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극우 개신교 탄생 역사 총정리ㅣ배덕만 교수ㅣ잘잘법 255회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PGBHVWoWTqQ | 길이: 29:04
요약
🎯 TL;DR — 배덕만 교수는 한국 극우 개신교(태극기 부대 등 구국주의) 현상의 뿌리를 미국발 근본주의 신학과 한국 근현대사(해방·분단·전쟁)의 특수성이 결합된 결과로 설명하며, 이를 극복하려면 교회가 국가 권력이 아닌 낮은 자리에서 사랑·섬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 핵심 논지 — 한국 구국주의(극우 정치 운동)를 이끄는 중심 세력이 한국 개신교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그 원인을 ①신학적 근본주의(성서무오설·세대주의적 전천년설·반공주의)와 ②한국 근현대사(서북 지역 기독교 세력의 월남·반공 정체성·정권 유착)라는 두 뿌리로 규명한다. 이어 2000년대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과의 충돌을 계기로 이 잠재된 정체성이 광장 정치로 폭발했다고 본다.
🗺️ 영상 구성
- 도입: 구국주의를 이끄는 중심이 한국 개신교인이라는 진단
- 극우 개념 정의: 좌우 스펙트럼 속 극우의 특징(기득권 상실감·분노·사회적 약자 표적화)
- 뿌리① 신학적 근본주의: 성서무오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반공 종말론
- 뿌리② 한국 근현대사: 서북 기독교, 월남, 반공, 정권 유착, 제주4·3·여순사건
- 미국 문화전쟁(1970년대)과 한국으로의 실시간 영향
- 2000년대 전환점: 김대중 햇볕정책, 노무현 사학법·국가보안법 논쟁 → 광장 정치화
- 마무리 제언: 교회의 변화 방향
━━━ 본문 ━━━ 구국주의의 두 뿌리 배덕만 교수는 한국 구국주의(극우 기독교 세력)를 만든 두 가지 뿌리를 제시한다. 하나는 신학적 의미의 근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독특한 근현대사다. 그는 "근본주의 신학이 (한국의 근현대사와) 만나면서 구국적 기독교를 만개하게 했다"고 말한다.
신학적 뿌리: 성서무오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근본주의는 성경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생물학적 연구가 성경의 권위를 흔들자 그 반작용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구원의 책이라는 성서무오설이 그것이다. 동시에 요한계시록 20장의 재림·휴거·7년 대환란·지상재림을 미래에 일어날 일로 보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미국에서 들어왔다. 이 종말론을 가진 이들은 말세의 붉은 용·적그리스도·거짓 예언자를 찾다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과 마르크스·레닌·스탈린의 공산주의를 지목했다. 그 결과 냉전은 "단순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 천사와 악마의 싸움, 종말의 아마겟돈"으로 설교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신앙과 이데올로기의 역전: 1962년 사과 화자는 한국 근본주의·구국주의가 탄생한 결정적 지점을 "그 사과 62"(1962년 관련 사건)로 지목하며, 이때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인들이 선택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충돌했을 때 근본주의자·구국주의자들이 정치 이데올로기에 더 방점을 두었다고 진단한다. 이후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언제든지 우리의 신앙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 서북 기독교와 월남 해방 이전 한국 개신교는 전체 인구의 5% 미만이었고, 그중 70%가 서북 지역(평안도·황해도)에 있었다. 숫자는 적었지만 평양신학교·숭실대학교·대성학교·오산학교를 통해 지식인·지주·초기 자본가 계층에 기독교인이 포진해 영향력이 컸다. 공산주의자들이 밀고 들어오며 재산·교회·기도권을 박탈당한 이들이 남하하면서 "뿌리 깊게 공산주의에 대한 상처, 원한, 분노"를 가진 "가장 강력한 반공주의자들"이 됐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남한 기독교를 재구성했고, 한경직 목사·유억겸 등이 정부·미국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과 반공을 매개로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제주4·3·여수순천 사건과 서북청년단 남하한 기독교인들은 "공산당을 피해 남으로 내려왔는데 여기 마저 빨갱이들이 활개친다"는 공포를 느꼈고, 남로당 세력의 반란(제주4·3 등)을 진압하는 서북청년단 파송 과정에서 "누구보다 더 광기 어린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화자는 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남한 기독교는 "더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됐다.
