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Christianity Looks Like from the Outside | Professor Kim Hak-cheol | Jaljalbeop, Episode 262

잘잘법 · 2026-08-06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BNVSaBeHuo | 길이: 19:38

요약

🎯 TL;DR — 저자는 기독교인이 자기 신앙과 세계 기독교 지형 속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기독교 문맹" 상태에 빠지면 자신도 괴롭고 타인도 괴롭히게 되며, 메타인지와 종교 문해력을 통해 자기 전통을 겸손하게 성찰할 때 폭력이 줄고 신앙이 풍요로워진다고 주장한다.

📌 핵심 논지 — 화자(김학철 교수)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믿는 신앙의 역사적·세계적 맥락을 모른 채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기독교 문맹 상태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 문맹 상태를 메타인지를 통해 극복하면 자기 자신과도, 타 교파·타 종교인과도 잘 지낼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폭력 감소와 신앙의 성찰적 풍요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 영상 구성

  • 자신의 보수적 장로교 성장 배경과 감리교에 대한 거리감 고백으로 시작
  • "태몽" 사례를 통해 자기 객관화(메타인지)의 중요성 설명
  • 가톨릭 신자와의 갈등 일화 — "기독교"라는 용어의 오용 사례
  • 하버드대 다이앤 무어 교수의 "종교 문맹/문해력" 개념 소개
  • 종교 문맹이 낳는 폭력 사례들(북미 원주민 학살, 태국·남아공 등)
  •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 포스터 논쟁 일화
  • 장로교 개혁주의자로서 자신의 위치 성찰
  • 이집트 콥트교회·인도 사례로 상호 종교 간 연대 가능성 제시

━━━ 본문 ━━━

메타인지의 결여와 그 대가 화자는 자신이 자란 보수적 장로교 환경에서 감리교를 이단시하며 만나면 "섬짓했다"고 고백한다. 이 경험을 그는 메타인지의 결여 문제로 규정한다.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도 괴롭고 주변에 있는 남도 괴롭힌다"고 말하며,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뛰어난 이해력을 인지하지 못해 학생들을 때렸던 한 선생님의 사례를 들어 자기 인식 부재가 어떻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지 설명한다.

"태몽" 비유를 통한 자기 객관화 화자는 시베리아 샤먼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태몽을 꿔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경험을 소개한다. 태몽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인 대부분이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객관화해야만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논지를 편다. 이 자기 이해가 곧 타인과 잘 지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강조한다.

"기독교"라는 용어를 둘러싼 갈등 한 가톨릭 신자가 강연 중 "왜 자꾸 기독교라고 하느냐"며 불만을 표한 일화를 소개한다. 화자는 기독교라는 말이 헬라어 크리스토스(그리스도)에서 유래해 중국의 음차를 거쳐 들어온 용어로, 로마 가톨릭·개신교·정교회를 모두 포괄하는 말임을 설명했으나 상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기본적 사실조차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의 반증"이라 평가한다.

종교 문맹과 종교 문해력 2000년대 초중반 하버드대 다이앤 무어 교수가 제안한 "종교 문맹(religious illiteracy)" 개념을 소개한다. 종교 문맹이란 한 종교를 사회·문화·경제·정치·역사 등 다층적 렌즈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 종교가 역사적으로 변화해왔으며 내부적으로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화자는 이 개념을 기독교에 적용해 "기독교인이 기독교 문회력을 갖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종교 문맹이 낳는 폭력 화자는 요한 갈퉁의 폭력 삼분류(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를 인용하며, 종교 문맹이 문화적 폭력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근거로 앵글로색슨계 이주민들이 미국 원주민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혼이 없는 존재"로 간주해 대량 학살을 정당화한 사례, 그리고 이것이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분리 정책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을 든다. 또한 태국의 종교·정치·민족 갈등이 얽힌 폭력으로 2019년 기준 7천여 명이 사망했다는 사례도 언급한다.

종교개혁 500주년 포스터 논쟁 화자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행사 임원으로 참여했을 때, 포스터에 로마 가톨릭을 조롱하는 사료를 넣으려던 시도에 반대했던 경험을 소개한다. 그는 "500년이 지났으면 로마 가톨릭도, 개신교도 얼마나 변화했는지" 되물으며,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500년 전의 상대와 싸우는 태도를 비판한다.

