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버전) 잘 몰라도 읽히는 구약+신약 성경 통합본📜성경 1회독 시켜드립니다|김기석 목사|잘잘법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5Ru35flhoAI | 길이: 45:27
요약
🎯 TL;DR
김기석 목사는 성경 전체를 달아나는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로 요약한다. 예수의 말씀으로 더 짧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창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그는 폭력과 지배에 맞서 사랑, 화해,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 핵심 논지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간 드라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서로를 돌볼 소명을 주셨지만, 인간은 갈등과 폭력을 키웠다. 하나님은 억눌린 이들을 해방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도록 부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꿈을 삶으로 보여주었고, 교회는 성령 안에서 서로의 고통을 나누며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
창조와 창세기: 사랑으로 시작해 화해를 향하다
목사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힘 있는 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의 논리와 대비한다. 창조의 바탕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이며,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숨결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를 믿는 삶의 태도는 사람과 세상의 모든 것을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은 자신을 통해 다른 이가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하지만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이야기에서 인간은 형제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다. 목사는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냐”는 가인의 물음에 담긴 답을, 인간은 서로를 지키도록 지어졌다는 뜻으로 읽는다. 이후 폭력이 커지고 홍수와 바벨탑 이야기가 이어진다. 창세기 후반의 형제 갈등 역시 인간의 현실을 드러내지만, 목사는 그 이야기들이 결국 화해를 향한다고 설명한다.
출애굽과 이스라엘의 역사: 해방의 뜻을 잊다
애굽은 목사의 설명에서 밑바닥 사람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질서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백성의 신음을 듣고 고통을 보고 알기에 역사에 개입하신다. 출애굽 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뜻을 온 백성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해 언약을 맺는다.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려는 목적은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을 귀히 여기며 돌보는 삶과 연결된다. 목사는 서로를 경쟁자나 적이 아닌 사랑할 대상으로 대하고 편히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의미로도 풀어낸다.
가나안 정착과 왕정 이후 이스라엘은 다시 지배와 피지배의 길로 기울었다고 그는 말한다. 특히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백성의 자유를 빼앗는 노역을 동반했기에 “애굽으로의 귀환”에 비길 만하다고 평가한다. 역사서에는 경고, 심판, 부르짖음, 새로운 기회, 망각의 반복이 나타난다.
성문서와 예언서: 현실 속에서 묻고 외치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가르침을 펼친다. 그러나 의롭게 사는 사람이 고통받는 현실 앞에서 욥기는 단순한 인과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전도서의 ‘헤벨’은 부와 명예 같은 것을 영구히 붙잡거나 통제할 수 없음을 일깨우며, 주어진 일상을 선물로 살아가도록 이끈다. 시편에는 찬양과 탄식이 함께 있고, 목사는 탄식이 찬양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그 핵심으로 본다.
예언자들은 왕과 종교인이 소외된 사람을 돌보지 않는 현실을 출애굽의 정신에 비추어 꾸짖는다. 동시에 정체성과 희망을 잃은 백성을 위로하고 회복의 꿈을 일깨운다.
예수와 교회: 자비로 담을 허물다
목사는 예수를 구약이 지향한 아름다운 세상의 꿈을 몸으로 구현한 분으로 소개한다. 예수는 로마 제국의 힘과 폭력에 맞서 사랑, 낮아짐, 섬김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사람을 의인과 죄인, 정결한 이와 부정한 이 등으로 나누는 척도 대신 자비, 곧 타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태도로 다가간다. 목사는 예수의 십자가를 그 구별을 지키려던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의 이해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신 부활을 성경의 강렬한 메시지로 제시한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떡을 떼며 필요한 사람에게 재산을 나누었다. 복음서는 예수에 대한 기억을 전하고, 사도행전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목사는 ‘땅 끝’을 삶이 위태로운 사람들의 자리로도 읽는다. 서신들은 교회 안의 갈등과 잘못된 가르침을 다루며 은혜를 받은 삶을 권한다. 요한계시록은 혼돈 속에서 인내하고 사랑하는 믿음, 하나님이 이끄실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보여준다.
핵심 수치·결정적 발언·반론·핵심 용어
- 핵심 수치: 시편 150편, 네 복음서, 출애굽의 열 번의 재앙이 언급된다.
