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행복이 11번밖에 나오지 않는 이유ㅣ김영봉 목사ㅣ잘잘법 243회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u85Hxsevuk | 길이: 19:29
요약
🎯 TL;DR
김영봉 목사는 성경이 추구하라고 하는 것은 순간적인 **행복감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복된 삶’**이라고 말한다. 행복감은 조건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는 주관적 느낌이지만, 복됨은 삶의 방향과 태도다. 복된 삶에는 손해와 고난이 따를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만족과 안식을 얻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를 전한다. 행복감은 그 길에서 하나님이 때때로 주시는 선물이다.
📌 핵심 논지
- 행복한 감정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 변하는 마음과 상황에 휘둘리기 쉽다.
- 성경의 ‘복 있는 사람’은 편안한 기분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 복된 삶의 근거는 유리한 환경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다스림, 위로와 인정에 있다.
-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면 타인에게 고통을 줄 수 있지만, 복된 삶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유익과 안전도 내어놓는다.
행복감은 붙잡아 둘 수 없는 마음의 상태
화자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의 정의를 소개하며 행복을 삶에 대한 만족감, 긍정적인 감정,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강하게 느끼는 상태로 설명한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행복이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라는 점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불행할 수 있다.
그는 마음을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공유지”라고 표현한다.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므로 자신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뜻한 커피와 갓 구운 빵에서 느끼는 ‘소확행’도 커피 향이나 빵의 온기처럼 금세 사라진다. 행복을 나비에 비유한 이야기도 같은 뜻이다. 가만히 있으면 어깨에 내려앉지만 잡으려 하면 날아간다. 행복감을 붙잡으려는 삶은 오히려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에 더 자주 빠질 수 있다.
성경이 제시하는 목표는 ‘복됨’
화자는 자신이 언급한 성경 번역본에서 ‘행복’이라는 말이 11번 등장하며, 해당 히브리어와 헬라어도 반드시 행복으로 번역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성경이 인간의 불행을 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행복한 느낌 대신 복된 상태와 복된 삶을 추구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설명하는 말로 히브리어 ‘아셰르’와 헬라어 ‘마카리오스’를 제시하고, 시편 1편과 예수님의 팔복을 대표적인 본문으로 든다. 여기서 복은 마음의 편안함보다 어떤 길과 삶의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관계된다.
화자는 시편 전체가 복 있는 사람의 여러 모습을 보여 준다고 말하며, 이런 사람을 ‘시편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이지만, 깨어지고 죄가 충만한 세상에서는 손해와 배척을 경험한다. 따라서 가난하거나 병들고, 실패하거나 소외되고, 고통과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도 복 있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팔복은 고난 속에서도 복된 사람을 보여 준다
화자는 팔복을 “시편의 결정체”라고 부른다. 예수님이 시편 150편의 내용을 여덟 행의 시로 요약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을 보여 주셨다고 이해한다.
심령이 가난하고 슬퍼하며 의를 위해 박해받는 사람은 세속적인 기준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온유’ 역시 단순히 따뜻하고 친절한 성격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기에 자신의 힘으로 싸워 이기려 하지 않고, 때로 양보하고 물러서며 약해짐을 택하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팔복의 약속은 이런 사람이 왜 복된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다스림 안에 산다는 뜻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이 채워 주시며,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린다. 복됨의 근거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과 돌보심에 있다.
행복과 복됨의 세 가지 차이
주관적인 느낌과 삶의 태도
행복감은 지금 마음이 어떻게 느끼는가의 문제이고, 복됨은 어떤 자세와 방향으로 사는가의 문제다. 복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감이 없다고 해서 곧 불행한 것은 아니다.자기중심적인 추구와 다른 사람의 유익
자신의 행복을 높이려다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안길 수 있다. 화자는 가마 안의 사람이 행복할 때 가마꾼의 어깨는 상한다는 비유를 든다. 반면 복된 삶은 때로 자신의 유익과 안전을 희생하여 타인을 이롭게 한다. 그 과정에서 돌아오는 기쁨은 마음 깊이 스며드는 행복감이 된다.물질적인 환경과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
화자는 행복감이 주로 물질적 환경에서 오는 데 비해, 복된 상태는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라고 구분한다. 하나님의 위로와 인정은 상황의 조건과 관계없이 만족을 누리게 한다.
