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너무 계획형이라 하루가 빽빽한 사람들도 보세요 #파워J #필수시청ㅣ김기석 목사ㅣ잘잘법 249회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LfPFKU_2yg | 길이: 24:30
요약
🎯 TL;DR — 김기석 목사는 시간을 소유·관리하려는 태도를 경계하며, 미하엘 엔데의 『모모』,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시간론, 전도서 3장을 통해 "시간을 통제하기보다 흐름 속에서 온전히 누리고 받아들이는 삶"이 참된 신앙적 태도라고 말한다.
📌 핵심 논지 — 화자는 지나치게 계획적으로 시간을 통제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태도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튼튼한 루틴"과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는 나머지 시간"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영상 구성
- 도입: '파워J'(계획형 성격)에 대한 문제의식 —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 소개
- 시간 개념의 신학·역사적 분석: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자크 르 고프의 '교회의 시간' vs '상인의 시간'
- 『모모』의 핵심: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은 이유
- 헤셸의 '공간 중심적 삶' vs '시간 중심적 삶' 대비
- 전도서 3장의 '때가 있다' 본문 해석
- 예수님의 산상수훈(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 연결
- 결론: 시간 관리가 아닌 '루틴'의 중요성, 화자 자신의 새벽 루틴 사례
━━━ 본문 ━━━
시간을 빼앗기는 삶 — 『모모』의 회색 신사들 화자는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를 인용하며, 회색 신사들이 사람들에게 "잘 살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끼고 저축해야 한다"고 설득해 시간을 사들이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팔아넘긴 시간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꽃과 구름을 무심히 바라보는 시간, 친구와 수다 떠는 시간, 밤하늘 별을 보며 영혼이 동경하는 시간 같은, 겉보기에 "무용해 보이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화자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무용해 보이는 시간들"이라고 강조한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교회의 시간과 상인의 시간 화자는 시간을 계측 가능한 크로노스와, 삶에 수직적으로 돌입하는 신적 시간인 카이로스로 구분한 그리스도교 전통을 설명한다. 이어 중세사학자 자크 르 고프의 분석을 인용해, 자연의 순환 리듬(파종~추수)과 종소리에 맞춘 기도로 살아가는 "교회의 시간"이, 상업·금융·제조업의 발달과 함께 대금 지불과 생산·유통에 쫓기는 "상인의 시간"으로 대체되어 갔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불확실성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죄처럼 느껴지는" 근대적 감각이 형성되었다고 지적한다.
모모가 시간을 빼앗기지 않은 이유 화자는 작가 엔데가 스스로 던진 질문 — "모모는 왜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는가" — 를 소개하며, 단순히 "모모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라고 답하는 것은 "작가로서 게으른 태도"라고 지적한다. 엔데가 고심 끝에 찾은 답은 모모가 "시간을 한껏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저축할 시간도, 팔 시간도 없었다"는 것이다.
분주함(忙)이라는 신분의 상징과 '망(忙)'자의 구조 화자는 오늘날 "분주하시죠?"라는 인사가 곧 그 사람의 중요도를 입증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어 한자 忙(바쁠 망)이 亡(망할 망) 밑에 心(마음 심)이 붙은 구조임을 풀이하며, "내가 분주하면 마음이 망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내가 누구인지,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옆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설명한다.
