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를 기독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ㅣ잘잘법 공개 강연회 Q&A2ㅣ김학철 교수

잘잘법 · 2026-08-29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oahoJq2cC88 | 길이: 6:27

요약

🎯 TL;DR — 김학철 교수는 AI를 두려워하거나 신학 밖으로 밀어내지 말고, 설교 작성을 포함해 하나님의 파트너로서 적극 끌어안되 정교한 프롬프트와 신학적 더블체크를 통해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핵심 논지 — AI는 "허미니(형상) 인간의 형상"이며 인간의 거울이므로, AI를 잘 대하는 문제 이전에 AI를 학습시키는 인간 자신이 먼저 훌륭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 회고적·수세적 태도를 버리고 역사와 사회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 본문 ━━━

AI로 설교 작성, 해도 되는가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AI에 통째로 맡기는 극단적 경우("새벽 기도 가야 되는데 어제 새벽 2시까지 아팠으면 그럴 순 있다")를 언급하되, 원칙적으로는 AI를 터부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답한다.

AI는 인간의 형상,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임하고, image)이고, AI는 인간의 형상이라고 규정한다. 고대근동 신화(에누마 엘리시 등)에서는 신들이 인간을 노동력으로 창조하고 이후 인간의 반역을 두려워해 죽이려 한다는 서사가 있으며, 오늘날 인간이 AI를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위협을 느끼는 구도가 이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창조 신앙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파트너로 만들어 함께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보람을 느끼도록 불렀다며, AI도 그렇게 파트너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AI 위협론에 대한 반박 화자는 "AI가 인류를 위협한다"는 우려에 대해, > "인간만큼 인류를 위협한 존재는 없다"고 말하며, 인간 외에 인간을 위협해온 것은 전염병(바이러스·세균) 정도뿐이고 인간은 서로를 죽여왔다고 지적한다.

AI는 인간의 거울 AI는 인간의 거울이며,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폭력적으로 대하면 AI도 인간을 거리낌없이 폭력적으로 대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AI라는 거울을 닦을 게 아니라 거울 앞에 선 내 얼굴을 닦아야 한다"고 비유하며, 인간의 모든 게시판 글이 AI 학습 자료가 되므로 기독교 신앙이 인간을 스스로 훌륭하게 만드는 데 더 중요해진다고 강조한다.

설교 작성 수준을 넘어선 활용을 권함 "설교 작성해도 되나요" 수준의 질문에 머물지 말고 AI를 적극 활용하라고 말하되, > "그걸 그대로 읽어서 '아 이거 좋네' 이렇게 하면 그분은 신학 공부를 더 하셔야 된다"며 반드시 더블체크와 문체 보충 등 검증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밝힌다. 본인도 AI를 많이 쓰지만 계속 검토·보충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와 기술 수용의 태도 AI에 대한 두려움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라며, 기독교는 그런 두려움에서 맨 앞에 앞장서는 프론티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가 좋았다", "우리 어렸을 때 신앙생활이 좋았다"는 식의 회고적·퇴행적 태도를 "진짜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밝히며, 기독교는 과거 회고가 아니라 희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규정한다.

구체적 활용 사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청중의 "마태복음 3장을 바탕으로 신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설교문 작성해 줘" 같은 단순 프롬프트 사용 여부 질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답한다. 대신 본인은 마태복음 3장 1~16절 설교를 준비할 때 그리스어(헬라어) 원문을 분석하게 하고, 영어·독일어 번역본 여러 개를 비교하며, 본문 구조를 분석하게 한다고 소개한다. 실제로 매일 아침 성서 본문을 히브리어·헬라어로 원어 해설하고 공통 주제를 도출해 메시지를 간략히 정리하도록 알람 설정을 해두고 받아본다고 밝힌다. > "프롬프트를 머리를 써서 있는 힘을 다해 만들어야지, 대충 하면 대충 나온다"고 말한다.