- 결정적 발언: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돌보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복음의 핵심”이라고 목사는 말한다.
- 반론과 질문: 욥기를 통해 ‘의인은 복받고 죄인은 벌받는다’는 도식이 현실에서 항상 들어맞지 않음을 묻는다.
- 핵심 용어: 언약,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헤벨, 자비, 대속, 마라나타, 묵시문학.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성경을 차라리 20초 동안 정리해 달라고 하면 간단한데 왜냐면 예수님도 하나님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했다. 이게 다다.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간단한데 30분 동안을 얘기하라고 그러면 이건 좀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성경 전체는 [음악]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간 드라마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음악]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끝없이 달아나고 있는 인간을 찾아오시는 [음악] 애태우시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음악] 성경 전체의 서사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 그러니깐 다나는 인간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어떻게 보면 순박꼭질 이것이 이제 성경 서사 전체를 구성하고 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이제 알 것 같긴 한데 조금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처음부터 얘기하면 아 창세기 1장 1절은 대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런 말로 시작됩니다. 그 로마의 학자인 롱게노스는 송고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창세기 1장 1절이 가장 순고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왜냐면 그 압도적인 크기에요. 없으면서 있음이 나왔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아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아 그들의 지정학적 맥락과 관련시켜 봐야만 합니다. 애굽이라고 하는 대체국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속에 등장했던 바벨론니아나 아시리아나 신 바벨론 제국 그리고 나중에 이제 그리스 제국 이런 그 제국들이 각축하고 있는 현장 속에서 이스라엘은 어렵게 생을 이어가야 했죠. 그런데 제국의 논리라고 하는 것은 아주 매우 간단합니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이야기를 보더라도 창조는 신들의 전쟁으로부터 시작되고 전쟁은 폭력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폭력에 의해서 힘을 장악한 자가 힘을 잃은 자 패배한 자를 함부로 지배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는 세상이죠. 이것이 신화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제도 속에 그대로 들어와서 제국이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악마적인 체제가 만들어졌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 제국에 의해 짓눌렸던 사람들이 바로 히브리인들입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창조 이야기를 하지요. 거기에는 폭력이 없습니다. 싸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있습니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그 제국이 보여지고 있는 창조 이야기와 완벽하게 다르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음악] 창조의 방법 또한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었고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창조를 하나님의 자기 축소라고 얘기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 나의 자유를 내놓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는 오히려 창조함을 통하여 당신을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 그 까닭기 뭡니까? 사랑이죠. 그렇게 창조된 세상을 성경은 어땠다고 얘기합니까? 하나님 보시게 좋았더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좋음이 있어요. 기쁨이 있습니다. 폭력과 파괴가 아니라 사랑과 기쁨이 있는 세계. 그러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숨결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 조각나지 않은 세상. 그러니깐 모두가 서로를 [음악] 지탱해 주고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죠. 이것이 성경이 얘기하고 있는 창조의 본질입니다. 정말로 내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고 한다면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순결이 다 [음악]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사람들의 으뜸과는 생의 [음악] 태도는 아낌, 존중,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아끼지 않고 그 뭐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 역사, 기타 모든 것들 다 포함입니다. 아끼지 않고 함부로 대한다고 한다면 그는 자기 모순 속에 빠진 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고 얘기함으로써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근원적인 소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뭐죠?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면 누군가가 나를 바라봤을 때 하나님을 느낄 수 [음악] 있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내가 맑아지지 않으면은 내가 하나님을 비춰낼 수가 없겠죠. 이게 인간의 보편적 소명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이제 죄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 선악관 사건으로 얘기하는 것이죠. 어쨌든 그 일을 통해 낙관 밖으로 쫓겨난 인간은 제국이 보여지는 것과 같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에덴 이후에 태어났던 첫 사람 가인이 형제 사례자가 되었다고 하는 그 사실은 인간이 살아가게 될 어두운 운명을 그대로 암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를 죽이려 죽였을 때 가인을 찾아와 [음악] 물으시죠. 내 동생이 어디 있냐고 질문합니다. 가인은 내가 내 동생 지키는 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그러나 그 대답하지 않으시는 그 침목 속에 [음악] 답이 있다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 나는 너를 내 동생을 지키는 자로 [음악] 삼았다라고 하는 것. 인간은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질 때 아름다워집니다. 