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 reading have to do with faith?" It is a matter of survival, not culture | Professor Ki...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cXDDR49Dubg | 길이: 28:11
요약
🎯 TL;DR — 잘잘법 채널의 김 교수는 독서가 인간 생존과 신앙 성숙에 필수적임을 세 가지 이유(생존·실존·자기초월)로 설명하고, 다독보다 고전 중심의 깊은 읽기가 기독교 신앙에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 핵심 논지 — 화자는 인간이 간접 경험(=독서)을 통해 지식을 얻는 존재로 특별히 창조되었으며,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 슬로건은 다른 책을 읽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전통이 아닌 성경만이 권위를 가진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한다. 책의 권수보다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며, 특히 기독교인에게는 고전을 읽는 것이 영적 성숙과 연결된다고 강조한다.
🗺️ 영상 구성
- 데리다·비트겐슈타인 일화로 "많이 읽는 것"에 대한 통념 반박
- 책을 읽어야 하는 세 가지 원론적 이유(생존/실존/자기초월)
- 기독교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신학적 근거
- 다독의 함정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오래된 책(고전) vs 현대 책
- 기독교인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 읽어야 할 책 vs 읽고 싶은 책
- 마무리: 오직 성경의 재해석
━━━ 본문 ━━━ 서론 — 다독에 대한 오해 화자는 자크 데리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어가 "서재의 책 중 몇 권이나 읽으셨습니까"라고 묻자 데리다가 고민 끝에 "내 권"이라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20세기 대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 거의 없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도 중요한 독서법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읽어야만 훌륭한 사상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기소개 — 생존형 독서법 화자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이공계 출신으로 입시 경쟁 속에서 교과서만 읽어도 된다고 여기며 자랐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교수로서 책을 가르치고 쓰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을 "생존형 독서법"을 익힌 결과라 표현하며, 책을 잘 못 읽는 사람도 책으로 밥벌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첫 번째 이유 — 생존 인간은 간접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 존재로 특별하게 창조되었다고 화자는 설명한다. 반려견(푸들)은 IQ가 높아도 간접 경험으로 지식을 얻지 못하지만, 인간은 그것이 가능하며 그 통로가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문제 해결 방식이 힘과 폭력에서 대화·설득·연구로 옮겨가면서 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 이유 — 실존적 이유 영화 섀도우랜드(C.S. 루이스의 삶을 다룬 영화) 속 대사 "나는 홀로 있지 않음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를 인용하며, 인간은 결국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자기 몸속 고통을 타인이 알 수 없는 고독한 존재라고 말한다. 책을 통해 자신의 고민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공감 능력과 공동체 형성 능력이 자란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 이유 — 나를 넘어서기 위해서 인간의 언어는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 진선미(진리·선함·아름다움)를 소통하는 능력이 있으며, 독자는 저자의 의도를 넘어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고 화자는 강조한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살던 저자의 책을 읽는 경험을 여행에 비유하며, 책을 덮고 돌아올 때 이전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기독교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화자는 하나님이 신비롭게 지식을 넣어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고, 예언자와 사도들이 그것을 글로 남겼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경은 양피지→인쇄술→디지털로 매체를 바꿔가며 전달되어 왔으며, 기독교인은 성경뿐 아니라 성경을 둘러싼 문서문화와 함께 존재하는 운명을 가졌다고 말한다.
다독의 함정 전도서 12장 12절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를 인용하며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고 새 정보를 기존 지식에 끼워 맞추려는 강박을 보인다고 관찰을 전한다. 카프카의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데리다가 "내 권"이라 답한 것도 자기 안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진지하게 읽은 책이 그만큼이었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C.S. 루이스는 오래된 책 한 권을 읽으면 현대 책 한 권을 읽으라며 균형 있는 독서를 강조하면서도 오래된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①인류 문명을 형성한 근원적 질문을 접하게 해준다는 점 ②현대 작가들도 고전을 통해 사고법과 글쓰기를 훈련했다는 점 ③수십·수백 년간 평론과 비판을 견뎌낸 검증된 텍스트라는 점을 든다.
