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하셨다" 이 말 저만 불편한가요?ㅣ노진준 목사ㅣ잘잘법 256회

잘잘법 · 2026-09-01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aBaL5x-Bw | 길이: 11:10

요약

🎯 TL;DR — 노진준 목사는 사업 번창·자녀 성공 같은 좋은 결과에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관행이 은연중 특혜 자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 고백을 '특혜'가 아니라 '사명'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핵심 논지 — 신앙인들이 좋은 결과에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이 아니라 은연중 자랑이 되며, 이것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쓴 뿌리와 상처를 남긴다고 지적한다. 좋은 것이든 힘든 것이든 동일하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특혜가 아닌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화자의 결론이다.

🗺️ 영상 구성

  • 문제 제기 —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의 두 가지 문제 제시
  • 강의안/옷 예시로 관용구로서의 공허함 지적
  • 진짜 문제 — 차별화된 혜택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리는 편향성
  • 대안 제시 — 좋은 것과 힘든 것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고백
  • 재정의 — 특혜가 아니라 사명
  • 실제 사례 — 세 자녀 명문대 입학 간증과 그에 대한 화자의 조언
  • 달란트 비유 — 몇 개 가졌는지가 아니라 충성도가 기준
  • 교회의 책임 — 축복 담론에서 사명 담론으로의 전환 촉구

━━━ 본문 ━━━

"하나님이 하셨습니다"의 두 가지 문제 화자는 사업이 잘되고 자녀들이 잘 풀려 풍요로운 환경에 살 때 신앙인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에 문제를 제기한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런 의미로 이 표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단서를 먼저 붙인다. 그는 이 말에 두 층위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그 말이 별 의미 없는 관용구처럼 들릴 때가 있다는 것이고, 더 심각한 다른 하나는 그 말이 차별화된 혜택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관용구로서의 공허함 — 강의안 예시 첫 번째 문제를 화자는 강의 현장의 예시로 설명한다. "이 강의안을 누가 준비했을까요? 하나님이요." "이 옷은 누가 주셨을까요? 하나님이요." 라는 식의 상투적 답변에 대해, 그는 "아니요, 이 강의는 제가 준비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이 "교만하다"고 여기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런 관용구적 사용이 실질적 의미를 잃었다고 말한다.

진짜 문제: 차별화된 혜택의 자랑 화자는 더 심각한 문제로 넘어간다.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셨습니다"라는 말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 자기가 누리는 것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예로 들며, 그 말 속에 결과적으로 누리는 것에 대한 은연중 자랑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대안: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에 적용되는 고백 화자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좋은 결과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도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3년 만에 천 명의 교인이 되고 난 다음에 이거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실패감과 상실감을 경험하며 사역하는 사람도 "이것도 하나님이 하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자 자신도 "제가 지금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특혜가 아니라 사명 화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리는 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표현이거나 자기 행위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왜 하나님은 나에게 안 주실까"라는 섭섭함, 억울함, 쓴 뿌리를 낳는다고 본다. 그는 우리가 가진 것들이 사랑의 표현도, 행위에 대한 보상도 아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이라고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빠르게 성장했다면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나 봅니다"라는 사명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더 맞다고 말한다.

실제 사례: 세 자녀 명문대 입학 화자는 세 자녀를 모두 미국 최고의 대학에 입학시킨 어느 신자가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해 주셔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한 경험을 소개한다. 이 말을 듣고 화자는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엄청난 상처를 받겠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하며, 그 신자에게 직접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 좋은 데에 가게 하셨다고 말하지 마세요"라고 조언하고,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들들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나 봅니다"라는 사명의 언어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전한다.

달란트 비유와 성공의 재정의 화자는 세상이 "너 몇 개 가졌니"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한다고 지적하며, 달란트 비유를 언급한다. 다섯을 받은 사람이 대충 살아 세 개를 남기면 여덟 개가 되고, 둘을 받은 사람이 열심히 살아 두 개를 남기면 네 개가 되는데, 세상 기준으로는 여덟 개 가진 사람이 이기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 충성된 사람은 여덟 개가 아니라 네 개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몫이 사람마다 다른데 세상은 몫의 크기로만 성공을 판단하고,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자꾸 권장한다고 비판한다.

