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뺨을 맞았다고요? 당신도 때려도 됩니다ㅣ박영호 목사ㅣ잘잘법 233회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A6rFErtc0M | 길이: 21:12
요약
오른뺨을 맞았다고요? 당신도 때려도 됩니다 — 박영호 목사
🎯 TL;DR
박영호 목사는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 버림받는 조건으로 읽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 맞서 갚을 수도 있지만, 잠시 멈춰 다른 반응을 선택할 자유도 있다는 초청으로 읽는다. 그 자유를 행사할수록 더 큰 자유로 자라갈 수 있다는 것이 강연의 중심이다.
📌 핵심 논지
- 신앙은 삶에 짐을 더 얹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예수님께 배우는 길이다.
- 예수를 믿어도 배신, 질병, 경제적 손해와 억울한 일은 생긴다. 차이는 그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 삶에서 일어난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자신의 삶을 이룬다.
본문
짊어지는 자전거가 아니라 타는 자전거
목사는 기독교 신앙을 자전거에 비유한다. 더 잘 가도록 주어진 자전거를 짊어지고 걷는다면 오히려 힘들어진다.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초청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예수께 배우는 일이 이 땅의 삶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그는 두 가지 오해를 짚는다. 예수만 믿으면 모든 짐이 즉시 사라지고 삶이 잘 풀린다는 생각, 그리고 구원과 천국만 중요하고 현재의 삶은 혼자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왼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달성해야 할 더 높은 점수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를 율법주의라고 설명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선택
목사는 스티븐 코비가 소개한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는 말을 해석의 실마리로 삼는다. 뺨을 맞는 것은 자극이지만, 어떻게 반응할지는 곧바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서 때리거나 욕으로 갚는 미성숙한 반응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라지거나 더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것만이 가능한 반응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빅터 프랭클의 말을 빌려서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부모의 이혼, 취업 실패, 사업 실패처럼 원치 않은 일이 닥쳐도, 그 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어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연이나 실패 뒤에 술을 마시는 대신 기도하거나, 운동하거나, 산책하거나, 봉사할 수도 있다는 예를 든다.
자유를 써서 더 큰 자유로
목사는 강도를 만나 돈을 건넨 사람이 돌아가는 강도를 불러 돈을 더 주는 예를 든다. 빼앗긴 상황에서도 ‘내가 주었다’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읽는다.
그는 갈라디아서 5장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를 인용한다. 처음 받은 것은 선택의 자유이고, 그 자유로 지혜롭게 선택하며 나아가는 목표는 더 큰 자유라는 것이다. 의사의 식이 조언을 따르지 않을 자유는 있지만, 그 선택으로 훗날 먹을 수 있는 것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예를 덧붙인다.
예수님과 스데반의 반응
목사는 예수님이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의 잘린 귀를 고쳐 주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핍박하는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일을 왼뺨을 돌려 댄 삶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돌에 맞아 죽어 가던 스데반도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기도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어렵다고 인정하되 이 땅에서 불가능하다고 단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갈등이나 모욕 앞에서 숨을 고르고, 이전과 조금이라도 다른 반응을 생각하고 기도해 보라고 권한다.
결정적 발언·반론·핵심 용어
“Your life is not what happened to you. It’s what you do with what happened to you.”
목사의 설명대로, 내 삶은 내게 일어난 일만이 아니라 그 일 가운데 내가 한 선택이다.