정권과의 유착과 특혜 정통성이 약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은 민주화 운동에 맞서면서 기독교의 강력한 지지를 필요로 했고, 그 대가로 성탄절 국가 공휴일 지정, 군종제도(전군신자화운동), 조찬기도회, 여의도 연합집회 등 특혜를 받으며 개신교가 "양적·경제적·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설명한다. 이 시기는 우익 정권 시대였기에 "정치판에 나가서 광장에서 소리를 질러야 될 이유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미국 문화전쟁의 실시간 영향 1970년대 미국에서는 이민법 개정으로 종교 다원화가 일어나고 민권운동·해방신학이 등장하면서 대법원이 공립학교 인종통합·낙태 허용·학교 기도 금지·공공장소 십계명 게시 금지 등 판례를 내놓았다. 이에 미국 근본주의자들이 가톨릭·유대인과 연대해 로비단체·싱크탱크·시민단체를 만들고 대선·낙선운동에 직접 뛰어들었으며, 이 흐름이 "한국에 그대로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게" 됐다고 말한다.
2000년대 전환점 김대중 정권의 대북 햇볕정책(정상회담)은 반공 정체성을 가진 주류 개신교인들에게 "극단적인 위협감"을 줬다. 노무현 정권의 사학법 개정 시도(개신교 사학 비리 관련)와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은 "친북 세력"이라는 위협 인식을 심화시켰다. 이 시기 한기총이 광장 대규모 기도회를 빌미로 정치 집회를 열기 시작했고, 뉴라이트 기독교 시민단체가 등장하면서 정교분리로 광장을 피했던 세력이 태극기·성조기·이스라엘기를 든 반정부 집회를 기도회·예배 형식으로 열기 시작했다. 최근 계엄 사태를 거치며 이 흐름이 더 폭력적·과격한 형태로 나타났다고 밝힌다.
화자의 제언: 교회의 변화 방향 화자는 구국주의자를 "괴물이나 청소해야 될 불결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될 이웃이고 가족"으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변화를 위해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첫째 "교회사에서 교회가 가장 빛나는 위치를 했을 때는 지배자의 자리가 아니라 박해를 받는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였다는 것, 둘째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준 방법은 "사랑과 섬김과 희생"이었지 "국가 권력을 통해서 나의 생각을 타자에게 물리적으로 강요"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의 지원을 "사울의 갑옷이고 골리앗의 갑옷"에, 진정한 선교 방법을 "다윗의 무기"에 비유하며, 한국이 기독교 국교 국가가 아니라 다종교 사회임을 인정하고 다른 목소리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 핵심 수치
- 해방 이전 한국 개신교 인구 비율 = 전체 인구의 5% 미만
- 그중 서북 지역(평안도·황해도) 거주 비율 = 약 70%
- 6·25 전쟁 전후 월남 기독교인 = 20만 명 이상
💬 결정적 발언
"구구를 끌고 나가는 주체 세력, 중심 세력이 한국 개신교인이라고 하는 사실인 거죠." "지금이 친공과 방공의 이 냉전은 단순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 천사와 악마의 싸움, 종말의 아마겟돈로 이제 설명하는 설교들이 쏟아지기 시작을 하게 됩니다." "국가 권력이 교회를 서포트하자 그거에 취해서 마치 그것이 우리가 입어야 될 갑옷처럼 생각했는데 그것은 사울의 갑옷이고 골리앗의 갑옷이었지 다윗의 무기는 아니었다."
⚖️ 화자가 다룬 반론·한계
- 구국주의자를 "단순한 개인의 분노 표출"로만 보는 시각에 대해, 화자는 그들에게는 이것이 "종말의 말세의 악과의 싸움"이라는 신앙적 확신이었다고 설명하며 단순 폄하와 구분한다.
- 근본주의자들이 신앙 근본을 지키는 것을 "당신들의 사명"이라 생각해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현실 인식과 다수의 현실 인식 사이 "갭"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본다.
🧩 핵심 용어
- 근본주의(Fundamentalism) =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문자적 진리성을 강조하는 신학·신앙 형태
- 성서무오설 = 성경이 신앙뿐 아니라 정치·역사·과학까지 완벽한 책이라는 믿음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 그리스도 재림 후 천년왕국이 도래한다고 보되, 재림 이전 휴거·7년 대환란 등의 종말 시나리오를 강조하는 종말론
- 구국주의(구국 세력) = 영상에서 지칭하는 한국 극우 개신교 정치 운동 세력
- 한기총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광장 정치 집회의 주체로 언급됨
- 뉴라이트 = 2000년대 노무현 정권에 대응해 등장한 보수 기독교 시민단체 계열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영상에서 언급된 "그 사과 62"는 발화가 다소 불분명해 정확히 어떤 사건(1962년경 재건교단 관련 논쟁 혹은 다른 사건)을 지칭하는지 자막만으로는 특정하기 어렵다. 원 영상 시청이나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확인필요).