너와 내가 무관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바로 죄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요. 이것이 [음악] 가인 이후에 벌어졌던 사건의 비극성입니다. 그 이후에 보면은 폭력이 어떻게 증대되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라멕의 노래 [음악] 같은 것들 보면 나에게 정말 상해를 입힌 자를 내가 죽여버렸다고 자랑합니다. 폭력이 자라나죠. 그래서 슬프게도 창세기 6장 6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근심하셨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일을 무화시킬 [음악] 상황 속에 좋하게 되는 것이죠. 이어지는 것이 홍수 심판인 것으로 알 수 있고 홍수 이후에 역사 또한 그렇게 새로워지지 [음악] 않았습니다. 결국 홍수 이후에도 이제 바벨탑 사건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맞서는 [음악]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이제 아주 어두운 창세기 초대 역사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2장부터 등장하고 있는 소위 믿음의 아버지들의 이야기는 늘 뭘 보여주고 있냐면 형제 간의 갈등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삭과 [음악] 이스마엘의 이야기도 그렇고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리고 [음악]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아주 깊은 갈등 속에 [음악] 있어서 형제들이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고 [음악] 이것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야기에 매료되고 설득됩니다. 그러나 갈등을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로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이야기는 결국 화해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러니까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냐면 에덴 이후에 갈등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러나 갈등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화해를 통해서 어떻게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그 고심이 창세기 전체의 내용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출애굽기가 등장하고 있는데요. 애굽이라고 하는 전적 상황을 내놓고 [음악] 얘기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로 상징되고 있는 애굽의 세계는 끝없이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희생과 피를 통해서 유지되고 있는 하나의 제도라고 얘기할 수 [음악] 있겠습니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혼사스러운 삶을 노리기 위해 [음악]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희생이 당연시 되고 있는 세상. [음악] 그 세상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놓죠. 그래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사이에서 모세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이 당신을 소개하는 장면이 성경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건 뭡니까? 나는 내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내 백성이 고통받는 [음악] 것을 보았다. 그들이 얼마나 근심하고 있는지를 내가 안다. 보고 듣고 아시고 안다라고 하는 것은 [음악] 객관적 정보를 알았다는 얘기가 아니고 마음으로 느꼈기 때문에 내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고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이 불의한 역사를 의의 방향으로 이끌기로 작정했죠. 이것이 이제 출애굽 사건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열번의 재앙 이야기. 또 홍해를 건너는 사건. 그리고 아말렉과의 선투 이런 것들이 벌어진 이후에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시내산 앞에 그들이 당도했을 때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이 언약은 우리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들이 꽤 많이 [음악] 있습니다. 이렇게 보게했는데요. 아, 과거에는 정보가 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왕과 사제 계급 만 해당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 뜻을 모든 백성에게 알리라고 [음악]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은 하나님의 뜻을 늦게 알리라고 얘기하는 것 이것 자체가 새로운 [음악] 현실이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했고 또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 백성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고 명령한게 아니라 내 뜻은 이러한데 그대들이 내 뜻에 동의한다고 한다면 나는 그대들의 하나님이 되겠고 그대들은 내 [음악] 백성이 될 거라고 동의를 구하신다고 하는 거.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언약의 파트너로 얼마나 존귀히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얘기할 [음악] 수 있습니다. 온 백성들이 그렇게 살겠다고 했을 때 비로소 그들 사이에 언약이 맺어지는데 그 언약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음악] 내가 너희를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모순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가서 역사를 대속하는 존재 또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존재로서 소명이 있다는 것이고 그들이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죠. 욕망의 문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완벽하게 타자들과 어울려 사는 그런 삶이야말로 거룩한 삶임을 성경은 거듭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악] 결국 그런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의 엘류사의 새로운 백성으로 지움을 받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함께 가야 할 그 세상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하는 것은 땅에 비혹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은혜적으로 본다고 한다면 사람이 모든 사람들을 적대 관계에서 파악하지 않고 경쟁 관계로만 파악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그곳에 있으면 내가 고향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곳에 있으면 나답게 있어도 괜찮은 것. 바로 그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곳. 