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수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방해하면 어떡하죠?ㅣ노진준 목사ㅣ잘잘법 254회

잘잘법 · 2026-09-03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rQoYwTpTp10 | 길이: 15:02

요약

🎯 TL;DR — 노진준 목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결과가 나중에 다 잘 풀린다는 뜻이 아니라, 설령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고난이라 할지라도 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 핵심 논지 — 화자는 자신의 목회지 이동 경험을 예로 들며, 인간은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끊임없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로마서의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구절이 결과론적 낙관이 아니라, 고난의 시간조차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신앙 고백이라고 주장한다.

🗺️ 영상 구성

  • 화자 자신의 사역지 이동 경험과 그로 인한 후회의 감정 소개
  • 레베카 페퍼트의 "인생은 버겁다"는 말 인용, 선택의 불확실성 문제 제기
  • 남편을 잃고 홀로 자녀를 키운 한 교인의 사례 —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에 대한 반발
  • 로마서 8장 해석 — 결과론이 아닌 고난의 의미론
  • 요셉의 생애(보디발의 집, 감옥, 총리 시절) 분석
  • 욥기 인용 — "고난 중의 질문"의 진짜 의미
  • 결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으로서의 고난

━━━ 본문 ━━━ 자신의 선택에 대한 회의 화자는 33년간 목회했던 동부 교회를 떠나 LA(서부)로 옮긴 자신의 결정을 언급하며,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그때 잘못 선택한 것 같다", "하나님이 벌을 주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이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는 문제의식을 이끌어낸다.

인생의 버거움과 선택의 불확실성 화자는 레베카 페퍼트라는 여류 작가의 "인생은 사람이 살기는 좀 버겁다"는 말을 인용하며, 무엇이 최선인지 모르는 채 끊임없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인생을 두렵고 버겁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누군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해도, 택하지 않은 다른 길이 어떤 결과를 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에 대한 반발 사례 화자는 목회 중 만난 한 부인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민 온 지 며칠 만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홀로 두 자녀를 키워 성장시켰다. 이 부인은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자리를 잡은 것으로도 "내 남편을 돌려 달라"는 상실감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남편이 떠난 후 내 인생이 잘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로마서 해석 — 결과론이 아닌 의미론 화자는 이 사례를 바탕으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나중에 결과적으로 다 잘될 거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발생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고통의 시간조차 하나님이 헛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이 고백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화자는 "모든 것이 평탄하고 형통한 삶만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니라, 힘들게 견뎌낸 것도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요셉의 생애를 통한 논증 화자는 요셉의 생애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온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두 번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다. 애굽의 총리가 된 이후가 아니라 오히려 고난과 절망의 순간에 이 표현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화자는 그 고난의 시간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 있는 시간이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잘못된 선택과 하나님의 자비 화자는 인간의 잘못된 선택이나 허물, 죄에 대해서조차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의 결정에는 죄와 욕심이 섞여 있기 마련이므로, 결과만 놓고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기보다 "죽을 힘을 다해 살되, 결과는 주님의 손에 맡긴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겠다는 의미로 규정된다.

욥기를 통한 결론 — 질문의 진짜 의미 화자는 욥이 겪은 고난과 친구들의 정죄("잘못한 게 있으니 벌받는 것")를 언급하며, 욥이 하나님께 "왜"냐고 물었던 진짜 의도는 고난의 원인이나 유익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거기 계십니까?"라는 임재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해석한다. 화자는 오늘날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결국 같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이었고 욥은 이를 통해 위로받았다고 결론짓는다.

💬 결정적 발언

"그 어떤 것도 내가 잃어버린 그 상실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 그거보다 내 남편 좀 돌려 주세요." "비록 그 어렵고 힘들고 고통의 순간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어떤 순간도 헛된 시간은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믿음뿐인데" "그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 왜를 묻고 있는 그 질문의 의도는 […] 오히려 욥처럼 내가 당하는 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 하나님 거기 계십니까? 그 질문이었다고 생각해요."