자기 위치를 아는 겸손 화자는 한국 장로교인들이 자신의 "개혁주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자체는 긍정하면서도, 전 세계 기독교인 중 장로교 개혁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의 1%도 안 되는 인구가 전 세계 기독교인의 40~50%를 차지하는 로마 가톨릭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사례를 들며, 세계 기독교 지형 속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자부심과 동시에 겸손, 그리고 타 신앙에 대한 존중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상호 종교 연대의 실례 화자는 이집트 콥트교회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폭탄 테러를 당했을 때 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변 이슬람 주민들이 예배 중인 콥트교인들을 인간 띠로 보호했다는 사례, 그리고 인도에서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위협 속에 이슬람 청년들이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경비해줬다는 인도인 교수의 증언을 소개하며 종교 문해력이 만드는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화자 자신의 신앙적 위치 화자는 자신이 증조부 대부터 이어진 장로교 개혁주의 신앙 안에서 자랐으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를 메타인지함으로써 다른 교파의 사고를 더 분명히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며, "내가 나를 모르면 불안하지만, 내가 누군지 대충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설명한다.

🔢 핵심 수치

  • 태국 종교·정치 갈등 사망자 = 2019년 기준 약 7천 명
  • 한국 장로교 개혁주의 인구 비중 = 전 세계 기준 1% 미만
  • 로마 가톨릭 신자 비중 = 전 세계 기독교인의 40~50%

💬 결정적 발언

"메타인지를 못하잖아요. 자기 자신도 괴롭고 주변에 있는 남도 괴롭혀요."

"기독교라는 말은 원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종교 문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 사이에 폭력이 줄어든다는 걸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하면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걸 다 나누잖아요."

⚖️ 화자가 다룬 반론·한계

  • 가톨릭 신자와의 논쟁에서 화자가 용어 정정을 제시했으나 상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스스로 언급하며, 그 자신도 "약간 언짢았다"고 인정한다.
  • 개혁주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 자체는 "긍정할 수 있는 말"이라며 무조건적 비판이 아님을 밝힌다.