기독교인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두 이유 첫째, G.K. 체스터턴의 말을 인용하여 기독교가 2천 년간 지속된 것은 문명 자체의 특별함이 아니라 "죽고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무덤에서 나오는 길을 아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래된 책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활동하셨는지를 보여주는 큰 시야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둘째, 과거를 접하는 것은 현재의 삶의 방식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는 "자기 비움의 훈련"이 된다고 설명하며, 사도신경의 "성도의 교재"(교통) 개념을 언급하고 로완 윌리엄스(전 캔터베리 대주교)가 기독교 고전 읽기를 기도·금식·성경 듣기와 마찬가지로 영적 성숙에 꼭 필요한 일이라 말했다고 전한다.
읽고 싶은 책 vs 읽어야 할 책 유학 시절 만난 여러 세계적 학자들이 "우연히 책을 끄집어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이 자신을 신학·학문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는 경험을 전하며, 읽어야 할 책만 읽었다면 인류 문명이 멋없는 방식으로 발전했을 것이라 말한다. 신용적이지 않고 잘 팔리지 않는 책도 출판되고 읽히는 문화가 형성될 때 교회에도 더 건강한 독서 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제안한다.
결론 — 오직 성경의 재해석 존 웨슬리가 "한 책의 사람"이 되겠다고 했으면서도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종교개혁의 슬로건 오직 성경의 원래 의미는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권위를 가진다"는 뜻이지 다른 책을 읽지 말라는 지적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표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경은 책과 문자로 채워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새로운 방식으로 긍정해준다고 정리한다.
💬 결정적 발언
"나는 홀로 있지 않음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한권의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라."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이렇게 지속되는 거는 기독교 문명 자체에 뭔가 특별한게 있어서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죽고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한 것이다. … 그리스도 교회는 무덤에서 나오는 길을 아는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이라고 하는 그 슬로건의 원래 의미는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권위를 가진다라는 의미였던 거죠."
⚖️ 화자가 다룬 반론·한계
- 다독이 만능이 아니라는 반론을 스스로 제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오히려 경청하지 못하고 자기 지식 틀에 새 정보를 끼워 맞추는 강박을 보일 수 있다고 지적.
- "오직 성경" 슬로건이 다른 책을 읽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이를 직접 반박.
🧩 핵심 용어
-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종교개혁 슬로건. 전통이 아닌 성경만이 신앙의 권위를 가진다는 의미(화자 설명).
- 성도의 교재(교통): 사도신경에 나오는 개념으로, 과거·현재·미래의 성도가 함께 이루는 공동체적 연합.
- 진선미: 화자가 언급한 언어가 전달할 수 있는 진리·선함·아름다움이라는 가치.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s, 1993)는 C.S. 루이스와 아내 조이 데이비드먼의 실화를 다룬 영국 영화로, 화자가 언급한 "따분해 보일 수 있는" 영화라는 평가와 일치. G.K. 체스터턴은 20세기 초 영국의 기독교 변증가·작가로 『정통(Orthodoxy)』 등의 저서로 유명함(추정, 일반 배경지식). 로완 윌리엄스는 실제로 2002~2012년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냈고 이후 케임브리지 모들린 칼리지 학장을 역임했다(확인필요 — 영상 속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서 가르쳤다"는 표현은 정확한 소속·시기까지는 자막만으로 검증 불가).