우리는 낙원을 잃어버렸지만은 그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 그니까 자유를 향한 대장정의 이야기가 출애굽기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고 그 일을 조도하신 분이 하나님을 성경은 [음악] 거듭거듭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 토라에 속해 있는 모든 이야기들은 그러므로 [음악] 그렇게 출애굽 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하나님의 마음이 [음악] 어떤 것인지를 펼쳐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것을 펼친 것을 하나로 요약하자고 한다면 가난하고 소회되고 그리고 스스로 [음악] 자기 설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세심하게 돌보고 그들의 입장에 되어보고 그들의 [음악] 살권리를 존중해주고 그들을 환대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삶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토라 전체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제 뜨거운 마음들이 있었죠. 근데 이후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도 결국은 어 왕정을 만들어 [음악] 갈 수밖에 없었고 왕정의 구조라고 하는 것이 따뜻한 형제의 공동체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음악] 지배와 피지배가 갈리는 그런 세계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겠고 그래서 이스라엘도 결국은 [음악]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던 제국의 길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뭐냐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음악] 솔로몬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사람들은 말하지만 사실 [음악]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동원된 백성들은 노예처럼 자유를 잃고 노역에 가까운 일들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므로 성전 건축은 명분은 아름다웠지만은 애굽으로의 귀한이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그 대를이었던 르호보암이 학정을 계속하기 때문에 여로보암을 비롯한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도록 하는 이런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 이것이 이제 드러나고 있는 역사서의 우울함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음악] 끝없이 하나님이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심판을 받았는지 그 심판 가운데서 그들이 고통 가운데 부러짖질 때 하나님이 어떻게 뜻을 돌이키고 다시 기회를 주셨는지 다시 받은 그 기회를 또 까맣게 망각해 버리고 또다시 과거로 회개하는 일의 반복 이것이 이스라엘의 의 역사소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바가 굉장히 많았겠죠. [음악]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때 여기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시편 잠언 전도서 욥기 같은 성문서의 이야기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자 잠언의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가치관을 내면화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원의 이야기입니다. 이렇하면 복받고 이렇하면 벌받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잠언에 있는 모든 메시지를 한마디로 응축한다고 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고 하는 이야기고 잠언의 모든 메시지는 바로 그 이야기를 펼쳐간 말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 한 마디가 소중하죠. 근데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잠원의 세계관이 작동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 많아요. 결국 뭡니까? 하나님 앞에 내가 정직하게 바르게 살면 내가 복받아야 하고 악인들은 벌받아야 마땅한데 이것이 [음악] 인과론적으로 맞는데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 그래서 그 극단적인 경우로 등장한 것이 욥기 같은 책이죠. 왜 의로운 사람이 고통을 받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고통을 받을 때 그 고통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건가? 또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뭐냐면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마대로 나를 대접해 주지 않을 때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음악] 경외할 수 있겠는가? 그런 질문들을 던지는게 욥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욥기에 등장하고 있는 어 엘리바스 빌다 소바리라고 하는 욥의 새 친구들은 전통적인 지혜를 상징합니다. 죄가 있으면 벌받는 거예요.이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는과 죄가 있기 때문일 거야. 똑같은 도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욥이 그렇게 큰 죄가 없다는 사실. 그러니깐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인데 그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그 크심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지? 이게 욥기의 세계관입니다. [음악] 전도서 세계관은 우리가 전도서 하면 더 오르는 이야기 있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여기에서 얘기하고 있는 헛됨. 히브리어로 헤벨이라고 한 단어는 바람, 입어이 이야기가 세상에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고 하는 어떻게 보면 허무주의를 설파하는 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있는데 부라든지 명예라든지 지식이라든지 인간이 좋아하는 그 모든 것들이 이게 내 선악귀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지더라는 거예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서 이것은 [음악] 붙잡을 수 없더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얘기하면 그것은 항속적으로 나의 통제 속에 있지 않더라라고 하는게 전도자죠. 그러니깐 내가 붙잡았던 것 너무나 소중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이 내게서 빠져나갈 때 인간은 속상하죠.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전도서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는 단일합니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 자체가 불신이라는 거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시간을 살아낼 뿐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오늘 내가 여기에서 누리고 있는 일상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라는 거예요. [음악] 그 선물을 한껏 살아내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라는 거죠. 