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뭐 보지? 🍿 영화 속 숨겨진 기독교적 요소들🎬 #넷플릭스 #추천 ㅣ성현 목사ㅣ잘잘법 260회

잘잘법 · 2026-08-17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rAK4dQTW4 | 길이: 33:44

요약

🎯 TL;DR — 잘잘법 260회에서 성현 목사는 프랑켄슈타인, 리틀 포레스트, 원더, 리빙: 어떤 인생 네 편의 영화를 통해 창조주와 피조물, 공동체, 타인의 삶, 인생의 유한성이라는 신앙적 주제를 성경 본문과 연결해 풀어낸다.

📌 핵심 논지 — 화자는 영화를 비롯한 문화가 "사회를 향한 상상력"을 늘려주고 "이전에 결코 가지지 않았던 질문"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그 질문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시 성경을 보면 이전과 다르게, 더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보인다는 것이 이 영상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이다.

🗺️ 영상 구성

  • 첫 번째 영화: 기예르모 델토로 〈프랑켄슈타인〉 — 창조자와 피조물, 하나님에 대한 오해
  • 두 번째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요리와 회복, 초대교회 공동체
  • 세 번째 영화: 〈원더〉 — 주인공 중심 시선의 전복, 로마서 16장 동역자들
  • 네 번째 영화: 〈리빙: 어떤 인생〉 — 안정과 생명력, 누가복음 12장 어리석은 부자
  • 마무리: 문화가 신앙적 질문과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역할에 대한 총평

━━━ 본문 ━━━

〈프랑켄슈타인〉 — 창조자에 대한 오해 화자는 이 영화를 "장애 극복 스토리"로 보면 "반밖에 안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창조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며, 그의 아버지는 엄격하고 냉혹한 완벽주의자로 그려진다. 빅터는 자신이 받은 상처와 정반대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채찍질하고 학대한다. 이후 시점이 피조물로 전환되며, 앞이 보이지 않는 노인을 만나 사랑과 언어와 감정을 배우는 과정이 전개된다. 화자는 이 과정을 "괴물 곧 피조물은 점점 사람이 되어져 간다"고 표현한다. 영화는 결국 피조물이 창조자를 용서하는 것으로 끝나며, 그러나 마음은 부서질 것이나 부서진 채로 살아가리라라는 자막으로 마무리된다고 전한다. 화자는 이를 자신의 사역 경험과 연결해 "많은 분들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하나님이 절대 만들지 못하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쓰레기라는 거예요"라는 표현으로 부족한 인간도 걸작품이라는 논지를 전한다.

〈리틀 포레스트〉 — 요리와 초대교회 공동체 화자는 자신이 몇 년 전 요리를 시작하며 "재료의 맛을 아는 기쁨"과 "배부른 구경"이라는 두 가지 기쁨을 경험했다고 밝힌다. 이를 바탕으로 주인공 혜원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는 취업 실패 후 도피가 아니라 "내가 정말 마땅히 먹어야 될 걸 먹지 못했다"는 이상 신호를 스스로 감지하고 회복을 선택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혜원은 어머니의 요리 기억과, 계산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친구 관계라는 두 가지 소중한 것을 재발견한다. 화자는 이 영화가 "도시에서 지쳐서 도망가서 농촌에서 힐링하는 영화가 아니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영화라며, 당신에게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건 아니냐고 묻는다고 해석한다. 이를 사도행전 2장·4장의 초대교회와 연결해, "함께 먹고 함께 물질을 나누고 함께 예배"했던 초대교회가 "당대에서 가장 행복했던 공동체"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더〉 — 관점의 전환과 로마서의 동역자들 안면 기형으로 27번 수술을 받은 주인공 어기가 중학교에 입학하며 처음으로 헬멧을 벗고 세상에 나가는 이야기다. 화자는 이 영화를 단순한 "장애 극복 스토리"로 보면 반밖에 못 본 것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전환점은 누나의 대사 "세상 모든 일이 너랑 관련된 건 아니야"이며, 이 지점부터 시점이 어기의 누나, 엄마, 학교 친구들 각각의 사연으로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화자는 원작 소설이 각 인물별로 별도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는 점, 후속작 〈화이트 버드〉에서 어기를 괴롭혔던 줄리안조차 같은 경험을 겪는다는 점을 소개한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하라"를 인용하며,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이 감사 인사를 전한 수많은 무명의 동역자들 — "더 이상 숫자를 셀 수 없는" 형제들 — 이 없었다면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연결한다.