- 사실 유의점: 자크 데리다가 "몇 권 읽었냐"는 질문에 실제로 "백 권" 또는 "내 권"이라 답했다는 일화는 화자의 구술 인용이며, 정확한 출처(다큐멘터리 제목, 발언 원문)는 자막만으로 확인 불가 — 추정/확인필요. 존 웨슬리가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겠다(homo unius libri)"고 말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인용이나, 그가 실제로 방대한 독서를 했다는 화자의 부연 설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부합함(확인필요 수준의 세부 근거는 자막에 제시되지 않음).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프랑스의 유명한 그 현대 철학자죠. 자크 데리다가 있는데요. 자크 데리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 흥미로운 장면이 나오는데요. 자기 개인 그 서제에 엄청나게 많은 책이 있겠죠. 인터뷰 하는 분이 물어봅니다. 여기 있는 책 중에 몇 권이나 읽으셨습니까라고 했죠. 엄청나게 많은 책이 있고 체계적인 철학자이죠. 데리다가 [음악] 고민하더니 하는 말이 백원이라고 얘기합니다. 비트켄슈타인이라는 유명한 철학자가 있는데 20세기 철학에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뽑히는데 [음악] 그 전기를 보는데 비트켄슈타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도 중요한 독서법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 읽어야지만 또 훌륭한 독서가라든지 훌륭한 사상가가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개신교인 하면은 보통 한 책의 사람 뭐 이런 식으로 말을 많이 합니다. [음악] 종교 개혁의 슬로건도 잘 아시다시피 오직 성경이죠. 예. 그 슬로건만 보면은 성경만 읽어야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직 성경이라고 [음악] 하는 그 슬로건의 원래 의미는 뭐냐면은 [음악] 제 직업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흔히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싶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은 저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요. 그리고 부모님 또 이공개의 출신이고 한국이라는 또 매우 치열한 입시 경쟁이 있는 곳에 있다 보니까 저는 책이라면은 이제 교과서가 다인 줄 알았고 교과서만 읽으면은 어 필요한 지식을 다 얻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까 어릴 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다. 특별히 이제 고전을 읽었다. 뭐 이런 분들을 보면은 예 제가 책을 많이 못 읽어서 좀 부끄럽기도 하고 또 많이 부럽기도 한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그 책을 가지고 학생들 가르치고 때로 책을 쓰는 그런 직업을 가지게 된게 조금 신비 같기도 하고 예. 하지만 이제는 책을 가지고 어떻게든지 학생들을 가르쳐야 되는 그리고 또 책을 가지고 글을 써야 되는 그런 직업을 갖기 때문에 어떻게 생존형 독서법이를 좀 익혔던 거 같고요. 거기에 대해서 조금 나눴으면 합니다. 뭐 이거 제가 뭐 책을 잘 읽는다라기보다는 책을 잘 못 읽고 책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책을 가지고도 밥 먹고 산다라는 것을 듣고 조금 위로를 얻는 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에 후무치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책은 왜 읽어야 되나라는 그 조금 그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어 무엇보다도 책은 저희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인간을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매우 특별하게 만드셨는데요. 그건 뭐냐면은 인간은 간접 경험을 통해서 많은 지식을 얻는 존재라는 겁니다. 어 제가 강아지를 키우는데요. 푸들인데 푸들은 아큐가 매우 높다고 그러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자기가 사람인 것처럼 이렇게 행동하기도 하고 그런데 특징적인 뭐냐면은 간접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얻지는 못합니다. 인간은 IQ가 높고 낮고 떠나서 간접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 특징이 있는 거죠. 근데 간접 경험을 통해서 저희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뭐냐면은 그리고 글이 모여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문명부터 책은 발전이 되어왔고 책은 다양한 매체의 형식을 통해 변화하면서 우리 삶에 계속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네. 근데 인간의 삶이 단순하진 않죠. 갈수록 삶이 복잡해지죠. 예전 같은 경우는 삶이 단순했을 때 그런 경우에는 뭐 저희가 알아야 될 정보가 많이 필요 없는 것도 있었지만 또 당시에는 삶에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힘과 폭력이었습니다. 근데 사회가 더 복잡해지고 그리고 우리가 단순히 힘과 폭력이 아니라 대화 그리고 설득 그리고 연구를 통해 가지고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죠. [음악] 그러다 보니까 책의 중요성이 더욱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저희가 많은 지식을 [음악] 얻을 필요도 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강조되는 것이 책을 많이 읽어라. 혹은 이제 문의력을 높여서 책을 [음악] 단순히 그냥 문자적 의미와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가지고 있는 아주 깊은 의미를 끌어내라. 그리고 [음악] 좋은 책을 읽어서 자기의 전문성을 높여라라고 계속 얘기하는 거죠.이 이 모드가 책이 우리의 생존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라는 [음악] 것에 방증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저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조금 더 실존적인 이유일 것 같습니다. 어, 영화 섀도우랜드라는 어떤 면에서는 좀 따분해 볼 수 있는 영국 영화가 있는데요. 