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ristian Perspective on the Anger of 'Angry People' | Pastor Seonghyeon | Jaljalbeop Episode 269

잘잘법 · 2026-07-29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8bzJr1bkFM | 길이: 27:49

요약

🎯 TL;DR —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 속 두 주인공의 분노 서사를 통해, 분노는 참아야 할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깨어진 관계와 공동체성의 위험 신호이며 성경이 말하는 "분을 품지 말라"는 명령의 진의는 서로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여 관계를 회복하라는 부탁임을 설명한다.

📌 핵심 논지 — 화자는 분노를 그냥 참거나 뭉개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화를 내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드라마 『성난 사람들』 속 데니와 에이미의 이야기를 통해 분노가 개인의 깊은 상처와 사회적 압박에서 비롯됨을 보여주고, 에베소서 4장을 근거로 분노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 영상 구성

  • 드라마 소개: 사소한 접촉사고에서 시작된 보복 운전과 확전되는 전쟁
  • 두 주인공(데니·에이미) 각자의 내면 상처 조명
  • 광야 고립 사건과 극적인 화해
  • 성경 본문(엡4:25~26) 해석
  • 사회·교회 공동체를 향한 화자의 적용 제언

━━━ 본문 ━━━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줄거리와 전개 화자는 2023년 미국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을 소개하며, 자살 도구를 환불하러 갔다가 실패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 흰색 SUV와 충돌 직전 상황을 겪은 덴니(스티븐 연 분)와, 그를 보복 운전으로 자극한 에이미(윌리 엉 분)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데니가 배관공 신분으로 에이미의 집을 찾아가 화장실에 소변을 보고, 에이미가 악성 리뷰로 보복하는 등 조그마한 접촉사고에서 시작된 분노가 서로의 가족·배우자까지 끌어들이며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과정을 화자는 생생하게 묘사한다.

두 사람 내면에 쌓여 있던 상처 화자는 드라마가 단순히 분노의 전개만이 아니라, 두 사람 내면에 이미 자리하고 있던 상처와 분노가 사고를 계기로 분출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데니는 이민 사회 한인 남자·장남으로서 경제적 벼랑 끝에 몰려 있었고, 한인교회 찬양 예배에서 자신도 모르게 오열하는 장면은 은혜받은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랜 긴장이 풀리며 눌려 있던 슬픔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해석한다. 에이미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서 늘 친절한 미소를 요구받았지만, 부친의 외도를 목격했고 부모에게 상처를 꺼내려 해도 "그때 얘기 꺼내지 말라"는 말로 묻혀 버린 경험이 있으며, 권총에 집착하는 모순된 행동으로 내면의 스트레스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화자는 이를 "미국 사회, 현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의 문제로 규정한다.

광야 고립 사건 — 진짜 대화의 시작 화자는 두 사람이 사고로 광야에 고립되고, 독초를 잘못 먹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에이미가 데니의 말이 나오고 데니가 에이미의 말이 나오는"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강조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행복해지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안 숨겨도 돼, 괜찮아" 같은 진짜 속마음을 꺼내기 시작한다고 전한다. 화자는 이 감독(이성진)이 영향받았다고 언급한 융의 대사 "어둠을 통하지 않고는 빛을 드러낼 수 없다"를 인용하며, 이성이 완전히 풀린 순간 비로소 무의식 속 사랑받음과 인정받음의 욕구가 발산되었다고 해석한다. 이후 총상으로 의식불명이 된 데니의 병상에 에이미가 조용히 올라가 안기고, 마지막 순간 데니의 손이 그녀를 감싸는 장면으로 드라마가 끝난다고 소개한다.

성경 본문 해석 — 분노는 관계의 문제 화자는 에베소서 4장 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는 말씀을 사람들이 흔히 '화내지 말고 참으라'는 뜻으로 오해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앞의 25절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와 이어지는 절의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라"와 한 단락으로 읽어야 본뜻이 드러난다고 설명하며, 분노는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가 끊어지거나 손상되었을 때 나타나는 신호라고 주장한다.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는 건 관계가 끊어질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이며, 그 깊은 곳에는 "나 좀 살려주세요", "당신과 연결되고 싶다"는 표현이 격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와 교회를 향한 제언 화자는 드라마 속 에이미가 남편에게 어려움을 호소할 때마다 "감사하라"는 말로 입이 막힌 사례를 들며,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불편한 이야기가 나오면 서둘러 화제를 돌리거나 "좋게 모였는데 왜 이래"라며 봉합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화자는 제도와 사회적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구성원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며, 크리스천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 "분노 유발자"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피스메이커"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핵심 수치