〈리빙: 어떤 인생〉 — 안정과 생명력 관료적이고 정돈된 삶을 사는 시청 공무원 윌리엄스가 시한부 선고(6개월)를 받으며 변화하는 이야기다. 화자는 서류를 미루며 "일단 여기 두죠. 해야 될 게 없으니"라고 반복하는 초반 장면을 통해 안정된 일상 이면의 "생명력", "생동감"의 부재를 부각한다. 결정적 장면은 청년 마가렛이 윌리엄스의 별명이 "미스터 좀비"였다고 고백하는 순간이며, 이후 윌리엄스는 놀이터 민원을 직접 해결하고 비를 맞으며 현장을 답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완성된 눈 덮인 놀이터에 앉아 어린 시절 노래를 흥얼거리는 윌리엄스의 표정이 "너무나도 충만"했다고 전한다. 화자는 이를 누가복음 12장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와 연결하며,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안정은 언제든지 허물어질 수 있는 거예요"라고 풀이한다.

💬 결정적 발언

"그러나 마음은 부서질 것이나 부서진 채로 살아가리라." "세상 모든 일이 너랑 관련된 건 아니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하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저 바라보면 된다." "일단 여기 두죠. 해야 될 게 없으니." "하나님이 절대 만들지 못하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쓰레기라는 거예요."

🧩 핵심 용어

  • 피조물=창조자가 만든 존재. 〈프랑켄슈타인〉에서 인간과 창조주 관계의 은유로 사용됨
  • 초대교회=사도행전 2장·4장에 묘사된 함께 먹고 나누고 예배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
  • 동역자=바울의 선교를 함께한, 성경에 이름이 다 기록되지 않은 다수의 조력자들(로마서 16장)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프랑켄슈타인〉은 2025년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로, 메리 셸리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화자가 언급한 "전작 피노키오"는 델토로의 2022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추정). 〈리빙: 어떤 인생〉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2년작 〈이키루〉를 영국식으로 리메이크한 2022년 영화다.
  • 사실 유의점: "수술 27번"(원더), "6개월 시한부"(리빙) 등 구체적 수치는 화자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원작 소설·영화 설정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확인필요). 〈화이트 버드〉가 〈원더〉의 직접 후속작으로서 줄리안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설명은 화자의 발언 그대로이며, 두 작품의 정확한 서사적 연결 관계는 원작 소설 시리즈(R.J. 팔라시오)를 통해 별도 확인할 수 있다.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얼핏 보면이 영화는요. 장애 극복 스토리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그러면이 영화를 반밖에 안 보시는 거예요. [음악] 도시에 살다가 지쳐서 도망가서 농촌에서 힐링하는 영화가 아니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거예요. 영화에는 이렇게 자막이 흐르면서 마무리하게 [음악] 됩니다. 그러나 마음은 부서질 것이나 부서진 채로 살아가리라. 자, 제가 지금 영화들을 좀 소개해 드렸는데요. 왜 뜬금없이 기독교 신앙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영화를 얘기했을까? 다름 아닌 영화를 비롯한 문화는요. 사회를 향한 상상력이 늘어나게 해요. 이전에 결코 가지지 않았던 질문을 가지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질문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시 성경을 보면 [음악] 오늘도 넷플릭스를 켜고 뭘 볼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더 긴 분들 계시죠? 저도 그런 시간이 종종 있는데요. 오늘은 여러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내서 봐도 아깝지 않을 인생 영화 몇 편을 좀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영화는요. 기에르모 델토르의 프랑케슈타인이라는 영화입니다. 프랑켄스타인 많은 분들이이 영화를 보시면서 프랑켄 슈타인이이 피조물인 괴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사실이 프랑켄슈타인은이 괴물인 피조물을 만든 창조자입니다. 그러면이 영화에선 왜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할까요? 바로 괴물이 누구인지 혼동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이 창조자의 이름은 빅터 프랑케슈타인데요.이 사람의 아버지가 사실은 좀 괴물 같아요. 무척 엄격하고 무척 냉혹합니다. 의사인데 굉장히 아들에게 강박적으로 완벽주의를 요구하고요. 자신의 아내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잘 돌보지 않습니다. 그래서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요.