영국의 유명한 그 기독교 작가이자 영문학자이죠. CS 루이스의 그 삶의 후반부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 보면은 그 CS 루이스가 가르치는 한 학생이 나오는데 그 학생이 아버지께 들었던 말이라고 하면서 나오는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라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뭐냐면은 나는 홀로 있지 않음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입니다. [음악]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란 거죠.이 이 말을 뒤집어하면은 인간은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희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성격이 내양형이냐 아니면 외양형이냐에 따라서 [음악] 더 많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인간 관계 좁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언젠가는 저희 홀로 죽음을 맞이해야 된 존재이고 [음악] 그리고 내 몸 안에 있는 고통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해도 알지 못합니다. 어, 예를 들면은 제가 그 대학교 다닐 때 그 저희지도 교수님이 늘 하셨던 말씀이 눈 친침해지기 전에 책 많이 읽어라라는 얘기였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그 말이 뭔지 몰랐죠. 그냥 돋보기 쓰고 책 읽으면 되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정작 눈이 침침해지니까 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학생들에게 눈 침침하기 전에 침침해지기 전에 책 많이 읽으세요라고 하는데 여전히 젊은 학생들은 그냥 제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웃고 넘어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몸과 몸이 구분된 존재이고 내 몸 안에서 나는 고통을 타인히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라든지 고통이라든지 이렇게 나의 삶에 가장 고유한 문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외롭고 그리고 고독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죠. 근데 그때 이런 대사가 매우 크게 다가왔습니다. 뭐냐면은 네. 나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 [음악] 그리고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 [음악] 많은 사람들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그 우리는 책을 읽는다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책을 통해서 나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커지고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공동체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함량이 될 수가 있겠죠. 그리고 또 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뭐냐면은 나를 넘어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기억력과 그리고 경험의 한계 때문에에 글을 쓰고 그리고 기록을 합니다. 그래서 고대 때 나오는 어떤 그 점토판에 나온 초기 형태의 책을 보면은 대부분 월급이 얼마다, 뭐 수학량이 얼마다 이런 것들 정보를 기억하 기록하기 위해서 나왔죠. 근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특징 중에 하나가 뭐냐면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게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는 진선미,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마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음악]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보면서 마음속에 뭔가 이상한 뭉클한 감정이 태어나기도 하고 그리고 논리적으로 잘 짜여진 글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에 [음악] 대해서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리고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우리가 또 유리적인 [음악] 행동 생각과 행동을 하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글은 단순히 정보가 아니라 진선미라는 매우 소중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근데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사람마다 책을 읽을 때 거기서 나타나는 해석의 차이가 있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은 어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넘어서서 [음악] 우리는 그을 통해서 나 자신이 그 글을 이해하고 적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음악] 끌어낼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글을 읽음으로써 다른 말로 하면 책을 접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가지는 원초적인 경험이 있겠죠. 예. 제가 직접 경험하는 거죠. 아,이 떡볶이는 맛있다. 뭐 이런 것들 강렬합니다. 근데 누가 쓴 그 리뷰를 보는 거죠. 거기 떡볶이 맛있다라고 하면은 맛있겠다라고 생각을 들지만 예, 강렬하지는 않는 거죠. 그렇지만 이런 그 이차적인 경험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네, 어떻게 어떤 떡볶이가 좋은 떡볶이고 어디 가면 맛있는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다양한 정보들을 또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원초적인 경험과 그리고 이차적인 경험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거죠. 근데 특히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나와 다른 세계에 살던 저자가 쓴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단지 그분이 쓴 문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살고 있는 세계 속에 들어갔다가 그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 공기를 마셨다가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서 다시 우리의 세계로 돌아오게 됩니다. 