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압박에 질린 당신에게, 전도서의 처방ㅣ김기석 목사ㅣ잘잘법 239회

잘잘법 · 2026-09-30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ANrhU8jHDGQ | 길이: 18:06

요약

행복의 압박에 질린 당신에게, 전도서의 처방

🎯 TL;DR

김기석 목사는 행복을 붙잡아 두거나 삶의 목표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한다. 행복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가 지나간다. 행복의 조건을 더 갖추려고 달리기보다, 지금 주어진 삶을 누리고 좋은 일을 하며 충실하게 살아갈 때 행복이 뒤따른다는 것이 그가 전도서에서 읽는 메시지다.

📌 핵심 논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는데도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까닭으로, 화자는 커진 욕망과 결핍에 쏠린 시선, 약해진 공동체, 경쟁과 비교를 든다. 돈은 편리함과 구매력을 주지만 진실한 공감, 존중, 친절과 따뜻함까지 살 수는 없다. 행복의 조건을 가진 사람보다 주어진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풍요 속에서 행복을 잃는 이유

화자는 자신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에는 자장면 한 그릇도 쉽게 얻기 어려웠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늘 불행하게 느끼지는 않았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물질적 조건이 크게 나아졌어도 욕망이 더 커져, 가진 것이 많아도 결핍을 느낀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가족과 마을 같은 공동체가 삶을 지탱해 주었다. 개인주의가 심해진 오늘날에는 각자가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다. 화자는 『두 번째 산』을 언급하며 이 상황을 외로움, 불신, 의미, 부족주의의 위기로 설명한다. 소속감을 잃고, 어려울 때 자신을 받아 줄 곳을 믿기 힘들며, 타인을 사랑할 대상보다 경쟁 상대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삶을 더 큰 이야기 속에 놓지 못하면 의미도 희미해진다. 신앙생활의 경우,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큰 구원 이야기의 일부로 바라볼 때 의미를 얻는다고 말한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과 놓치는 까닭

화자가 꼽는 행복의 순간은 다른 사람과 깊은 우정을 느낄 때, 누군가에게 자신을 선물로 줄 때, 음악이나 자연에 몰입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다고 느낄 때다. 그는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하며 전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을 들어, 주는 행위 자체의 기쁨을 설명한다.

반대로 경쟁과 갈등은 친밀함을 해치고, 비교는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게 한다. 타인의 시선을 늘 의식하면 무언가에 몰입하기 어렵다. 이미 누리는 은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역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전도서가 가리키는 삶

화자에 따르면 행복은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라 “왔다 갑니다.” 물질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행복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자기에게 없는 것만 바라보면 이미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누릴 수 없다. 또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정하는 순간, 오늘의 삶은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 된다.

화자는 전도자, 곧 코헬렛이 돈·명예·권세·지혜·쾌락과 업적을 누리고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한 대목을 든다. 그가 풀이하는 ‘헛되다’는 아무 가치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영원히 붙들 수 있는 실체는 아니라는 뜻이다. 전도서의 처방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것을 누리는 일이다. 기쁘게 살고 좋은 일을 하며, 먹고 마시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라고 말한다.

