확신이 깨지는 것이 모래성이었음을 아는 "기분 좋은 자유"였다고 합니다.
- 목사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며, 이를 참아 준 교인들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현재의 태도와 예상 반론
- "제 신학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도 더 듣고, 호기심을 갖고, 비판이 아니라 배우기 위해 듣는다고 합니다. 다른 확신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 예상되는 반론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고 하면 다원주의가 되어 기독교가 절대적 진리를 믿는다는 근간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본인도 마음속에서 많이 떠올랐던 질문이라고 합니다.
- 이에 대한 답으로 팀 켈러 목사(대면한 적은 없지만 가장 좋은 가르침을 준 장로교·개혁주의 목사)를 들며, 그가 "우리 모두가 믿고 있는 공통 분모"인 복음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자막이 끝납니다.
핵심 용어
- 베레아(교리): 성락교회가 자기 교리 전체를 부르던 이름
- 프뉴마 피도나: 사도행전 16:16 "점치는 귀신"의 헬라어 표현, 델포이의 뱀신 파이톤
- 그리스도와의 연합 / 이신칭의: 정통 신학에서 만난 은혜의 교리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예전에 이단 교회를 다녔었어요. 성학 교회라는 교회를 다녔었습니다. 저한테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거 같아요. 그분들이랑 대화를 나눠 보다 보면은 모두가 다 확신의 차가 있었어요. 아, 정말 하나님 살아 계시고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고 그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고 그까 20대 초반에는 딱 옳고 그름 그리고 같이 있고 같이 없으면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모든 걸 나누는게 꽤 매력적으로 보였던 거 같아요. 저한테는 저도 그렇게 변해 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아, 나는 진리를 발견했어. 아, 우리가 최고고 보통 일반적인 장로교회는 다 차갑게 식어 있고 하나님께서 저들을 떠나셨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던 거 [음악] 같아요. 지금도 기억이 나요. 저는 매 페이지를 눈물로 채웠던 거 같아요. 저는 개척을 한번 망할 줄 알았어요. 그 저는 직장인이었고. 아, 그게 안 망했던 거예요. 안 [음악] 망하고 그 가운데서 어, 저는 실수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예. 그러니깐 예전에 제가 어, 성학교에 있을 때 거기서 되게 많이 확신했었다 그랬잖아요. 그죠? 그때 질병이 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예. [음악] 어, 저는 시관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정규 목사라고 합니다. 모르실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아서요. 어, 사실은이 질문을 제가 대답을 할 때에는 그니까 제 개인적인 삶에 그 여정을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하면 되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제 예전에 그 이단 교회를 다녔었어요. 요즘 이단 하면은 이제 그 유명한게 뭐 신천지나 뭐 하나님의 교회 이런게 유명하지만은 지금은 좀 많이 새가 줄어들었는데 저는 이제 성락교회라는 교회를 다녔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이제 처음 그 교회를 갔는데 이제 대학부 수련회를 가게 됐죠. 자꾸 수련회를 갔는데 어 1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가지고 막 찬양하고 기도하고 굉장히 뜨겁게 기도하고 막 방언하고 그런 분위기에 굉장히 압도됐던 기억이 나요. 되게 무섭기도 했고요. 저한테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거 같아요. 그니까 20대 초반에는 딱 옳고 그름 그리고 같이 있고 같이 없으면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모든 걸 나누는게 그 매력적으로 보였던 거 같아요. 저한테는. 예. 근데 거기에는 굉장한 확신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위 기적들이나 아니면 뭐 은사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강조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병고침 이런 것들 되게 중요하게 든요. 그래서 어 기적적으로 병도 많이 고쳤고 팔 길이가 안 맞거나 발 길이가 안 맞는 분들 이렇게 안 맞는 걸 보여 준 다음에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늘어나라 뭐 이렇게 그러면 늘어났어요. 너무 신기하잖아요. 그래가지고 와 진짜 하나님께서 여기는 일하시는 곳인가 보다. 그리고 귀신 쫓아내고 뭐 삶의 모든 문제를 되게 많이 해결했다. 이런 간증들이 되게 넘쳐 났었어요. 그리고 막 천명 넘는 사람들이 막 찬양 뜨겁게 하고 기도 뜨겁게 하고 막 방언하고 이런게 인상이 강하게 와닿왔고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있었죠. 그분들이랑 대화를 나눠 보다 보면은 모두가 다 확신의 차가 있었어요. 아, 정말 하나님 살아 계시고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고 그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이대로 살아야 돼. 그리고 당시에 제가 있어 소속된 곳에 목사님이 가르쳐 준 가르침은 거의 절대적으로 옳고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면은 가치 있는 그리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다 그렇게 똘똘들 뭉쳐 있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한이 명제 혹은 한 사람에 대해서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이 주는 굉장히 매력적인게 있더라고요.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은 일단 공동체성이 굉장히 강했죠. 제가 몇 번 방문했던 교회들 중에서는 공동체성이 약했던 교회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뭐 청년들도 좀 있어도 뭐 이렇게 하나돼 있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있고 약간 끼리끼리 놀고 그리고 목사님도 좀 약간 희마리가 없고 그런게 있었는데 거기 굉장히 모든게 역동적이었거든요. 