🧩 핵심 용어

  •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 로마서에 나오는 표현으로, 화자는 이를 결과론적 낙관이 아닌 고난의 의미론으로 재해석
  • 형통하게 하셨더라 = 요셉의 생애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나타내는 표현, 상황의 좋고 나쁨과 무관하게 사용됨
  • 하나님께 맡긴다 = 화자가 정의하길, 결과를 통제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는 태도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잘잘법"은 노진준 목사가 진행하는 문답형 신앙 상담 콘텐츠로, 시청자 질문("나의 실수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방해하면 어떡하죠?")에 답하는 형식의 회차다.
  • 배경·맥락 보완: 로마서 8장 28절("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이 이 영상 논증의 성경적 출발점으로 추정되나, 자막에서 정확한 장절은 직접 언급되지 않았다(확인필요).
  • 사실 유의점: 요셉 이야기 속 "형통하게 하셨더라"는 표현의 정확한 등장 횟수·구절(창세기 39장)은 화자의 기억에 의존한 진술로, 원문 대조 확인이 필요하다(추정).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저는 동부에서 목회를 오래 했거든요. 이제 그 교회를 떠나서 서부에 와서 목회를 한번 해 보자. 서부로 갔는데 저는 그 선택이 정말 옳았을까? 33년 동안을 같이 살면서 같이 울고 웃었던 사람들을 다 떠두고 전혀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LA에 가서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고 그렇게 목회를 하면서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감당하기 어렵다 싶은 일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그때 잘못 선택한 거 같은데 그때 거기에 있었어야 되는데 내가 너무 교만했던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사람들을 떠난 것을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나에게 이렇게 벌을 주시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들 때 저의 마음을 지켜 줄 수 있었던 것은 레베카 페퍼트라고 하는 여류 작가는 말하기를 인생은 사람이 살기는 좀 버겁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근데 인생이 사람이 살기에 버거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있다면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모르는 그 상황에서 우린 끊임없이 무언가를 결정해야 되고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저희들을 굉장히 두렵게 만들고 인생을 버겁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과거에 내가 잘못 선택한 그것 때문에 내가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 현명한 선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하기를 나는 정말로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가 택한 것이 최선이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가 택하지 않았던 다른 것들은 어떤 결과를 냈을지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죠. 아,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택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어떤 것이 최선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저희들로서 기독교인들은 종종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 하나님께 맡긴다 하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은 그러면 무슨 말일까? 사실 그렇게 쉬운 개념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목회할 때 한 부인이 계셨는데 아주 옛날에 미국의 어린 아이들 둘 데리고 이민을 왔어요. 남편과 함께. 그런데 이민을 온 그다음 날인가요? 며칠이 안 돼서 남편이 일을 나가다가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이 부인은이 아이들 둘 어린 깐난하기 둘을 키우느라고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뭐 중노동을 하기도 하고 버겁고 힘들게 살아가면서 그 외국에서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잘 성장해서 나름대로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살 수 있게 되었는데 한번은 그분이 저한테 그 말씀을 하세요. 자기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그 말을들을 때마다 너무 화가 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그 말이 어 너무 자기는 어이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그 의도는 비록 어 남편을 먼저 보냈고 그리고 힘들게 살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어 선하게 인도해 주셔서 아이들이 좋은 대학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좋은 자리에서 자기의 삶을 살게 됐으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이 아니냐라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그분이 저에게 했던 말은 그 어떤 것도 내가 잃어버린 그 상실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간 거,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것 자기 그거보다 내 남편 좀 돌려 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결과적으로 그게 다 잘될 거라는 의미라면 자기 인생에서는 남편이 떠나고 난 다음에 내 인생이 잘됐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그 말은 결과적으로 나중에 다 잘될 거라는 그러한 의미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에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의 인생이 굉장히 길고 지루한 고난의 그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다 좋아질 거야라는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비록 그 어렵고 힘들고 고통의 순간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어떤 순간도 헛된 시간은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그 현장에서 어 우리가 버텨내고 살아낼 수 있는 것은음 내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도 결코 그냥 낭비되거나 헛되지 아니하고 설령 그것이 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서 발생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조차도 하나님은 헛되히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그 믿음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고백 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믿음뿐인데 그런데 그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실까 그거는 저희는 잘 알 수가 없지만 그 견뎌야 되는 삶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다 평탄하고 모든 것이 다 형통해서 꽤 괜찮고 고난이 없는 삶을 산 것만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그겁고 힘들게 견뎌낸 그것도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는 삶이다 하는 그이 믿음이 우리에게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이루시는 선이라는 것은음 이거는 이제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편안하게 누릴 수 있음이 선이 아닌 거죠. 