  • 드라마 제작연도 = 2023년 (시즌1), 시즌2 = 2026년 4월 공개(화자 언급)
  • 수상 = 2024년 에미상 작품상·남녀 주연상·연출상 포함 다수 부문 수상(화자는 "팔계 부문"이라 언급)
  • 에피소드 구성 = 화자 언급상 1화~10화(광야 사건은 8화 부근, 진짜 대화 장면은 9~10화)

💬 결정적 발언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에베소서 4장 26절, 화자가 재해석의 근거로 제시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라" — 화자가 4장 26절의 본뜻을 밝히기 위해 함께 제시한 구절

"어둠을 통하지 않고은 빛을 드러낼 수 없다" — 이성진 감독이 영향받았다고 언급한 융의 대사, 화자가 인용

"분노는 엄밀히 말하면 관계가 건강하지 않을 때 튀어오르는 관계의 위험 신호예요." — 화자의 핵심 주장

⚖️ 화자가 다룬 반론·한계

  • 화자는 이 드라마가 초반부(1화 근처)에는 욕설이 많고 갈등 강도가 세서 시청자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 그럼에도 화자는 "구학까지는 너무 시끄럽다"고 표현하며, 후반부(광야 사건 이후)까지 참고 봐야 드라마의 전모가 드러난다고 언급한다.