헤셸의 공간 중심적 삶 vs 시간 중심적 삶 화자는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구분을 소개한다. 공간 중심적 삶은 건물·소유·업적처럼 가시적 성취를 쌓아 공간을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며, 이 욕망들이 충돌해 삶의 현장이 "보이지 않는 전장"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시간 중심적 삶은 흘러가고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으로, 헤셸은 현재를 "변장한 영원"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화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시간에 종속되게 만든다며, 시간의 흐름을 타고 사는 것이 곧 시간을 성화(聖化)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전도서 3장, 14쌍의 '때' 화자는 전도서 기자가 말한 "모든 일에 다 때가 있다"는 구절의 14개 때 쌍(태어날 때/죽을 때, 심을 때/뽑을 때 등)을 소개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긍정과 부정으로 통상 인식되는 것들의 순서가 뒤섞여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며, 화자는 이를 전도서 기자가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시간까지도 우리 생애의 소중한 일부"임을 자각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화자는 "잘 산다는 것은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내 삶으로 수용하려는 마음의 태세"라며, 낯선 시간·실패·배신·허물어짐의 경험조차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과 시선의 전환 화자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지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이는 몰두하던 시선의 방향을 바꾸라는 요청이라고 해석한다. 시선의 방향이 바뀌면 시간은 공포가 아니라 설렘이 되고, 시간이 가져오는 선물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시간 관리가 아닌 '루틴' — 화자의 새벽 습관 화자는 "시간 관리"라는 말이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이라며 대신 "튼튼한 루틴"이라는 표현을 제안한다. 독서·기도·운동 등 반드시 지키는 루틴이 삶의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가 오히려 무질서해 보이는 나머지 시간들을 지탱해 준다는 것이다. 다만 하루 전체를 루틴으로 꽉 채우지 말고, 나머지 시간은 열린 태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자는 자신의 평생 습관인 새벽 기상을 예로 들며, 아침 식사 전 약 세 시간 동안 기도·성경 묵상·독서·글쓰기를 해왔다고 밝힌다. 이어 선배 목사가 "주일 성수하듯" 매주 목요일마다 등산을 빠짐없이 지켰던 일화를 소개하며, 이런 흔들리지 않는 루틴이 다른 날들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결론짓는다.
💬 결정적 발언
"저는 파워제로 제 시간을 철저히 계획하며 삽니다. 하지만 이런 계획적인 삶이 어쩌면 제가 주인이 되어 제 인생을 주도하고 통제하려는,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태도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은 무용해 보이는 그런 시간들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관리라는 말보다는 튼튼한 루틴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요."
"우린 목사이기 때문에 주일날은 반드시 지키지... 그것처럼 나는 주일 성수하듯 산에 간다."
🧩 핵심 용어
- 크로노스(Chronos) = 계측 가능한 물리적 시간
- 카이로스(Kairos) = 삶에 수직적으로 돌입하는 신적·경험적 시간
- 교회의 시간 = 자크 르 고프가 말한, 자연 순환과 기도 리듬에 맞춘 중세적 시간 경험
- 상인의 시간 = 대금 지불·생산·유통에 쫓기는 근대 상업적 시간 경험
- 忙(바쁠 망) = 화자가 "亡(망할 망)+心(마음 심)" 구조로 풀이한 한자, 마음이 망해 소중한 것을 잊는다는 뜻으로 해석
- 공간 중심적 삶 / 시간 중심적 삶 = 헤셸이 구분한 성취·소유 중심의 삶과 흐름·조화 중심의 삶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미하엘 엔데의 『모모』(1973)는 시간과 자본주의적 효율성 비판을 다룬 독일 아동문학으로,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갈취하는 자본의 은유로 널리 해석된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20세기 유대교 랍비·신학자로, 저서 『안식일』에서 "시간의 건축물"이라는 개념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영상에서 언급된 "공간 vs 시간" 구분도 이 계열의 사유로 추정됨).
