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Must Gather ‘This’ as Much as Assets and Strength | Pastor Kim Ki-seok | Jaljalbeop Episode 270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7x5xgdQ404 | 길이: 16:44
요약
🎯 TL;DR — 김기석 목사는 어휘력이 세상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해상도를 결정한다며, 자산·체력을 쌓듯 언어를 의식적으로 축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핵심 논지 — 언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귀중한 선물이며, 어휘가 풍부할수록 세상과의 접점이 다양해지고 정서를 정확히 드러낼 수 있다. 반대로 어휘가 줄어들면 사유 능력 자체가 위축되며, 이는 전체주의·AI 시대의 위협과 연결된다.
🗺️ 영상 구성
- 모르는 단어에 화내지 말라는 도입 문제제기
- 언어의 본질(비트겐슈타인, 김춘수 「꽃」, 창세기 아담의 작명·사랑 노래)
- 어휘 풍부함의 의미(비를 나타내는 다양한 우리말 사례)
- 초성어·뭉뚱그리는 언어의 문제("짜증나")
- 『1984』 신어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 바벨탑과 성령강림 사건의 언어관
- AI 시대, 질문 능력과 언어의 관계
- 실천법: 사전 찾기와 단어 눈맞춤
━━━ 본문 ━━━
언어는 해상도가 높은 카메라다 화자는 사람들이 글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현학적인 거 아니야?"라며 화를 내는 태도를 지적한다. 대체 가능한 단어가 있어도, 그 단어가 아니면 드러낼 수 없는 정서나 태도가 있다고 말한다. 언어는 해상도가 높은 카메라와 같아서 어휘가 많으면 세상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비유다. 그래서 그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화내지 말고 반가워하며 사전을 찾아 익힐 것을 권고한다.
언어의 본질 — 비트겐슈타인, 김춘수, 창세기 화자는 비트겐슈타인의 "내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김춘수의 시 「꽃」("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을 언어화되지 않은 것은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예시로 든다. 이어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담의 외로움을 보시고 동물들을 이끌어오자 아담이 이름을 붙이는 자가 되었다는 장면, 그리고 하와를 보고 아담이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라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통해, 언어가 사물을 지칭할 뿐 아니라 너와 나를 이어주는 사랑의 끈이라는 성경적 신비를 설명한다.
어휘의 풍부함 — 비를 나타내는 우리말의 예 화자는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은 세계와의 접점이 다양하다는 뜻이라고 정의한다. 예시로 비를 가리키는 우리말이 안개비·이슬비·실비·장맛비 등 약 20여 종에 이른다며, 이런 단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의 경험과 문화 속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모든 표현을 '비'라는 말로 뭉뚱그리면 여우비·장대비가 내릴 때 사람들이 느꼈던 정서적 결과 삶의 이야기에 대한 실감을 잃게 되고, 그는 이를 두고 스스로 둔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뭉뚱그리는 언어의 위험 — "짜증나" 화자는 사람들과 만날 때 가장 듣기 싫은 말로 "짜증나"를 꼽는다. 두려움·망설임·당혹감·화 등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이 한 마디로 뭉뚱그리는 순간 마주선 사람의 마음이 다치고, 서로를 방어하거나 도우려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언어로 자기 마음을 표현할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 이 논증의 핵심이다.
『1984』의 신어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화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인용하며, 전체주의 국가가 '신어(뉴스피크)'를 통해 어휘 수를 줄이는 정책을 편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자유'라는 말을 없애면 사람들은 자유에 대한 갈망 자체를 잃는다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의 대사 "우리 목표는 어휘수를 줄이는 거야. 어휘를 줄이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될 거야"를 인용하며, 이를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속 '악의 평범성' 개념과 연결한다.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자신의 기소장 오탈자를 고칠 만큼 성실했지만 죄의식이 없었으며, 아렌트는 그 이유를 사유하지 않음에서 찾았다고 화자는 설명한다. 화자는 이를 관료 체제가 만들어내는 사유 없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1984』의 세계관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짚는다.