그래서 공동체성이 강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막 끌어줬고 게다가 제가 되게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가진 뭐 명문대생들이나 뭐 의대생들이나 이런 사람들 있었거든요. 뭐 이런 분들이 그니까 세상의 명예나 뭐 돈이나 이런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막 난 선교사로 가겠다. 혹은 난 뭘 하겠다. 나는 뭐이 돈이나 뭐 이런 거 다 버리고 이런 길을 선택하겠다 하는 것들이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저 사람 진짜 뭘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저 사람들이 진리를 붙잡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분들하고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그리고 교육을 받고 그리고 같이 먹고 마시고 삶을 살아가면서 저도 그렇게 변해 갔던 것 같아요. 저도 아 나는 진리를 발견했어. 그리고 이제 거기서 그 성학교에서 가르쳤던 가르침의 교리 전체를 좀 베레야 이렇게 불렀거든요. 어 성경에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이 베레아 사람들을 가르치는 그런 말인데 베레아의 교리를 내가 알고 있는게 너무나 다행이고 그리고 2,년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이런 교리들을 하나님께서이 그때 당시 성학교 목사님 통해서 이제 알려 주셨고 나는 거기에 합류하게 대해서 너무 다행이야.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더 이제 공동체에 깊이 들어가게 됐죠. 그리고 그렇게 공동체에 헌신된 사람들이니까는 환대도 되게 강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어 20살 때 저를 생각해 보면은 되게 뭐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었거든요. 약간 너드의 끝판 파랑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 보면서 막 제 그때 관심 가졌던게 뭐 2차 세계대전 히틀러 이런 거에 관심 많이 가졌거든요. 아 히틀러를 좋아했다는게 아니고 아 근데 막 너 히틀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물어보면 이상한 놈이잖아요. 근데도 어 막 환대해 주고 같이 시간 보내주고 삶과 어 공동체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많이 가르쳐 주셨던 거 같아요. 근데 그지? 그 와중에 이제 일반적인 그런 어 한국 교회에서 제가 있던 곳을 이단이라고 평가하고 정하고 있다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었죠. 알고 있었어서 처음에는 갈등도 꽤 많이 했었습니다. 근데 갈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거기 그 공동체에 머무는 것을 계속해서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확신하는 사람들이었고 또 그 과정 중에서 제가 되게 많은 어 좋은 것들을 받았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예. 그래서 그런 시기를 보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아마도 제 생각에는 굉장히 많은 지금 이단교회에 소속되 있는 분들이 제가 느꼈던 거하고 꼭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경험들을 지금도 하고 계시리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그때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근데 거기에는 부작용도 있었죠. 제일 큰 부작용은 어쨌든 그니까 그분들 모두는 저도 그때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그니까 저기 있는 한국 교회에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자기들이 능력도 없고 그리고 우리를 질투하니까 그렇게 우리를 이단 정제하고 그런 걸라고 생각을 했죠. 그리고 가끔 가다가 이제 다른 교회 갈 일이 있긴 있잖아요. 그 가다 보면은 제가 느꼈던 것만큼 역동적이고 막 뜨거운 예배가 아니고 되게 차갑고 냉랭한 예배 같은 것들을 드리는 걸 보면서 아 여어 식으로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기존 교회들은 다 문제가 있고 알지도 못하면서 기존 교회에서 하는 모든 내용들은 다 뭐 차갑게 식어 있고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고 추구하지만 저들은 차가운 교리나 신학을 좋아하는 거고 우리는 능력이 있지만은 저들은 능력이 없어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떠나셨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항상 그런 마음들은 이제 우월감과 혐오를 낳거든요. 저는 되게 많이 거기서 5월 가면 사로잡혀서 살았던 거 같고 그리고 우리 외에 많은 사람들을 혐오했던 거 같아요. 보통 아 혐오를 하는 사람은 이거 제 친구가 저한테 얘기해 준 건데요. 어 혐오하는 대상에 대해서 혐오할 만큼의 지식만 알고 그 이상을 알기를 원치 않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예 뭐예. 근데 우리도 뭐 그러니까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 많이 뭐 이렇게 사이 안 좋잖아요. 근데 거기에 있는 역사나 혹은 그 사람들의 정서나 생각 같은 것들을 다 알려고 하지 않고 뭐 그들이 뭘 좀 잘못한게 있으면 그것까지만 알고 그 미워하고 끝내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도 아 우리가 최고고 그리고 뭐 보통 이제 한국에는 장로 교회가 제일 크니깐요. 보통에 일반적인 장로교회는 다 차갑게 식어 있고 쟤들은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고 그래서 한국의 장로교회 중에서는 굉장히 뜨겁고 열정적이고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도 많았거든요. 근데 이제 그런 것들은 몰랐던 거죠. 그리고 사실 알기를 원치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 그리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지났고 거기서 배웠던 것 중에서 제가 지금도 되게 감사하고 좋게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성경을 굉장히 많이 강조했다는 거죠. 예. 신학과 교리는 차갑게 쉬고 있으니까 성경만 열심히 읽어라. 그래서 저는 이제 이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을 열심히 읽게 됐어요. 군대 가서 제 군대 보직이 좀 운전병이었는데 그때 성경을 되게 많이 읽었던 거 같아요. 