- 사실 유의점: 자크 르 고프의 "교회의 시간 vs 상인의 시간" 구분은 그의 저서 『중세는 어떻게 시간을 알았는가』 등에서 다뤄진 실제 학설로 알려져 있으나, 영상 내 세부 인용(구체적 문구·쌍)이 원저와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확인 필요. 忙자의 파자(破字) 설명은 화자의 해석적 풀이이며, 한자 자원(字源) 학계의 정설과는 별개로 설교·강론에서 관습적으로 쓰이는 방식임을 감안할 것.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하 앤데라고 하는 분이 썼던 모모라고 하는 색은 우리가 빼앗겼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 주고 있습니다. 어 회색 일당들이 나타나 가지고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껴야 돼. 쓸데없는 시간을 줄여야 하고 시간을 저축해야 돼요. 우리가 맡아 줄게. 이러면서 시간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런고 나니깐 더욱더 삶이 빡빡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미아엘 앤데가 작가로서 하는 말인데요. 모모는 어떻게 회색일당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냥 게으르게 답하자고 한다면 모모는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이러면 간단합니다. 근데 그건 작가로서 굉장히 게으른 태도이죠. 이게 고심을 했다는 겁니다. 뭐냐? 깨달음이 모모는 시간을 저축할 생각이 없어요. 왜? 저는 파워제로 제 시간을 철저히 계획하며 삽니다. 하지만 이런 계획적인 삶이 어쩌면 제가 주인이 되어 제 인생을 주도하고 통제하려는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태도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 네. 시간이라는게 참 묘합니다. 우리가 시간 속에 사는게 분명한데요. 태어남에서부터 죽음까지 일평생 우리는 시간 여행자로 산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죠. 시간이 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고 한다면 설명하기가 여관 어려운게 아닙니다. 물리학자들은 설명하는 방식이 있을 순 있겠는데 것들은 이제 어 물리적인 시간을 얘기하는 거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간은 물리적 시간의 경과와는 조금 다른 시간들을 경험하며 살고 있죠. 그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 사람들은 시간을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계측 가능한 시간 크로노스를 얘기하고 있고 또 하나는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 어떻게 보면은 수직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돌입하는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얘기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 때가 이러지 않았다 혹은 뭐 때가 찼다라고 하는 것은 아 그런 수직적으로 우리에게 돌입하는 신적 시간을 읽컫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근데 어쨌든 이렇게 설명을 해 보지만 시간에 대해서 말해 줘. 누군가가 질문한다고 한다면 말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어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는 시간과 관계하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시간을 의식할 뿐이죠. 이게 이제 우리들의 시간 개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어쨌든 시간을 누리는 방식이 다양한데요. 종세학자인 자크 루고프라고 하는 분은 중세를 분석하면서 중세 사람들이 시간 경험이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 줍니다. 하나는 교회 시간입니다.이 교회 시간이라고 얘기하지만 꼭 예배에만 관련되는 건 아니고 교회의 시간이라고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자연의 순환하는 리듬에 따라 살아가는 흐름 속에 자기를 맡기고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농사의 리듬 같은 것이겠죠. 파종에서 추수에 이르는 늘 반복되고 있는 순환의 리듬을 얘기하고 있고 또 거기에는 이제 그 종교 행운이도 들어갑니다. 예배를 드리고 그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따라서 시간에 맞춰서 기도를 하고 삶의 시간들을 구해 가는 그런 시간들이 있죠. 우리가 밀레종이라고 하는 그림도 매우 좋아합니다만는 그 정소리가 들릴 때 그 부부가 들판에서 귀도를 올리는 그 장면을 우리는 인상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죠. 그러니깐 내 삶에 위이 있어요. 질서가 있어요. 그리고 그 질서가 나를 든든하게 채워갑니다. 이게 자크루고프가 얘기하고 있는 교회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점점 점점 세상이 복잡해지고 상업이 발달하고 금융업이 발달하고 제조업이 활발해지고 이러면서 사람들 사이에 교육이 빈번해지고 이러면서 상인의 시간이 도래하게 됩니다. 그 상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대금도 지불해야 하고 뭔가를 생산해 내야 하고 생산된 것들을 요해야 하고 요통하지 못한 것들을 폐기해야 하는 어떻게 보면은 교회의 시간과 구별되고 있는 시간 그런 시간으로 점점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뭐 시계의 탄생도 상인의 시간과 관련된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그러다 보니까는 시간이 불확실성이 많아지고 시간이 우리에게 공포로 다가오고 또 시간을 낭비하는게 죄처럼 느껴지고 이런 것들이 이제 중세말로 가면서 근대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늘 하는 얘기가 뭐냐? 