🧩 핵심 용어

  • 메타인지 = 자기 자신의 사고·감정·행동 방식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
  • 종교 문맹(religious illiteracy) = 다이앤 무어 교수가 제안한 개념. 종교를 다층적·통시적 시선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
  • 종교 문해력 = 종교의 사회·문화·정치·역사적 맥락과 내부 다양성·변화를 이해하는 능력
  • 문화적 폭력 = 요한 갈퉁의 폭력 삼분류 중 하나. 특정 관념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다이앤 무어(Diane Moore)는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교수로, 미국 공교육에서의 종교 문해력 교육을 연구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추정 — 정확한 직함·소속은 원문 자막상 확인 어려움).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평화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노르웨이 학자로, 직접적 폭력·구조적 폭력·문화적 폭력의 삼분류는 그의 대표 이론이다.
  • 사실 유의점: 태국 종교 갈등 "7천 명 사망"(2019년 기준)이라는 수치는 화자가 "제 기억으로는"이라고 스스로 단서를 달았다 — 정확한 통계 확인 필요. 이는 태국 남부(파타니 등) 분리주의 무장 갈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며, 종교·민족·정치가 복합된 사안이라 "종교 갈등" 단독 수치로 보기엔 논쟁 소지가 있다.
  • 사실 유의점: 이집트 콥트교회 폭탄 테러(팜 선데이 테러 등으로 추정) 및 인도 사례의 세부 경위(연도, 사망자 수 등)는 자막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원문 그대로 옮겼으며, 별도 검증은 하지 않았다.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제가 어렸을 때 굉장히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거든요. 장로교. 거기서는 감교를 이단이라고 만 얘기했어요. 감류 교회는 만나면 섬짓했어요. 아 실제로 제가 그랬어. 약간 뭐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느꼈어요. 메타인지를 못하잖아요. 자기 자신도 괴롭고 주변에 있는 [음악] 남도 괴롭해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어느 곳에 가서 강연을 했습니다. [음악] 기독교에 관한 강연이었어요. 한 분이 저한테 오더니 불만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저한테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요. 그래서 네. 아니 왜 자꾸 [음악] 제가 며칠 전에 재밌는 얘기를 하나 들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샤만이라는 거예요. 무슨 소린가 했더니 북쪽 지역 우리나라 그 위에 뭐 만주간도 더 위에 이제 시베리아 샤만들이 하는 아주 조용 주요한 일 중에 하나가 태어날 아이들의 태몽을 꺼 주는 일이래요. 그 말 듣는데 너무 흥미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시베리아 샤먼들이 하는 주요한 일 중에 하나가 태몽을 꺼 주는 거다.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 거의 뭐 전국민이 꾸잖아요. 그러면서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다 샤머이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듣고서는 맨 처음에 반신 반이하다가 태몽을 영어로 뭐라 그러지? [음악] 태몽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태몽이라는 영어 단어가 없는 거 같아요. 어, 진짜 그러네.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물어봤거든요. 여러분 태몽 아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이랬더니 손을 들어요. 반에 1은 들어요. 뭐냐? 다 알아. 어떤 남자애가 손 들고 남학생이 손 들고 과일 꿈이었대요. 그래서 어 그거 여성 여자아이 나는 꿈인라 그러지 않아요? 이랬더니 그래서 저희 집안이 모두 여자애가 태어날 줄 알았는데 남자인 자기가 태어났대요. 야 전국민이 태몽을 꾸는데 많은 수가 그거를 이상하게 생각 안 하고 태몽이 있다 그래도 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태몽을 해석하고 한국인이면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외국 사람이 보면 그 참 희한한 나라다 그럴 거예요. 근데이 얘기 듣는 순간 상당히 재밌는 거예요. 아 한국이 그런 존재구나. 우리가이 사실을 객관화 해 놓고 이렇게 밖에 나오면 우리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특정한 사고 방식, 감정을 느끼는 방식, 행동방하는 방식이 어떻게 특정한지 알게 돼요. 그러면 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요. 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어떻게 되냐? 나 자신과 잘 지낼 수 있어요. 그리고 타인하고도 잘 지낼 수 있어요. 나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나랑 싸워요. 나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잘돼 있지 않으면 나에 대해서 실망해요. 나에 대해서 저하거나 아니면 나를 과대 평가해요. 어떤 사람은 스스로 공부하길 좋아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막 당연히 그런 줄 알아요. 내가 고등학교 배웠던 선생님 중에 독특한 선생님이 계셨는데 이분은 워낙 머리가 좋으신 분이었는데 학생들한테 뭘 가르쳐 줬는데 학생들이 기억을 못 하고 모르면 자기를 놀리는 줄 알았대요. 