음.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은 어쩌면 하나님의 원하심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아름답게 드러나게 되는 것. 그것이 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셉의 생애를 보면 저는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셉의 생애 가운데 요셉은 진짜 고난 중에 살았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 요셉의 생애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에 그를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라는 그 말이 처음 나온 건 그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두 번째 나오는 하나님이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라는 말은 언제 나올까?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때 나오면 이해가 되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이 그 고난 가운데 드디어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구나.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라는 말이 한 번 더 나오는 것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입니다. 정말 억울하죠. 말도 안 되는 그런 누명을 쓰고 갔으니까. 그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간수장이 보았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요셉의 생에서 형통하게 하셨다는 그 말이 갖는 의미는 비록 그가 굉장히 고난 가운데 절망 가운데 있었지만 그 시간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 있는 시간이었더라. 그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을 이루고 계셨던 그 시간이라 그렇다면 그 고난의 시간도 의미가 있다. 자신의 그 잘못된 선택 혹은 욕심에 의해서 아니면 뭐 본인의 어떤 교만함 때문에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서 내 인생이 많이 힘들어졌다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들도 물론 있겠다 싶긴 해요. 그런데 그 인간의 잘못된 선택이나 인간의 그 허물과 죄에 대해서조차도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선택이 설령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서도 결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내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거나 내가 자초한 그 불행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할 이유는 없겠다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왜냐하면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내리는 그 결정 가운데는음 다 죄가 있는 거 같아요. 욕심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결과적인 것을 놓고 내 인생이 잘못되었다, 잘되었다를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비록 내 선택이 어땠는지 그건 잘 모르지만 나는 죽을 힘을 나해서 살 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주님의 손에 맡길 거다. 주님의 손에 맡긴다는 건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는 의지하겠다는 그런 의미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설령 내가 잘못 선택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내가 그때 그 선택을 잘못함으로 너무 좋은 걸 놓쳤다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우선은 한번 해 볼 만한 질문이고 설령 내 실수로 그것을 놓쳤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지금 현재 최선을 내서 살아가는 그 삶을 결코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향하여서 가지고 계신 그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그 삶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게 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면 그건 단순히 누림은 아니거든요. 얼마나 많은 걸 내가 누리고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의미나 아니면 가치를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에서 태어날 때부터 흑저로 태어 흑수자로 태어나서 그야말로 고난과 고생의 연속인 삶을 살았던 그 사람들의 삶도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뿐일 텐데 그 우리는 이제 자꾸만 어 그런데 왜일까를 생각해 보면 왜 나에게 이런 걸 주셨 하나님은 왜 나에게 장애를 주셨을까? 욥이 힘들어 했던 것도 그거니까 하나님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욥의 친구들은 너 잘못한게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벌받는 거야라고 말했고 욥은 그게 너무 억울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왜냐고 계속 묻고 있는데 그런데 제가 이해하기에는 뭐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그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 외를 묻고 있는 그 질문의 의도는 내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과이 고난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는 그러한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욥처럼 내가 당하는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 하나님 거기 계십니까? 그 질문이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지 만일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면 그러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내가 괜찮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의미가 있다면 내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러한 힘들고 버거운 인생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저도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따라서 그 욥이 그렇게 간절하게 갈망했던 너무 억울하다고 외치고 부르짖으면서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죠. 하나님 거기 계십니까? 그 질문이고 저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많은이 땅에 고난 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서 힘들어하고 버거워하면서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를 후회하고 있는 그 현장조차도 결국은 하나님 여기 계십니까? 하는 그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목마음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다 대답은 내가 거기 있다 말씀하시고 그래서 욥이 나중에 크게 위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셔서 내가 말로만 듣더니 이제 직접 되니까 됐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