바벨탑과 성령강림 사건 화자는 구약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가 혼잡해져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오늘의 소통 부재 상황과 연결한다. 반면 성령강림 사건에서는 사도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복음을 전할 때,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언으로 알아듣는 경험을 했다고 설명한다. 화자는 이를 "언어가 통해 버린 것", 즉 마음의 통함이라 부르며, 언어의 본질이 사람을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만나게 하고 연결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AI 시대와 질문의 능력 화자는 AI가 우리의 질문 수준에 따라 답을 내놓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식은 피상적 재료의 축적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주어진 답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심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질문에는 AI가 비슷한 답을 내놓기 때문에, 언어가 정련되지 않고 더 깊이 파고드는 질문 능력이 없다면 사람들은 평탄화된 정서 속에 머물고 '납작해진 인간들'이 세상을 횡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어휘를 늘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획득하는 것이 세계를 평준화하려는 흐름에 맞선 강렬한 저항이라고 규정한다.
실천법 — 단어와의 눈맞춤 화자는 마지막으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 수첩에 기록해두고, 무료한 시간에 수첩을 넘기며 그 단어와 20~30번 정도 '눈맞춤'을 하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휘가 늘어나면 자신의 세계가 다채로워지고 감성을 표현하는 능력도 함께 늘어난다고 결론짓는다.
💬 결정적 발언
"언어는 해상도가 높은 카메라와 같아서 어휘가 많으면 해상도가 높아져요. 세상을 보다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내가 언어화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안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목표는 어휘수를 줄이는 거야. 어휘를 줄이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될 거야."
"미세한 언어의 촉수가 많을수록 타자에게 가닿을 수 있는 가능성은 더 깊어진다."
"책을 읽다가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든 화를 내지 말고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사전을 찾아서 수첩에 기록해 두고 그 단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핵심 용어
- 신어(뉴스피크) = 『1984』에서 전체주의 국가가 어휘 수를 줄여 사유를 억제하기 위해 만든 언어 체계
- 악의 평범성 =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보고 제시한 개념으로, 사유하지 않음이 평범한 사람을 악의 도구로 만든다는 주장
- 초성어 = 자음만으로 줄여 쓰는 말(화자가 언어를 뭉뚱그리는 현상의 예로 언급)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화자가 인용한 비트겐슈타인의 구절은 『논리철학논고』(Tractatus)의 "내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명제로, 원어와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번역·의역 여지가 있다(추정/확인필요). 김춘수의 「꽃」은 1952년 발표작으로 한국 현대시 교육과정에서 자주 인용되는 대표작이다.
- 배경·맥락 보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은 이후 학계에서 아이히만이 실제로는 훨씬 이념적으로 확신에 찬 인물이었다는 반론(예: 베티나 슈탕네트의 연구)도 제기되어 논쟁적인 개념이라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확인필요).
- 사실 유의점: 화자가 언급한 "비를 나타내는 우리말이 20여 종"이라는 수치는 화자의 대략적 추정 발언으로, 정확한 국립국어원 표준 통계에 근거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추정치로 이해할 필요).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글을 읽다가 자기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은 [음악] 화를 내거든요. 현악적인 거 아니야? 왜 이런 굳이 이런 단어를 쓰는 거야?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데 네, 대체할 수 있는 단어 있어요. 그런데 그 단어가 아니면 드러낼 수 없는 정서나 태도 같은 것들이 있어요. 언어는 해상도가 높은 카메라와 같아서 [음악] 어휘가 많으면 해상도가 높아져요. 세상을 보다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음악] 하는 것이죠. 제가 권고하는 것은 책을 읽다가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든 [음악] 화를 내지 말고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언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고요. 또 자기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또 언어가 있기 때문에 그 소수의 집단이 아니라 굉장히 큰 집단도 하나로 묶어낼 수 있고 언어가 없다고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의 인간 다음은 언어 속에 있다고 얘기해도 그 한 부분에 지나지 않긴 하겠지만은 그렇게 과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트켄슈타인이라고 하는 철학자는 아 내 언어의 한계는 세 개의 한계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러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다소 시적 표현처럼 들리는지 모르지만 내가 어떤 강을 향해서 강의라고 말하지 않는 한 내게 강은 전제하지 않는다. 시적 표현이기도 합니다만 이런 얘기들도 한단 말이죠. 김춘수신의 꽃이라고 하는 시도 전형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음악]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줬었을 때 [음악] 그는 내게로와 꽃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그니까 내가 언어화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안다고 얘기할 수가 [음악]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어를 안다고 하는 것은 어떤 세계와 나와의 접점이 생겼다고 하는 사실을 말한다고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음악] 아담이 쓸쓸한 것을 보시고 아담을 좀 돕기 위해서 흙으로 동물들을 만들어서 [음악] 아담 앞에 이끌고 오는 장면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때 [음악] 아담이 부르는 것이 이름이 되었다라고 말하므로 아담은 이름 짓는 자가 되었습니다. [음악] 가장 인간이 최초의 했던 행동이 어쩌면 이름 짓는 행위였는지도 [음악] 모르겠습니다. 