어 여러 번 읽으면서 성경을 많이 알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성경을 읽다 보니깐 어 거기서 가르치는 가르침들하고 어 성경의 내용하고 충돌라는 걸 꽤 많이 발견하게 됐어요. 예를 한번 들어보자면 이런 거였어요. 그 거기서 가르쳐 주는 가르침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이제 성경에 귀신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근데이 모든 귀신은 이제 예수님을 안 믿고 죽었던 사람의 사후 존재들이다. 그들이 이제 이렇게 떠돌아 다니는 거예요. 떠돌아다니면서 사람 몸속에 들어가 가지고 질병과 뭐 모든 나쁜 일들을 일으킨다. 그리고 모든 질병과 나쁜 일의 원인은 귀신이다.이 두 가지가 되게 중요한 가르침이었고 사실이 가르침이 성경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 있는 한국 교회에서 2단으로 정죄를 한 거였거든요. 근데 저는 이제 성경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거기도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얘기를 할 거 아닙니까? 대표적인 근거가 이거였어요. 사도행전 16장 16절에 보면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라는 말씀이 있거든요. 근데 이사야 8장 19절에 보면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이런 표현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 사도행전 16장은 점치는 것이 이제 귀신 들려서 점치는 거라고 말하고 있고 이사야에서는 그 점치는 것을 가르쳐서 이제 죽은 자에게 구하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둘을 합치면 점치는 것은 아 살아 있다가 죽은 사람한테 구하는 거니까 귀신은 살아 있었다가 죽은 사람이다. 이런 논리가 이제 세워지는 거죠. 저는이 논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보통 이제 그 한국에서의 무속 신앙에서도 어디 이제 점식가 가지고 하면은 이제 뭐 아기 귀신, 처녀 귀신 딱 살아 있다가 죽은 사람이잖아요. 그 제 상식과 논리에서도 이제 합리적이었다고 느꼈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이제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을 많이 읽다 보면 이제 영어로도 읽고 그리고 성경이 쓰인 원문으로도 읽잖아요. 다양한 방식으로 성경을 접하고 있다 보니까는이 사도행전 16장 16절에 있는 점치는 귀신이라고 번역된이 단어 있잖아요. 이게 의역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예. 이게 무슨 무슨 의역이냐면 이제 그리스로 푸뉴마 피도나라는 단어를 우리나라 말로 어 의역을 한 건데 프뉴마 피도나가 뭐냐면 파이톤 신이에요. 예. 고대에는 여러이 신들을 섬기고 있었잖아요. 특히 이제 그리스도로마 신화에 보면은 다양한 신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는 뱀신이 있었거든요. 그 뱀신이 파이톤이었어요. 예. 그래서 이제 델파의 신전을 지키는 뱀신이 있었고 그 뱀신이 성경이 그 뱀신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을 했던 건 아니죠. 근데 그때 당시에 점치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 뱀신의 영향을 받아서 혹은 뱀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가지고 신탁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예. 그게 성경이 그런 뱀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라고 인정한 건 아니지만 어 이제 이걸 다 설명할 수 없으니까냥 점치는 귀신 파이톤신 들린 여성 이런 식으로 이제 쓴 거죠. 근데 뱀신이 살아 있다가 죽은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어 이거 영어 성경 혹은 그리스 성경만 봐도 논리가 깨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거 외에도 이제 성경을 보면서 제가 발견한 것들이 꽤 많았거든요. 어 성학교에서는 이렇게 가르치는데 성경은 거기에 대해서 반대되는 말도 꽤 많네. 그래서 되게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걸 가지고 그 목사님한테 물어볼 수는 없었어요. 너무 큰 교회 목사님이라서 만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중간 리더들한테 물어봤죠. 그래서 아 이거 이렇게 된 건데 어떻게 된 거냐? 그 모르죠. 모르고 되게 많이 혼났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너는 좀 약간 어 이렇게 의심이 많다. 그리고 네가 뭐 다 아니야. 다 모르죠. 근데 제가 원했던 거는 다 알려 달라는게 아니고 요것만 좀 알려 달라는 거였거든요. 그리고 그 알려 달라는 요것들이 너무 많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예. 그래서 어 확신을 좀 잃었습니다. 확신을 잃었고 그리고 그 과정 중에서 어 되게 되게 많이 힘들어했던 거 같아요. 어 그렇게 힘들어했던게 제 20대 후반 이제 30대 초반으로 가기 거의 직전이었는데 그 과정 중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을 만나게 돼요. 부흥이라는 책을 처음으로 봤고요. 그리고 어 그걸 통해서 저는 이제 내적이고 영적인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특별히 이제 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되게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그 교회 있을 때는 물론 이제 하나님 사랑이 잘 생각은 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잘못하면은 뚜드러 패시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하나님께 공로를 쌓지 않으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나를 버리실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생각했거든요. 근데 로디존스 목사님의 책을 쭉 보면서 저는 원래 이런 식으로 생각했거든요. 부흥이라는게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하나님께 많은 것들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한 보답을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책에서 나타난 하나님은 어 실패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그래서 부흥을 주시는 부흥이라는 선물 말고는 우리 스스로 노력할 수도 없고 노력할 생각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가오시는 그런 위대한 하나님이 계시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경을 그 많이 읽었다 그랬잖아요. 