🧩 핵심 용어

  • 로드 게이지(road rage) =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분노에 찬 보복 운전 행위
  • 성난 사람들(Beef) = 화자가 다룬 미국 드라마 제목, 분노를 집중 조명한 작품
  • 피스메이커(peacemaker) = 화자가 언급한, 분노하는 세상 속 교회가 지향해야 할 역할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성난 사람들(Beef)』*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이성진(Lee Sung Jin) 감독, 스티븐 연·앨리 웡(윌리 엉으로 자막 표기됨) 주연작이다. 영상 속 "윌리 엉"이라는 표기는 배우 앨리 웡(Ali Wong)의 이름이 자막에서 잘못 전사됐을 가능성이 높다(자동생성자막 특성상 발음 오류로 추정).
  • 사실 유의점: 에미상 수상 부문 수("팔계 부문")와 시즌2의 정확한 공개 시점·출연진 구성(송강호·윤여정 참여 여부)은 자동생성자막 기반 요약이라 정확한 수치·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특히 *『Beef』*는 시즌마다 스토리·배우진이 바뀌는 앤솔로지 형식으로 기획되었다는 보도가 있어, 시즌2의 캐릭터 연속성 여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추정/확인필요).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하나님은 당신이 분노하는 거 싫어하니까 분노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예쁜 감정 갖기 원해요. 감사하는 만 갖기 원해요. 그래서 내 감정에 그냥 아 내가 분노하면 안 되지 해서 참아 버리는 거죠. 뭉개 버리는 거죠. 자 그냥 참는다고 될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죠. 우리가 분명히 화를내는 어딘가의 이유가 있단 말이에요. 성경에서도 단지 우리에게 감정 조절을 잘하라는 의미에서 분을 품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닐 거란 말이죠. 분노에 대해서 아주 집중적으로 조명한 드라마인데요. 제목 자체가 이미 성난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의 분노가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고 이것들이 어떻게 관계와 사회를 망치는지를 보여주고요. >> 그럼 한마디로이 영화는 어떤 영화일이다 하면 뭐라고 하실 것 같은데요? >> 음. >> 분노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 아니죠.이 이 성 사람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분노에 대한 영화가 아니고 사람을 이해하는 [음악] 사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음악] 최근에 여러분들 크게 화를 내신 때가 언제였나요? 어떤 이유 때문에 화를 내셨나요? [음악] 다양하겠죠. 누군가 나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내가 오랫동안 참기도 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가 심리적으로 나름의 공격을 하는 것이 분노이고 화죠. 자,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떠셨어요? >> [콧방귀] >> 아마 그렇게 좋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분명 내가 처음에 화를 내려고 할 때는 내가 이렇게 이만큼 화를 내면 상대방이 주눅이 든다든지 또는 내게 사과를 할 기대를 하면서 보통 우리가 화를 냅니다. 하지만 막상 화를 내면 상대방은 내가 화를 내면서 했던 이야기들의 허점을 파고 들거나 또는 내가 잘못했던 것들을 되려 공격하면서 반격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거기다가 화를 했기 때문에 내 이미지도 안 좋아지는 경우들이 많죠. 자, 별로 얻는게 없어요. 화를 내면.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이렇게 화를 내고 분노하면서 살아갑니다. 개인만 그런게 아니고요. 집단과 집단끼리도 그러고 국가와 국가끼리도 이렇게 분노와 화가 점철된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좀처럼 화가 없어지지 않아요. 자, 그래서 오늘 저는이 화 분노를 과연 신앙적 측면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를 한번 고민해 보려고요. 드라마 한편을 선정해 봤습니다. 분노에 대해서 아주 집중적으로 조명한 드라마인데요. 제목 자체가 이미 성난 사람들입니다. 2023년에 만든 미국 드라마인데요. 그다음에 2024년에 미국의 방송에서 아주 권위를 가지고 있는 애미상에서 작품상, 남녀 주연상, 연출상을 비롯한 팔계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 그리고 대중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입니다. 그 때문인지 올해 2026년 4월에도 시즌 2가 제작돼서 공개됐죠. 한국의 송광 배우와 윤여정 배우도 참여해서 화제가 됐던이 시리즈입니다. 자, 시즌 1은요.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이 영화를 연출했고요. 미나리라든지 옥자 이런 영화에 출연했던 한국계 스티븐 이연 그리고 아시아계인 윌리 엉이라는 여배과 함께 참여하면서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드라마가 시작하면 연이 맡은 [음악] 덴니라는이 남자 주인공이 그 자살하려고 했던 도구들을 가지고 마트에 갑니다. 환불하려고요. 자살 기획이 실패했거든요. 그런데 캐슈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영수증이 없어서. 그래서 자살도 실패하고 그리고 물건을 반품하는 것도 실패합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자동차를 타고 나가려고 그러는데 흰색 SUV가 충돌 직전에 아주하게 됩니다. 화가 났어요. 