시간이 빠듯하다라고 하는 거. 빠듯한 시간을 쪼개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죠요. 그러니까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하 앤데라고 하는 분이 썼던 동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뭐모라고 하는 책은 바로 우리가 빼앗겼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 주고 있습니다. 어 회색일당들이 나타나 가지고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껴야 돼. 시간 절약해야 돼. 그러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시간을 줄여야 하고 시간을 저축해야 돼. 우리가 맡아 줄게. 이러면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사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많은 시간을 회색일당에게 넘겨 줘요. 그러고 아니 더욱더 삶이 빡빡해지는 겁니다. 근데 회색일 땅에게 사람들이 팔았던 그 시간은 그냥 물리적 시간이 아닙니다. 어떤 시간이냐면 뭐 예를 들면 아 꽃이라든지 또 구름이라든지 흘러가는 시내물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아 그리고 친구들과 수다를 뜰 수 있는 시간.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정말 멍하니 영혼을 동경하는 그런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은 무용해 보이는 그런 시간들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은 뭔가를 생산하는 시간은 아니지요. 그러니깐 생산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효율적 시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 합니다. 나를 아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무용해 보이는 시간들을 내가 누릴 수 있을 때라고 하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빼앗긴 채 허덕거리고 있습니다. 분조함이라고 하는 말이 어떤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 된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대접하기 위해서는 요즘 한가하시죠. 그러면 안 됩니다. 분주하시죠.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분주하다는 것은 내 일정이 가득차 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는 사실을 타자들에게 입증시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될게 뭐냐면 분주할 망자는 잊을는 어떻게 돼 있습니까? 망할 망자 밑에 마음 심자가 있어요. 마음이 망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잊어버리는 것은. 그런데 그 망자 밑에 있는 마음심을 좌측으로 끌어내고 그리고 거기에 신방부 옆에다 망할 망자를 분주할 망자입니다. 내가 분주하면 잊어버리지 말아야 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해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도 물어 모르고 내가이 세상에 왜 왔는지도 우리들이 묻지 않게 되고 내 옆에 있는 타인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거죠. 이것이 시간을 뺏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근데 모모라고 하는이 아이는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그 시간을 회색 일당으로부터 되찾아 주고 싶어 합니다. 뭐뭐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깊이 공감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깐 그들은 자기의 말이 경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자기의 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실마리를 스스로 찾게 됩니다.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 때문이 아니죠.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미아엘 앤데가 작가로서 하는 말인데요. 모모는 어떻게 회색일당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이게 고심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대요. 뭐냐 깨달음이 뭐뭐는 시간을 저축할 생각이 없어요. 왜? 시간을 한껏 누리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음악] 한껏 누렸기 때문에 저축할 시간도 없고 누군가에게 팔 수 있는 시간도 없는 거예요. 그 시간에 충실했던 것이지요. 이게 뭐뭐의 생의 비결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런데요. 요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한번 해 볼 텐데요. 아브라함 저수와 헤셀은 우리의 삶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간결하게 설명을 해 봅니다. 하나는 공간 중심의 삶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공간 중심의 삶이라는게 뭐냐? 뭔가 가시적인 성취를 얻어내는 그니까 나의 성취를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이도록 공간화하는 이런 일들 그러니까 뭐 건물을 세운다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통해 나를 입증한다든지 뭐 이런 내가 가지고 있는 업적 이런 것들을 세워가는 것 이것이 이제 공간 중심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게 뭐냐면 인간은 공간을 통제하려고 하는 욕망을 갖고 있고 그런 욕망들이 부딪히고 있기 때문에 어 우리의 삶의 현장은 보이지 않는 전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다른 삶의 태도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 시간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인데 시간이라고 하는 것의 특색은 뭐예요? 