그는 왼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을 죄인임을 깨닫게 하려는 명령이나 천국에서만 가능한 이상으로 보는 해석을 소개한 뒤, 현재의 삶에서도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고 답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반응과 태도를 선택할 자유다.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세상이 나의 뺨을 때린다고 느낀 순간이 여러분 있습니까? 내가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취직하려 그랬는데 IMF가 터져서 취직이 안 됐고 아버지가 사업에 망한다든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우리 삶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야 그건네 인생이 아니야. 그것은 내 인생에 일어난 일이에요. 그건네 인생이 아니야. 정말 내 인생, 내 인생은 뭔가 하면요. 그 일어난 일 가운데서 내가 어떻게 했는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맞서 때려도 됩니다. 비뚤어질 수 있습니다. 내 인생 내가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냥 화풀리로 인생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음악] 그러나 치거든 왼밤도 들려대라. 예수님 말씀입니다. 참 멋진 말인데 사실은 굉장히 부담되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학자들이이 문제를 붙잡고 실험했습니다. 많은 해석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 들면 하나는 아 이거는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고 이런 말씀을 하심으로써 내가 할 수 없구나 내가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효과를 보고 예수님 하신 말씀이다라고는 해석이 있고요. 또 하나는 이게 좋은 말이지만이 땅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아름다운 이상이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나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어 해석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럴까? 좀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다르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함께 해 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해 보죠. 세 사람이 길을 갑니다. 한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요. 어, 한 사람은 자전거 없이 가고요. 또 한 사람은 자전거를 짊어지고 갑니다. 누가 가장 잘 갈까요? 예. 누가 가장 힘들까요? 네. 자전거를지고 가는 사람이죠. 저는 기독교 신앙이 자전거와 같다고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자전거는 왜 줬는가 하면 타고 가라고 준 거죠. 더 잘 가라고 준 거죠. 근데 많은 사람들이 자 그를 지어지고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 보호 아래 사는 것이 예수 안 믿고 사는 거보다 더 쉬워요 힘들어요? 어 꽤 많은 사람들이 더 힘들다라고 생각합니다. 그죠? 세상 것도 해야 되고 하나님 말씀도 들어야 되고 세상도 열심히 따라가야 되고 교회 살라는 것도 순종하고 충성해야 되고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말씀하셨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예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심을 얻으리니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독교 신앙에 대한 두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만 믿으면 즉각적으로 예수님이 내 모든 짐을 대신져 저 준다. 그날로 그냥 생 삶이 잘 풀릴 것이다라고 하는 오해고요. 또 하나는 그 반대로 예수 믿는 것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이지이 세상 사는 거하고 별 상관이 없다.이 세상은 내가 그냥 버티고 살아내야 된다라고 하는 어 말입니다.이 두 가지가 다 잘못됐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와서 내게 배우라 그랬잖아요. 어, 이것은 어, 너 짐을 가볍게 해 줄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지 특별히 어떻게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지를 가르쳐 주심으로써 우리가이 땅에서 인생을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초청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른 치거든 왼도 들려라.이 말을 너무 구원과 관계해서 들으면요, 이렇게 들리죠. 안 그래도 우리 인생 짐이 무거운데 예수님이 더 무거운 짐을 올려 놓으신 겁니다. 어 옛날 유대교 때 어 천국에 갈 수 있는 자작자격 하나님 사랑을 바랄 수 있는 자격이 60점이었는데 예수님은 더 높여서 80점 90점으로 높여 놓으신게 아닌가? 아 진짜 열심히 노력해야 하나님 사랑받을 수 있는 이런 수준에이를 수 있겠구나라고 하는 생각을 율법주의라 그러죠. 율법을 잘 지켜서 준수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보겠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겠다라고 하는 생각을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뜻은 그것과 정반대입니다. 그러면 오른을 치거든 왼도 들려라. 무슨 말인가? 나는 정말 이렇게 하기 힘든데 나는 걸러 먹은 사람인가? 저도 오랫동안이 문제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답의 실마리를 다른 데서 성경 주석이 아닌 다른 데서 찾았습니다. 스티븐 코비가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극과 반응 그 사이에 공간이 있다. 스페이스가.