- 배경·맥락 보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성서무오설은 20세기 초 미국 근본주의 운동(1910년대 The Fundamentals 팜플렛, 1920년대 스코프스 재판 등)에서 형성된 신학 조류로, 영상은 이 역사적 형성 과정 자체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 사실 유의점: "월남 기독교인 20만 명 이상"이라는 수치는 화자의 발언 그대로 옮긴 것으로, 학계에서도 해방 전후 월남민 규모 추정치는 자료마다 편차가 있어 정확한 통계로 단정하기보다는 화자의 주장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추정치, 확인필요).
- 사실 유의점: 제주4·3·여수순천 사건에서 "기독교인들이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서북청년단 관련 서술은 화자의 해석이며, 서북청년단의 구성과 활동에 대한 역사학계의 평가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논쟁적 주제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한국의 구구 세력을 조금 더 줌인해서 들여다 보니까 그 구를 끌고 나가는 주체 세력, 중심 세력이 한국 개신교인들이라고 하는 사실인 거죠. 저는 이제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구주의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뿌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하나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근본주의라고 하는 신학 혹은 신앙 형태라고 할 수 있고 두 번째로는 한국의 독특한 근현 대사라고 하는 배경 속에이 근본주의 신학이 만나면서 구구적 기독교를 바라 혹은 만개하게 했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근본주의적 종말론을 가진 사람들이 말세의 붉은용이 누구냐? 적그리스도가 누구냐? 거짓 예원자가 누구냐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스탈린이나 마르크스나 레닌을 지목했어요. 그래서 지금이 친공과 방공의이 냉전은 단순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 천사와 악마의 싸움, 종말의 아마게돈로 이제 설명하는 설교들이 쏟아내기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분들은 단순한 개인의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이거는 종말의 말세의 악과의 싸움, 붉은 용과의 싸움이고 일종의 성전이란 생각들을 하게끔 만들었던 거죠. 그래서 정치에 뛰어들게 되죠. 남한에서 기독교는 더 철저한 방공주의자가 됐고 남한의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죠. 반공이라고 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게 박정희 유신 과정 그다음에 전두안의 오공하고 과정까지 꾸준히 연결해 오게 됩니다. 근데 이제 문제가 된게 이러다가 이제 2000년대 들어옵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몇 가지 연속적인 사건이 크게 벌어지는데네 [음악] 극 극단적인 오른쪽이란 표현이 있잖아요. 그니까 모든 사회에는 정치적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있죠. 우익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에 대한 보수적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니까 큰 변화보다는 안정 그리고 개인의 자유, 개인의 특권 이런 것들에게 중요하고 그 왼쪽에 있는 분들은 어쩌면은 자유보다는 조금 더 평등 쪽에 강조점이 있고 그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을 좀 원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까 보다 기존 체제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조금 더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목소리를내는 분들이 계시죠. 근데 한국 사회에는 대체적으로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지배적으로 많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그런데 이제 극좌화 극라고 하는 것은 그런 지형도 안에서 가장 끝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결과적으로는 자유를 주장하는데 그 자유를 지키려고 하는 욕구가 강하다 보니까 그것이 이제 극단으로 가게 되면 자신의 자유를 훼손한다 혹은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나 사람들 혹은 집단들에 대해서 대단히 그 심각한 분노 그다음에 그것이 통 나가면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 우러까지 표현이 되는 거죠. 그러면서 대체적으로는 그 극울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도 기본적으로는 어 민족주의적 성향이 대체로 강하고요. 그래서 자신의 민족 그 민족 중에서도 중심에 있는 사람들 기존에 사회의 중심으로 이것은 주류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보니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세력들을 지정을 하게 되고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위협을 받고 그다음에 평안이 깨지고 혼란스러워졌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특징이 구력들은 어 이제 다양한 형태의 사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세력들을 지목을 하는데 그게 전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사회적 약자라고 한 사람들입니다. 