수십번 읽었는데 거기서 나타난 하나님과 맞는 거예요. 예. 그러다 보니까 이제이 도대체 마틴 로이드 존스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냐 싶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제 서점에 가서 그때 제가 직장 생활 이제 하던 때였는데 돈을 좀 버니까 아 마틴 로이존스라는 이름이 붙은 책들은 다 사기 시작했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덕질을 했죠. 그래서 막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소위 제가 성학교에 있을 때에서는 약간 경멸했던 그리고 하대했던 이제 정통 신학 혹은 어 장로교 신학을 접하게 됐죠. 어 그리고 저는 굉장히 어 굉장히 좋았습니다. 네. 너무 많은 좋은 것들을 누렸어요. 어, 너무 많은 좋은 것들을 뭘 누렸는지를 말하기 전에 그 과정 중에서 제가 또 방황했던 이야기를 좀 하나만 더 해 드려야 될 것 [음악] 같아요. 아, 로이존스 목사님의 이제 설교집을 읽을 때 제가 그때 당시 그 이제 성학교에서 약간 리더 같은 일을 했어요. 근데 리더들은 이제 막 가르치기도 하고 뭐 조그만한 소그룹 모임 같은 것들을 인도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했냐면은 이거를 사람들한테 가르치고 싶은 거죠. 그래서 몰래 막 모여 가지고 선거 공부하고 그랬어요. 이거를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에서 배웠어. 이렇게 말할 수 없었거든요. 거기는 분위기가 뭐냐면은 그 교회 목사님 책 말고 다른 책은 안 읽는게 좋다. 예. 뭐 완전 금서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그 그런 거 웬만하면 피해라 이런 분위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숨길 수밖에 없었고 저는 이제 자연스럽게 표절을 했죠. 그래서 그때 되게 제가 되게 좋아했던 로이존스 목사님이나 존파이퍼 이런 분들의 책 글 같은 걸 보면서 마치 통찰인양 예 박영선 목사님 맞아요. 아 박영선 목사님 여기 잘잘 법에서 강의하셨는데 박영선 목사님 책 보고 막 하나님 열심 엄청 울면서 마치 이제 내 것이냐 표절하면서 그렇게 가르치고 했었던 거 같아요. 그 가운데서 어 저는 실수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예. 그러니깐 그것까지는 좋았어요.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자연스럽게 그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을 정하기 시작했죠. 예. 너는 잘못 알고 있다.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근데 마치 제가 옳은 것을 가지고 있고 이게 내 공로로 내가 잘났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있다라는 식으로 제가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하대했습니다. 제 위에 있는 리더들도 약간 무시했고요. 비난하고 뒷담무하고 그런 시절들을 되게 많이 겪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 중에서음 사람들한테 상처를 줬죠. [음악] 어 그때 그 젊은 어 친구들한테 젊은 때 의분이 있기가 쉽잖아요. 어, 그러니까 저한테 동조했던 사람들은 막 같이 리더들을 비난했고 그리고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은 또 저를 비난하고 저는 또 그 사람을 비난하고 그 과정 중에서 굉장히 친했던 친구가 사이가 금이 가기도 하고 예, 지금도 되게 미안해요. 예. 되게 미안하고음 그분들을 지금 다 다시 한 명씩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사과 하고 싶어요. 그 이외 이야기를 좀 말씀드리자면 어쨌든 저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를 떠났고 이제 다른 장로 교회에 등록해서 이제 삶을 살았어요. 근데 저는 이제 나름 프라이드가 있게 교회를 다녔죠. 나는 이제 드디어 정통으로 들어왔어. 이런 생각을 했고 그리고 정통신학에서 배운 것 중에 좋은 거 진짜 많았어요. 특히 제가 로이 존스 목사님의 교리 강좌 시리즈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세 번째 권에 보면은 이제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명이 쭉 있거든요. 근데 제가 원래 있었던 성학교에서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교는 거의 하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그때 그 목사님이 뭐라 그랬냐면은 요한계시록 잘못 해석하면 저주받아 죽는다. 뭐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이거 함부로 해석하는게 아니다. 예. 그래서 어 이거 건드려 건드려서도 안 되는 책처럼 저한테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약간 무섭잖아요. 요한계시를 잘 모르고 읽으면 뭐 갑자기 용이 나타나고 막 대접이 부어지는데 막이 땅에서 막 관난이 있고 너무 무섭잖아요. 그래 가지고 약간 별로 은혜롭지 않은 고통스러운 책 그리고 내가 아 지옥 가면 경험하게 되는 내용을 담은 책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거든요. 나중에 로이전스 목사님의 그 3권을 보니까는 그니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어요. 신자들이이 땅에서 삶을 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과 고난을 여기서 기록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고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 결국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승리할 것이다가 약속된 1세기에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 위로를 전달해 주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됐던 거죠. 제가 그때 지금도 기억이 나요. 저는 어 그 매 페이지를 눈물로 채웠던 거 같아요. 예. 그러니까 이게 너무 좋은 거죠. 그리고 이제 계시록이 너무 좋으니까 다른 계시록 책 같은 것도 많이 봤는데이 정통 신학은 넓은 범주가 있잖아요. 2,년이 있고 그리고 2,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있고 그리고 계시록에 대한 글을 쓰느라 다량의 잉크를 소비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편이 너무 많은 거예요. 