이 이 공간에 우리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우리의 성장 그리고 우리의 자유는이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이 자극과 반응이 딱 붙어 있는게 아니고요. 그 사이에 어떤 공간이 있다는 겁니다. 자극이 뭡니까? 누가 내 뺨을 때렸어요? 반응이 뭡니까? 내가 어떻게 하는 거죠? 여러분, 나도 도로 때릴 수 있습니다. 화가 나면 내가 때릴 수 없으면요. 집에 가면서 누구 다른 사람에게 분풀이 할 수도 있습니다. 해도 됩니다. 그리스도인을 하더라도 누가 내 뺨을 때려면요. 나도 맛 때려도 됩니다. 어, 때려도 된다는 말은 내가 맞아서 때리고 누가 나에게 욕을 하고 변할 때에 나도 욕하고 갚아 주어도 그래도 지옥까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핍박하고 나에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미성숙하게 반응해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야, 넌 이제 내 백성 아니야. 나는 이제 너희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될 것은 잠시 잠시 머물러서 꼭 반응을 생각해 보면요.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겁니다. 내가 나에게 세상에 나의 뺨을 때렸다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내가 뺨을 맞받아 쳐도 되는데 그래도 지옥 안 하는데 다른 반응을 선택할 수 있지 않겠는가는 생각을 해 보자는 거죠.이 스티븐 코비라는 분이요. 어, 언젠가 어릴 때이 문장을 어디선가 보고 적어놨는데 어디서 봤는지 잊어버렸대요. 그래서 출처가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이 말을 누가 했는지는이 잊어버렸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에게서 똑같은 사상을 발견했다는 거죠. 그분이 그 유명한 빅터 프랭클이라는 분입니다. 유대인 수영소에 잡혀가서요. 그 어려운 시간들을 다 견디고 마침내 살아남은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정말 극한의 고통 가운데서도 이기고 살아남는가에 대한 대단한이 심리학자거든요. 통차를 글로 적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참 훌륭한 학자입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지만 단 하나 누구도 빼앗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 애티튜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낮지가 와 가지고요. 집을 빼앗고 직장을 빼앗고 가족까지 다 빼앗아 갔지만 내 모든 자유를 다 빼앗아 간 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자유가 있다는 거죠. 이런 억압이 주어졌을 때에 이런 고통이 주어졌을 때에 내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자유의 공간이 언제나 있더라는 겁니다. 나치가 인간을 나를 개돼지 취급한다고 해서 내가 개돼지가 되는 거는 아니라는 거죠. 세상이 나의 뺨을 때린다고 느낀 순간이 여러분 있습니까? 나치아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났어요. 그냥 나하고 아무 상관없이 우리가 인생에서 당한 어려움들은요. 대부분 나하고 별 상관없이 일어나는 이유가이 때가 많습니다. 쫓겨나고 생명의 유협을 받고 그러나 그렇게 비인간적인 삶의 현장을 그대로 다 관통하고도 여전히 인간의 존을 말하는 학자가 있다면 우리가 한번쯤 길을 기울여 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은요. 비싼 예들이 많습니다.이 잘하는 청소년이 갑자기 집에 불러한 후에 환경이 닥쳤습니다. 어 아버지가 사업에 망한다든지 부모님 사이에 어려운이 생겨서 헤어지신다든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우리 삶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 자녀가 어떻게 합니까? 불평할 자요. 나 빚두어질 거야. 비두어질 수 있습니다. 내 인생 내가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냥 화프리로 인생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다른 스택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사실요. 부모님에게 혹은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안 생겨도 우리는 망가질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잖아요. 자유잖아요. 그죠? 내가 어떤 반응을 선택하는가? 여러분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사회화된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 성장에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기존의 사회가 다 건강하게만 한 건 아니잖아요. 기존 사회의 어떤 지배적인 이데올로나 문화에 부정적으로 프로그램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현대 문화가 우리를 어떻게 프로그램화 해 나가는가? 한 예를 들면요. 한국 드라마에 실현 당하거나 아픔 당하는 장면, 억울한 일 당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럼 실현 당하고 나면 그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옵니까?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요. 꼭 그다음에는 술 마시는 장면이 나와요. 그걸 계속해서 보다 보면요. 어 나도 모르게 아 실현당하면 시험에 실패하면 어 술 마시러 가는 거구나. 나도 모르게 가고 있습니다. 이게 사회 문화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자,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 어 술 마시러 가면 안 되는가? 가도 괜찮습니다. 술 마셔야 된다면 마시러 가십시오. 그럴 자유가 나야겠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요. 다른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무슨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교회 가서 기도할 수 있겠죠. 