이민자들 그다음에 성적인 소수자들 이념적으로 이제 그 우리를 따지면 이제 그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사회의 악으로 규정을 하고 그런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어 폭력 혹은 대규모 협박 위협이 이런 것들이 표현되는 거죠. 그니까 대체적으로 보수 사람들은 기존 체제가 잘 유지되기를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하고 그 체제 안에서 기득권을 가졌던 사람들도 그 지위를 유지하기를 원하는데 다양한 형 원인에 의해서 이런 체제가 흔들리는 지점이 오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무게 중심이나 권력 구조가 이제 바뀌게 될 때 그 한때 정점에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치가 이제 위협받게 되니까 그 원인을 타자에게서 찾게 되고 그 타자들에 대해서 아주 무자비한 분노나 심지어는 차별이나 폭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거죠. 결국 이제 그가 그 사회 안에서 위험이 되는 것은 세상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목소리의 사람들,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해야 되고 특히 오늘날에 와서는 어이 포스트 모던 사회가 굉장히 그동안에 억눌렸던 사람들도 그들에게 목소리를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든가 사회에서 평등한 자위로 신분이 보장된다든가 이러면서 이제 다원 사회가 되는데이 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했던 사회의 가치를 절대 대화하고 그것을 흔들리게 하거나 변화시키는 거에 대해서 일체의 거부감을 갖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방식이 분노와 차별과 폭력으로 드러나다 보니까이 사회의 조화로운 그 상생의 구조가 무너지게 되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미래에 대해서도 그 위태로운 생각들을 갖게 되는 이런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에 [음악] 구주의자들에 대한 혹은 구구 세력의 그 등장에 대해서 사회가 우려한다고 생각합니다. 입니다. [음악] 사회가 그 고민하는게 한국의 그구 세력의 준동이 사회 전체에 언론계 학계의 종교계 아주 초미의 관심사가 됐는데 단지 구구 세력의 준동이 아니라 그 구구 세력을 조금 더 줌인해서 들여다 보니까 그 구구를 끌고 나가는 주체 세력, 중심 세력이 한국 개신교인들이라고 하는 사실인 거죠. 그러면 이제이 왜 기독교인들, 특히 개신교인들 중에이 구력이 중심에 세게 됐는가라고 하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구주의자가 된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사회의 중심이었던 사람들입니다. 기득권 세력들. 그래서 오랫동안 자신의 특권인지도 모르고 누려왔던 그런 특해를 받았던 주위와 그 삶의 양식들이 있는데 이게 아까 좀 변화된 사회 속에서 부정당하거나 흔들리거나 위협을 받게 되면서 그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제 국구주의자들이 이제 출연하게 됐는데 그 얘기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주류 중심 정상에 한국 개신 교회가 존재했었다라는 거죠. 근데 저희가 이제 2000년대 들어오면서 다양한 교회 안팎의 상황들이 한국 개신교를 점점점 위축시키고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어 우리의 미래가 매우 불투명해진 상태가 됐을 때 그 중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맨 앞에 나서서 광화문을 점고하고에 그런 구력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됐다라는 거죠. 저는 이제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구구주의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그 뿔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하나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전수된 근본주의라고 하는 신학 혹은 신앙 형태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두 번째로는 한국의 독특한 근현 대사라고 하는 배경 속에이 근본주의 신학이 만나면서 구적 기독교를 이제 바라 혹은에 이제 만개하게 했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먼저 이제 그구의 그 신학적 뿌리가 되는 근본주의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연구나 혹은 생물학적인 연구들이 성경의 권위를 이제 흔들어 놓다 놓게 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그 구원의 책이다. 이건 단지 우리의 신앙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종교, 그다음에 지의, 역사, 뭐 문화에 이기까지 완벽한 책이다라고 믿는 소위 말한 성서 무어설이라고 하는 것이 이제 그런 과학과 신학의 발전에 대한 반자용으로 출연하게 되고 또 한쪽에서는 세대주의적 전천연설이라고 하는 종말론이 어 미국 사회에서 미국에 들어왔는데 그 종 저저 세 전설이라고 하는 것은 요한계시록 20장에 예언된 말세의 어떤 드라마 마들 있잖아요. 