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잘클립] 기독교인은 누구를 뽑아야 될까?ㅣ김학철 교수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9DtPW_KNhY | 길이: 4:15
요약
[잘잘클립] 기독교인은 누구를 뽑아야 될까? — 김학철 교수
🎯 TL;DR
김학철 교수는 정치를 사회의 여러 가치를 권위 있게 분배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이 투표와 정치를 바라볼 때에는 가치와 생산 수단을 갖기 어려운 사람들의 몫을 어떻게 보장할지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에 실망하더라도 냉소에 머물지 않고, 신앙에 따라 양심과 이성으로 판단하며 시민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다하자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 핵심 논지
정치가 분배의 문제라면,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질문은 공동체의 가치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이다. 김 교수는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 떠도는 사람을 돌보신다는 성경의 말씀을 들어, 가치를 소유하거나 생산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몫을 얻도록 하는 마음과 제도를 강조한다.
그는 이 기준을 특정 후보나 정당의 이름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투표를 앞둔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양심과 이성으로 생각의 폭과 깊이를 넓혀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김 교수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도 “정치가 뭐죠?”라고 묻는다며, 정치에 관한 답으로 “가치의 권위적 분배”를 소개한다. 한 사회에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정치적·문화적·사회적 가치 등 여러 가치가 있다. 구성원 사이에 이를 둘러싼 갈등이 생기므로, 그 가치를 배분하는 과정이 정치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생각한다는 것은 분배 문제를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공동체 안에서 가치를 충분히 소유하지 못하고 생산하기도 어려운 사람을 보호하며, 그들에게 일정한 가치를 분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고아와 과부, 떠도는 사람의 몫
김 교수는 하나님을 고아와 과부의 인권을 세워 주시고 떠도는 사람을 사랑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으로 말한다. 이를 근거로, 그리스도인도 공동체에서 취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몫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경쟁력이나 생산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조한다. 단지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생존에 필요한 몫을 가져갈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정치적 시선이라는 뜻이다.
신명기 24장 19절의 예
김 교수는 밭에서 곡식을 거두다가 한 묶음을 잊고 왔을 때의 규정을 든다. 보통은 되돌아가 찾겠지만, 그가 인용한 성경 말씀은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마십시오.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돌아갈 몫입니다”라고 한다.
그는 당시 땅이나 생산 수단이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몫을 가져갈 수 있게 한 사례로 이를 설명한다. 그런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그에 맞는 마음과 정신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치 혐오를 넘어 책임으로
김 교수는 투표를 앞두고 정치 혐오나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고 인정한다. 뉴스에서는 누가 더 잘하는지보다 누가 더 나쁜지, 그래서 자신은 덜 나쁘다는 식의 경쟁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며, 깊이 생각한 끝에 다시 희망을 품는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앙은 패배주의나 냉소주의에 있지 않으며, 달라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 것이 신앙의 한 특성이라는 설명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꿈을 그 기대의 사례로 언급하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는 자세로 정치를 바라보자고 마무리한다.
핵심 수치·결정적 발언·반론·핵심 용어
- 성경 구절: 신명기 24장 19절.
- 결정적 발언: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분배다.” “기독교 신앙은 패배주의나 냉소주의에 있지 않거든요.”
- 제기한 어려움: 정치가 서로의 잘못을 겨루는 것처럼 보여 혐오와 무기력이 생기기 쉽다.
- 핵심 용어: 가치의 권위적 분배, 고아와 과부, 외국 사람과 떠도는 사람, 양심과 이성, 정치적 책임, 분별.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정치가 뭡니까라고 물어보면 실상 많은 분들이 그 쉽게 대답을 못 할 거예요. 제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정치 외교 학과 학생들에게 그냥 뜬금없이 질문을 합니다. 정치가 뭐죠? 이렇게 물어보면 무범답안처럼 메워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분배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한 사회가 생산하는 한 사회에 있는 가치를 가치가 여러 가치가 있겠죠. 단지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정치적 가치, 경제적 가치, 문화적 가치, 사회적 가치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구성들끼리 갈등이 생기니까 그것을 배분하는 분배하는 과정을 정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이 배분 문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의 문제에서 어떻게 얘기할 수 있는가? 그것은 매우 명확하게 성경하게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뭐냐? 공동체에서 가치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생산하기도 힘든 대상을 보호하면서 그들에게 일정한 가치를 분배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고아와 과부의 인권을 세워 주시고 떠도는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그렇게 주신 분이시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고와 과부의 인권을 존중하고 치회법 별로 좋지 않은 이유에서 치법권인 나그네들을 떠도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일정한 가치를 배분해하라고 말씀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경쟁력이 없고 어떤 생산 능력이 떨어지고 이런 사람들도 부끄럽지 않게 살라고 여러 제도적 장치를 얘기해 줍니다. 신명기 24장 19절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곡식 한묶음을 잊어버리고 왔거든 어떻게 하죠? 우리는 가서 빨리 찾아오죠.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얘기하냐면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마십시오.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돌아갈 몫입니다. 당시로서는 땅이 없는 사람들, 생산수단이 없는 사람들, 경쟁력이 없는 사람들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몫을 가져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 그러 마음을 품는 것, 그런 정신을 갖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굉장히 중요한 시선입니다. 투표를 앞두고 이러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은요. 많은 분들이 정치 혐오증이나 정치 무기력증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뉴스를 보면 누가 잘한다는 얘기보다 누가 더 나쁘다, 그러니까 내가 덜 나쁘다 이런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혐오할 수밖에 없고 부기력증에 빠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성경을 읽고 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또 이렇게저렇게 깊이 생각해 보니 기독교인들은 신앙에 따라 양심과 이성으로 생각과 생각의 폭과 깊이를 넓혀가면서 시민으로서 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될 것이 아닌가라고 다시 희망을 품어봅니다. 기독교 신앙은 패배주의나 냉소주의에 있지 않거든요. 달라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놓치지 않는 것이 신앙의 한 특성입니다. 그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이 이미 법률은 다 돼 있는데 사회적으로 인종 차별의 뿌리가 깊었죠. 그래서 안 될 거 같은데 결국 신앙 안에서 꿈을 꾼 그분의 꿈이 실현됐죠. 그러니까 안 될 거 같지만 부직깽이 들고 죄속에 남은 불이 찾아서 그래서 패배주의나 냉소에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어딘지 잘 분별하도록 그런 자세로 정치를 바라보야 할 입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