마치 여행을 하면은 지금까지 나를 구성해 주고 있던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를 알게 되고 [음악]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서이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넓고 다체로운 곳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리고 여행을 갔다 와 오게 됐을 때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올 때 한편으로는 아 집이 제일 좋구나라고 생각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행 [음악] 갔다 오고 그리고 갔다 오기 전과 후에 내가 달라져 있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음악] 과 비슷하게 다른 저자가 쓴 책에 책계 들었다 나오는 것은 이전에 나와 다른 좀 더 풍성한 자를 가지게 만들어 주는 다른 말로 하면은 [음악] 나를 넘어서고 나를 초월하게 해 주는 경험을 해 주게 합니다. 어 지금까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가지고 책을 왜 읽어야 되나 말씀드렸는데요. 일반적인 이유죠. 생존을 위해서 저희가 읽기도 하죠. 예. 그리고 홀로 있지 않음을 알기 위해서도 읽기도 하고요. 예. 그리고 나를 넘어서기 위해서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왜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또 조금 더 특별한 주제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 우리는 당연히 인류의 이론으로서 책과 함께 살아온 인류의 일원으로서 기독교인 또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또 흥미로운 건 뭐냐면은 하나님께서 신비롭게 현하시고 사람들의 정신에 신비한 지식을 넣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셨고 특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리고 그 이후 이스라엘 역사 그리고 이제 신약 역사를 보면은 어 고대 문명에서 그 문서 문화가 매우 발달했을 때 [음악]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시기 원하셨고 그리고 예언자들과 그리고 사도들은 그것을 글로 남겼다라는 거죠. 다른 말로면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서 인간의 언어와 [음악] 그리고 인간의 매체인 책을 선택하셨다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책이 가지고 [음악] 있는 중요성을 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 또 그런 역사적 사실이라 사실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 이후 기독교 역사를 보시면 알겠지만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우리가 읽고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를 당시에 있었던 문화들 특히 이제 문서 문화를 가지고 이제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전에 그 성경에 쓰일 때는 양피지에 쓰였다가 그 인쇄수이 발대되면 인쇄수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또 이제 인쇄하고 그것을 읽고 해석하려 그러고 거기에 대한 또 해설서들을 쓰기도 하죠. 그리고 재빠르게 디지털로에 문서가 바뀌었을 때 또 여러분들 많은 분들이 요즘에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가지고 성경을 읽고 계시죠.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고 말을 거는 방식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인간의 문서문화 그리고 문서를 해석하는 방식과 깊게 관절이 있다라는 것은 기독교인이 단지 예 성경만이 아니라 성경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문서문화와 함께 그 존재하는 그런 운명을 가졌다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조금 실천적인 질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은 무조건 많이 읽어야 될까라는 질문입니다. 예. 물론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습니다. 근데 전도서에 이런 말이 나오죠. 전도서 12장 12절을 보면은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라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은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실제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대화하거나 그리고 이제는 그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 사람들을 이제 학생들을 이제 가르칠 때 당혹감이 있습니다.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정보가 있을 때 그것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던 지식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그런 강박적인 모습들이 나타날 때가 있는 거죠. 책을 많이 읽었을 때 책을 통해서 더 넓은 자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을 자기 식대로 읽음으로써 자아를 더 가두고 있는 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독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 때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떤 식으로 어떤 마음으로 읽느냐도 중요합니다. 어 카프카가 명언으로 잘 알려져 있죠. 한권의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어야 해라고 [목을 가다듬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책은 도끼다라고 이런 식으로 이제 오늘날 또 줄여서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자기의 마음속에 굳어 있는 어떤 선입견, 세계관 이런 것들을 깨기 위해서 있는 것이에 좋은 독서법이 되는 거지 오히려 자기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에 자기가 갖고 있던 선입견 이런 것들을 강화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면은 책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그 책은 오히려 자기를 가두는 감목이 될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그 현대 철학자죠. 