주님이 재림하시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휴거가 되고 밑에는 7년 대활란이 벌어지고 뭐 그다음에 나중에는 공 지상재림을 이런 1년의 이야기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앞으로 이루어질 거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어 그런 다가올 그 종말을 기대해야 된다. 그러면서 근본주의적 종말론을 가진 사람들이 말세의 징조로 어 붉은용 혹은 적그리스도의 출연 이런 것들을 이제 그 계시록에 나와 있는 것들을 지목하기 시작합니다. 얘기 이게 어디에 해당되는가? 말세 징조가 뭔가? 그럴 때 1917년에 러시아가 소련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볼쉐기 혁명이 벌어졌잖아요. 그리고 막스는 그말로 유물론적 공산주의를 기본으로 해서 모든 비 종교는 민중의 앞편이라고 말했고 모든 비판은 어 신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다라고 말하면서 가장 강력한 반기독교적 이데올로기를 유포를 시켰죠. 그러면서 미국이나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묵시록지 종말론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말세의 붉은용이 누구냐? 적그리스도가 누구냐? 거짓 예언자가 누구냐?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스탈린이나 마르크스나 레닌을 지목했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공산주의를 붉은 세력, 붉은 용으로 기억을 했고 그래서 지금이 친공과 방공의이 냉전은 단순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아니라이 선과 악의 싸움, 천사와 악마의 싸움, 종말의 아마게돈으로 이제 설명하는 설교들이 신학자들이 이제 쏟아내기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런 거에 이제 영향을 충분히 받았고 그래서 그분들은 단순한 개인의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이거는 종말의 말세의 악과의 싸움 그다음에 붉은 용과의 싸움이고 일종의 성전이란 생각들을 하게끔 만들었던 거죠. 결과적으로 이게 신학으로 합류화 했지만 그건 결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싸움이었잖아요. 결국 그러면서 기독교가 사랑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용서와 섬김을 나눔을 얘기하는 종교인데 그런 성경적 가치와 그다음에 지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싸움에서 우리는 그 반공주의야. 우리는 자유민주주의하야라고 하는이 이데올로기를 붙잡을 때이 두 가지의 싸움에서 기독교의 본래적 신앙의 가치와 비전보다 현실적 정치 이데올로기가 더 중요하고 절박한 것으로 받아들어오게 되죠. 결국이 싸움에서 저는 한국의 근본주 그구주의가 탄생된 가장 결정적인게 그 사과 62라고 본다면 그때 결국 기독교 신앙과 그다음에 기독교인들이 선택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충돌했을 때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자들과 구주의자들은 정치 이데올로기를에 더 방점을 두었던 거죠. 그래서이 두 가지가 충돌될 때 언제든지 방공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신앙을 넘어설 수 있게끔 된 거죠. 그다음에 우리가 해방대군에서 냉전 체제가 들었을 때 한국 교회가 가장 큰 반공 세력이 됐을 때에도 미국에서 근본주의자들이 가장 강력한 반공 세력이 됐던 것이 또 한국에서 반공 운동을 하는 근본주의자들한테 매우 큰 지지를 이제 또 응원의 메시지가 됐던 거죠. 그다 1970년대 오게 되면 미국에서 문화 전쟁이라는게 벌어집니다. 시민권 운동 이후 그다음에 미국에서 이민법이 개정이 되면서 타문화권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기독교 말고 뭐 불교 그다음에 어 무슬림 그리고 이제 힌두교 이런 종교들이 미국에 들어오게 되고 또 새로운 신종교들이 막 번성하게 됐을뿐만 아니라 이렇게 되면서 미국이 종교 다원 사회가 되고 그러면서 이제 또 미국이 60년대 이후로 민권 운동이 벌어지면서 다양한 억압적인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게 되니까 다양한 형태의 해방 신학이 이 터져나오. 여성들의 목소리, 흑인들의 목소리, 그다음에 사회적 이민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게 되죠. 그러면서 미국의 대법원에서 그동안 기독교 미국을 기독교 사회라고 전지하고 해왔던 공적인 관행들에 대해서 브레이크를 거는 대부분 판례들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공립학교에서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 공부하도록 해라라든가 낙태를 허용해야 된다라든가 그다음에 공립학교에서 기도하거나 성경 공부하고 이러는 것들을 금지시킨다든가 공공장소회에서 십계명 같은 기독교 개시물을 금지시킨다든가 이런 문제가 터져 나오게 되고 나중에 동성애 문제가 터져나오게 되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기도나 아 복음 전도로 해결될 수 없고 미국의 정치와 법을 바꿔야 된다라고 하면서 어 이런 이슈들을 중심으로 그 보수 기독교인들이 응집을 하게 됩니다. 그때 이제 중심이 된 사람들이 근본주의자들이었는데이 사람들은 기독교의 범위를 넘어서서 미국의 범 근본주의자들 카톨릭 안에 있는 사람들 유대인들 안에 있는 사람들과 연다해서 다양한 로비 단체를 만든다거나 싱크 탱크를 만든다든가 아니면 시민 단체를 만들어서 미국 정치에 직접 뛰어들게 되죠. 