어이 왜 왜 기억을 못 하냐? 왜 그걸 이해를 못 하냐? 그래서 학생이 나를 놀려서 모른다 그러는 줄 알고 화를 내 가지고 학생들을 때렸대요. 근데 나이가 한 50세쯤 넘어와서 50대 충만되니까 아 기억이 안 난다는게 뭔지 이해가 안 난다는게 뭔지 알았대요. 자기가 그렇게 기억력이 좋고 이해력이 빠르다는 걸 그분은 50대 중반 대소에 한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그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힘들었겠습니까? 저도 그 주변에 있었던 학생이죠. 자기 자신을 메타인지 한다는 거 그거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도 그렇습니다. 메타인지를 못하잖아요. 자기 자신도 괴롭고 주변에 있는 남도 괴롭해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괴 제가 괴롭힘을 당한 경우 제가 어느 곳에 가서 강연을 했습니다. 초기 기독교부터 오늘날의 기독교 한국 기독교까지 쭉 강연을 하는데 방송이었는데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어요. 한 분이 저한테 오더니 불만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저한테 아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요. 그래서네 이랬더니 아니 왜 자꾸 기독교라 그러셔요? 가톨릭이었잖아요. 그때 우리나라에 어 기독교가 들어온지는 얼마 안 되고 그 전엔 뭐 서학 들어올 때는 천주교였잖아요. 근데 왜 자꾸 기독교만 얘기하셔 가지고 저 기분 나빠요?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도대체 무슨 얘긴지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그분은 기독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라고 하는 말은 개신교만을 가르키는 걸로 잘못 사용되잖아요. 기독교이라는 말은 원래 포르투갈 스페인 선교사들이 중국에 가서 크리스토 그게 원래 크리스토스라고 하는 헬라어에서 나온 거죠.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말한 거. 그거를 중국 사람들이 길리수두 진리수두라고 음차한 거 그것이 일본에 갔어요. 그래서 키리스토 이렇게 발음하는게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경금 크 트 그 드로 바뀌고 그다음에 진리수도 키리스도 할 때이 발음이 그로 바꿔서 그리스도가 됐잖아요. 근데 그 그리스도 진리수도 쓰던 그 말 그 말이 기독이란 말이에요. 우리 말로 음력하면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말이에요. 로마 가톨릭 있어, 계신교회 있어요. 정교회 있어요. 다 기독교회 다 그리스도 교회예요. 그래서 제가 좀 당황스러워서 아니 기독교란 말은 천주교하고 정교회하고 개신교 다 포괄하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안 받아들여요. 아니, 우리가 그렇게 쓰고 있잖아요. 아이 잘못 쓰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저도 그때는 방송 중이라 약간 예민돼서 그런지 기분이 조금 얹더라고요. 미워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워낙 그런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 아니 아 잘못 쓰면서 내가 그걸 정정해 줬는데 정정해 주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자기가 믿고 있는 데에 대해서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 기본적인 사실조차 잘 알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의 반증이 반증이 하나의 사례고 이것은 아주 가벼운 사례예요. 왜냐면 그냥 저만 약간 얹참게 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분 스스로도 언자랐죠. 그니까 자기가 자기가 믿는 종교가 무엇인지 모를 때 자기도 화나고 다른 사람도 화나게 해요. 2000년대 초중반부터 미국인지 하바드 대학에 있는 다이앤무어라고 하는 교수님이 종교문맹, 종교 문회력이란는 말을 많이 아시기 시작했습니다. 종교 문맹이라고 하는 것은 한 종교를 다층적 다각적 시선에서 바라볼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이거든요. 이렇게 되면 그러니까 종교라고 하는 것을 사회, 문화, 경제, 정치, 역사 이런 다층적 렌즈로 어 종교를 바라볼 수 없는 상태. 또이 종교가 통시성, 역사를 가지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알 수 알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이 종교가 어떻게 변화해 왔고이 종교 내부가 얼마나 다양하며 앞으로도 변해 간다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상태를 종교 문맹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거든요. 종교 문명이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폭력이 발생합니다.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태국 봐도 제가 기억으로는 2019년 기준 [음악] 종교 갈등으로 7,명이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죠. 종교와 정치가 서로 얽힌 갈등이에요. 누군가는 종교 갈등으로 부르고 누군가는 정치와 정치적 갈등으로 부르고 어떤 사람은 민족적 갈등으로 불러요.요 세 개가 다 합쳐졌어요. 요한 갈퉁이라는 사람이 폭력을 크게 세 개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직접적인 폭력이에요. 두 번째로는 구조적 폭력이 발생해요. 문화적 폭력이 발생해요. 종교에 [음악] 대해서 잘 모르면 폭력이 발생해요. 