교회의 책임 화자는 이 모든 문제에 교회의 책임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교회가 성경적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형통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그것을 하나님 앞의 사명으로 여기도록 가르쳤어야 했는데, 오히려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누리게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심한 아픔과 상처를 겪었다고 말하며, 교회가 세상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마무리한다.

💬 결정적 발언

"그것들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사랑의 표현도 아니고 내가 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도 아니고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이다."

"이것을 특혜로 생각하는 동안에는 사실이 땅에서 어쩔 수 없이 꽤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쓴 뿌리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하나님의 기준에서 충성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사람은 여덟 개 가진 사람이 아니라 네 개 가진 사람이거든요."

⚖️ 화자가 다룬 반론·한계

  •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이라며 자신의 문제제기가 일반화가 아님을 스스로 단서로 명시한다.

🧩 핵심 용어

  • 관용구(원문 표기 "관영구"): 실질적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신앙 표현을 가리키는 화자의 용어
  • 쓴 뿌리: 특혜 담론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이 갖게 되는 섭섭함·억울함의 정서
  • 달란트 비유: 사람마다 다른 몫이 주어졌을 때 그 몫의 크기가 아니라 충성도로 평가받는다는 성경 비유
  • 사명 vs 특혜: 화자가 대비시키는 두 관점 — 누리는 것을 보상/특혜로 볼지, 하나님이 맡긴 사명으로 볼지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화자가 언급한 "달란트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다섯, 둘, 한 달란트를 맡기고 그 활용을 평가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변형해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막에 등장한 "여덟 개", "네 개" 같은 구체적 숫자 예시는 원 비유의 문자적 내용이 아니라 화자가 논지 전달을 위해 임의로 구성한 예시로 판단되며, 성경 본문의 정확한 재현은 아니다(확인 필요).
  • 사실 유의점: 강연자 소속(잘잘법)과 노진준 목사라는 인물 정보는 영상 메타데이터에 근거한 것으로, 자막 본문 내에서 직접 확인되지는 않는다.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제가 한번 문제를 삼아보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말입니다. 사업이 잘되고 나면 자녀들이 다 잘 풀려서 풍요로운 환경에서 사는 것을 보면 우리 신앙인들은 늘 하는 말이 이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말하고 있는 그 말 가운데 왠지 그 말이 차별화된 혜택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때라는 말이죠. 우리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 그것들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사랑의 표현도 아니고 내가 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도 아니고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종종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 중에 굉장히 겸손한 말인 것 같기는 한데 석연치 않은 말들이 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의미로 그 단어를 그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제가 한번 조금 문제를 삼아보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그 말입니다. 사업이 잘되고 나면 어 자녀들이 다 잘 풀려서 그래서 아주 넉넉한 삶을 살고 풍요로운 그러한 환경에서 사는 것을 보면 우리 신앙인들은 늘 하는 말이 나는 한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백을 하죠.이 이 강의안을 누가 준비했을까요? 하나님이요.이 옷은 누가 주셨을까요? 하나님이요. 아니요.이 강의는 제가 준비한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교만해. 교만해. 자기가 뭘 할 수 있다고라는 생각을 하죠. 저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그 고백 가운데 때로는 이게 별로 의미가 없는 그러한 관영구처럼 들릴 때가 있다는 거죠. 근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셨습니다라고 그 말하고 있는 그 말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말이 아니라 왠지 그 말이 차별해된 차별화된 혜택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때라는 말이죠. 이렇게 교회가 크게 성장한 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말 속에는 그 결과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은연 중에 자랑이죠. 그리고 난 아무것도 한게 없지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 자랑이 들어가 있고 은연 중에 자부심이 들어가 있는 모습들을 보는 거죠. 정말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저는 3년 만에 천명의 교인이 되고 난 다음에 이거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라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제가 생각할 때는 버겁게 실패감을 경험하고 때로는 상실감을 경험하면서 사역하고 있는 그분들도 이것도 하나님이 하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사업이 잘되고 번창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저는 제가 지금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말할 수 있어야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을 인정하는 그러한 삶일테니까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 그들이 가지고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특별한 사랑의 표현이거나 아니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한 행위에 대한 보상 정도라고 생각을 하죠.