이 이 빅터는 어머니가 이렇게 죽는 모습들, 아버지가 자신을 가혹하게 대했던 모습이 깊은 트라우마로 상처로 담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돼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학 기술과 과학 기술을 가지고서 어 피조물을 만듭니다. 시체를 잘 조합해서 하나의 피조물을 만드는데요. 우리가 생각하면 어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가 있으니까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무척 아낄 거 같은데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까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그가 가지고 있는 지능도 생각보다 계속 말을 가르쳐 주는데 빅터라는 말만 하고 있는 거예요. 답답한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랄 장면들이 나오는데요. 자기가 만들어 놓은이 귀한 무생물에서 생물로 변한이 피조물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채찍을 들고 꽃챙이를 찌르고 계속 심한 말들을 하면서이 피조물을 짐승처럼 취급합니다. 그래서이 세상에 갓 태어난이 피조물은 정말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 가운데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게이 영화의 첫 번째 일부인데요. 이부에선 시점이 변화돼서이 피조물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이 자신의 창조주에게 학대를 받았던이 피조물은 농가로 잠입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노인을 만나게 돼요. 근데이 노인은 앞이 보이지 않고 인생의 경험이 많다 보니까이 피조물을 괴물처럼 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이 피조물은 아버지에게서 자신의 창조자에게서 경험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바로이 노인을 통해서 경험합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요. 감정을 배웁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요. 영화를 보면 그렇게 학대받던이 피조물이이 노인의 품에 안겨서 평온한 미소를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렇게이 괴물 곧 피조물은 점점 사람이 되어져 갑니다. 그리고 [음악] 자신의 창조자에게 나와 함께할 동반자까지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정말 [음악] 사람이 돼 가는 거죠. 그리고 마침내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영화 맨 마지막에 하게 됩니다. [음악]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창조자를 창조자가 구합니다. [음악] 내가 너를 잘못했다고. 그래서 나를 용서해 달라고. 자신이 받았던 학대가 있었지만 사랑을 배웠던이 피조물은 [음악] 마침내 자신을 학대했던이 창조자를 사랑으로 용서해 [음악] 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영화에는 [음악] 이렇게 자막이 흐르면서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은 부서질 것이나 부서진 채로 살아가리라. 이게 바로 사람이라는 거예요. 완벽한 기계가 아닌 거죠. 우리 모두가 깨어져 있는 가운데에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 그게 사람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실이 [음악] 기에로 델토르의 영화들은요. 괴물 같은 존재들. 전작이었던 피노키오가 나무 인형이었고 또 어 다른 영화들에서도 계속 반복되어지는 건 우리가 보기에 참 사람 같지 않은 존재들이에요. 근데 그 존재들이 점점 사람다워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이 본연히 가지고 있는 폭력성 무지함들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이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이렇게이 괴물 같은 피조물이 사람 나와지고 마침내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랑을 실현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진짜 사람됨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해요. 근데 저는이 영화를 보면서 역설적으로 창조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좀 생각을 해 보게 됐어요. 아,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도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무리 인간과 피조 세계를 얘기하는데 안타깝게도 제가 사역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분들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이 영화처럼 엄격하고 완벽을 요구하는 신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신앙을 가졌는데 자존감이 낮아지는 거예요. 