흘러가는 것입니다. 변화입니다. 흘러가고 변화하는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산다고 하는 것은 그 흐름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깨끗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아브라함 저수 해셀은 현재를 뭐라고 말하냐면 변장한 영혼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음악]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그 시간을 정말 그 흐름 속에서 영혼의 빛을 볼 수 있는가라고 하는게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강박관념이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시간에 종속되도록 만들고 있는데 그 시간에 흐름을 타고 사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을 해 보는 거죠. 바로 그것이 시간을 성화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을 성화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영혼에 되어져 사는 삶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의 전도 설히자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알맞은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때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든요. 14개의 때 쌍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근데 이게 흥미로운 대목인데요.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 죽일 때와 살릴 때, 허물 때와 세울 때, 울 때와 웃을 때, 통곡할 때와 기법 춤출 때, 도를 흩어버릴 때와 모아들일 때, 껴을 때와 껴는 것을 삼갈 때, 찾아나설 때와 포기할 때, 간직할 때와 버릴 때, 찢을 때와 꿰멜 때, 말하지 않을 때와 말할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을 치를 때와 평화를 누릴 때 14개 쌍으로 돼 있습니다. 그 14개 쌍이란 얘기는이 전도석 기자가 얘기하고 있는게 28가지의 시간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런데이 대목에서 흥미로운게 있어요. 우리는 이제 이렇게 나열를 할 때 습관이 긍정적인 걸 앞에 두고 부정적인 걸 뒤에 놓고 이렇게 리듬을 만들려고 합니다. 근데 여기 언급되 있는 것을 보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이 때때로 순서가 바뀌어 있기도 하고 뒤섞여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요? 우리는 부정적인 것들을 우리의 인생에서 빨리 제거해야 할 부정적 순간으로 바라보고 있지만은 천도 기자는 그 시간까지도 우리의 생애 너무도 소중한 일부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자각시키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산다고 하는 건 뭘까? 생각해 보면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내 삶으로 수용하려고 하는 마음의 태세라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어 때때로 낯선 시간이 내게 다가오게 되면은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요. 왜? 낯설다고 하는 것은 내게 그 편안했던 세계를 혼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낯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낯선 세계와 직면하지 않으면 내가 커지는 방식이 없습니다. 나와 다른 세계, 내가 예측할 수 없었던 세계와의 만남. 이것은 나를 더 커지라고 하는 일정의 부름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 경험이 내게 찾아옵니다. 실패의 경험, 누군가에게 배신당하는 경험, 그리고 내가 세웠던 것들이 허물어지는 경험들. 그런 것들은 우리를 잠시 힘들게 만들고 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우리가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게 인간이지요. 그래서 그런 내게 당도한 시간과 잘 화해를 이룰 줄 아는 사람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아 그것을 더 커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저게는 들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내가 바라는 시간, 내가 바라는 방식 때로 내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낙심할 이유가 없겠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삶을 이루는 하나의 시실과 날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 그 일에 멀두하고 있는데 너희의 시선의 방향을 좀 바꿔 봐라고 말합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좀 보아라. 더빈 꽃을 바라봐라라고 얘기합니다. 