어 데리다 자크 데리다가 있는데요. 자크 데리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뭐 자크 데리다의 철학을 얼마나 좋아하고 안하고 떠나서 그 다큐멘터리에 흥미로운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건 뭐냐면은 자크데리다 유명한 철학자니까 분명히 자기 개인 그 서제에 엄청나게 많은 책이 있겠죠. 예. 그래서 그 인터뷰 하는 분이 물어봅니다. 여기 있는 책 중에 몇 권이나 읽으셨습니까라고 했죠. 엄청나게 많은 책이 있고 세계적인 철학자이죠. 데리다가 고민하더니 하는 말이 내건이라고 얘기합니다. 대신 그 내건을 매우 진지하게 읽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대리다는이 말을 진짜 책을 내건 읽었기 때문에 그 내 건 읽었다라고 말한 건 아니죠. 예. 많은 책들이 있지만 자기가 정말로 정성들여서 어 카프카의 표현을 그 빌리자면은 자기 속에 얼어 있는 그 무엇을 깨기 위해서 읽은 책은 내 권이다라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 그 나를 정말 형성하는 책, 나의 삶에 정말 깊은 자국을 남지는 책은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 다른 말로면 정보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그 책을 대하고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책을 많는 것은 어,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지만 또 단순히 많이 읽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또 사람들이 많이 던지는 질문 있죠. 그 현대 작가의 책과 오래된 책 중에 어느 것을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뻔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전을 읽어라라고 얘기합니다. 심지어 자기 책을 그 팔려고 홍보하려고 나온 작가들에게 책 추천해책을 추천해 주세요라고 하면은 고전들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이 있죠. 예. 그만큼 고전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어 제가 더 부연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이제는 그 오래된 책과 그리고 어 최근에 나온 책 어느게 더 좋으냐라고 했을 때이 두 개는 사실 양자 태일의 문제는 아닌 거 같고요. 어 중요한 거는 어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아까 제가 언급해 드렸던 CS 루이스 같은 경우는 자신의 독서법을 소개하면서 한 권에 오래된 책을 읽으면은 한 권의 현대 책을 읽어라고 하면서 어떤 편식이 아니라 균형 있게 읽는 것을 중요시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CS 루스는 오래된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된다라고도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은 그 오래된 책을 읽어야 되는 예 고전 특히 고전이라 부린 책을 읽어야 되는 이유를 이제 몇 가지로 요약을 해 봤는데요. 첫 번째 고전은 예, 인간 삶을 형성하고 그리고 문명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이 고전을 잊는다면은 단순히 한 작가의 그런 생각을 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작가의 인생관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어,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 그리고 그 그 문제에 대해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들 그리고 문명을 이루는 그런 근원적인 질문들 이런 것들을 이제 만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고전이겠죠. 다음으로 이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 현대 작가들한테 어떤 책을 추천하나요? 그럼 주로 고전을 이야기합니다. 왜냐면 현대 작가들도 고존을 통해서에 자신이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글 쓰는 법을 훈련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려고 그러더라도 예 그들의 사상과 그들의 글 쓰기에 뿌리가 되고 바탕이 되었던 고전을 잘 알아야지 그 현대 작가의 작품들도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데요. 그 뭐냐면 현실 현대 작가들이 쓴 글들은 어 저희의 삶에 더 가깝게 다가고올 수 있죠. 근데 그 글들은 아직까지 검증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책들은 수십년, 수백년 동안 수많은 작가들, 평론가들 혹은 이제는 선생님들의 평가에 그리고 비판을 견뎌낸 책들이죠.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다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현대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도 있지만 현대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다르게 또 오래된 책은 그 세월을 통한 검증이라는 결차를 거쳤기 때문에 오래된 책을 읽을 때 유익이 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은 오래된 책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은 그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책을 읽을 가치를 간접적으로 증명해 준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왜 오래된 책을 읽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렸는데요. 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또 특별히 오래된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세계사를 보면은 여러 제국과 문명들이 사라졌다 없어지기를 이제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 근데 그리스도교는 2,년 동안 계속해서에 지속되고 있죠. 단순히 종교가 지속되는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문명을 이루고 그리스도가 문명을 이룬 상태에서 계속해서 예 그 역사가 흘러오는 것을 볼 수가 있겠죠. 그래서 DK 체스턴이라는 영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기독교 변직론자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이렇게 지속되는 거는 기독교 문명 자체에 뭔가 특별한게 있어서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라고 [음악] 얘기하고요. 