나는이 조그만한 섹터에서 아, 우리만 잘랐어라고 생각을 하다가 이제이 넓은 데로 와 가지고이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그리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신학 안에 있으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게다가 은혜로운 것들도 꽤 많았습니다. 뭐 예를 들면은 저는 이제 성학교 있을 때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뭐 칭의 이신칭의 이런 교리에 대해서 듣긴 들었었어요. 말만데 설명을 들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그걸 설명을 들으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예. 그분의 모든 의로움과 선함이 우리의 것이 됐고 우리의 모든 죄를 그분이 가져가셔서 십자가에서 못 바혀 죽으셨다. 사실은 되게 간단한 설명이고 그리고 정통교회 안에 있는 분들은 거의 뭐 지겹게 들어봤을 만한 설명이기도 하거든요. 근데 저한테는 엄청난 소망이 됐어요. 왜냐면 저는 항상 죄책감에 시달렸거든요. 예. 그리고 되게 많이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지 않을 거야라는 어 망령 같은 생각에 시달렸거든요. 그니까이 정신학에 있던 사람들은 이걸 어렸을 때부터 어 하품하면서 들었던 거예요. 저한테는 막 눈물이 나는 진리를. 그래서 엄청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아 나는 이제 드디어 들어왔어.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단이 아니야. 나는 이제 어 그곳에서 했던 모든 것들이 다 잘못된 것들이었고 나는 내 과거를 부정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넘어갔죠. 어, 그리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음악] 시간이지나 교회를 떠나왔어요.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단 교회에 있었을 때 알고 있던 친구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 친구들하고 이제 만나 가지고 교재를 하다가 결국은 이제 소그룹 성각 공부 모임 같은 것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이 이제이 사람들이 저랑 성공하다 보니까는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든 거죠. 근데 갈 곳 없잖아요. 갈 것이 없고 약간 이단 출신이면 그렇게 막 환영받고 그러진 못하잖아요. 그때가 막 신천지가 발응할 때였어요. 그리고 막 산 옮기기 이게 이제 막 그럴 때라서 어디 이단에서 왔다 그러면은 일단은 감시부터 그러니까 감시하는 건 이해해요. 당연히 이해하죠. 근데 그게 받는 사람서 기분 좋을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디 갈 것도 없고 그리고 저도 그 과정 중에서 하나님이 나를 목회로 부르시나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그래서 개척하자 해가지고 저는 신학 대학원을 들어갔고 신학 대학원 1학년 때 개척을 한 거예요. 그게 이제 시관계죠. 저는 개척을 하면 망할 줄 알았어요. 그 저는 직장인이었고 아 안 되겠다. 우리가 갈 곳이 없다. 그래 가지고 제가 이제 목회를 하기로 하고 어 신학대학원을 들어가고 개척을 했죠. 이런 것을 했고 저는 3년쯤 지나면 망할 줄 알았어요. 교회가. 왜냐면 개척 교회가 보통 개척하면 3년 후에 다 망한다고. 3년이 지나면 망하면 제 제 생각에는 이제 저는 장로교 고신 측에 속한 사람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2단 출신이 아니고 장로교 고신 출신의 사람들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신분 세탁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망해도 이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제 망하면 그 이제 하고 나는 뭐네 딴 일을 좀 알아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3년 지나고 나서 성장 거의 없었습니다. 예. 거의 없었지만 행복했어요. 우리끼리. 예. 근데 이제 그리고 나서 3년 지나고 나서부터 성장하기 [음악] 시작했어요. 아, 그게 안 망했던 거예요. 안 망하고 지금 거의 등록으로 치면 거의 한 8900명. 그래서 되게 감사 했고 예전에 제가 어 성학교에 있을 때 거기서 되게 많이 확신했었다 그랬잖아요. 그죠? 그때 질병이 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예. 저는 이제 그이 소위 정통이라고리는이 넓은 데서도 이제 장로교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근데 보통 장로교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약간 하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예. 저도 그랬고 그리고 되게 비판했고 신학적으로 조금만 다르는게 있어도 저 사람들에게 구원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되게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재밌는 건 뭐냐면 가장 확신이 강했을 때 가장 편한 사고를 하고 있었고 그리고 가장 교리에 대한 확신이 강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잃어버렸어요. 사람이 예, 제가 미워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걸 저는 좋은 교리를 배우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교리를 인격과 분리된 상태로 배우거나 가르칠 때 자기 확신과 증오와 혐오도 확대되는 거 같아요. 예. 그러고 나서 그 가운데 이제 어 하나님께서는 좀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저를 인도해 주셨던 거 같아요. 제가 되게 친한 목사님 한 분 있거든요. 근데 그 목사님이 어 이제 통합측 출신이세요. 이분이 아주 보수적인 장로교 신학교를 간 거예요. 근데 이제 거기 보니까는 아주 저같이 그때 당시 저같이 어 개혁주의밖에 없어. 정통이 최고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뭐 감리교나 성결거나 이런 사람들을 막 그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있을까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걸 들었대요. 친한 목사님이 그 얘기를 신학교에서 듣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대요. 쟤는 감리교회 친구가 없나?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친구가 없으면 쉽게 판단해 버리죠. 예. 친구가 없으면 딱 혐오할만큼만 알게 되는 거죠. 예. 근데 이제 저한테 조금씩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 그러니까 이제 교회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하고 저는 좀 약간 내항적인 사람이거든요. 