그래서 어 대법관을 세우기 위해서 결국 대통령을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어서 자신들의 입장을 주지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몰를 주게 되고 그 반대 있는 사람들의 낙선 운동에 뛰어들게 되면서 정치에 뛰어들게 되죠. 이런 것들이 근본주의가 이제 변화되온 모습인데 이게 한국에 그대로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두 번째가 한국의 근대사의 문제죠. 우리가 아는 것처럼 행해 해방 이전에 한국 개신교는 전체 인구에 5% 미만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그리고 그 5% 미만밖에 안 되는 사람들 중에 70% 정도가 서북 지역과 서관도 북관도 지역에 있었습니다. 남만에는 기독교는 매우 미약한 종교였는데 반면에 북한에서는 숫자는 적지만 평양을 중심으로 한 우리가 아는 것처럼 평양신학교, 숭실대학교, 대성학교, 오선학교 같은 그런 학교들을 통해서 민족 지도자들이 배출이 되게 되죠. 그래서 숫자는 적지만 이북에서 기독교 세력의 영향력은 상당히 컸습니다. 지식인들과 지주 계층들 그다음에 초기 자본가들 안에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포진됐기 때문에 그렇죠. 그러면서이 사람들이 북한에서 뭐 선교 이후로 70년 이상 교회 중심으로 그다음에 되게 번성하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는데 공산주의자들이 갑자기 밀고 들어와서 자신들 땅을 빼앗고 교회를 빼앗고 자신의 기도권을 다 강타한 상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나만으로 내려오게 됐고 나만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하는 것처럼 청개천이나 동대문에서 봉직공장을 하고 밑에서부터 다시 삶을 개척해야 됐던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거죠. 북한에서 내려오면서 공산주의자들과의 갈등 속에서 다 잃어버리고 남의 땅에 내려와서 이주민으로 어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되면서 뿌리깊게 공산주의에 대한 상처, 원한에 분노 이런 것들을 갖게 되면서 가장 강력한 반공사 반공주의자들이 됐다라고 하는 거죠. 그런 과정에서이 사람들은 내려오면서부터 결국은 그 이후에 남한이 아직 계신교 세력에 미미했는데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대거 원람하면서 결국 남한 기독교가 재구성되고 그 해저머니를 우리가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한 북에서 내려와서 다시 재건된 교회들이 장악을 하게 되죠. 그리고 우리가 유교 전쟁이 터지잖아요. 유교 전쟁이 터졌을 때 그 이후에 전쟁 그다음에 재건 과정이 과정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나라 남한 정부와 미국을 연결해 주는 그 역할을 한국 그 원남한에 우리의 개신교인들 한경진 목사나 유영기 감독 같은 사람들이 그런 역할들 하게 되면서 그 이후에 나만의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죠. 방공이라고 하는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다음에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 45년부터 53년 사이에이 해방 전국에서 어 나만이 특별히 공산주의자들과 그다음에 반공주의자들이게 충돌하는 과정에 북한에서 내려온 한 북한 출신 기독교인들 그다음 그거를 그것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남만의 개신교인들은 반공주의에 섰고 그러면서 그들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제주 43이나 그다음에 그 여수 순천의 사건들이 터졌을 때 그 안에 기독교인들이 들이 중심적 역할을 했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음악] 대고 원람을 하면서 2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의 남안으로 내려오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까 그렇게 되니까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공산당이 들어오기 전까지 기독교가 제일 먼저 들어와서 어 가장 많이 배우고 사회의 상승분에 들어갔던 많은 사람들이 소련과 김일성에 의해서 자신의 고향, 자신의 재산 그다음에 교회, 종교 이런 것들을 다 박탈당하고 강제로 남으로 내려올 수밖에 살기 위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남의 땅에서 다시 처음부터 삶을 다시 읽어야 되는 그런 삶을 살게 된 거죠. 그런데 제주도에서 그들의 논리로 따지면 남노당 세력이에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음악]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을 피해서 남안으로 내려왔고 여긴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는데 그 남안에서 마저 빨갱이들이 활기를 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기 그것이 남한 사람들이 느끼던 공포감하고 북한의 공산당을 피해서 남만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감은 차원이 다른 거였죠. 그래서 그 그 그 남노당 세력 그다음에 남당의 이런 그 반란 세력들을 척결하는데 서북 청년단들이 그 파송됐을 때 그 사람들은 누구보다 더 관광린에 그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는 거죠. 그러면서 남안에서 기독교는 더 철저한 방공주의자가 됐고 방공 정권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게 되죠. 