기독교와 테크놀로지의 역사적 관계 파피루스에서 코덱스(양쪽에 쓰는 책 형태) 형태로의 전환을 기독교인들이 처음 시도했다고 언급하며, 이를 "오늘날로 따지면 하드디스크를 맨 처음 만든 것"에 비유한다. 진화론이나 AI 같은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신학이 무너진다"는 식으로 수세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신학도의 올바른 길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그것이 무엇을 신학적·신앙적으로 의미하는지 앞서 나가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결정적 발언

"AI는 우리의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해야 돼요." "AI라는 거울 앞에 선 내가 내 얼굴을 닦아야 AI가 나를 반영한 내 데이터를 반영해." "우리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지 과거 회고하면서 이런 얘기는 기독교적이지 않다."

🧩 핵심 용어

  • 허미니(형상): 화자가 사용한 표현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임하고)인 것처럼 AI는 인간의 형상이라는 비유적 개념
  • 에노마엘리시(에누마 엘리시): 고대근동 신화. 신들이 인간을 창조해 노동을 대신 시키고 이후 반역을 두려워한다는 서사로 인용됨
  • 코덱스: 파피루스를 접어 양면에 쓰는 초기 책 형태. 기독교인들이 초기에 채택한 문서 기술로 언급됨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이 강연은 "잘잘법" 채널의 공개 강연회 Q&A 세션 일부로, 김학철 교수는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신약학 전공)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자막 자체에는 발화자의 소속·전공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확인 필요.
  • 사실 유의점: "에노마일리시"는 발음상 고대 메소포타미아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시(Enuma Elish)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나, 자막의 음성인식 오류 가능성이 있어 정확한 명칭 표기는 확인이 필요하다. 또한 "코덱스를 기독교인이 최초로 사용했다"는 주장은 서양 고전학·서지학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설이지만, 기원의 배타적 우선성에 대해서는 학계 내에서도 논쟁적인 부분이 있어 단정하기보다 화자의 주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다음 질문인데요. 저는이 질문을 꼭 드리고 싶었는데 [음악] >> 어 AI로 설교 작성을 해도 될까요? >> AI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맡긴다고 하면 어 새벽 기도 가야 되는데 어제 새벽 2시까지 아팠으면 그럴 순 있겠죠. 그런데 적극적으로 AI를 터부시하지 말고 AI를 적극적으로 끌어안. 저는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우리는 인간은 임하고 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AI는 임하고 허민이 인간의 형상입니다. 고대근동의 신화를 보면 고대근동의 에노마일리시 같은 신들이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이 자기에게 반역할까 봐 두려워하고 그것에 힘을 빼려고 노력합니다. 죽이려고 하고 또 인간을 왜 만들었냐면 자기 대신 노동을 지키려고 만들거든요. AI 만드는 일죠. AI 만들고 인간이 노동치고 생산성 높이고 그다음에 어 위협을 느껴. 그런데 우리가 믿는 창조 신앙은 하나님이 인간 만들 때 그의 파트너로 만들고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분의 영광이 가득한 곳으로 만드는데 함께 일하도록 부르고 그러면서 보람을 느끼도록 [음악] 불렀잖아요. AI를 그렇게 대하셔. 기술을 테크놀로지를 기독교 밖으로 모내려고 하지 말고 AI는 우리의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해야 돼요. AI가 위협적으로 인류를 위협한대요. 인간만큼 인류를 위협한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 이상으로 인간을 위협한 건 박테리아 뭐 저 뭐 코비드 같은 뭐 세균 뭐 이런 거지. 세균은 바이러스 세균이라고 말했다가 생물학자들한테 혼날 뻔했네. 바이러스 이런 거지. 