이름 언어인 것이죠. 또 하와가 자기의 눈앞에 나타났을 [음악] 때 아담은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음악] 이제야 나타났구나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를 하리라. [음악] 새 번역은 그렇게 번역을 해놓고 있는데요. 그러니깐 언어라고 하는 것이 [음악] 어떤 사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너와 나를 이어주는 [음악] 사랑의 끈이라고 하는 사실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언어의 신비라고 [음악]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말을 배우기 시작하죠. 가장 큰 본적인 거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엄마 아빠라는 말로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은 언어를 익킴으로 어떤 사회화가 진행된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가 풍부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세계와의 접점이 다양하다라고 하는 말이라고 저는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어, 어휘가 풍성하다고 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창문이 다양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고 또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어법으로 얘기하자고 한다면은 언어는 해상도가 높은 카메라와 같아서 어휘가 많으면 해상도가 높아져요. 세상을 보다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뭐 비를 나타내는 말도 우리가 많이 있죠. 안개비,는 이슬비, 실비, 장맛비 등등 우리말로도 그 비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마 20여정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말들이 존재한다고 하는 그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의 경험, [음악] 문화 속에서 그렇게 표현함으로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근데 그 모든 말들을 다 버리고 비라고 어떻게 보면 뭉뚱거려 버리고 나면 비라고 하는 거 그 말로 우리는 이해하긴 하지만 그 삶의 미세한 결 같은 거 우리가 삶 속에서 능계가 내릴 때 또 여우비가 내릴 때 우리의 정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거기에 대한 실감은 갖기가 매우 어렵다 하는 [음악] 얘기죠. 장대비가 내릴 때 사람들이 느꼈던 아주 그 혹회한 느낌이나 [음악] 혹은 그 장대비 때문에 시련에 빠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음악] 우린 상상력을 갖는 것이죠. 그런데 [음악] 그걸 비하고 퉁쳐 버렸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정서적 울림 같은 것들이 적어지고 나는 좀 둔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어휘가 풍성하다고 하는 건 그런 거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오늘 우리 시대를 바라보면서 내가 조금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빠서 그런지 몰라도 초기어를 쓰고 아까 얘기한 대로 모든 것들을 뭉뚱 그리는 언어를 잘 사용한단 말이죠. 저 그 현상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근데 거기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거죠. 제가 제일 사람들과 만날 때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짜증나. 그런다는 우리의 삶의 경험에서 내 속에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들이 다양하게 있죠. 두려울 때도 있고 망설릴 때도 있고 어쩔 줄 몰라 당혹스러울 때도 있고 그리고 화가할 때도 있고 그런 그 모든 것들을 부정적 감정을 짜증나라는 말로 딱 말하는 순간 마주선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고 나를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사람을 어떻게 도와줘야지 하는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통쳐서 말하기보다는 정확히 내 마음은 이래라고 얘기할 때 마주 선 사람들은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이런 것들이 나는 어휘와도 관련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매우 중요한데요. 저의 소설 1984라고 하는 소설에 보면 그 전체주의 국가이죠.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그 1984의 세계 독재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 정략적으로 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뭐냐? 신어. 새로운 신짜 말씀 어자를 쳐 가지고 신호입니다. 뉴스피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다양한 말들을 하나로 묶어 그래서 어휘수를 줄이는 거예요. 예를 들면 자유라고 하는 말을 없앴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립니다. 언어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전체주의 세계의 문제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웨스턴의 친구가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목표는 [음악] 어휘스를 줄이는 거야. 어휘를 줄이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될 거야. 생각하지 않음. 이것이 [음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의 핵심이라는 거야. 언어가 줄어드는 순간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게 되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떠먹여 주는 정보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전락하게 된단 [음악] 말이죠. 우리가 히틀러 세계 전범이었던 아이마의 재판을 보고 한나 아렌트가 썼던 예루살렘의 아이만이라고 하는 그 책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 희마이 악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깐 사람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죽음으로 내몰았지 생각했어요. [음악] 근데 보니까 재판에 나와 있는 아이 희만이 너무 성실한 사람이에요. 