그래서 [음악] 허물을 얘기하는 것 같은 전도서도 끝부분에 가면은 [음악] 젊은이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얘기한단 말이에요. 경외하는 삶이야. 경외하는 삶이란 뭡니까? [음악] 내 일상이 때로 심겹다고 할지라도 그 일상 속에 하나님의 [음악] 빛나는 세계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절감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전도서의 세계입니다. [음악] 세계관이 점점 확장돼요. 시편이라고 하는 세계는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은이 시편의 세계가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세사 세계는 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내게 가까이 계신 것 같아서 행복하고 내 삶이 무한히 갚다는 사실을 느낄 때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찬양입니다. [음악] 또 하나는 내게 가장 가까이 계셔야 할 하나님이 내게서 너무 멀리 계신 것 같고 또 때때로 부제하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음악] 내 속에서 터져나오는 탄식입니다.이 이 두 가지가 함께 [음악] 있어요. 이게 인생을 구성합니다. 그런데 시편 세계에는 [음악] 인간의 흰오회락의 감정들이 다 담겨 있어서 시편을 보는 사람들은 이게 내 얘기네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편 기도를 해야 할까 달이 거기에 있는데 그러나 시편 세계가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때때로 [음악] 하나님을 찬미하는 마음이 내 속에 생기기도 하고 또 [음악] 율법이 주고 있는 그 든든함에 대해 찬양하기도 하고 또 아주 선한 왕들에 대한 기쁨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순간 우리는 인생의 고달품이 속에서 [음악] 어쩔 몰라 하고 있는데 그런데 결국 그 인생조차도 [음악]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오는 통로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음악] 탄식을 찬양으로 바꿔 가는 것이 시편 세계의 [음악] 핵심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지점에 있는 것들이 예언서인데 예언자들이 등장하게 된 까닭은 뭐냐면 종교와 아 권력이 정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뭡니까? 시내산 언약에서 맺어졌던 것처럼 고통받는 사람들, 소회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음악] 귀히 여기는 역사를 만들려는 것인데 왕들도 그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 [음악] 또 종교인들조차 그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이 착종된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스피커로서 예언자들을 [음악] 보내 주시죠. 그 예언자들을 가르쳐서 어떤 분은 하나님의 정염에 사로잡혔다. 하나님의 파토스, 하나님의 어떤 그 감정에 사로잡힌 천재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들이 예언자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요. 그들은 언제나 그 출애굽 정신에 비추어서 [음악]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출애굽 정신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지배하는 자들은 여전히 호위호식하면서 [음악] 고통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잘 피지 못하는 거죠. 예언자들은 주놈하게 꾸짖습니다. 정치 권력이든 종교 권력이든 >> [음악] >> 꾸짖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의 언어는 사뭇 날카롭습니다. 때로 망치의 언어로 사람들의 그 굳어진 마음을 타격하기도 하고 날카로운 빛처럼 [음악] 사람들의 마음을 쪼개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음악] 어디에서나. 그러나 동시에 예언자는 비난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비전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을 꿈꾸게 해 주시는지를 일켜 줘서 [음악] 그들을 일으키는 것도 예언자들의 직무였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언을 관통하고 있는 세계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앞에서부터 봤지만은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셨던 세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원받았던 인간이 점점 죄로 향하게 되고 죄가 죄가 제도가 되었을 때 제국이 등장하고 제국이 사람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할 때 새로운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려고 했고 그리고 그 길로 가는 과정에 많은 시행 착고를 거쳐 왔죠. 그런데 우린 신약에 이르서 하나님의 꿈이 몸을 입고 등장한 존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구약 세계 전체가 지향하고 있는 아름다운 세상의 꿈 이런 것들을 요구로 구현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그 당시는 로마 제국이 지중의 세계 패권을 장악하고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그런 질서입니다. 플라톤이 썼던 국가 정체라고 하는 책에서 정의란 강좌의 편이다라고 한 말처럼 힘 있는 사람이 법을 만들기도 하고 또 수행하기도 하기 때문에 강자들의 폭력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세계 속에서는 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지만 자유를 누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자유의 수례받퀴 아래 짓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들은 소모품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때 바로 등장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의 마주선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 [음악] 앞에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이 하나님의 나라의 기본 논리는 힘과 폭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고 [음악] 그리고 자기 낮아짐이고 섬김이고 이것을 통해서 [음악] 사랑으로 사람들을 녹견에 하나되게 하는 사건이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줬던 [음악] 삶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회 사회적 세계를 관통하고 있었던 하나의 세계관이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는데 거룩이라고 하는 척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ෂ니다. 