복된 사람이 되기를 힘쓰는 삶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일은 완성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늘 부족함을 느끼기에 스스로 “나는 복된 사람입니다”라고 내세우기보다 복된 사람이 되려고 살아갈 뿐이다. 다른 사람이 그 삶을 보고 복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칭찬이다.
화자는 십자가를 지는 일과 바울이 고난을 추구한다는 말을 복된 삶의 길로 설명한다. 그 길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행복감을 선물로 주시지만, 그 느낌이 없어도 하나님 안에서 얻은 만족과 안식을 힘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다. 마지막 권면은 행복감에 휘둘려 길을 잃지 말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함께 복되게 하는 삶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 핵심 수치
- 11번: 화자가 제시한 성경 속 ‘행복’이라는 말의 등장 횟수.
- 150편과 8행: 시편 전체와, 화자가 그 결정체로 설명한 팔복의 관계.
💬 결정적 발언
“복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뿐이지요.”
“그러나 행복감이라는 선물이 없어도 좋습니다.”
❓ 반론과 응답
성경이 행복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인간이 불행하기를 원하는가?
화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성경은 순간적인 행복감을 목표로 삼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복된 삶을 추구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 핵심 용어
- 복됨: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자세와 삶의 길.
- 아셰르·마카리오스: 화자가 성경의 복됨을 설명하며 제시한 히브리어·헬라어.
- 온유: 하나님이 바로잡으실 것을 믿고 양보와 약해짐을 선택하는 태도.
- 시편의 사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소설가 일본 작가 무라감미 하루끼가 유행시킨 말이 있지요.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분이 표현한 대로 하면 아침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가꾸운 그 따뜻한 빵을 [음악] 찢어 먹으면서 먹을 때에 그 행복감을 얘기를 하지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런 행복감. 그런데 그 행복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커피항처럼 빵의 따뜻한 느낌처럼 금세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이 마음의 감정, 마음의 느낌만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에 휘둘리게 되는 거지요. 어 그러면 성경은 행복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성경에서 행복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찾아보면 실망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행복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개혁 성경만 따지고 보면요. 개혁 성경 안에 행복이라는 말이 11번 나옵니다. 그 두꺼운 성경책에 행복이라는 말이 11 번밖에 안 나온다는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지요. 자, 그러면 성경은 행복에 대해서 인간이 불행하기를 원하느냐? 그게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행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추구하라고 하는데 그게 뭐냐면 [음악] 당신은 [음악]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모두가 다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고요.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행복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 미국을 비롯해서 한국 그리고 많은 나라는 행복 추구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삼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겠다 하는 그런 약속을 하지요.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생각, 행복에 대한 개념이 다른데요. 서울대학교의 행복 연구 센터에서 행복에 대해서 정의를 했는데 이렇게 정의를 했습니다. 행복은 자기 삶에 대한 만족감과 감정이 긍정적인 상태 그리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강하게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삶의 만족감, 느끼는 상태, 감정 [음악]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 행복하다 했을 때 그 어 핵심의 의미는 마음의 상태라는 거. 내가 마음에 어떻게 느끼느냐? 주관적인 마음의 느낌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한다 말이죠. 그런데 마음의 느낌, 마음의 감정이라는 것은 종잡을 수 없는 겁니다. 어느 때는 도저히 행복해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행복해지기도 하고 [음악] 또 어떤 때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도 어 불행을 [음악]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학적으로 말하면 [음악]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공유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음악]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 우리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마음의 감정을 따라 사는 것은 이건 아주 어리석은 일 중에 하나입니다. 영어의 happiness 혹은 happy라는 단어의 어그는 중세 영어의 해이거든요. 이해라고 하는 어근에서 나온 또 다른 단어가 동사 happen이라고 하는 동사입니다. 해 happen이라고 하는게 뭡니까? 발생하다, 생겨나 그런 뜻 아닙니까?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갖추어지면 발생하는 것지요. 어 물학감이 하루키가 유행시킨 말이 있지요.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것을 찾으면서 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지혜로운 일이라고 했는데 그분이 표현한 대로 하면 아침에 [음악]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가꾸운 빵을 그 따뜻한 빵을 [음악] 찢어 먹으면서 먹을 때에 그 행복감을 얘기를 하지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런 행복감. 그런데 그 행복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커피처럼 커피의 그 따뜻한 김처럼 [음악] 빵의 따뜻한 느낌처럼 금세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이 마음의 감정, 마음의 느낌만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에 휘둘리게 되는 거지요. 