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하나님 섬겼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라고 생각을 한다든지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해 주셔서 나를 이렇게 좋은 환경에 태어나게 하셨다라고 이야기를 한다든지 그렇게 자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저는 어쩌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악한 환경이 자꾸 쓴뿌리가 되는 거 같아요. 왜 하나님이 나에게 안 주실까? 왜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안 하실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그 고백을 누군가는 하는데 왜 나는 못할까? 왜 나는 하게 하지 않으실까? 이러한 섭섭함, 억울함, 그리고 아쉬움이 사람들에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그렇게 우리가 고백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 그것이 좋은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환경이고 나에게는 없어서 쓴뿌리가 되는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되는 그 생각은 우리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 그것들은 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사랑의 표현도 아니고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내가 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도 아니고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굉장히 빨리 성장해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새벽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성장시키셨습니다. 그렇게 말할게 아니라 오히려 그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성장시키면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나 봅니다. 그 사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맞겠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대학교에 세 명의 아이를 어 다 입학시킨 어느 분이 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는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특별히 사랑해 주셔서 우리 아들들이 미국의 최고의 대학을 갔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그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난 한게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 아들들이 이렇게 복 주셔서 이렇게 좋은 데에 가게 하셨다는 그 이야기 속에 은연 중에 저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엄청난 상처를 받겠구나라는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나중에 말씀을 드렸어요.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나 아니면 어 난 알 수도 없지만은 하나님께서 어 내가 열심히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그렇게 우리 아들들이 좋은데 아깝다고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했어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 아들들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나 봅니다. 사명으로 생각을 해야지 이것을 특해로 생각하는 동안에는 사실이 땅에서 어쩔 수 없이 꽤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러된 인식 때문에 마음에 쓴 뿌리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조금 버겁고 힘들기는 하지만 뭐 제 경우에 있어서도 저는 장애를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고 생각해요. 이것은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저는 이러한 모든 일들에 어 저는 교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다시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고 권할 수 있고 그리고 그래서 굉장히 힘들고 버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다 형통해서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 사명으로 여기도록 그렇게 가르쳐 줬어야 되는데 이거를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자꾸 누리게만 만들었다는 거죠. 그렇게 누리고 복받았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해서 그렇다. 이야기를 함으로 인하여서 오히려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어 더 심한 아픔을 겪게 됐고 크게 상처가 되었다면 이제 교회가 다시 우리는 어떻게 세상과 달라야 되는가 하는 것들을 고민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거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한 사람의 인생의 의미, 성공, 실패를 너 몇 개 가졌니? 그걸로 묻잖아요. 너 몇 개 가졌니? 너 뭐 할 줄 아니? 그것에 의해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게 다른데 그게 어떻게 그 질문이 합당하겠어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겐 다섯을 주셨고 어떤 사람에겐 둘을 주셨고 어떤 사람에겐 하나를 주셨다면 다섯 개를 받은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그냥 대충 살아서 한 세 개쯤 남기면 여덟 개가 되고 두 개 가진 사람이 열심히 살아서 두 개를 남기면네 개 여덟 개 반밖에 되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 충성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사람은 여덟 개 가진 사람이 아니라네 개 가진 사람이거든요. 그런데이 세상의 관점은 몇 개 가졌는가에 의해서 한 사람의 성공을 말하고 있으니까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자꾸만 권장하고 있는 세상이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다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한 개도 안 주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것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그 삶의 소중함이 소중함을 저는 교회가 좀 인커리지 해 줬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벌써부터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가 잘 몰랐던 거 같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