살아가는데 오히려 평안함보다 두려움, 조심스러움이 그분의 신앙생활 가운데 훨씬 많은 정서를 가지고 있는 걸 보게 됐어요. 아, 안타깝지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거든요. 그리고 인정해야 되는 건 우리가 부족한데 부족한 우리를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 하나님이 절대 만들지 못하는게 있다. 다름 아닌 쓰레기라는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은 그 모습이 어떻든지 걸작품이라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부족한 우리를 정말로 사랑한다라면 그렇게 사랑할 [음악]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왜냐? 부족한 우리를 창조하신 [음악]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우리를 용납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음악] 때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이죠. 첫 번째 영화 [음악] 프랑케슈타인을 통해서 여러분들 한번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 또 우리 일상 가운데에서 사람이랑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음악]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습니다. [음악] 다음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 이거 오류 뜬다는 소리거든요. >> 아 내가 방금 전에 쓰고 왔다니까 그래 지금. >> [음악] >> 돌아왔다. 집으로 당신에게도 있나요? 리틀 포레스트 >> 한 가지 고백할게 있는데요. 제가 요알못이었어요. 어 요리를 못 했어요. 몇 년 전까지. 그런데 몇 년 전에 우연한 기회로 제가 요리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 삶에서이 두 가지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는 마늘과 양파의 맛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마늘과 양파의 향기를 막기 시작했어요. 전에 제가 요리를 못 할 때는 마늘이나 양파가 그냥 주변 재료였어요. 그래서 요리를 먹다가도 마늘이나 양파는 한쪽으로 채워도든지 마지 못해서 먹었거든요. 근데 제가 막상 요리를 해 보니까 요리할 때이 양파 냄새나 마늘 냄새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리고이 마늘과 양파가 들어갔을 때 요리가 얼마나 맛있어지는지를 경험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로의 맛을 아는 기쁨이 생겼어요. 이전에는 제가 냉장고을 열면 늘 했던 얘기가 아 먹을게 없다 요리를 시작하니까 냉장고물을 여니까 그 많은 재료들이 다 제가 할 수 있는 요리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창조의 기쁨을 제가 요리하면서 한 층 더 배우기 시작했고요. 또 하나는 배부른 구경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요리를 해 줄 때 그 사람들이 제가 한 요리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 있더라고요. 이전엔 그냥 남이 해 준 요리를 먹는 기쁨만 있었으면 이제는 제가 누구에게 요리를 해 줄 수 있고 그걸 지켜보는 기쁨이 또 다른 기쁨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제 인생을 돌아보면 요리를 하기 전과 후가 인생에서 또 다른 행복이 저한테 찾아온 것들을 경험하게 됐어요. 자,이 얘기를 왜 하냐면요. 리틀 포레스트가 바로 요리에 대한 영화입니다. 잘 알려진 일본의 만화를 영화로 만들고 그걸 다시 한국화한 그런 영화인데요.이 영화의 주인공 해원이 바로 배가 고파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해원이가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얘기는 단순히 도시에 있던 청년이 취업에 실패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지쳐서 도망가는게 아닙니다. 세원은 자기 삶에서 이상 신호가 온 걸 발견한 거예요. 내가 정말 마땅히 먹어야 될 걸 먹지 못했다라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도망가는 도피처럼 보이지만 해원은 주체적으로 자기 삶에 적극적으로 위기가 온 걸 감지하고 그걸 회복하기 위해서 선택을 한 거죠. 그렇게 헤오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미 있었지만 있었던 소중한 두 가지를 깨닫게 돼요. 첫 번째는 그의 어머니가 해 주셨던 요리에 대한 기억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요리를 잘했던 엄마가 회원이에게 가지각색의 요리를 해줬던 것. 그것이 회원이의 생각과 마음속에 남아 있던 거죠. 그래서 이제 엄마가 없는 그 고향 마을에서 해원은 하나하나 요리를 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꽃파스타, 양배추 샌드위치, 시루떡, 아카시아 코튀김, 오이 콩국수. 보기만 해도 놀라운이 재료들을 가지고서 화려해하지 않지만 하나하나 재료를 손질하고 끓이고 기다리고 그리고 하나하나 자기가 했던 요리들을 은미하면서 먹는 과정까지 해원은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갑니다. 