인간 외에 인간 말고 인간을 이렇게 위협한 건 전염병 이런 거밖에 없고 인간이 서로 죽이고 그랬잖아요. AI는 인간의 거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인간을 폭력조로 대하면 AI도 우리를 거치없이 폭력조로 대할 거예요. 그래서 AI라는 거울 앞에 설 때 AI에 잘해라 하고 AI라는 거울을 닦을게 아니라 거울 앞에 선 내가 내알아를 끝닦아야 AI가 나를 반영한 내 데이터를 반영해. 우리 인간의 데이터를 AI가 인간의 데이터를 모두 학습한다면 AI가 폭력적으로 되는 건 우리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그 설교 작성해도 되냐 이런 수준에서 얘기를 생각하지 마시고 AI는 이거 허미니 인간의 형상이다. 아 과거 우리의 창조 신앙의 하나님을 우리 파트너로 대듯이 우리도 AI를 파트너로 대하자. 그렇게 해서 제일 중요한 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창조성을 보였듯이 우리도 AI의 학습을 시키는 우리의 모든 게시판에 쓰는 모든 글들이 우리를 본따라 하는 AI의에 교육 자료.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더 중요하다.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AR라는 거울 앞에 선 인간이 스스로를 훌륭한 인간이 돼야 된다. 그래서 기독교가 기술을 AI를 그런 관점으로 바라봐서 설교를 이걸로 작성해도 되나요? 많 많아요. 그 정도 질문에 머무지 마시라. 저거 활용하시라. 그런데 그걸 그대로 읽어서 아 이거 좋네. 이렇게 하면은 그분은 신학 공부를 더 하셔야 된다. 왜냐면 제가 저도 AI 많이 쓰거든요. 계속 더블 체크하고 보면 그렇게해서 제가 보충하거든요. 문체도 보충하고 그러니까 아셔라 나는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활용하셔라. >> 네. [웃음] >> 네. AI를 걱정하고 막 AI가 무슨 종말을 불러온다든니 이런 수세적이고 기술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모든 인간이 느껴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모두 두려워해요. 그런데 그것을 맨 앞에 앞장설 수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기독교는 프론티어라고 생각해야 되지. 저 뒤에서 시대가 이렇게 흘러갔는데 거기다 되고 뭐 이렇게 퇴행적이고 회고적이고 뭐 과거가 좋았다. 뭐 과거가 행복했다. 우리 어렸을 때 신앙생활했을 때 이렇게 좋았다. 그런 얘기는 진짜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근 우리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지 과거 회고하면서 이런 얘기는 기독교적이지 않다. 저는 그러냥 그렇게 생각합니다. >> 그럼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활용하시는지 좀 궁금해요. 마태복음 3장을 바탕으로 신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설교분들 작성해 줘. 이렇게 우리가 할 수도 있잖아요. 뭐 그렇게까진 안 하시는 거예요? >>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이렇게 해야 돼요. 내가 마태복음 3장 1절부터 16절까지 설교 작성할 건데 이거를 그리스 그리스도를 분석하고 뭐 영어나 독일어 본의 몇 가지를 비교해 줘. 그다음에 이것의 구조를 분석해 줘. 그러면 한 꽤 많이 나옵니다. 저는 실제로 그렇게 해서 매일 우리 성서가 있잖아요. 성서에 있는 본문을 모두 히브리어 헬라어로 쓰고 정보에 따라 그거 원어 해설하고 공통 주제 도출하고 거기에 메시지를 간략하게 얘기해 줘. 저 매일 아침에 그 알람 설정에서 받아봅니다. 성도들에게 이거 하려 그래. 그러니까 해 줘. 그렇게 하지 말고 프롬프트를 머리를 써서 있는 힘을 다해 만드세요. 프롬프트를 그냥 뭐 대충 뭐 해 가지고 그럼 대충 나와요. 그러니까 자꾸 무슨 테크놀로지가 나오거나 과학 기술이 나오면 자꾸 수세적으로 돼요. 기독교에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파피로 이거 이런 책 코덱스 형태 여기 한쪽 묻고 이렇게 앞뒤 쓰는 거 이거 기독교님 맨 처음에 한 거예요. 오늘날로 따지면은 아 하드디스크 맨 처음에 이렇게 한 거예요. 테크놀로지에 뒤로 가지 마시고 앞으로 가서 이것이 신학적으로 뭘 의미하는가? 신앙적으로 뭘 의미하는가를 자꾸 해야지 무슨 진화론 나왔으니까 신학 무너진다. AA 나왔으니까 우리가 이제 뭐냐? 그렇게 해서는 그건 신학자의 신학도의 올바른 길 길이 아니다. 그니깐 전면으로 나서라. 역사의 전면으로 사회의 전면으로 나서야지 자꾸 회고적이고 뭐 그 아주 저는 안 좋아. 제 개인 선호겠죠. >>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현장에 계신 분들의 질문을 좀 받아 볼게요. >>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