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ning to Discern God’s Will | Pastor Kim Byung-sam | JalJalBeop Ep. 271

잘잘법 · 2026-07-27

채널: 잘잘법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KZ5IAbph5c | 길이: 23:57

요약

🎯 TL;DR — 김병삼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란 말씀 분석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생각하고 순종하는 반복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 핵심 논지 — 화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유가 "음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듣고 구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말씀을 분석·적용하는 훈련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후자는 자기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계속 물으며 순종을 반복하는 훈련을 통해서만 길러진다고 강조한다.

🗺️ 영상 구성

  • 도입: "설교 세미나에서 말씀을 쪼개다 보니 교회도 쪼개진다"는 이야기로 문제 제기
  •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바리새인 사례로 "말씀을 아는 것"과 "음성을 듣는 것"의 차이 설명
  • 욕망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되는 사례(배우자 기도, 자기의(義) vs 하나님의 의)
  • 요한복음 10장(양과 목자) 본문으로 음성 구별의 원리 제시
  • 순종의 훈련과 경험(개인 기도, 목회 중 아이디어 검증 사례)
  • 로렌스 형제 『하나님의 임재 연습』 소개 및 인용
  • 자유의지·예정론 논쟁에 대한 화자의 견해, 자신의 27세 군목 시절 회심 체험
  • 엘리야의 세미한 음성(로뎀나무 사건) 언급으로 마무리

━━━ 본문 ━━━ 말씀 분석과 음성 구별의 차이 화자는 설교 세미나에서 들었다는 "말씀을 쪼개다 보니 교회도 쪼개진다"는 말을 소개하며, 이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려 하지 않고 그냥 분석해 가는 것으로 해석한다. 예수님 당시 가장 큰 갈등의 요인이 "말씀을 잘 아는 사람들"과 예수님 사이의 갈등이었다는 점을 들어, 말씀 공부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생각하고 구별하고 순종하기 화자는 최근 설교에서 "믿으세요"보다 "생각해 봐라"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됐다고 언급하며, 성경에도 믿으라는 말과 함께 생각하라는 말씀이 많다고 말한다. 자신의 집회 설교에서 "강대상에서 목사님이 얘기한다고 다 듣지 마세요,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 생각해 보고, 판단이 서면 순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면 순종하면 안 된다"고 성도들에게 말했다고 전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구별하고 순종하는 일들을 포함한다고 정리한다.

욕망과 자기의(義)의 문제 화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않으려는 의도적 요인 중 하나로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투영하려는 것을 꼽는다. 예로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다가 어떤 사람이 나타나면 인격이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음성이라 자기암시하는 경우를 든다. 이어 바리새인·사두개인·제사장들의 "자기의 의"와 "하나님의 올바른 의"를 대비시키며, 자기의 의는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올바른 의는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변명하지 않는 것이라 설명한다. 교회 분쟁에서 양쪽 모두 "하나님의 뜻"을 주장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이는 결국 자기 욕망을 위해 싸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자의 음성과 양의 비유 요한복음 10장 2~5절을 인용하며,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타인의 음성은 따르지 않는다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면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 할 때 그 음성이 들린다고 말한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도 인용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케 하는 능력"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말씀을 삶에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순종의 훈련과 경험 화자는 "묵상 훈련"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자신이 조용히 기도하는 어머니 기도실에 갈 때 메모지를 가지고 가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고, 이를 실행에 옮기며 "하나님이 원하시면 인도하실 것이고 원치 않으시면 막으실 것"이라는 태도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막으시거나 인도하시는 경험 자체를 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 화자는 로렌스 형제가 높은 지위가 아니라 수도원 주방에서 밥을 짓는 사람이었음에도 사람들이 그를 찾아간 이유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로렌스 형제는 밥하는 일이 좋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일"로 받아들였다고 고백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이어 로렌스 형제의 글을 직접 인용하며, 하나님과의 연합은 온갖 쾌락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내용을 소개한다.

자유의지 논쟁에 대한 견해와 개인 체험 화자는 알미니안주의(자유의지)와 칼빈주의(예정설) 논쟁을 언급하며, 로렌스 형제의 말을 빌려 "내가 의지로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의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왔다"는 점에서 이 논쟁이 불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한다. 자신이 27세 군목 시절 수련회에서 한 주간 개인 기도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며 "하나님이 나를 진짜 사랑하시는구나"라는 고백을 처음 했던 체험을 소개하며, 자신의 의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그로부터 왔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엘리야의 세미한 음성과 결론 화자는 엘리야가 갈멜산 승리 후 이세벨을 피해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 있을 때, 지진과 강풍이 아닌 세미한 음성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례를 든다. 인간의 기본적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문제는 구한 다음 세미한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음성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경험을 통해 점점 알아가게 된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 결정적 발언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연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의지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그것은 단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로렌스 형제 인용) "훈련하지 않는 신앙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아요."