문화적 폭력은 우리 속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폭력화하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기독교인들 그런 건 [음악]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했냐? 초기에 그 앵글로색 그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이주에 가면서 미국로 이주에 가면서 미국 원주민 네이티브스들을 수없이 많이 죽였는데 그 죽인 이유 중에 하나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혼히 없는 존재로 생각했고 저 네이프티브들이 복음을 전했는데 인간 모양을 하고 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영혼이 없어요. 그래서 대량 학사를 정당화했어요. 그렇게 어떤 한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영혼이 없다고 간조하게 한게 문화적 폭력 아래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거 그 종교 문명에서 비롯된 문화적 폭력이고 그게 법과 제대로 구쳐된 남아프리카 공화의 인종차별 분리 정책 이런 폭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다이무어 교수는 종교 문회력을 가져야 한다고. 종교 문명이 다각적 다칭적 시선 내에서 종교를 이해하고 통시적으로 종교를 이해하면서이 종교가 변화하고 내부가 다양하고 변화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인지하는 상태라고 이제 종교 문회력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거에 빚돼서 기독교인이 기독교 문회력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기독교인이 기독교 문맹자가 아닌지 그렇게 묻고 싶어요. 메타인지라고 흔히 그러잖아요. 그거를 잘 모르거나 자기가 믿는 바를 잘 모르는 거. 저는 이게 기독교 문맹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를 몰라서 문회력이 떨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하냐면 자기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해요. 그런 일들이 지금 숱하게 일어난다고 저는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루터가 당시 타락한 [음악] 로마 캐슬릭을 향해서 반기를 들었죠. 격렬하게 싸웠어요. 그리고 개신교가 탄생했잖아요. 종교 500조를 기념하는 행사를 했는데 한 큰 확에서 제가 거기 임원으로 있었어요. 거기서 포스털 만드는데 종교계혁 당시 가톨릭을 비난하고 비아냥거리는 사파 조롱하는 거예요. 가톨릭을 그 조롱하는 사파를 포스터에 넣으려고 하더라고요. 저는 반대했어요. 아직도 500년 전 로마 카톨릭 하고 싸워요. 뭐 하는 거예요? 종교육 500년 지났으면 그 500년 동안 로마 캐톨릭은 얼마나 변화했어요? 또 개신교는 얼마나 변화했어요? 종교육할 때 루터교라고 하는 것조차 뭐 이제 루터 이름을 딴 이제 교포가 생겼지만 오늘날 같은 상황인가요? 아니 변화했잖아요. 그런데 오늘날 여전히 500년 전 타락한 가톨릭의 망령들과 싸워요. 지금 뭐예요? 뭐 하는 건가요? 그는 너무 한심스러웠어요. 기독교는 변화합니다. 불과 30년 전과 오늘날도 이렇게 변화했는데 2,년 전과 지금 500년 전과 지금 많이 변화했어요. 이거를 인정하지 않고 나는 변화 난는데 내가 상대하는 저 사람들은 500년 전 그들, 200년 전 그들, 100년 전 그들이면 이건 어떻게 해요? 기독교를 내가 믿는 신앙을 역사적으로 통시죠. 공시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타교와의 공시적인 맥락에서 내가 믿는 신앙을 알지 못하면 내가 모르는 거예요. 그냥 어, 내가 아는게 전부인 걸로 착각하는 거예요. 모두 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태몽을 꾸는 걸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태몽은 한국인들만 그렇게 유독히 하는 거예요. 태몽을 안 꿨다 그러면 큰일 날 큰일 난 것처럼 느끼면 외국에서 그런 단어조차 없어요. 아 이걸 왜 얘기하냐? 기독교 문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 사이에 폭력이 줄어든다는 걸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제일 많은게 장로교입니다. 그 장로교인들 중에 많은 분들이 자신이 개혁주의라는 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자기가 개혁주의가이 굉장히 좋다고 얘기를 해요.음 저는 얘기를 해요. 어 개혁주의 훌륭한 전통이죠. 그 전 세계 몇 명이나 장로교인 같으세요? 장로교 개혁주의는이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세계 기독교의 중심도 아니에요. 세계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하면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걸 다 나누잖아요. 세계의 지형 중에 자기가 어느 위치라고 알게 되면 자기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또 자존심과 뿌듯함을 가질 수 있지만 자기가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럴 때 우리가 어떤 효과가 나냐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 믿고 있는 바를 차근차근 다시 성찰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 다른 신앙인을 볼 때도 존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직도 로마 카톨릭을 이단인이 이렇게 부르는 분들이 있어요. 어떤 장로교인이 그런다고 합시다. 우리나라에 1%도 안 되는 사람이 전 세계 기독교인의 40에서 50%에 달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말 할 수 있지. 