대신에 이제 체스터의 말은 뭐냐면은 기독교가 죽고 다시 살아나기를 [음악] 반복한 것이다. 죽고 살아나기 반복했던 이유는 그리스도 교회는 무덤에서 나오는 길을 아는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음악] 얘기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은 그 부활의 하나님이 계셨고 그 [음악] 부활의 하나님이 그 계속해서 기독교의 새로운 생명력을 주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어 2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새로운 문화 속에서 새로운 언어권 속에서 살아남을 [음악] 수가 있었던 거죠. 그 하나님이 역사를 어떻게 만드셨는지를 간접적으로 증언해 주는 책이 바로이 기독교 고전들입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그 단순히 우리 눈앞에 보이는 흑망성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서 들어와서 활동하시면서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이끌고 계신지를 볼 수 있는 더 큰 시야, 긴 호흡을기를 수가 있게 되는 거죠. 근데 현대책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현대책을 가지고 우리는 오늘날 현대 교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그리스도인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중요한 팁들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근데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 살아가고 살아남을지를 고민하기 위해서 어 최근에 쓰인 책만 본다면은 기독교가 다시 살아나고 죽었다 다시 부활하고 재생하고 이런 모습들이 교회가 잘하기 때문에 혹은 몇몇 교회 리더들이이 현실에 잘 적응하기 때문에 생각할 정도로 저희의 시야가 협소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저희가 오래된 책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문명을 이끌어오셨는지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교회와 그리고 역사와 그리고 개견의 삶이 단순히 각자가 가진 힘과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다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더 큰 시야를 얻게 됩니다. 기독교인이 오래된 책을 읽어야 될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대할 때 과거는 그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상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기한 생각들 그리고 기한 사람들네 그리고 어 기한 나라들 뭐 귀한 행동들이 있는 곳이 바로이 과거이죠.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우리에게 낯설고요. 예 그리고 그 과거를 접할 때 우리는 나가 지금 현재 살아가는 모습이 당연하지 않구나. 자명하지 않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책을 읽는다라는 것은 어 세상을 보고 세상을 살아간 나의 방식이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을 인정하게 되는 자기 비움의 훈련이 되게 됩니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접하게 되고 나의 생활 방식이 어 당연하지 않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자기 미움이 예책을 읽을 때 가능하다라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매우 독특한 책 읽기 관점 책 읽기의 관점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또 기독교인은 또 특별한 점이 있죠. 그건 뭐냐면은 그 과거에 있었던 성도나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성도나 미래에 살아갈 성도가 함께 성도의 교재를 이루고 살아간다라는 거죠. 그 사도신경에서 보더라도 교회를 정의할 때 거룩한 공교회와 그리고 성도의 교재와를 믿는다라고 되어 있죠. 기독교인이 책을 읽는다라는 거는 단순히 그 옛저가 쓴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해서 옛저와 지금의 나가에 지금의 그 독자겠죠. 성도의 교재 안에 들어간다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책은 나의 한계를 보게 하고 또 성도의 교재 안에 들어 있는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게 합니다. 보통 우리는 그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생각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하기 쉽죠. 그리고 나에게 좀 불편한 생각 하는 사람 책이 있다면은 그 책을 접어두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성도의 교재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은 어 교회에 의만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교회는 나 단지 나와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어떤 죄인들의 모임이 또 교회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다 옳은 생각, 옳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의 교재 안에서 저희가 책을 린다는 거는 것은 무엇이냐면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하고 있더라도 어 [음악] 그 다름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인정할 수 있고 어 그 다름을 통해 가지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음악] 어 책을 읽게 된다라는 그런 좀 더 성숙한 독서 자세를 만들어내는 거죠. 로안 윌리암스라는 켄타베를 대주교도 했었고 그리고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음악] 가르치기도 하셨던 분이 계신데요. 어 로한 윌리엄스가 기독교 고전기는 기도 그리고 금식 그리고 성경 말씀 듣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라고 이야기를 [음악] 합니다. 그런 의미를 의미해서 그리스도인이 고전에 읽는 것은 단순히 교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에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자기 [음악] 비움 그리고 영적 성숙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책을 읽을 때 현실적인 문제 하나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뭐냐면은 읽어야 할 책과 그리고 읽고 싶은 책. 