상황에 휘둘리게 되고요. 앤토니 드로라고 하는 영성 작가가 있는데 그 영성 작가가이 행복을 나비에 비유했습니다. 정원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비가 꽃인 [음악] 줄 알고 나폴나플 날아와서 어깨에 앉죠. 그런데 내가 그 나비를 잡으려고 하면 나비는 날아가 버립니다. 그것처럼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조건이 갖추어지면 우리에게 발생하는 [음악] 것. 그리고 그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 마치 커피향처럼 혹은 빵에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는 것처럼 금방 잊혀지고 사라지는 그런 것이라는 거지요. 그것이 우리가 보통 질문할 때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그 우리의 우리가 묻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의 상태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살아가다 보면 더 많은 경우에 행복하다고 느끼기보다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성경은 행복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성경에서 행복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찾아보면 실망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행복을 중요하게다고 있지 않습니다. 개혁 성경 안에 행복이라는 말이 11번 나옵니다. 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행복이겠구나. 그러는데 성경에서는 그 두꺼운 성경책에 행복이라는 말이 11 번밖에 안 나온다는 건 아주 이래적인 일이지요. 그리고 행복이라는 말이 번역된 그 [음악] 히브리어 그리고 헬라어를 보면 꼭 행복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자 그러면 성경은 행복에 대해서 인간이 불행하기를 [음악] 원하느냐? 그게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행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추구하라고 하는데 그게 뭐냐면 복된 상태 복됨입니다. 히브리어로 아셰르라고 하는 어 헬라어로 마카리오스라고 하는 이것이 성경에서는 행복 대신 사용되는 언어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성경을 따지면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자리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렇게 얘기를 하죠. 거기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아셰르라고 하는 말입니다. 또 신약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팔복이겠죠. 복이 있어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복이 있어라. 슬피 우는 사람들. [음악] 복이 있어라. 온유한 사람들 복이 있어라. 긍휼를 베푸는 사람들. [음악] 복이 있어라. 의에 줄이고 목마른 사람들. 복이 있어라. 마음이 청결한 [음악] 사람들. 복이 있어라.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복이 있어라. 의를 위해 박해받는 사람들. 자, 여기 보면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하는 사람의 조건을 보면 우리 세속적으로 아, 당신 행복합니까, 안 합니까라고 하 할 때에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은 내 마음의 어떤 편안한 느낌을 추구한다는 뜻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마음의 행동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의 삶의 길을 삶의 방법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편 150편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복 있는 사람의 여러 가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자리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이 복된 사람은 어떻게 사는 사람이냐? 그걸 저는 시편의 사람이라 그렇게 부르는데이 시편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따뜻한 차 앉아 놓고 갓구어낸 빵을 찢어먹는 그런 상태가 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이 세상이 깨어져 있고 죄가 충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려고 하다 보면 때로는 손해 봐야 하고 때로는 어 배척당해야 하고요. 그래서 시편에 보면 시편의 사람, 복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도 나오고 그 어 병든 사람, 밀련한 사람, 실패한 사람, 소외된 사람, 고통받는 사람, 죽음의 위기에 빠진 사람 이런 사람들이 시편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건 전혀 다른 그런 모습이죠.뿐만 뿐만 아니라 저는 팔복을 시편의 결정체라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예수님께서 시편 150편에 나오는 내용들을 8행의 시로 요약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셨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면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그런 기준에서 결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 슬피 우는 것, 성경에서 온유하다는 말은 교회 오빠, 교회 언니처럼 늘 따뜻하고 그 친절하고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 잡아 주실 것을 믿고 나의 노력으로 혹은 나의 어떤 실력으로 싸워 이기려고 하지 않는 하나님이 바로 잡아 주실 것을 믿고 때로 양보하고 때로 물러서고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된 [음악] 사람, 시편에서 말하는 복된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어 우리이 세상의 도덕이 세상의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의 행복감을 위해서 살라고 우리를 계속해서 속이지만 성경은 행복감을 [음악]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 힘쓰라고 얘기를 하는 거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에 제가 아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느끼시겠습니까? 어 뭐 당신이 행복하다는데 내가 혹 12월게 뭐가 있어? 이렇게 생각을 하겠죠. 그러나 성경적인 의미에서 제가 저는 복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러면 [콧방귀] 저 사람 굉장히 교만한 사람이다. 혹은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죠. 성경에서 말하는 복된 삶의 상태, 거룩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그것은 완성할 수 없는 그렇기 때문에 늘 그렇게 살지만 그러나 늘 부족함을 느끼는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나는 복된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복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뿐이지요. 