자기에 대한 기서장에 오탈자가 있는지 그걸 수정하고 있고 그 엄중한 자리에서이 죄의식이라고는 없는 거예요. 그게 한나트가 깜짝 놀랍니다. 어이 사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고 하는 유명한 얘기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음악] 그러니까 악 그러면은 우리는 무서운 모습, 악마적인 모습을 떠올리는데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 악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거죠. 근데 아튼 질문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됐지? 사람이 그때 그가 생각하는게 뭐냐면 사유하지 않음. 바로 이건 관료 체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사유하지 않는 어떤 존재를 만들어내는 거야. 정확히 저주엘의 1984가 얘기하고 있는 그 세계의 세계관가 딱 맞는 거야. 생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거. 오늘 우리가 언어에 대한 관심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정보를 다루지만 생각은 깊이하지 않는 세계가 도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우리가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정보만 편향적으로 소비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내가 사유하는 주체가 되기를 그치고 나에게 무작정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가고 있는 생각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고 한다면은 내가 사유하는 주체로 으서기 위해서도 우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다른 것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본질을 깊이 생각해 가면서 내가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내가 정확한 사유를 실천하고 있는지 그때 나의 언어가 확고해지게 될 때 세상이 나를 함부로 쥐고 흔들 수 없게 되는 것이죠. 혼잡된이 언어의 세계 속에서 정말 더 깊은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우리가 구약에 보면 바벨탑 사건 이야기를 보는데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소통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 강림 사건이 벌어졌을 때 골방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사도들이 [음악]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사람들 앞에 전파했을 [음악] 때 세계 각지에서 왔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듯 곧 말로 사도들의 말을 듣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깐 [음악] 우리가 흔히 방언이라고 얘기하지만 뭐냐면 언어가 통해 버린 거야. 마음의 통함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어라고 하는 것의 본질이 사람들을 갈라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나게 만들고 연결되게 만드는 것이 언어라고 얘기한다면 미세한 언어의 촉수가 많을수록 타자에게 가다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음악] 더 깊어진다.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 이제 그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기도 하고 또 기대를 품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삶에 궁금한 것들을 AI에게 물어보면 너무나 대답을 잘해 주죠. 여행 계획도 짜 주고 내 그 하루의 스케줄 같은 것도 짜 주고 뭐 또 즉각적으로 대답하면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그런 것들을 상세하게 알려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재밌게 AI와 더불어 놀고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어디에 있냐면 AI는 우리의 질문의 수준에 따라 답을 해 준다는데 있는 것이죠. 그러니깐 우리의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그 피상적인 재료의 축적을 통해 일어나서는 안 되고 어떤 하나의 답이 내게 주어졌을 때 그 답을 통해서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생겨야 하고 이것이 우리의 어 인식을 확정하고 심화해 나가는 것일 텐데 그러니까 내가 질문을 철저히 하기 위해서라도 도 어 더 많은 어 공부를 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우리에게 왔다. 왜냐면 똑같은 질문에는 아마 비슷한 대답들을 내놓을 겁니다. AI들이 내 언어가 정년되어 있지 않으면 내 언어가 더 깊은 것을 파고 두는 질문의 능력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다 평탄화된 정서 속에 머물 거다. 그러니깐 납작해진 인간들만이 세상을 횡행할 가능성이 아주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치열하게 어 어휘 늘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다양하게 획득하게 되는 것은 세상을 평준화고 하는이 세계에 맞선 강렬한 저항이다 하는 [음악] 생각을 저는 품고 있습니다. [음악] 사람들이 이제 그 글을 [음악] 읽다가 자기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은 화를 내거든요. 현학적인 거 아니야? 왜 이런 굳이 이런 단어를 쓰는 거야?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데 네, 대체할 수 있는 단어 있어요. 그런데 그 단어가 아니면 드러낼 수 없는 정서나 태도 같은 것들이 있어요. 그 단어를 포기하는 순간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로부터 조금 멀어져요. 이게 이제 문제라고 보여지는데 그래서 제가 권고하는 것은 책을 읽다가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든 화를 내지 말고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사전을 찾아서 수첩에 기록해 두고 그 단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아주 짤막하게 있는 시간이 내게 있을 때 무료한 시간에 수첩을 넘기다 보면 [음악] 빨간 펜으로 쓴 부분이 나오고 그러면 그 단어하고 눈맞춤을 합니다. 그 단어와 20번 내지 30번 정도 눈맞춤을 하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됩니다. 이렇게 [음악] 해서 어휘가 늘어날 때 나의 세계는 다체로워지고 나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