결정적 발언·핵심 용어

  •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삶의 결과로 따라와야 하는 부산물이지 목표가 되어서 안 된다.”
  • “행복이 목적이 될 때 우리의 삶은 수단이 됩니다.” 삶을 충실히 살면 삶이 축제가 되고 행복이 뒤따른다는 것이 화자의 결론이다.
  • 코헬렛: 화자가 전도자를 가리키며 사용한 히브리어 표현. 향유: 결핍에만 마음을 두지 않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누리는 능력.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근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는데 행복은 상태가 아닙니다. 행복은 거기에 머물 수가 없어요. 왔다 갑니다. 그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닥쳐와요. 내가 만드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늘 전도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전도서가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이때 헛되다라고 한 그 얘기는 다 허망한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말인게 아니라 가만히 보니 행복에 집착하면 오히려 행복하기 더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 행복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런 비결이 있다면 참 좋겠는데. 네. 세상에 이제 행복해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과거 우리들 가난했던 시절을 살아왔는데요. 우리들은 뭐 나의 경우로 얘기하자고 한다면은 뭐 자장면 한 그릇 어 먹고 싶으면은 한 학기를 기다려서 좋은 성벽표를 가지고 가야 겨우 한 그릇 얻어 먹고 어 아주 소박한 소원 같은 것들이 성취되기가 매우 어려운 그런 시대를 살았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했던 거죠. 우리가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만 해도 우리 정말 가난하던 나라입니다. 근데 가난했기 때문에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제법 우리가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대비하면은 물질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성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불만족스럽다 하는 말들이 더욱더 커집니다. 그러면 객관적 조건은 변화됐는데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내면의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내면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나의 욕망은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의 욕망이 엄청 커져서 그 욕망을 뒤쫓기에 나의 경제적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아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노릴 걸 많이 노리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결핍에 시달리고 있기도 한 것이죠. 세상이 이렇게 됐든 가운데 하나는 어 우리가 과거에는 골고루 가난하던 시절에는 나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었던 공동체라고 하는 것들이 살아 있었는데 그러니까 가족도 공동체고 마을도 공동체고 나라도 공동체이기도 합니다만은 그 공동체가 든든히서 있어서 내 삶을 지탱해 주고 때때로 나를 안고 가기도 하고 그러죠. 그런데 개인주의 심화된 세상에 살다 보니깐 우리들은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 관념 같은 것들이 우리 속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데이빗 브룩스라고 하는 분이 썼던 책에 보니깐이 두 번째 산이라고 하는 책에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개인죄의가 심화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몇 가지 위기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 첫 번째 위기가 외로움의 위기입니다. 내가 어디에 소속돼 있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고 내가 뿌리 뽑힌 것처럼 느껴지고 각자 도생의 사해가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외롭다고 느낍니다. 외로움이라고 하는 감정은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소망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를 뜻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것이 이제 외로움이 심화되고 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약물에 의존하기도 하고 이런 어려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근데 어 두 번째 위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불신의 위기입니다. 과거의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는 내가 넘어져도 공동체가 나를 안아 줄 거야라고 하는 기대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폐자 부활전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믿을 것은 나밖에 없다라고 하는 그런 아주 심각한 상황 속에 우리들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제 불신의 위기. 국가도 직장도 나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없다 하는 것이 이제 불신의 위기입니다. 세 번째 위기는 의미의 위기인데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은 내 삶이 의미 있다고 느낄 때인데 우리는 의미를 추구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누군가가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행복의 신기를 쫓아 달려가느라고 의미를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의미라고 하는 것은 타자의 요구에 내가 응답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우리가 타자들을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어 경쟁상대로 바라보고 타자는 나에게 써서 지옥이다라고 얘기했던 사르트르의 이야기처럼 언제나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는 동안 우리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그걸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이 얘기는 뭐냐면 큰 서사 속에 내 삶을 위치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얘기죠. 조금 어려운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마는 예컨데 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구원 이야기에 일부러 내 삶을 바라보는데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 서사의 일부라고 할 때 내 삶은 의미 있죠. 고통스럽더라도 근데 그 삶의 소사가 사라져 버려 있기 때문에 그냥 우린 파편화된 시간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이제 나오는네 번째 의기가 있는데 그네 번째 위기는 부족주의 위기입니다. 내 마음이 불안정하고 내 마음이 흔들리고 그러기 때문에 내 마음을 어디에 걸고 싶은데 그래서 특정한 사람들과 나를 연결하고 그들 속에 나를 뿌리내리고 싶어 하게 되죠.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두 가지 아주 부정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단종파입니다. 이단종파들이 너의 외로움을 내가 안다라고 말하고 너의 고립감을 내가 안다 말하면서 다가와서 친절하게 손에 밀어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끌려가죠. 또 하나는 뭐냐면 정치적 과격주의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은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우리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집어넣어 줍니다. 선전 선동 하는 거죠. 정치적인 행위를 통해서 우리를 바로 세운다고 생각하면서 과격주의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꼭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깐 행복하다고 말하는게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행복하기를 누구나 꿈꿉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어떨 때 우리가 행복한가? 사람들은 아주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일종의 신화이죠. 돈이 많아야 돼. 일단 왜이 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니까. 그래서 도세스키 같은 사람도 죽음의 집 기록이라고 하는 책에서 돈을 가르쳐서 주조된 자유라고 얘기합니다. 