다만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아 당신은 참 복된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저에게 엄청난 칭찬이 되겠죠.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음악] 행복감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그런 행복된 행복의 감정을 우리에게 주시지요. 그러나 복된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감이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행복감을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감이 없으면 불행을 느끼죠. 그러나 복된 사람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그게 디폴트예요. 그것이 기본값입니다.이 깨어지고 엉망이 된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행복감 [음악] 없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안에 머물러 [음악] 살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이 조건의 [음악] 상황 조건의 상관없이 행복한 만족감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지요. [음악] 그래서 행복이라고 하는 말과 성경이 말하는 복되다 하는 말을 비교해 보면 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첫째로 큰 차이는 행복감이라고 하는 것은 주관적인 느낌이고요. 복됨이라고 하는 것은 내 삶의 자세, 새 삶의 길, 삶의 태도 어라는 거지요. 두 번째 차이는 행복감이라는 것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을 심어 줍니다. 그런 얘기를 하지요. 가마 안에서 아씨가 행복해 할 때 그 가마꾼들의 어깨는 문들어진다. 음. 한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을 씌우는 것이 우리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 아닙니까? 행복감을 위해서 살아가다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너무도 쉽게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복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이것은 때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유익과 우리의 안전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일할 때 거기서 얻는 기쁨이 우리에게 돌아올 때 그때 정말 수중기 같은 그런 연기 같은 행복감이 아니라 마음 깊이 찾아드는 그런 행복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세 번째 차이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주로 물질적인 환경에서 오는 것인데 복된 상태는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 겁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에 보면 앞에는 복된 사람의 상태를 얘기하고 뒤에는 그 사람이 복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왜냐?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하나님의 다스름 안에 살아간다는 뜻이지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 왜?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살아가면서 기도 중에 혹은 찬양 중에 예배 중에 [음악]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경험해 보셨는지요? 아무리 깊은 상처와 아픔이라도 하나님께서 내가 한다 하는 말씀 하나 내 마음속에 던져 줄 때면 모든 것이 녹아 없어집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아까 말씀드렸죠. [음악] 온유하다고 하는 것은 나의 완력으로 나의 힘으로 싸워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 잡아 주실 것을 믿고 약해짐을 택하는 거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음악]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의를 위해서 의에 대해 목마르고 배고픈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의를 채워 주시기 때문이다. [음악] 긍휼한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시기 때문이다. [음악]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에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음악]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이 여덟 번에 걸쳐서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것이다. [음악]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진정한 복은 행복은 우리가 얻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얻을 수 [음악] 없는 것이고 반면에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음악]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행복의 추구를 우리의 권리로 얘기를 하지만 성경에서는 오히려 고난을 추구하라고 얘기를 합니다. 십자가를지는 말도 그런 그것이고요. 바울 사도가 고난을 추구한다는 말도 그런 뜻입니다. 왜 우리가 쓸데없이 고난을 추구합니까? 왜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왜냐하면 그것이 [음악] 복된 삶에 이르는 길이고 나의 복된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가 [음악] 전해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할 것은 행복감의 [음악] 그 신규루에 붙들려서 어 허둥되는 그런 삶이 아니라 하나님 [음악] 안에서 복된 삶을 추구할 때 그때 하나님은 이때 저때 우리에게 그 [음악]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행복감이라는 선물도 주시지요. 그러나 행복감이라는 선물이 없어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이미 [음악] 만족을 얻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음악] 그 능력으로이 세상을 복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려고 힘써 왔고요.이 [음악]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도 행복감에 휘들려서 길을 잃지 마시고 복된 삶을 하나님 안에서 복된 삶을 추구함으로써 나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음악] 거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복되게 하는 그런 삶의 길을 가실 수 있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