탁딱하게 규정되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깐이 자에 의해서 사람들이 평가받아 죄인 [음악] 의인 나누고요. 그다음에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 나누고요. 그리고 이방인과 유대인을 나누고요. 여자와 남자를 나눕니다. 나눈다고 하는 건 뭐냐면 차별이 가능해지는 거예요. 차별이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혐오함으로 자기들의 맑음을 드러내 보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의 개혁 운동가들이 보여주고 있었던 삶의 실상입니다. 그 거룩이라고 하는 척도 사람들의 삶은 점점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전혀 다른 척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음악] 다가섭니다. >> 그것이 무엇이죠? 자비라고 하는 적도입니다. 영어로 컴패션이라고 얘기하는데 함께 아파하는 거야. 그 사람을 깊은 사랑으로 대할뿐만 아니라 그의 고통을 당신의 [음악] 고통인양 [목을 가다듬음] 아파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계속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그건 뭐죠? 나의 죄를 주님이 배신 값을 치르고 겪어내셨다는 의미죠. 이것을 교리적인로 수 있지만 오늘 예수님은 [음악] 당신 앞에 있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대신 [목을 가다듬음] 알아 주신 분이란 말이죠. >> 아름 그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어진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어떻습니까? [음악] 나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거나 누구 때문이라고 얘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거꾸로 그 사람의 고통을 당신의 거신냥 받아 안으셨습니다. 사랑의 영광로 속에 녹이셨던 것이죠.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새로워졌습니다. [음악] 예수님이 있는 곳에서 잔치가 벌어졌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예수가 있는 곳에서 벌어졌던 [음악] 바로 그것들이 [음악] 내 삶이 무한히 소중하다고 하는 사실을 읽게 받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했지만 [음악] 누릴 것 다 누리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불길하게 보였습니다. 구별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구별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구별을 사라지게 만든 대상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음악]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 사건이고 이것은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가 이해 관계가 맞아 있기 때문에 [음악] 공모하여 예수를 없앤 것이고 이것은 누릴 것 다 누리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음악] 그러나 성경의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그들이 싫어 죽였던 예수를 [음악]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메시지와 더불어서 성령이 그들께 내려오게 되었을 때 성령의 충만한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은 무엇입니까? 함께 모여 기도하고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떡을 함께 띄우고 [음악] 저기의 재산을 내놓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졌다. 사람을 개별화시키고 있던 세상이 성령에 의해 무너져서 서로가 고통을 나누는 사람의 공동체가 탄생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음악] 놀라운 일이지요. 바로 이것을 에베소서 2장은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 원수된 담을 예수님은 당신의 몸으로 무너뜨려서 화목하게 하셨다라고 말합니다. 담을 허무는 것. 그래서 모두가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가는 것. >> [음악] >>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세계이고 교회란 결국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바울 사도가 얘기합니다만 그러니깐 탐욕이 제도화된 세상 속에서 모두가 다 그 길로 달려간 것밖에 삶의 [음악] 길이 없다고 얘기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교회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그런 세상 한복판에 [음악] 새하늘과 새 땅을 열어가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고 세상이 아무리 허하다 해도 역사를 이끌어가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음악] 나아간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제시되고 있는 비전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음악] 역사는 제아무리 진창 같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그 역사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세물을 소천내는 인생을 산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음악] 있었습니다. 금방 오실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주님의 재림이 점점 점점 지연되기 시작합니다. [음악] 그러니까 초대교회 신자들의 마음속에 늘 외성처럼 담겨 있었던 얘기는 마라나타 마란아 혹은 마라나타인데 주님께서 오신다 혹은 [음악] 주님 오시옵소서라고 한 말인데 그런 정말론적 기대를 가지고 초대교회 신자들은 삶을 [음악] 이어갔습니다.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온갖 어려움과 박해가 있어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림이 점점 점점 지연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던 믿음에 대한 회의 같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러나 그나마 사도들이 살아 계실 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육성으로들을 수 있었습니다. [음악] 구체적이죠. 갈릴리 해변에서 어느 날 바람이 없이 불든 날 [음악] 주님은 이렇게 얘기하면 >> 그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겠죠. 아,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주님은 [음악] 이러든지 그런데 사도들도 순교를 당하거나 죽고 이러면서 [음악] 예수님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음악]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음악]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서 [음악] 책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 공동체 속에서 책들이 등장한 것이 복음서들입니다.