그래서 회원이이 요리를 해 먹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오로지 음식과 회원이만 존재하는 거 같고 회원이가 정말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그 기회를 허락받았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요. 친구들이에요. 친구들은 원래 있었죠. 그런데 도시 속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까 계속 누군 합격했냐, 합격하지 못했냐, 누구는 월급이 얼마냐, 어떤 직장을 다니냐 다 모든 관계들이 계산되어지고 경쟁 관계였다라면 고향에 돌아와서 만난 친구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친구들이었어요. 그래서이 영화를 보시면서 놓치면 안 되는 장면들 중에 하나가 뭐냐면 친구들과 먹고 얘기하는 장면들입니다. 많은게 있지 않아요. 그냥 친구들하고 그 대화의 내용을 너무 귀담아 들으실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집 안에서 개울가에서 대청 마루에서 친구들과 여러 종류의 음식을 놓고 과일들을 놓고 그냥 수다를 떨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거기 함께 참여한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이들의 수다 속에서 우리도 친구로 참여한 느낌이 들고요. 함께 이들의 대화에 참여하다 보면 어느새 아 나도 혼자가 아니지라는 생각들 내 주변에도 이런 친구들이 있는데 가족들이 있는데라는 생각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어요.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한 두시간 여에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힐링이 돼요. 단지 화면에서의 좋은 요리가 나오고 화면에서 좋은 풍경이 나오기 때문이 아니고 해온이가 먹고 있는 그 음식이 참으로 정성스럽다는 것. 회원이 옆에 있는 친구들이 참으로 회원이를 이해할 수 있는 벗들이라는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내명 깊은 곳에 있던이 배고픔 굶주임을 채워 주는 경험들을 하게 되어진다는 거죠. 그래서이 영화를 보실 때 단지 한 청년이 도시에서 경험하다가 도시에 살다가 지쳐서 도망가서 농촌에서 힐링하는 영화가 아니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거예요. 당신 혹시 배고프지 않아요? 당신에게 [음악] 중요한 것 잊고 있는 건 아니에요라고 얘기하는 거죠. 성경에 보면 우리가 초대교회라고 하죠. [음악]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초대교회 모습이 나와요. [음악] 근데 그 교회 모습이 바로이 리틀 포레스트의이 친구들과의 같은 모습이에요. [음악] 함께 초대교회 성도들은 함께 먹어요. 함께 물질을 나눠요. 함께 [음악] 예배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초대교회는 능력이 많은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음악] 당대의 시대에서 저는 가장 행복했던 공동체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당대 주인이 노예를 함부로 대하고 남성이 여성을 편화하고 온갖 힘과 권력이 있던 시대 속에서 이들은 서로가 형제 자매가 되고 함께 음식을 먹고 함께 한 아버지를 예배하는 정말 행복했던 공동체였던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이 공동체와 그것이 없는 공동체가 행복이 질적으로 차이가 [음악] 나는 거죠. 저는 초대교회의이 부흥의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행복이었다라는 생각들을 해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이 공동체의 모습이 어떤가 [음악]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음악] 네. 다음 영화는 원더입니다. [음악] >> 영화의 주인공은 어긴데요. 안면 기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그만치 27번 수술을 받아요.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신 분 한 아이가 헬멧을 쓰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바로이 안명기 때문에 어기는 집에서 자라면서 항상 헬멧을 쓰고 있었어요. 세상을 나가지 않고 세상을 나갈 때 항상 헬멧으로 자기를 가렸던 친구예요. 그러던이 어기가 중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헬멧을 쓰고 갈 수가 없어요. 헬멧을 벗고 세상에 나갑니다. 얼핏 보면이 영화는요. 장애를 가진 한 소년이 학교에 잘 적응하는 장애 극복 스토리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이 영화를 반밖에 안 보시는 거예요. 왜냐하면이 영화에는요. 아주 중요한 또 다른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어기가 중학교에 가서 집에서만 있던 것과 다르게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거든요. 친구들이 외모 때문에 편화하기도 하고요. 또 따돌리기도 하고 여러을 겪습니다. 그래서 어기가 굉장히 힘들어해요. 그리고 집에 와서 예전처럼 누나에게 자기를 힘들게 하는 친구들, 학교 생활의 어려움을 막 토로하는 장면들이 나와요. 