그만큼 경건하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요. 운동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포항에 사는데 바닷가에 가서 산책할 수도 있겠죠. 그러죠. 제가 아는 어떤 분은요. 음. 음, 예수 안 믿는 분이었습니다. 딸이 굉장히 엄마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는 분이었는데 50대 후반에 남편이 돌아가셨어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근데 그때부터 참 이분이 참 묘하게도 인생에 돈을 잘 벌든 분이었는데 무상함을 깨닫고요. 정기적으로 사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시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 봉사를 선택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많은 어 선택의 가능성이 그 공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빅터크 프랭클이 말한 인간의 그 자유, 마지막 자유. 인간이 아무리 극한 상황에 몰린다 하더라도 나의 반응, 나의 태도를 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는 언제나 인간에게 남아 있더라 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쉬운 예를 들면요. 누가 밤길을 가는데 흉악하게 생긴 사람이 제가 미국에 살 때는 그런 소문들이 굉장히 경험들이 많았거든요. 주위에 권총을들이 되고 돈내나 그럽니다. 보니까 10만 원 있어요. 10만 원 줬습니다. 그이 사람이 가요. 가는데 어 내 뒷주머니에 만 원 더 있네. 아저씨 아저씨 하고 막 불러요. 그 만 원 더 내 줍니다. 그래서 11만 원 줬어요. 그러면 자 여러분 얼마 뺏긴 겁니까? 11만 원 뺏긴 겁니까? 아니면 10만 원은 뺏긴 거고 만 원은 준 겁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삶을 해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는요. 아무것도 안 뺏겼습니다. 11만 원 전부 다 준 겁니다. 뒤에 준 그 만 원 때문에. 그러죠. 내가 힘이 없어 뺏긴게 아니고요. 일부러 가는 사람 불러서 줬다는 말은 저 사람이 불상에서 준 거예요. 하나도 뺏기지 않 않은 겁니다. 그게 가능한 선택이고 그게 자유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잖아요. 그러니까 너희에게 누군가가 억지로 오리를 같이 가자라고 칭발하면 심리도 같이 가게 해 주라 하는 말이 정확하게 그 말입니다. 여러분 오른 치거든 왼도 돌려 되라 하는 말씀이 바로 그 말이고 이것은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해야 될 이거 안 하면 지옥가 안 하면 하나님에게 찍혀 이런 말이 아니고요. 우리가 얼마만큼 큰 자유를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가 그 자유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말씀을 하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아주 재밌는 말입니다. 사유가 두 번 나오죠.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자유를 주셨다고 하는 것은요. 출발점으로서의 자유입니다. 선택의 자유죠. 그런데 자유롭게 하려고 하는 것은요. 목표 지점으로서의 자유예요. 그러니까 처음에 자유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점점 점점 더 큰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 인생이 뭔가? 아, 저는 목회하면서 이렇게 성도들하고 특별히 젊은이들하고 이게 라이프 스토리를 가깝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밤새서 나누기도 하는데요. 어, 제가 미국에서 이렇게 목회할 때는 어, 막 제가 IMF 때 이런 일이 생겨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많이 그런 일들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때 어, 이런 말들 나눈 적이 있습니다. 야, 그건네 인생이 아니야. Your life is not what happen to you. It's what you do with what happen to you. 내가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내가 어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려 그랬는데 IMF가 터져서 취직이 안 됐고 어 뭐 이런 이런저런 외적인 일이 아니고 그것은 내 인생에 일어난 일이에요. 정말 내 인생 내 인생은 뭔가 하면요. 그 일어난 일 가운데서 내가 어떻게 했는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 하는 것이 진짜 내 인생이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언제나 선택의 앞신들은 있습니다. 언제나 자유가 있습니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 하나님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진짜 자유로 자라나게 하시는 거예요.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 잘 선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보상은 뭔가 하면요. 더 많은 자유입니다. 여러분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의사가 그렇게 말합니다. 음식 조심하세요. 이거 먹고 저거 먹지 마세요라고 말 하는데 여러분 그 말을 듣고 왔어요. 나에게 그 말을 안들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해도요. 나는 그냥 먹고 싶은 먹어도 돼요. 운동 안 하고 살아도 돼요. 그러나 만약에 의사가 그렇게 말했을 때에 의사가 왜 내 자유를 뺏아가지라고 해서 그렇게 말했을 때에 그 말을 안 들으면요.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면 6개월 후 1년 후에 병원 가면 지금 먹을 수 있는 것도 못 먹게 될 겁니다. 