서로 경을 흘리고 서로 사돼지를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서로 간의이 보복 운전이 시작됩니다. 일명로드 게이지라고 하는데요.이 이 도로 위에서 서로 간의 분노의 찬 운전을 합니다. 아주 위험한데요.이 내리가 아주 화가 많이 났어요. 근데 이때 추격을 하면서이 흰색 SUV에 자동차 넘버를 찍어 놨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검색을 합니다. 주소를 알아내요. 그리고 본래 대니의 직업이 배관도 고치고 전선도 고치는 집에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을 다 고칠 수 있는 수류공이에요. 그래서 에이미의 집에 가서 배를 누릅니다. 모른 척하고요. 친절한이 배강공에 제안에 에이미는 순순히 집을 열어주고 집곳을 살펴보다가 데니가 잠깐 화장실을 이용해도 되는지를 물어봅니다. 그리고 데니가 그 고급 집인 에이미 집의 화장실에서 너무 유치하게 소변을 여기저기 누게 됩니다. 뒤늦게이 사실을 안 에이미가 길이 화가 납니다. 이미이 남자가 누군지를 알아챈 거죠. 베니는 에이미를 놀리면서 자동차를 타고 다시 도주합니다. 자, 이때 또 에이미가 데니의 차 번호를 찍습니다. 그리고 다시 검색을 하죠. 알고 봤더니이 집집마다 수리한 배강공임을 알게 됩니다. 에이미가 다시 보복에 나섭니다. 악성 댓글을 달기 시작합니다. 악성 리뷰를 답니다.이 가게 이용하면 안 된다라는 리뷰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데니는 피해를 입습니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는데 이들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에이미와 데니가 서로 간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합니다. 에이미는이 프로필을 몰래 숨겨서 SNS로 데니의 남동생에게 연애를 신청합니다. 그리고 베니는 자전거 동호회에서 남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우정을 맺기 시작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뭔가 보복을 가하는 관계들이 시작됩니다. 끝이 안 나는 거예요. 자, 조그 불곳에서 시작됐던 이들의 분노의 전쟁이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제 1화에서 단순한 자동차 접촉 사고에서 끝나 버릴 것한 끝나 버릴 법한 일들이 너무나도 걷자 수 없이 커져 가는 과정을이 드라마는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자, 이것이이 드라마의 첫 번째 줄기인데요.이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요. 두 번째 줄기를 같이 보여줍니다. 그것은 두 사람 내면 안에 가득한 상처와 분노가 이미 자리잡고 있었고요. 그것들이 자동차가 충돌할 뻔한 사건을 토대로 분출된 것이다라는 것들을 아주 면밀히 보여집니다. 우선이 대니의 상처로 보면요. 시작할 때부터 그가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고 할만큼 경제적으로 벼랑 끝까지 몰립니다. 그리고 이민 사회에서 한인 남자로서 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책임감이 무척 강했어요. 그러니까 대니의 삶은 항상 치열하면서 긴장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죠.이 이 드라마 중반부에요. 데미가 좀 다른 목적으로 한인교회를 찾아가는데 그 교회에 들어서서 찬양팀의 찬양 예배에 참여하면서 데니가 처음에는 낯설라 하다가 찬양 속에서 갑자기 우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무나도 크게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와서 모든 사람들이 대니를 보면서 우리 신앙적 표현으로 굉장히 은혜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측면보다 사실은 대니는 교회 그 환대하는 분위기 따뜻한 어떤 안식처 같은 그곳에서 그 간의 긴장이 풀리면서 내면 안에 있던 깊은 그 슬픔과 눌려 있던 것들이 터져 오른 것이었죠. 자, 그러면 에이미는 어떤가요? 에이미는요. 대니와 다르게 미국 사회에서 나름 성공한 여성입니다.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식물 세라피를 운영하는 회사를 이제 막 성장시켜서 기업에 매각하면서 큰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기 직전입니다. 하지만이 과정에서 에이미가 치료된 대가들이 너무 많았어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여야 되고 남편과 시어머니와 딸에게 늘 좋은 엄마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늘 입가가이 웃는 모습이에요. 하지만 에이미의 내면 역시 만만치 않게 분노와 스트레스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친절한 미소를 짓는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에이미는 놀랍게도 권총에 집착을 합니다.이 이 권총을 굉장히 소중하게고 권총을 통해서 위안을 받는 그런 모순된 행동을 보입니다. 다이 에이미 삶 가운데 있는 상처죠. 성장 과정에서 에이미는 어 부친의 외도 장면도 목격했고요. 정말 사랑받아야 될 때 받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뭔가 모범생적인 삶을 살아와야 됐던 긴장이 에이미 삶에 가득했던 거예요. 막상 부모님께 찾아가서 그때 일을 꺼내고 뭔가 치유를 받으려고 할 때조차도 부모님은 그때 얘기 꺼내지 말라고 합니다. 묻어두려고 해요. 에이미는 성공과 행복한 사람의 표준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을 요청받지만 정작 내면 안에서는 평안함이 없었던 것이죠.이 두 사람이 그런 가운데에서 도로 위에 만나고 터져 버렸던 것이죠. 결국 이들의 이야기들은 한 개인이 성격이 좋지 않아서 분노가 폭발한 것이 아닌 그 미국 사회 안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개인과 개인이 짊어져야 되는 무게를 감당하다가 어느 순간에이 두 사람이 만나면서 터질게 터졌던 것이죠. 