어기한텐 자연스럽거든요. 왜냐하면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어기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춰줬어요. 부모님, 누나, 또 주변 이웃들이 온통 어기만을 위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중학교에 가고 보니까 아, 각자각자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다 자기의 욕구가 있고 꿈이 있기 때문에 친한 사람이 따로 있는 거죠. 어기는 그게 낯설었어요. 왜 나한테 잘돼 주지 않지? 그래서 누나에게 찾아와서 나고 불평을 하는데 누나가 너무 중요한 얘기를 해 줘요. 세상 모든 일이 너랑 관련된 건 아니야라고 얘기해요. 여기서부터 영화의 반전이 일어나요. 왜냐? 영화의 초반부부터 이때까지는 계속 어기의 시선으로만 영화가 집중되어지는데요. 갑자기이 대사가 나오면서 주인공의 시점들이 바뀌어지기 시작해요. 카메라가 갑자기 어기에서 어기의 누나 이야기, 논문을 쓰지 못했던 엄마 이야기, 학교 친구들 하나하나의 사연들이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태양이 되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 주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아 우리가 어기라는 주인공 관점이 아닌 [음악] 다른 조윤이라고 보여지는 친구들의 이야기가이 영화에 같이 들어오면서 함께 만들어지는 걸 봅니다. 실제로이 영화 원작의 소설은요 훨씬 더 풍성한데 왜냐하면 어기의 이야기 원더란 이야기만 있지 않고요. 다른 친구들도 따로따로 소설을 다 만들어줬어요. 각각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고요. 거기에 더해서이 원더에서 어기를 가장 괴롭힌 친구가 줄리안이란 친구인데요. 여기에서 징계를 받습니다. 근데 여기서 영화는 끝나는데요. 작년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던 화이트 버드라 영화가 있는데요. 이게 놀랍게도 어기를 괴롭혔던 줄리안이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서 줄리안이 어기와 똑같은 경험을 하면서 어기처럼 그 학교 생활을 적응해 나아가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느 한 사람만 위기에 전 한 사람이 자기 위기를 극복해 가는 스토리가 아니고 어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 각자각자의 삶에 이야기가 있다라는 것을 들려 주게 되는 거예요.이 이 영화 맨 마지막에 엔딩은요. 어기가 마침내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하고 연말에 큰 상을 강대 위에 올라가서 연단 위에 올라가서 상을 받는 장면으로 끝나는데요. 그때 대사가 흘러요.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하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저 바라보면 된다. 우리 모두가 어기도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처럼 각각의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 다 자기만의 인생에 싸움을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친절을 통해서 인생의 힘겨운 싸움을 잘 헤쳐 나아가자는 이야기가이 안에 담겨 있는 거죠. 제가 성경을 읽다가 로마서 16장을 보면서요. 바울이 그의 선교 동역자들에게 감사 인사라는 그 페이지가 있거든요. 한번 나를 잡고 제가 세 보기 시작했어요. 바울의 동역자가 몇 명이 되나 쭉 세보다가 포기한 지점이 발견됐어요. 왜냐? 갑자기들이 등장했어요. 형제들이 나오더라고요. 더 이상 숫자를 셀 수 없는 [음악] 거예요. 우린 성경을 읽으면서 바울을 보고 베드로를 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수많은 들들이 있는 [음악] 거예요. 그 들풀 같은 들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갔던 [음악] 거죠. 물론 바울의 역할이 중요했고 베드로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음악] 그 들들이 없었다라면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이 [음악]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나를 비롯한 수많은들과 살아가고 있고요. 우리 모두가 힘겨운 [음악]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서로에게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라는 것이죠. [음악] >> [음악] >> 다음 영화는요. 리빙 어떤 인생이라는 영화입니다. 아름아 알려져서 명작고 알려진 영화인데요. 많은 분들이 모르셔서 제가 좀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영화 굉장히 클래식하고요. 고풍스러워요. 영화 시작하면 영국 친사 모자를 쓰고 검정색 옷을 입은 똑같은 남성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차가 들어옵니다. 함께 같은 좌석에 타서 신문을 펴고 출근을 합니다. 기차에 내려서 이들은 아주 안정된 건물에 들어갑니다. 시청이에요. 알고 보니 이들은 시청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척 정돈된 가운데에서 조용한 음악 속에 이들은 아주 품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이 시청의 풍경 중에 희한한 풍경이 하나 있어요. 