네 [음악] 세계의 복음서는 시대별로 조금씩 다르긴 한데 서로 [음악] 겨집합도 있고 또 다른 것들도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전승하는 공동체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그러하고 [음악] 그러나 그 내게 복음서가 한결같이 전해주고 있는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가이 세상에 어떻게 구원의 질서를 가져왔는지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죠. [음악] 이것이 이제 내 복음서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러나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거의 동일한네 개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사도행전의 시대가 열리게 되지요. 그 사도행전의 시대에는 성령 [음악] 강림과 더불어 계시되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음악]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음악]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니깐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이 성령의 역사가 복음의 역사가 땅끝을 향해 어떻게 전개되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음악] 사도행전인 동시에 이후에 등장하고 있는 바울과 다른 서신들 들의 [음악] 밑림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통과해 가는 지점은 예루살렘, 온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야만 합니다. 사마리아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경멸에 맞지 않던 [음악] 사람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도 사마리아라고 하는 지대가 있습니다. 그 지대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통과하기를 꺼리고 오해하거나 외면하곤 하는 지대가 있죠. 그건 기억일 수도 있고 사람일 [음악]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볼결은 거기를 통과해 가야 한다고 성경이 얘기해 주고 있고 그리고 [음악] 결국은 땅끝까지 이루게 되는데 땅끝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지역적으로 먼 것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벼랑 끝에 [음악] 선듯 삶이 위태로운 사람들의 삶의 자리는 다 땅끝이라고 본다면 오늘도 땅끝에 선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교회가 또복음 복음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가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땅 끝의 현실이라고 [음악]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교회를 구성하여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가 천사 같은 사람들의 모임만은 아니어서 다양한 문제들이 노정되기도 합니다. 삶의 습관이 다르고 문화적 습속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우리가 왜 여기에 모였는지를 까맣게 잊기 [음악] 쉬운 것이죠. 그런 교회 안에 발생된 구체적 문제들을 신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 사도는 서신이라고 하는 장들을 선택해서 개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을 쓰기 [음악] 시작했고 그 편지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동시에 복음 가운데 머물려고 하는 권고의 말씀과 더불어서 그릇된 [음악] 아 가르침에 빠져든 사람들을 전하게 책망하고 그들 들이 지향해야 할 삶이 [음악]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 서신 속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보편적으로 죄 가운데 있는지를 보여주고 그래서 [음악] 스스로는 그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을 때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 속에 갑없이 주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마땅한 삶은 어떠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보여준 것이 서신의 내용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고요. 그런 시대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래서 마침내 요한 계시록에 이르렀을 때 아주 묵시문학적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시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옛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개시되려고 할 때이 두 세계 사이에 갈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에 있는게 묵시의 세계입니다. 무너지는 예수에게 고통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 [음악] 그 속에 세상은 혼돈에 빠져 있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그때 성도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인내하는 믿음입니다. [음악] 인내하는 믿음. 그리고 사랑하는 믿음이죠. 계시록은 바로 그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결국은 역사는 인간이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이 [음악]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는 얘기를 들려 주고 있고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그 요한이 비전 가운데 보았던 장면인데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계시고 그 옆에는 고통을 당한 것 같은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이 계시고 그리고 내 생물과 24 장로들이 있는데 보좌에 앉으신 분을 찬양하는 노래소리가 들려오고 화답하듯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가 들려오고 그 노래들을 천군 천사의 노래로 이어지고 온 세계 만물이 그 노래에 동참하는 장엄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단 말이죠. 우리는 바로 그런 세계에 초대받았어요. 그런데 우리의 핵심은 뭡니까? 하늘 보좌 가장 깊숙한 곳에 죽임을 당한 것 같은 고통받는 어린양이 있다고 말한다. 고통이 세상의 중심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돌보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복음의 핵심이라고 하는 사실을 [음악] 요한계시록은 이미지로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들이 해소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함께 [음악] 사랑의 대상으로 보게 될 때 찬양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고 그 세계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마침내 주님이 완성하실 세계를 바라보며 우린 나가는 종말론적 공동체에 속한 존재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습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