어, 저는 내항적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 인간 저대로 두면 타락하겠다 싶으셨던지 저한테 다른 교단, 다른 어, 교파 있는 친구들과 교류를 많이 하도록 하셨어요. 어떻게 하다가 보니까 많이 만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는 제가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에이 쟤네 교리는 틀렸어라고 생각했던 뭐 감래교 목사님들 중에서 정말 훌륭한 기도의 용사들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보다 그니까 성품적으로나 혹은 어 그니까 신앙적으로 너무 훨씬 좋은 분들도 많은 거죠. 그니까 친구가 생기면 이야기를 듣게 되더라고요. 예. 실제로 제가 겪었던 것 중에서 제일 재밌는 그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어 저는 이제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가 이제 성장했죠. 그러다 보면은이 개척에 관심 있거나 개척을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이 저한테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하거나 혹은 이제 강연 요청을 할 때가 있어요. 저는 이제 장로교 고신 측에 속해 있고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대체로 가장 보수적인 교단이라고 알려진 교단이죠. 근데 한신대학교에서 교회 개척과에 대한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한 거예요. 한신대학교는 그 어쨌든 한국에 있는 기독교 교단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축에 속했다라는 교단이거든요. 근데 여기서 저를 부른 겁니다. 그래서 잘못 알고 불렀나라고 생각을 하고 갔었어요. 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이제 강의는 교회 개척에 관한 강의였고 교회 개척과 변증에 관한 강의였고 강의를 하고 끝나고 이제 잠깐 교재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죠. 교재를 하는데 너무 좋은 분들이니까 저는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싶을 수 있는 거예요.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사실 되게 이렇게 점자는 채하면서 이렇게 피상적인 대화만 하려고 그랬거든요. 근데 마음을 솔직히 열어 주시고 얘기를 되게 많이 해 주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약간 공격적인 질문도 했어요. 그러니깐 어 뭐 예를 들면 성경의 권위 같은 주제 같은 거죠. 공식적으로 저희 교단이 믿는 바하고이 교단이 믿는 바하고 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 질문들을 했고 그리고 되게 솔직한 대답들을 되게 많이 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더 이해하게 됐지만 제가 동의하게 된 건 아니었습니다. 근데 너무 좋았어요. 왜냐하면은 이런 것들을 알게 됐어요. 저는 이제 보수적인 사람이죠. 예. 근데 한국교회 보수적인 기독교에서는 뭐 헌금 11조라든가 아니면 주일 성수라든가 성률일이라든가 이런 거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저도 그런 입장을 취합니다. 근데 어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는 좋은 책들이나 혹은 성경적 근거 성경에 대한 이해는 저는 되게 많이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저는 약자들을 돌보는 성경의 윤리라든가 그리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급진적으로 보이는 하나님께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시고 이방인과 아 나네를 돌보시는 성경의 가르침들 있잖아요. 제가 몰랐던 건 아니죠. 근데 그분들은 훨씬 더 섬세하게 알고 계시더라고요. 예. 훨씬 더 잘 알고 계시고 그리고 제가 참조하면 좋을 책들이나 강의 같은 것들 굉장히 많이 소개를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느꼈던 건 뭐냐면은 저는 제가 잘 지키는 윤리에 점수를 더 주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예. 저는 주일 성소 잘합니다. 목사니까 당연히 잘하겠죠. 근데 목사가 되기 전에도 어 예배 안 빼먹었던 거 같아요. 거의 거의 그런 쪽으로 방황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면 어떻게 되냐면 나만큼도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정지하게 되겠죠. 예. 저는 근데 봉사 활동 나가는 거 진짜 못 하거든요. 나가서 연타 넘기고 힘들어요. 못 하겠어요. 근데 이제 시키면 됐죠. 근데 그러다 보니까는 어 그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게 그니까 저한테는 자기 중심적이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거죠. 근데 그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제가 되게 많이 배웠어요.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 거죠. 아, 오히려 나는 내가 믿었던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확신이 아, 흔들린다. 내가 믿고 있고 내가 뿌리박혔다고 생각하는 그렇기 때문에 남들을 쉽게 정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기에 대해서 자기 확신이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예. 그 아는게 많아지면서 어, 나는 진짜 모르는게 많구나.라는 걸 더 많이 알게 된 거죠. 예. 이거는 아주 기분 좋은 자유였습니다. 왜냐면 내 확신이 깨지는게 사실 확신이 깨지는게 슬프고 힘들 수도 있지만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붙들고 있었던 확신이 진짜 아무것도 아닌 모리 모래성이었구나라는 걸 알게 되는 쾌감도 있거든요. 예. 그러면서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아는게 내가 더 많아질수록 내가 더 모르는게 많구나라는 걸 알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지난 삶을 생각해 보면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성학교 있을 때 초기에 20대 초반에 강력하게 확신했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증와 혐오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 중에서 흔드셨어요. 회의를 하시고 흔들고 나서 또 다른 곳으로 넘어가게 하셨죠. 