다름 아닌 서류더미들이 가득해요. 처음에 보면 아이 사람들이 일을 참 많이 하는구나 싶은데 여기 반전이 있습니다.이 사람들이 서류더미가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일이 많기도 하지만 이들은 일을 무척 관료적으로 하는 사람들이에요. 급한 민원들이 오는데 서로 협의할 문제가 있으면 이들은이 서류를 한쪽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일단 여기 두죠. 해야 될 거 없으니. 사실 밖에 있는 민원인들은 속이 탈 텐데 이들은 그저 서류일 뿐인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업무 스케줄에 따라서 전혀 지장을 받지 않고 목소리도 높아지지 않고 그들은 아주 품미 있게 일을 합니다. 하지만 밖에 있는 분들은 속이 타는 거죠. 여기 한 일군의 부인들이 등장해요.이 부인들은 벌써 지쳐 있어요. 왜? 어제부터 시청 여기저기를 계속 돌아다녔거든요. 여기를 가면 저과로 가라. 저기로 가면 또 저기 과로 가라.이 부인들이 왜 왔느냐? 전쟁으로 인해서 폐허가 된 그 공터를 놀이터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들은 어 시청에서 준비하라 서류를 다 준비해 왔습니다. 이제 어 민원을 통과시켜 주면 되는데 서로 미루는 거예요.이 시설 걸어 가세요. 어디로 가세요? 하루 종일 돌아는데 맨 마지막에 바로이 과로 가라고 해서 이들은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바로이 주인공 윌리엄스가 있는이 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윌리엄스가 서류를 다시 보더니 또 똑같은 말을 합니다. 다른 과로 가세요. 부인들은 또 하루 종일 헤니다. 그리고 처리가 되지 않아요. 퇴근 시간 됐을 때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때이 윌리암선는 서류를 받아들고 똑같이이 한 마디를 다시 합니다. 일단 여기 두죠. 해야 될게 없으니 계속 안정되어 있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일상이 계속되어집니다. 누가 보기에는이 사람들이 답답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의 삶이 정돈돼 있고 참으로 예측된 대로만 흘러가기 때문에 지극히 평온하고 안정돼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살다 보면 그런 안정이 그립거든요. 대단히 불확실하고 대단히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안정된 일상이 묻혀 그려워지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안정 자체가 삶의 모든 것이 되었을 때 거기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생명력이에요. 생동감이에요.이 영화의 중간쯤 갔을 때 한 가지 사실이 주인공 윌리엄스에게 다가옵니다. 윌리엄스에게 시안부 선고가 내려지는 거예요. 이제 남은 인생은 6개월밖에 남지 않습니다. [음악]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윌리엄스가 결그를 [음악] 합니다. 그리고 술집을 찾아가고 헤니다. 바닷가를 가고 헤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까지 시청에서 함께 일했었던 청년 마가렛이라는 여자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근데이 마가렛과 식사를 하다가 충격적인 얘기를 듣습니다. 마가렛이 시청에서 일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별명을 붙였었는데이 윌리엄스의 별명이 뭐냐고 묻자 머뭇머뭇다가 이야기를 해 주는데 충격적이게도 미스터 좀비라고 얘기합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 같은 존재로 보였다는 거예요. 비록이 마가렛이라 청년은 미래도 불투명하고 시행 착오도 겪고 여러 가지 실수도 많지만 최소한 자신의 삶에서 자기는 생동감이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안정돼 보이는 시청 공무원들의 삶은 자기가 보기에 좀비 같다는 거예요. 충격을 받습니다. 윌리엄스는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 좀비처럼 인생을 끝낼 수가 없는 거죠. 시청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해요. 밀어났던 놀이터 민원 서류를 틀고 자신이 직접 과들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찾아가자 다른 시청의 직원들은 영문을 모르거든요. 예전처럼 대합니다. 조금 있다 오세요. 지금은 급합니다. 다른 업무가 계속 미루려고 합니다. 그런데 윌리엄스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급합니다. 여기서 끝까지이 문제를 처리해 주십시오라고 계속 가는 부서마다 사정을 합니다. 예전에 전혀 나가지도 않았던 현장을 나갑니다. 공토에 나가는데 비가 옵니다. 구두를 심고 비를 맞으면서 그 현장을 직접 답사를 합니다. 달라지는 거죠. 결국 놀이터는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바로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예전 같으면 잊지도 않을 그 장소 바로이 놀이터 자신이 생의 마지막 희혈을 기울렸던 그 놀이터에 [음악] 윌리엄스는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타면서 어린 시절 [음악] 그렇게 놀이터에서 뛰놀 때 들었던 그 노래를 흥얼흥얼 부릅니다. 