그게 박정희 유신 과정 그다음에 전두안의 그 오공화고 과정까지 꾸준히 연결해 오게 됩니다.이 과정에서 어 정권은 대부분 아까처럼 이승만이든 박정이든 전도안이든 사실은 여러 차례의 비민주적 방식으로 혹은 부정 선거로 정권을 혹은 구퇴 따로 정권을 장악을 해서 정권의 정통성이 되게 약했어요. 그럴 때 이제 남한에서 계속 그 민주화 운동들이 그들에 대한 그 문제 제기를 하면서 대모를 했을 때 남한의 기독교가 그 정권에 가장 강력한 후원자 역할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에 무조건 그 지지를 한다든가 그다음에 유신을 했을 때 그걸 하나님의 역사로 지지하면서 간다든가 그다음에 전도안이 구태타를 일으켰을 때 조창 기도회를 통해서 전도한 정권을 축복한다든가 이러면서 적대 세력의 반대 강하게 부닥쳤던 이런 그 우익 정권들을 끝까지 지지해 준 역할들을 하면서 어 정권과 가까이 지냈고 그것에 대한 반대급으로 10공학부터 50공하구까지 한국 개신교회 온갖 특해 부유하게 되죠. 전체 인구의 5%도 안 되던 나라의 성탄절을 국가 공유일로 한다든가 민족화 운동 같은 것들을 지원하고 전군 신자와 운동 같은 것들 하면서 정교 분리가 법으로 헌법으로 되어 있는데 군대에서 포교 활동할 수 있도록에 허용을 해 준다든가 그다음에 또 조찬 기도회 같은 것들을 통해 가지고 어 정 그 군부가 연결되게도 해 주면서 국가와 긴밀하게 관계를 매릴 수 있도록 어 기회를 준다든가 그다음에 그 유신 시절에 몇 사람도 모이지 못하던 그 시절에 여의도회에서 수백만 명이 모여서 어 연합 집회를 열면서 기독교의 새도 과시하고 또 포교 활동에 그 국가적 차원에 서포트를 한다든가 그런 과정 속에서 개신교가 굉장히 그 양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을 하게 되죠. 이러면서 한국 개신교는 우익 정권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어 우익적 성향을 배태하게 된 거죠. 그러나 그 시대는 다 우익의 세상이었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가 정시판에 나가서 광장에서 소리를 질러야 될 이유가 없었어요. 그러지 않아도 정부와 가까웠고 정부로부터 혜택을 누렸고 그다음에 교세는 성장했으니까요. 근데 이제 문제가 된게 이러다가 이제 2000년대에 들어옵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몇 가지 연속적인 사건이 크게 벌어지는데 1907년일까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데 김대중 정권 오랫동안 한국 개신교가 그 종북 세력이다. 그다음에 용공 세력이다라고 비판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대통령에 대해서 한 제일 중요한 일이 뭐냐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었어요. 그래서 평행에가 가지고 어 정상 회담을 하게 되고 햇볕 정책을 하게 되죠. 북한에서 내려온 남만의 그 주류 개신교인들은 북한에 대한 알레르기적 공포가 있는데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과 관계가 멀어지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극단적인 위협감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가 김대중 이후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는데 노무현은 뭘 했냐면 그 법을 개선하는 일들을 하면서 첫 번째가 사업법을 개정을 하려고 그랬어요. 두 번째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했어요. 아, 특히 이제 그이 사업법 개정이라는게 우리나라 사악의 절대 다수가 개신교 사학인데 그 개신교 사학에 수많은 비리들이 존재해서 온갖 투서와 탄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 노무현 정권이이 사악법을 개정하면서 우리나라 국내 사악을 손보려고 하는 것이 큰 위협으로 또 도전으로 왔고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을 폐제하려고 하는 것 또한 아 이게이 노무현 정권이 친북 세력이구나라는 위험을 주게 되면서 우리나라 보스 기독교인들이 이게이 응집하는 계기가 됩니다. 근데 그 시기에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한기총이 광장에서 대규모 기도회를 빌미로 한 정치 집회를 열기 시작했고 뉴라이트라고 하는 기독교 시민 단체들이 그 정부를 향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을 하게 되면서 광장에 나오지 않았던 특히 정교 분리를 내세우면서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한국 개신교의 안에 조금 더 위기 의식을 심하게 느끼신 분들이 광장으로 나타나기 시작을 했고 그때부터 태극기와 성적기와 이스라엘기 를든 반정부 집회가 기도회 혹은 예배라고 하는 틀 안에서 광화문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을 하게 되지요. 그러다가 이제 그게 최근에 이제 개엄 사태를 겪으면서 더 폭력적이고 과격한 형태로 나타나면서 아 그 우주 주의자들이 모습을 드러나게 된 거죠. 우리가 구주의자들을 단순한 [음악] 괴물이나 청소해야 될 불결한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될 이웃이고 가족이라고 바라보는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 이런 상태로는 계속 친구가 되기가 되게 어려운 거죠. 