그리고 그 전에서 배웠던 모든 좋은 것들을 가지고 가게 하신 거 같아요. 예. 그러고 나서 또 여기서도 또 혐오와 증오와 자기 의가 시작됐죠. 그리고서 또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들을 흔드셨던 거 같아요. 사실 그런 자기 의가 저희 교회 교인들한테도 상처를 주었을 거예요. 많이 주 어 주었을 거예요가 아니고 많이 줬죠. 예. 목사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교인들한테 상처를 주는 거 같아요. 예. 그걸 참아내고 같이 해 주신 분들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죠.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고 나서 어 제 삶에는이 조금 더 여유가 생겼던 거 같아요. 예. 어떤 여유가 생겼냐면 그니까 나랑 다른 생각을 가진 신학을 가진 교리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아직 내가 틀렸다고 말하지만 제 신학은 변한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데도 저는 더들을 수 있게 됐고요. 호개심을 가지게 됐고요. 호개심이 진짜 중요한 거잖아요. 호기심이 있어야 듣고 싶으니깐요.들을 들을 수 있게 됐고 비판하기 위해서 듣는게 아니고 배우기 위해서 듣게 되고 대화하게 됐고 그리고 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그리고 나와 다른 확신을 가진 저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그리고 저도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깐 결국 그래도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인데 어 여러분 이것도 맞다, 저것도 맞다. 이건 다 그냥 부분일 뿐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거는 너무 다원주의적인 거 아니냐. 결국 기독교의 근간 진 기독교는 절대적인 진리를 믿는다는 근간을 흔드는 거 아니냐. 그래도이 확신 안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질문이 떠오르실 것 같아요. 사실 제 마음속에서도 굉장히 많이 떠올랐던 질문이에요. 어 거기에 대해서 제 생각만 간단하게 좀 말씀드리고 끝냈으면 좋겠어요.이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저한테 제일 좋은 가르침을 줬던 분이 계십니다. 한 번도 대면에서 만나 본 적은 없는데 어 팀켈러 목사님이죠. 그분도 장로교 목사님이시고요. 저도 장로교 목사고요. 그리고 그분도 개혁주의 신학을 하시는 분이고 저도 그렇지. 그 그렇죠. 근데 그분은 되게 좋은 모범을 보여 주셨어요. 어떤 모범을 보여 주셨냐면 복음을 가르쳐 주셨어요. 우리 모두가 믿고 있는 공통 분모가 복음이라는 것. 그 복음의 중심 외에 다른 신학, 다른 교리들이 복음 위에 서면은 안 된다라는 것을 어 강의나 설교로뿐만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셨던 거 같아요. 그분 정말 다양한 분들과 교류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거든요. 어 제가 배웠던 제일 좋은 건 이거였습니다. 복음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장 찬란하게 드러난다는 거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한번 생각해 보면 아 이런 두 가지 배움이 생깁니다. 하나는 이거죠. 그니까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할 정도로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가진 죄인들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모든 거를 말씀 한 마디로 하실 수 있었거든요. 빛이 있으라 그럼 빛이 있었죠. 예. 일어나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러면은 안전뱅기가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릴 때도 말씀 한 마디로 고칠 수 있었어요. 모든 걸 말씀 한 마디로 고칠 수 있는 모든 걸 말씀 한 마디로 하실 수 있는 바로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는 말씀 한마디로 하실 수 없었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어야 했거든요. 그니까 그만큼 우리는 끔찍한 존재였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러한 우리에게 아들을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죠. 그러면서 제가 배웠던 어 정체성은 이거였어요. 복음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가 훨씬 더 큰 죄인이라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감히 바라는거나 상상했던 것보다 아 우리가 훨씬 더 사랑받고 있다는 것. 어 여기서 저는 그 진리를 굳게 붙들면서 어 동시에 관용하는 법을 배우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깐 어 이런 거죠. 확신이 다른 여러 가지 지역적인 교리 그것도 인격이 배제된 방식의 교리가 아니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께 고정된다면 그분에 대한 확신이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오히려 관용적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예. 1세기의 로마를 한번 생각해 보면 1세기 로마는 지금하고 비스무리하게 약간 다원주의적인 사회였거든요. 로마 황제만 섬긴다면 어떤 종교를 믿든간에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들이 인정됐어요.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절대적인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고 생각했죠. 훨씬 더 편한 믿음 아닙니까? 예. 근데 훨씬 더 편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당시에 다원주의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로마 사람들보다 윤리적으로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 어 아주 급진적인 실천을 보여줬어요. 그들은 남녀와 동등한 삶을 살았습니다. 보통 여성은 하대 바뀔 수 있고요. 그리고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뭐 여아를 죽여도 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었으니깐요. 아주 끔찍한 세상이었죠. 근데 어 기독교 세계 내에서는 여성도 리더십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예.