자기의 신앙 기준에 따라서. 그러나 그 말은 그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말이 넓은 전 세계 기독교회에서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야 돼요. 자기가 역사 속에서, 자기가 세계 기독교 지형 속에서 어디에 놓였다는 걸 확인해야 돼요. 아, 이러면서 내 신앙의 가치를 알게 되고 [음악]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생기거든요. 동시에 겸손하게 돼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르게 되고 열린 자세가 돼서 내 신앙통을 풍요롭게 해요. 얼마나 좋습니까? 풍요롭게 된 것이.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의 계신 교인들이 [음악] 자기 신앙 열정 가지고 자기가 속한 교파의 신앙전통을 자랑스럽게 [음악] 하는 것은 너무나 긍정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음악] 세계 기독교 안에 2,년 된 역사 안에 자기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포용적이고 대화 형제 자매와 대화하면서 자기 신앙을 좀 더 풍요롭게 하고 성찰적이고 연대할 수 아 그러한 어 신앙인으로 새롭게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사회에는 폭력도 줄어들게 되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 어떤 가끔 이상한 사람들이 다른 종교 [음악] 신상을 부수고 다른 종교 사찰에 가서 불을 질러해요. 지금 이집트에 곱교회라고 있어요. 거기에 이슬람 청년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폭탄을 두 번이나 퇴를 했어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트 기독교인들이 폭력으로 보복하지 않아요. 보다 못한 주변의 이슬람 주민들이가 가지고 투 교인들이 예배드릴 때 인간 띠에서 봐보호해 줬어요. 인도의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과 기독교인들을 테러를 해요. 역시 기독교인들 예배드릴 때 이슬람 청년들이가 가지고 거기 경비 서줬다고 하는 얘기를 인도인 교수님한테 제가 들었어요. 그만지 마세요.이 세계가 어떻게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그냥 내 우물 안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지 않을 때 기독교 문회력을 우리가 충분히 가질 때 우리도 자유롭게 되고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자유롭게 된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독교 역사와 [음악] 세계 기독교 지형 안에서 교수님의 기독교 신앙은 어디에 속해 있나요? >> 저는 이제 거기서 개혁주의에 장로교 [음악]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장로교 신앙을 갖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이냐? 뭐 저희 사실을 증조부가 이제 신앙을 시작하는 거니까 [음악] 쭉 장로교인데 장로교인 나는 누구냐? 저는 장로교단이 역대로 축적해 온 신앙 고백들, 예를 들면 웨스트미스터 신앙 고백 이런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신학적 사유를 할 때 신앙고백서를 굉장히 좀 중요하게 생각해요. 함부로 그게 틀렸다고 얘기하지 않아요. 그래도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요. 이게 제가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제 입장이에요. 저는 장로교 신앙 속에서 자라서 장로교적 사고를 해요. 그리고 제가 그것을 메타인지 하기 때문에 다른 교파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분들을 존정할 수 있어요. 그분들하고 같이 어울리는 지점도 찾아낼 수 있고 다른 교파 막 놀리기도 하고 농담사 우리 교파 스스로 놀리기도 하고 그렇게 하죠. 여유가 생겨요. 왜냐면 내가 나를 모르면 불안하거든요. 근데 내가 나 내가 누군지 대충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그렇잖아요? 내가 내가 누군 줄 알면 마음이 편해져서 여유가 생기죠. 우리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별 일 하잖아요. MMPI 검사, MBTI, 사주도 보고 뭐 별자리 뭐 혈액형 다 하는데 기독교인이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그만큼 노력을 안 하고 관심도 없는 거 같아요. 자기 교파가 얘기하고 강조하는 신앙이 뭔지 알지만 자기가 믿는 바를 믿는 바가 역사 기독교 역사 속에서 뭘 뜻했는지를 알아야 돼요. 내가 믿고 있는 바를 점검할 수 있는 점검해 봐야 돼요. 제가 어렸을 때 굉장히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거든요. 장로교. 거기서는 감미교를 이단이라고 막 얘기했어요. 그 [음악] 감미 교회는 만나면 섬짓했어요. 아 실제로 제가 그랬어. 약간 뭐 이렇게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느꼈어요. 그런데 아 난 이런 정통에 있고 매슬리한 감기 정통 저런 정통에 있구나. [음악] 마음이 놓여요. 그다음에이 사람의 신앙적인 장점을 보게 되고 협력할 수 있는 걸 보게 돼요. 근데 그 상경에 있으면이 사람을 보면 일단 경직되고이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할 때 조심스럽게 되고 마음을 쳐 놓고 있지 못해. 그러니까 메타인지를 통해서 나도 자유롭게 되고 상대방도 자유롭게 되고 [음악] 그 자유 속에서 사랑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져요. >> [음악]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