그러려면 우리도 그들을 단지 혐오하고 배척하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간에 적첩점을 찾아서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야 됨과 동시에 구구진영에 있는 기독교인들도 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은 평생 이것이 옳다고 생각해 왔고 여기에 인생을 다 걸어왔는데 그거 자체가 하루 아침에 부정당하거나 비판의 대상이 됐을 때 어 이거는 세상이 그 정상적으로 간다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적어도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면서 자기 생각도 바꿔 가면서 거기에 맞춰가면서 사는 것이 대부분인데 근본주의적 그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은 아까 말 신앙의 이게 근본이다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근본이 부정당하거나 흔들려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 좀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기 때문에 [음악] 이게 무너지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무너진다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거를 지키는 것이 당신들의 사명이라고 저는 [음악] 대부분의 거기에 계신 평범한 기독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은 그런 입장에서 그 운동을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이제 그게 다만 세상에 대본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들의 현실 인식과 다수의 현실 인식이 큰 갭을 일으키면서 갈등의 오인이 되고 있다라고 보여지는 거죠. 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기억해야 되는데 첫째는 [음악] 구가 지금에 출연하는 기존의 기득권을 가졌던 사람들이 기득권을 잃어버리면서 온 상실감과 불안감이 분노와 퇴행적 파괴적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저는 [음악] 기존에 느렸던 기독교인들 특해적 지위가 오히려 예외적이고 한편 더 불행한 환경이었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라는 거죠. 교회사에서 교회가 가장 빛나는 위치를 했을 때에는 지배자의 자리, 남들을 박해하는 자리가 아니라 박해를 받는 사회의 [음악] 가장 낮은 자리에 교회가 있었을 때 그들이 가장 빛나는 역할을 감당했었다라는 거죠. 우리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초대 교회라고 하는 그 시대는 국가로부터 교회가 박해를 받고 사회 주류에 의해서 용납받지 못하던 시절에 순교를 무릎 쓰고이 땅에서 하나님의 세상을 이루려고 했던 사람들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사회가 주던 국가가 주던 혜택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정부와 긴정관계를 잊으면서 사회의 마이너리티 종교가 됐을 때 저는 그 자리가 어 성경적 기독교를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될 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위에서 지금 내려오고 있는이 자리를 그렇게 거부할 필요가 없다라는게 저는 첫 번째 드리고 싶이고 오히려 금은 더 잘될 거다. 두 번째로는 교회는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줬던 방법은 어 사랑과 섬김과 희생이었지 국가 권력을 통해서 나의 생각을 타자에게 물리적으로 강요해서 세상을 하나님의 세상으로 바꾼 적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속도는 더디지만 어 끊임없이 나 자신을 쳐서 십자가를지고 예수 뒤를 따라가는 그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했던 기독교인들의 선교 방법이다. 국가 권력이 교회를 서포트하자 그거에 취해서 마치 그것이 우리가 입어야 될 갑옷처럼 생각했는데 그것은 사울의 갑옷이고 골리앗의 갑옷이었지 [음악] 다윗의 무기는 아니었다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국가 권력이나 법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정권이 바뀌고 체제가 바뀌면 다시 돌아갑니다. 우리는 그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낮은 곳에서 어 사랑으로 그다음에 섬김으로 그다음에 희생으로 어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해야 된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본래 기독교 본래의 도구로 우리가 무기를 바꿔 껴야 된다라는 생각을 드리는 것이고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국교가 아니라는 거죠. 한국 사회는 다교 사회고 수많은 다양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이웃으로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 위에 굴림하려고 하거나 내 방식대로이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공공의 선을 어떻게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한 지고의 가치를 어떻게 함께 찾아갈까라고 하는에 그런 태도와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 비록 정치적으로 나의 이념이 다르고 그다음에 심지어 종교가 다르고 계급과 계층이 달라도 그게 나의 나 그들이 틀렸거나 제거해야 될 적이 아니라 그 다름을 어떻게든간에 함께 조화를 이루어서 살아가야 될 이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아 한국 교회도 익혀야 된다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