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병자를 버리지 않고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간호하다 죽었죠. 예. 왜 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아직 1세기니깐요. 교리가 지금처럼 정교화되고 체계화되기 전이었죠. 그리고 실제로 1세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교리적인 불일치들이 있었습니다. 근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굳게 가장 강력하게 마음의 중심, 정체성으로 삼았던 어 교리 혹은 진실이 있었죠. 어 우리가 믿는 진리는 단순한 어 글 체계가 아니고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도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자기를 향해서 침을 뱉고 비난하는 그 상대들을 보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 저들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 분이라는 걸. 예. 그분이 우리의 진리잖아요. 그리고 그러한 분을 절대 진리로 믿는다면 어떻게 나와 다른 사람들을 증오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혐오하거나 깔아보거나 비난할 수 있겠어요? 이게 제가 팀 목사님때 배웠던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거든요. 이게 저희 삶을 변화시켰고요. 그리고 저는 복음에 대해서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확실을 가지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 제가 죄인이라는 것, 더 깊은 확신을 가지게 됐고요. 제가 죄인이기 때문에 남들에 대해서 어, 제가 안 짓는 죄를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요. 저 사람이랑 나랑 똑같은 죄인이고 어, 그리고 내가 저 사람보다 자랑할게 없다라는 정체성이 생겼죠. 또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받는 존재다라는 마음이요. 저 사람도 나랑 똑같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그런 확신으로 이어졌던 거 같아요. 그래서음 짧은 질문에 긴 대답이긴 하지만 요약하자면 이런 거 같습니다. 그니깐 어 이런 잘못된 확신 혹은 어 진짜 진리에 대한 확신이 아닌 교리를 이용한 자기 확신 때문에 어 부부가 이혼하는 걸 본 적이 있고요. 그리고 가족이 깨지는 것 사랑하는 친구들이 헤어지는 것 멀쩡하던 좀 하나님 나라 같은 교회가 어 완전 지옥처럼 변해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보고 있고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이 이 이야기가 우리의 일상과 무관한 이야기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음과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분에 대한 확신 없이 어 차가운 교리적인 확신만 가지고 있다면은 확신은 우리를 혐오하게 하고 증오하게 할 겁니다.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되겠죠. 내가 믿는게 곧 자기의 정당성이 되는 걸 겁니다. 하지만 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주신 그분을 어 우리가 더 깊이 확신한다면은 어 우리는 진리에 대한 더 많은 확신 그리고 내가 사랑받고 있다라는 어 자존감이 올라가는 그 확신을 가지면서도 이웃을 끌어다른기고 환대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성품으로 변해 가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저도 소망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길려. 몇 년 전 몇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재밌는 메일이 연달라 몇 통이 온 적이 있어요. 무슨 내용이었냐면 잘잘법에서 김학철 교수님이 그 진화론 관련해서 그 얘기한 그 내용을 보고 이거 맞는 거냐? 검증해 달라. 목사님 어떻게 생각하냐? 이걸 물어보시더라고요. 이제 즉으로 말씀드리자면 몰라요. 저도 모릅니다. 저는 저는 목사 나불행일 뿐입니다.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책들도 읽어 봤고요. 진짜 과학자분들이랑 대화를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굳이 지금까지의 여정 가운데 어디까지 왔니라고 물어본다면은 저는 아직은 그러깐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진화의 방식으로 만드셨다라고는 믿고 있지 않습니다. 예. 그니까 소위 진화적 창조론자 혹은 유신진 진화론자는 아니라는 거죠. 그럼 뭐냐? 모르겠어요. 어느 카테고리에 제가 같이 갇혀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직 배우는 학생이에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크게 변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주 막 획기적인 뭔가가 있지 않는 한 근데 이제 어 김학철 교수님 강의 듣고 저 되게 좋았고요. 좀 많이 배웠고요. 그리고 통찰도 많이 누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대답하는 걸 김철 교수님 싫어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많이 배웠고요. 근데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은 어 잘 대화하고 잘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뭐냐면요. 이런 거예요. 이게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요. 제가 복음을 전할 때 예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을 섬길 때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어 그리고 오히려 김학철 교수님 같은 분들이 되게 과감하게 얘기해 주셨거든요. 몇십 년 지나면 이제 어 별 문제가 안 생길 거다. 이거에 대해서 아 그렇게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근데 어 저는 김박철 교수님을 아군으로 둘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진화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라는 걸 어 확신하는 분들이 제 아군이라고요. 예컨데 이런 거죠. 저는 저희 교회는 이제 신앙이 없는 사람들 비신자들이 많이 방문하고 그리고 이제 신앙을 가지게 되는 일이 많거든요. 그 항상 그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