자,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몰두하고 있던 그 시선으로부터 나의 시선이 다른 것을 향하게 될 때 삶은 무한히 값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의 시선의 방향이 바뀔 때 그때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달라질 가능성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 더 큰 세계와 접속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을 우리들이 기울인다고 한다면 내게 주어져 있는 시간은 공포가 아니라 아 설렘일 수 있고 시간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선물을 기대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 사람들은 이제 시간을 고핵 지어 가지고 아 시간의 리듬을 만들어 내죠. 1년이 365일이고 뭐 12달로 돼 있고 또 한 달은 30일로 돼 있고 일주일은 1회로 돼 있고 하루는 24시간이고 왜냐면 그런 구액이 없다고 한다면은 흘러가는 그 시간 속에서 리듬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관리라고 하는 말보다는 그 시간에 리듬 속에 내가 리듬을 빼앗긴 채 살지 않고 그 리듬을 잘 지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관리란 말이 너 너무 자본주의적이어서 저는 좀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데요. 많은 사람들이 시간 관리라고 하는 것을 저는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고 싶은데 튼튼한 로틴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인데요. 교회 시간과 상인의 시간을 구별하면서 교회 시간이라고 하는게 예배당에 들려오는 어떤 그 종소리에 따라서 기도하는 시간들을 일제 두는 거라고 얘기한 것처럼 내 시간도 그런 루틴을 정확하게 만들어 두면은 그렇게 해서 거기에 매일한 얘기가 아니고 내 삶을 든든하게 해 주는 것은 루틴이 튼튼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들은 흐름에 맡겨져서 거기에 적응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냥 흘러가기만 해서 안 됩니다. 튼튼한 루틴이 있어야 돼. 예를 들면 뭐 이런 시간은 내가 틀림없이 독서를 한다. 이런 시간은 내가 틀림없이 기도를 한다. 이런 시간은 틀림없이 내가 뭐 운동을 한다. 이런 루틴들이 만들어지게 될 때 그 삶은 일단 질서를 갖추게 되고 그 질서가 오히려 무질서해 보이는 다른 시간들을 지탱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게 해서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너무 꽉 채워서 루틴을 만들지 말고 내 삶의 뼈대로서의 루틴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들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태도로 좀 접근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게 너무 상투적일 수도 있는데이 이런 얘기는 좀 재수 없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네 제 평생의 습관는 새벽일찍 일어나는 거였습니다. 학생 때부터 이런 시간에 일어나는 거였고요. 교회 다니기 전부터도 새벽 시간이 저한테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새벽 기도회를 가기 위해 일어나시는 시간에 저를 깨워 주시면은 그때부터 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그 시간은 오로시입니다. 그러니깐 그 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이고요. 그니까 나중에 뭐 목사가 되어 살면서 새벽 기도회를 하는 시간도 있었지만은 또 지금도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고 그래서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제법 많은 일들을 하죠. 기도하고 성경 묵상하고 기독교 고전 읽고 내가 읽고 싶은 책 읽고 글 쓰고 하는 일들이 아침 식사 전에 벌써 한 세시간 정도 그 정도가 이루어지고 그러고 나면은 하루가 길게 경험되죠. 아, 그것이 저의 어떤 그 일상의 루틴 가운데 하나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니까 이거는 이제 포기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우리 선배 목사님 한 분이 목요일마다 등산을 하셨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산을 올라가지 못하면은 공원을 걷더라도 목요일은 빠뜨리지 않고 걸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물었습니다. 선배님 그렇게 분주하신데 어떻게 목요일마다 산에 가세요? 선배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목사이기 때문에 주일날은 반드시 지키지. 예. 그렇죠. 그것처럼 나는 주일 성수하듯 산에 간다라고 얘기합니다. 그게 농담처럼 한 얘기였지만은 바로 그 시간 반드시 지켜갔던 그 시간이 그분의 다른 날들을 건강하게 만들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내 삶이 어떤 경우에도 떠내려가지 않은 내 시간의 와 같은 루틴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이 시간은 내가 포기할 수 없어라고 하는 거. 근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도 일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재밌는 일이 있어도 그 시간이 되면은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예가 좋은 예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월드컵 축구를 하는데 우리나라 경기가 전반전 끝났는데 내가 자야 할 시간이면 전투로 가서 잡니다. 다음날 새벽에 어 잘 일어나기 위해서 그러니까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지만은 그 시간이 저를 든든하게 세워 준다고 생각합니다. >> 잘잘법은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으로 제작됐습니다. 잘잘법에 전기 후원자가 되어 주세요. 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