그리고 [음악]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윌리엄스의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 [음악] 하지만 결코 그 마지막이 불행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데 윌리엄스의 [음악] 표정이 너무나도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요.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안정되게 자신의 곡간을 채우는 거죠. 예측 가능하게 인생을 다 만들어 놨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뿌듯해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죠. 어리석은 자여 내가 오늘 내 영혼을 [음악] 오늘 밤 거두려고 한다. 당황하게 되는 거죠.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안정은 언제든지 허물어질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날 동안에 우리가 추고해야 되는 것은 안정도 좋지만 과연 [음악]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내 인생을 고생스럽더라도 때로는 불안할지언정 정말 내 인생에서 끝날 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빙 어떤 인생을 보시면요.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서 내 인생의 끝을 미리 한번 성찰해 볼 수 있는 그런 동기를 구해 줄 수 있는 좋은 영화입니다.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자, 제가 지금 영화들을 좀 소개해 드렸는데요. 뜬금없이 기독교 신앙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영화를 얘기했을까? 다름 아닌 영화를 비롯한 문화는요. 우리가 성경을 토대로 볼 수 있는 세상의 실제 모습들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던 어떤 존재가 있었어요. 취업에 실패한 청년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장애가 있는 한 아이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생에 얼마 남자는 시간을 부여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각 형편이 다른 거죠. 내 이야기가 아닐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런 영화들을 통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보게 되는 거죠. 엿보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 저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거죠? 저 사람들의 인생은 신앙과 어떤 관계를 맺어 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음악]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질문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전에 나만 보던 눈에서 다른 사회를 향한 상상력이 늘어나게 해요. [음악] 이전에 결코 가지지 않았던 질문을 가지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질문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시 성경을 보면 이전에 [음악] 나만 바라보면서 봤던 성경. 하나님 나 정말로 안정되게 살게 해 주세요. 하나님 요러 요런 거 해 주세요라는 것과 다른 질문들 다른 [음악] 세상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그것들을 토대로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거죠. 이전엔 그래서 성경을 보면서 주인공들만 들어오는 거죠. 눈에 모세가 들어오고요. 아브라함이 들어오고 [음악] 다윗만 들어왔다라면 이제는 다윗 옆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모세 옆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아브라함과 함께 했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오면서 질문이 달라지고 성경의 이야기가 이전에 보던 것과 훨씬 다르게 [음악]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지는 경험을 하실 거예요. 저도 이런 영화들을 통해서 [음악] 이런 눈이 열려지면서 다시 성경을 보면서 이전과는 달라지는 경험을 했었거든요. 여러분들도 이렇게 좋은 영화들, 좋은 문화들을 접하시면서 자꾸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좀 넣으셨으면 좋겠고요. 여러분들의 질문이 [음악] 하나하나 늘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질문들을 가지고 [음악] 다시 내 삶을 돌아보고 성경을 볼 때 정말 우리의 삶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그런 선물들을 받지 않을까라는 [음악] 생각들이 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