자유가 더 많이 제한될 거라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에게 삶의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 지혜롭게 잘 선택하면 우리는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했어요. 내 삶에 어려운 일이 안 생기는게 아닙니다. 나도 배반 당하고 무시 당할 때도 있고요. 억울한 일 당할 때도 굉장히 많습니다. 아플 때도 있고요. 경계적으로 손해 볼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요. 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그렇죠.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셔서 나에게는 예수 잘 믿으니까 그런 일이 절대로 안 일어날 거야. 그거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말이 안 되잖아요. 예수님은 극한 고통을 다 당하셨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이 뭐가 다르다고 하는 것은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에 나의 반응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겁니다.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맞서 때려도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자유에 속한 거예요. 그러나 안 때릴 자유도 있다는 거 여러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오른 치거든 왼도 돌려라. 힘들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 좋습니다. 저도 그래요.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할 거야라고 단정하지는 마십시오. 천국에 가서야 가능할 것이다. 이러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어 방법은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내용을 예수님이 삶으로 어떻게 사셨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중요한 말씀은요. 예수님의 삶에 전부 다 참고할 대목이 있습니다. 자 보세요. 어 예수님이 오른을 치고 외부도 돌려대라 그러셨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나? 예수님을 잡으러 대사상의 부하들이 왔습니다. 그죠? 예수님을 지키려고이 베드로가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를 쳤잖아요. 잘라서 귀가 떨어졌습니다. 그 귀를 예수님이 붙여 주셨어요.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이고 그 사람 따라가면 체포되면 돌아가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을 붙여 주셨어요. 그게 예수님의 방식으로 왼방도 돌려된 거죠.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어 자신을 어 핍박하고 조롱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려지 마십시오. 알지 못하고 저릅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라고 사랑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 왼밤을 돌려 대신 거죠.이 땅에서 가능합니다. 아 그거는 예수님이니까 그렇지. 우리는 안 돼.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요. 스데반이 돌마다 죽어 갈 때 예수님과 똑같이 반응을 해요. 스데반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마다 죽어 갈 때 야,이 나쁜 놈들아, 하나님 저 원수들 좀 보내 주세요라고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근데 그때 스테반이 기도하는 거 보면요. 놀랍도록 예수님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오른을 치거든 멤버도 돌려되라. 아, 저는 힘들겠네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불가능합니다라고 단정하지는 말자는 거죠. 예수님도 있고 스대반도 있었고요. 초대교회 역사, 기독교 2,년의 역사를 살펴보면요. 이런 예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에서 어려 억울한 일 당할 때에 모욕 당할 때에 세상이 나의 뺨을 때린다고 생각할 때에 그대로 밤해도 되지만 숨을 거르고 잠시만 생각해 보자는 거죠. 우리가 예수님처럼 똑같이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방식과는 조금이라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고 기도하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 반드시 다양한 선택이 있다는 것을 어떤 경우에도 다양한 선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족 간의 갈등이 생겼을 때에 화가 치밀로 오를 때에 누가 봐도 이거는 저 사람이 잘못된 거야.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그런 일을 당할 때라 하더라도 조금 다른 반응이 어 나의 선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다른 선택을 해 보는 거죠. 조금 다른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행사하면서 나의 자유의 폭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살다 보면 지금이 유튜브 방송을 듣는 여러분들 중에서는 거의 예수님처럼 거의 스데반처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는 안 되어도 지금 내가 공격당하고 화내고 그대로 반응하고 그래서 내 기분도 좋지 않고 관계는 계속 망쳐 망쳐지고 하는 이런 상관은 조금 다른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좀 더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그런 어 삶을 기대하고 사는음 어려움 당할 때 예수님 말씀을 잠시라도 생각해 보는 우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습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