반드시 그 대상이 데니는 에이미가 아닐 수도 있었어요. 에이미도 데니가 아닐 수도 있었어요. 단지 그 대상이 서로에게 어느 시점에 만났을 뿐이었던 것이죠.이 이 드라마는 그래서 한 사람의이 분노가 단지 개인의 순간 총동적인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임을 아주 면밀히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분노를 계속 보여주는 이야기가 시청자 입장에서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갈수록 강도가 세지거든요. 욕설도 좀 많고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의 자극적인 양면들이에 있어서 어이 드라마를 쭉 따라가다 보면 좀 마음에 부담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이 드라마가 단순히 분노를 사람들에게 자극하고 뭔가 말초적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님이이 드라마의이 전모가 드러납니다. 구학까진 너무 시끄러워요. 드라마가 너무 욕설도 많고 너무 사람들 속에서이 이야기들이 엉켜 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시파에 [음악] 어떤 사고를 통해서 광야로 내던져집니다. 아무런 운전 수단도 통신도 다 단절된 [음악] 상태로 고립돼 버립니다. 남은 건 두 사람이에요. 처음에 두 사람은 서로 간의 아주 적대적인 관계를 주제합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서이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두 사람이 [음악] 서로 전략적인 동맹을 맺어야 된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이들은 이곳을 빠져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해요. 다름 아닌 허기를 달리기 위해서 먹었던 풀이 복처였던 거예요. 오바이토 하면서 죽을 꼬비를 넘기게 되면서 서로 간의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이전까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서로의 적대감과 긴장들이 무너져 내리면서이 혼미안 속에서 대사가 바뀌어요. 에이미가 데니의 말이 나오고요. 데니가 에이미의 말이 나옵니다. 시청자들은이 두 사람의 말이 합쳐져 나오기도 하는이 순간을 보면서 아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구나로 접어드는 걸 보게 돼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혼미한 가운데서 이들이 서서히 의식을 차리는데 이때 이들은 구하 도시 생활 속에서 그렇게 화려하고 번잡스러울 땐 보이지 않았던 속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자기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해요. 이제 어쩌면 두 사람은 살아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이제 더 이상은 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 처하거든요. 그때 비로소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야기를 건내기 시작합니다. 행복해지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네 인생이 보여 [음악] 안 됐다. 안 숨겨도 돼. 괜찮아. 진지한 이런 대화 좀 자주 할 걸. >> [음악] >> 난 내 모습을 아무도 못 보면 좋겠어. [음악] 어디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사람은 움어들게 [음악] 돼. 더 자주 이럴 걸 아깝다. 그래도 한 번은 했잖아. 참 좋다. 자, 어떻게 보면요. 일상에서 사실 이런 대화하면 굉장히 낙살스러울 수 있어요. [음악] 좀 민망할 수 있어요. 그런데이 드라마는 두 사람이 이런 내면의 대화가 드러날 때까지의 1화부터 9까지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음악] 서사가 쌓이면서 마침내이 시파에서 광야 한가운데에서 아무도 이제이 두 사람을 돌볼 수 없는 이곳에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회적인 [음악] 또 내 개인의 성취 노력들이 다 어 [콧방귀] 허사가 된 없는 빈털털리가 된 그곳에서 [음악] 아침내이 이야기를 꺼내게 만들면서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저거 내 얘긴데 나도 저에게 듣고 싶었는데 [음악] 저에게 나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데라는 이야기를 끄집어냅니다. [음악] 그리고이 두 사람이 이곳을 통하여서 진짜 대화가 무엇인지 어쩌면 이들이 정말이 대화를 한 번이라도 들었다라면 이들의 분노가 누구로 들었을 이들이 사회를 향한 긴장이 좀 더 편해졌을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서로를 향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서 하게 됩니다. 너무 놀라운 거죠. 이화에선 정말 만나면 안 되는 원수 같았던이 두 사람이 어느새 9학까지 전쟁을 치르고 마지막 10파에서 소위 말하는 소울메이트가 되는 거예요. 왜냐면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심지어 자기 자신도이 속에서 올라오는 얘기를 막았던 그 이야기를 들려줬던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죠.이 이 영화를 연출했던 이성진 감독이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하는이 융의 대사가 시파에 나오거든요. 음. 어둠을 통하지 않고은 빛을 어 드러낼 수 없다라는 이런 대사가 나와요. 그런 거죠.