돈이 있으면 못 할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알토 베냐민 같은 사람은 돈을 가르쳐서 유사 전능성을 준다고 얘기합니다. 내가 돈이 많아지면은 전능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니깐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말 가운데 하나가 갑질이라고 한 말이 있는데 돈이 많고 그런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신이 된 것처럼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이게 바로 뭐냐면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했던 말입니다. 네가 신처럼 될 것이다. 모든 유혹의 뿌리에는 바로 뱀의 그 말이 있다고 저는 느끼는데요. 돈이 있으면 편리합니다. 왜? 돈은 우리에게 구매력을 주니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물건도 살 수 있고요. 여행 상품도 살 수 있고요. 어 많은 거 살 수 있어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진실한 공감, 누군가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마음들, 타자들을 향한 친절한 마음, 따뜻함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가 없는 것이죠. 가만히 생각해 보면은 내가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지? 다른 사람들과의 신한 우정을 느낄 때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또 다른 행복이기도 합니다만는 내 삶이 아 의미 있다고 느낄 텐데 아까 얘기했던 거하고 비슷한 얘기인데요.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선물로 주는 기쁨을 누릴 때입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한 말인데 그러니깐 나를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때 주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서 내가 행복을 느낄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문제가를 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고 우리가 행복을 느낄 때 보면은 뭔가에 깊이 몰입하고 있을 때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뭐 좋은 음악을 감상한다든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앞에서 잠시 나를 잊어버리고 그 풍광 속에 나를 충분히 맡기고 그럴 때 사람은 행복을 느낍니다. 또 인간이 어느 때 행복을 느낄까요? 기독교적으로 얘기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 충만하다고 느낄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근데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타자들과의 친밀함을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씀드렸는데 우리는 경쟁을 내면하고 살고 있고 그 때문에 언제나 분열과 갈등 속에 살다 보니깐 행복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가 있는 존재라고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고 얘기를 했는데 항상 남들과의 비교 때문에 어 내가 불행하다고 하는 의식을 자꾸만 품고 살게 되는 것이지요. 이게 우리들이 행복하지 못하니까 다 가까운데 하나입니다. 그런가 하면은 뭔가에 깊이 몰입할 때 행복하다고 얘기를 했는데 우리의 시간 경험은 뭔가 몰입하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너 뭐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왜 이렇게 멍한이 있냐고 얘기합니다. 어 우리는 항상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삽니다. 어떤 분이 얘기했어요.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한 순간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지옥이래요. 늘 나를 의식하는 거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바로 이런 그 삶의 조건들이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때 행복하다고 얘기를 했는데 어 이미 은혜를 누리고 있는데도 받고 있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까닭이라고 보여지는데 근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는데 행복은 상태가 아닙니다. 행복은 거기에 머물 수가 없어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왔다 갑니다. 흘러가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니까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닥쳐와요. 내가 만드는게 아니에요. 다가오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얘기치 않은 순간에 행복의 느낌이 내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물질적 조건이 무시되어서도 안 되지만 물질적 조건으로만 행복이 누려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누가 행복한가? 행복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하는 생각하는데 근데 이제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까닭은 뭐냐? 자기의 결핍에만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핍된 것들만 보는 거죠. 그러나 어 결핍 말고 내게 주어져 있는 것을 누릴 수 있어야 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결핍의 감정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뭐와 같으냐면 이미 내게 있는 것들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요. 왜? 내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늘 부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그 대한동경이라고 하는게 있잖아요. 인간에게. 어, 나의 반대쪽에서 있는 사람이 언제나 좋아 보여요. 저 사람의 삶의 형편은 알지 못하고 행복이 목표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얘기냐면 행복이 우리 인생의 목표야라고 말하는 순간 오늘의 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불행한 거로 규정되는 거야. 행복이 없어. 그러니까 행복하려고 맹렬하게 달려가는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에.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삶의 결과로 따라와야 하는 부산물이지 목표가 되어서 안 된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전도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전도서가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전도자 우리가 이제 히브리 말로는 코헬렛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분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좋다고 하는 걸 경험한 분입니다.이 행복의 조건을 다 누려봤던 분입니다. 돈, 명예, 권세 그리고 지혜, 쾌락,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업적들 다 이루어요. 그런데 그 모든 업적들을 경험하고도 뭐라고 말하냐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때 헛되다라고 하는 그 얘기는 다 허망한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말인게 아니라 가만히 보니 그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거기에 우리가 붙들려 있을 필요는 없다라고 하는 얘기입니다. 사실 그렇죠. 그것들은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영원한 것일까요? 그것은 순간순간에 흐름만이 영원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이 코엘렛은 우리에게 말해요. 행복의 조건이라고 하는 그것을 맹렬히 따라가는 삶이 그렇게 행복한 삶이 아니야.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순간. 그래서 그가 얻은 깨달음이 있어요.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얘기합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뭐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행복이 목적이 될 때 우리의 삶은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삶을 충실하게 살게 될 때 삶은 축제가 되고 행복은 뒤따라게 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깐 행복을 노리기 위해서는 지금 내게 주어져 있는 삶이 무한히 갑지고 소중하다고 하는 사실을 늘 감사함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생각이 드네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