그중에 무엇을 읽어야 하느냐? 읽고 싶은 책과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이 이 둘의 그 경쟁 구도는 인류 역사에 계속될 것 같고요. 어 만약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면은 어 아마도 읽어야 할 책을 읽어라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읽어야 할 책만 읽는다면은 어 인간의 문명은 매우 어 멋 없는 방식으로 발전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어 유학 시절에 여러 교수님들을 만났죠. 그중에 1부는 뭐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어떤 대가의 위치의 이름은 분인데요. 그분들한테 이제 어떻게 해서 공부를 하게 되셨나요? 신학을 하시게 되셨나요라고 물어볼 때 많은 분들이 했던 이야기가 뭐냐면은 어 그냥 우연히 책을 끄집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이 나를 신학으로 이끌었다. 나를 공부하는 사람을 이끌었다입니다. 만약에 그분들이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꼭 읽어야 될 입시에 필요한 책만 읽었다면은 아마 그분들은 예 [음악] 나오고 그냥 필요한 일을 하시는데 끝 수도 끝이 수도 있겠죠. 그분들이 읽고 싶은 책을 읽었고 그 읽고 싶은 책 때문에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경험을 [음악] 했고 그분들이 세계적인 학자로서 활동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이렇게 신학이라든지 입문학이라든지 이런데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우연히 교회 도서관에서 어 [음악] 읽게 된 어떤 철학 동화 때문에 어 이런 세계가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그때부터 [음악] 조금씩 이제 책을 읽게 됐던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아까도 [음악] 말씀드렸듯이 책이 반드시 저자가 쓴 의도대로만 익히는 건 아니거든요. 책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에 [음악] 피어나고 그리고 자라는 곳은 어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 [음악] 그리고 무언 것을 알고 싶다라는 호기심이 바로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얘기치하는 [음악] 방식으로 끌어내는 바로 그 계기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이 인류의 문화의 그 발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들은 뭐냐면은 쓸데없는 일에 대한 헌신 그리고 어 이거 하면은 어 그냥 멋있어 볼 것 같은데 이거 하면 좋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허형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인류의 삶을 더욱더 다체롭고 얘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끌어간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신용적이지도 않고 그리고 셀더가 안 되더라도 그 책을 쓰고 출판할 수 있는 문화가 더욱더 사상이 다양해지고 그리고 생각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듯이 어 신용적이지 않는 책도 있고 그리고 많이 팔리지 않는 책도 출판이 되고 그것이 읽히는 문화가 형성이 될 때 어 교회도 더욱더 건강한 그런 독서 문화가 생기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봅니다. 지금까지 드렸던 말씀을 조금 정리해 보겠습니다. 뭐 개신교인 하면은 보통한 책의 사람 뭐 이런 식으로 말을 많이 합니다. 그 존 웨슬리가 자기가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해서 그 말을 썼는데 사실 존 웨슬리는 그 말 해 놓고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어 종교 개혁의 슬로건도 잘 아시다시피 오직 성경이죠. 예. 그 슬로건만 보면은 성경만 읽어야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직 성경이라고 하는 그 슬로건의 원래 의미는 뭐냐면은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권위를 가진다라는 의미였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오직 성경이란 것을 성경만 읽고 다른 책을 읽어도 읽으면 안 된다라는 식의 어떤 지적인 게으음을 정당하여 주는에 그런 그 표현으로 오해대가 되면 안 될 것 같고요. 오히려 그 성경은 삶의 한 부분을 어 책으로 문자로 예 혹은 이제 문서로 채워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어 새로운 방식으로 긍정해 준다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각 사람에게 비밀리에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책을 허락하셨고 그 성경을 읽고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더 헤아리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형성되기를 이제 바라셨던 거죠.에 책 역시 만만한 존재는 아닙니다. 유료 역사를 보면 책 역시 인간의 삶에 착 붙어 있으려고 계속해서 자기의 모습을 바꿉니다. 처음에는 점토한 형태로 있었다가 그다음에는 어 양피지 형태로 가축의 가죽의 형태로 있었다가 그다음에 파피루스 예 섬유질의 형태로 붙어 있었다가 그다음에 이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예 책의 형태로 나왔다가 거기로 끝날 줄 알았던 책이 또 디지털화 되어 가지고 계속해서 인류의 삶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겠죠. 그만큼 인류와 책은 공생의 관계에 있다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을 가진다라는 거는 오직 성경만 읽고 다른 책을 읽어도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 신앙을 통해서 책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의 어떤 인간으로서의 모습, 인간 다움을 긍정하고 그럼으로써 어 우리가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고 일상을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음악] 입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