이 이 두 사람이 깊은 이화부터 구하까지의 깊은 어두움 그리고 더 본격적으로 광야에 떨어져 깊은 어두움에 들어가자 그들이 그동안 숨겨 왔었던 보려고 해도 보지 못했었던 진짜 빛을 발견하게 된 거죠. 심지어는 그들이 가지는 이성조차도 끊임없이 체면을 차르려고 하니까 그 영화적 장치겠지만 그들이 실수로 독초를 먹어서 이성이 완전히 끈이 놓아지는 순간 비로소 내면 깊은 곳에 있었던이 존재에서부터 비롯되어지는 내 삶 가장 밑바닥에서 듣고 싶었던 무의식 가운데 잠재돼 있던 사랑받음에 대한 욕구 인정받음에 대한 욕구들이 비로소 발산되어졌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들이 광야에서 구출되었을 때이 에이미의 남편이 실수로 쏜 총에 맞아 데니는 의식 불명이 됩니다. 그리고이 에이미와 데니는 함께 병상에 있게 됩니다. 데니는 의식이 이른 채 병상에 누워 있고 그 옆을 에이미가 간호하듯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 몰라요. 근데 그 옆에서 지켜보던이 에이미가 마침내 마지막 순간 조용히 데니의 병상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데니의 품에 [음악] 안깁니다. 그리고 영화는 끝나가는데요. 맨 마지막 시점에 기적처럼이 데니의 오른손이 에이미의 몸을 [음악] 감싸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가 되어집니다.이 처음 일부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음악] 시파에서 이들이 정말 원수에서 영혼의 친구로 넘어가는이 과정이 너무나도 기적처럼 보이는 그런 드라마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이 드라마를 보면서 [음악]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이 분노에 대해서 마치이 드라마는 종합 검진을 하는 거 같았어요. A부터 Z까지.이 [음악]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삶의 모든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보여주고 그 이야기들로 인해 이들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보여 주는 거죠. 성경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음악]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는 말씀이 있거든요. 화내지 말라는 거예요. 분내지 말라는 거예요. 보통 우리가이 말씀 때문에 [음악] 누가 화를 낼 때 아 내가 지금 말씀을 어기는 건가? 분내지 말아야지. 또 누가 분내면 화내지 마. 참아라는 얘기를 많이 한단 말이에요. 자, 그냥 참는다고 될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죠. 우리가 분명히 화를내는 데는 어딘가의 이유가 있단 말이에요. 성경에서도 단지 우리에게 감정 조절을 잘하라는 의미에서 분을 품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닐 거란 말이죠. 4장 26절에이 말씀은요. 바로 앞절 말씀과이 단락이 있는 맨 마지막 절이 합쳐져야지만이 본 뜻이 드러납니다. 4장 25절에요. 이렇게 표현돼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라. 자,이 말씀은요. 한 사람이 분노할 때 왜 분노를 하느냐?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라는 거예요. 관계가 끊어지거나 관계가 어렵기 때문에 그 속에서 분노한다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는 건 관계가 끊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하는 거예요. 또는 관계가 손상되는 것들을 감하고라도 내가 화를 내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화를 낼 때 당신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요. 정말 이것들이 관철이 되길 바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우리가 화를 낼 때 상대방이 그저 화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이 드라마의 첫 장면처럼요. 길거에서 만나는 다시는 안 만날 것 같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우리가 화를 낸단 말이죠. 자, 이건 뭘 의미하느냐? 분노는요. 그냥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분노는 관계와 관련이 있고 분노는 공동체와 관련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한 사람이 분노라고 있다라는 건 그냥 개인이 성격이 안 좋아서 분출하는 걸 너어해서 그 사람 깊은 곳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나 좀 살려 주세요라는 얘기가 올라오는 거예요. 또 누군가가 나에게 분노한다면 사실 그 깊은 곳에는요. 동일하게 살려 달라는 또는 당신과 연결되고 싶다라는 의사 표현에 격한 반응인 거죠. 성경의 진의 그러니까 [음악] 분노하지 말라고 했을 때도 단순히 감정을 착하게 하라 정도가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은 당신이 분노하는 [음악] 거 싫어하니까 분노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예쁜 감정 갖게 원해요. 감사하는 마음 갖기 원해요. 그래서 내 감정에 그냥 컨트롤만 이것들을 생각해서 아 내가 분노하면 [음악] 안 되지 해서 그냥 빨리 그것들을 정당한 방법으로 해수하는게 아니고 참아 버리는 거죠. 또는 그냥 뭉개 버리는 거죠.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진정한 내 감정 이것들과 대화를 못 하게 만들고요. 또 하나이 분노하지 말라고 했을 때이 에베소서 4장 전체에 드러나 있는이 공동체성과 관계성 안에서이 분노가 드러난다는 건 결국은 관계성이 파괴된 하나의 신호라는 거죠. 그래서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들이 궁극적인 방향인 거죠. 분노는 엄밀히 말하면 관계가 건강하지 않을 때 튀어오르는 관계의 위험 신호 거예요. 우리 지금 위험의 관계가 우리 원활하지 않아. 뭔가 우리가 지금 잘못되고 있어에 대한 푹음이 나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분노가 하나의 율법 계명으로서만 똑하니 우리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고 허신이 관계 공동체를 온전하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부탁이라는 것들을 우리가 좀 기억하셨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죠. 자, 우리가 기억할 사실은요. 분노의 특징은요. 절대 그냥 사라지지 않아요. 참으라고 한다고 해서 참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비록 표면적으로는 참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분노가 우리 안에서 어딘가에서는 씨앗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해요. 그리고 분노는 적절하게 관리하고 해소하지 않으면 자라나게 됩니다. 어느 순간에 그것이 우리 안에서 괴물처럼 커지게 되는 거죠. 마침 그 분노가 우리를 삼키게도 되는 겁니다. 성난 사람들에 보면 에이미가 왜이 분노가 해결이 안 됐냐면 남편이 에이미가 어려움을 호소할 때 자꾸 입을 막아 버려요. 감사하라고. 그리고 무슨 우리 상당소 찾아가자고. 오히려 에이미가 어려움을 호소할 때 남편이 한 번이라도 들어주면 그 충구식이거나 급박하게 이것들을 긍정으로 돌려 버리지 않고 평소의 대화들에서 이런 불편한 대화들이 오가는 것들을 우리가 좀 허락할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도 모르게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자꾸 좋은 말로 모든 것들을 포장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경험들 있으실 것 같아요. 우리가 몇 사람하고 대화하다가 누군가가 좀 서운한 얘기를 해요. 또는 불편한 얘기를 해요. 그러면 꼭 그중에 신앙 좋은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이 그걸 못 참는 분들이 있어요. 아, 우리 좋게 모였는데 왜 이해? 그래서 이걸 덮어 버리는 거예요. 아, 그냥 이해해라든지 화제를 빨리 다른 데로 돌려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누군가가 불편한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 얘기를 들어 줘야 되거든요.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을 좀 견뎌 줘야 돼요. 근데 우리가 그걸 못 하는 거예요. 서둘러서 봉합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해결이 안 되는 거죠. 때로는 사과를 해야죠. 때로는 용서를 구해야죠.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이 분노가 싹으로 튀어지지 않고 분노가 자라지 않고 분노가 어느 시점에서 해소가 되어지거나 관리되는 쪽으로 가야만 한다라는 것이죠. 어, 저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제도를 만들고 어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구성원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눌러 버리고 그들이 약자이기 때문에 참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 거죠. 그것이 참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회적인 분노로 형성되어지고요. 계층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으로 그래서 서로가 우리가 성난 사람들이 되어져 가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고요. 제도로 또 사회적인 분위기로이 성남을 줄여갈 수 있도록 노력해 줘야 된다는 거예요. 아울러서 크리스천들이 사회를 바라볼 때도 우리 우리 교회가 혹시 세상에 우리 교회가 분노 유발자가 되는 건 아닌지 우리가 피스메이커가 되어지고 분노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화의 매개체가 되어지지 못하고 도려 우리가 어 더이 분노하는 사회에 기름을 붓고 있는 역할을 하진 않은지를 한번 돌아볼 필요도 있다라고 생각해요. 정리해 볼까요? >> [콧방귀] >> 비록 저는이 성난 사람들이 눈가 보기 굉장히 불편한 드라마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라부터 아주 격렬한 분노가 시작되니까요. 하지만 저는 좀 참으시고 시파까지 꾸준히 한번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럴 때 아 우리가 이렇게 아프구나. 우리가 방치하면 안 되겠구나. 어제 만났던 저 사람의 저 성난 얼굴이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내가 풀어야 되는 대화로 풀어야 되는 것들을 방치해서 그런 건 아닐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음악] 그리고 공동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이 [콧방귀] 성난 사람들을 단순히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로 보시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이 아픔들을 한번 공감해 보고 주변에 많은 성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냥 판단하고 쉽게 정지하기보다는 조금 더 불쌍히 여기고 친절에 대하면서 나 스스로도 그리고 우리의이 사회 속에서도이 [음악] 분노를 가라앉치는 그런 사회 속에 [음악] 우리가 일조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