⚖️ 화자가 다룬 반론·한계

  • 화자는 자신의 설교("이렇게 말하는 나는 얼마나 두려울까요") 자체에 대해서도 "너 잘났다, 너나 잘해라"라는 소리가 들린다며 스스로 되짚는다.
  • 인간의 욕망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 순종해도 갈등이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원초적 욕망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갈 때 끊임없는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음성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표증이라고 말한다.

🧩 핵심 용어

  • 캐논(Canon): 화자는 "갈대 자"라는 어원을 언급하며, 성경(말씀)이 삶을 정확히 재는 기준이 된다는 의미로 설명
  • 자기의(義):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고 자기가 옳음을 증명하려는 의로움
  • 묵상 훈련: 감정이 아닌 의지의 영역으로 신앙을 옮기는 반복적 실천

🔎 보완 & 확인

  • 배경·맥락 보완: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17세기 프랑스 카르멜회 평수사)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은 그의 서신·대화를 사후 정리한 소책자로, 기독교 영성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는 점은 영상에서 화자가 설명한 배경과 일치한다(확인됨).
  • 배경·맥락 보완: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는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복음전도자로, 여러 미국 대통령의 종교 자문 역할을 했다는 화자의 언급은 널리 알려진 사실과 부합한다(확인됨).
  • 사실 유의점: 알미니안주의(자유의지)와 칼빈주의(예정론) 논쟁을 화자가 "감리교회 자유의지 vs 장로교회 예정설"로 단순 대응시킨 부분은 신학적으로 단순화된 설명이며, 실제 각 교단 내에도 다양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일반 신학 상식 기준, 영상 내용에 대한 보충 설명).
  • 사실 유의점: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요한복음 10장 2~5절 인용은 화자가 구두로 낭독한 것으로, 정확한 어역(개역개정 등) 표기와는 다소 표현 차이가 있을 수 있다(자막 기반 인용이므로 원문 대조 확인 권장).

자막 원문 (참고)

Kind: captions Language: ko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얼마나 두려울까요? 끊임없이 내가 물어야 되는게 있는 거죠. 막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 모두가 꿈꾸는 일이에요.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경청하는 훈련들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훈련은 간단해요. 그걸 생각해 보라. 자, 오늘 주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뭐이라고 되어 있는데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라고 하는 말 가운데는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하는 법 요렇게 말을 해도 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얼마 전에 굉장히 이제 재밌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 이렇게 설교 세미나를 하는데이 말씀을 쪼갠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잖아. 이렇게 성경 강해하고 분석하고 요즘 설교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말씀을 쪼개는 훈련을 많이 받는지 아도 말씀을 쪼개다 보니까 교회도 쪼개진다. 그런 얘기를 들었어.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말씀을 쪼갠다고 하는게 나쁜 말이 아닌데 교회와 쪼개진다는 것과 연결지어 보면 그런 뜻인 거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씀을 분석해 가는 거죠. 그니까 예수님 당시에 율법 학자나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무슨 의미야? 이걸 어떻게 적용해야 돼?라고 라고 이렇게 쪼개서 법을 만드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예수님 당시에 가장 큰 갈등의 요인은 뭐였냐면 말씀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 예수님과의 갈등이었어요. 왜냐면 그들은 말씀을 잘 아는데 지금 오늘 주제와 연결시켜서 얘기해 보면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말씀을 공부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구별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그리고 요즘음 우리 교인들에게 내가 이제 설교하면서 내가 목사 같지 않은 이야기를 종종한다. 이런 말을 하는데 그게 뭐냐면 믿으세요. 이런 말을 좀 많이 해야 될 거 같은데 요즘은 자꾸 생각해 봐라 이런 말을 많이 하게 돼요. 근데 성경에도 보면 믿으라는 말과 더불어서 생각하라는 말씀들이 많이 나와 있어요. 이게 하나님의 말씀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생각해 봐라. 내가 지금 이제 집회 중인데 어제 저녁 집회를 하면서도 담임 목사님이 들으면서 조금 불편할지는 모르겠지만 교인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여러분 강대상에서 목사님이 얘기한다고 다 듣지 마세요.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의이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판단이 있으면 순종하세요. 근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강단에서 이야기한다면 그거 순종하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것은 어떤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생각하고 구별하고 그리고 순종하는 일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꿈꾸는 건 이게 지금 얘기하는 육성처럼 이게 팍 들리는 걸 꿈꿀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구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과 연결 때가 많이 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중에 제일 중요한 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들이 구별하게 된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자꾸 이렇게 알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것 중에 하나는 우리들의 욕망을 자꾸 투영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욕망이 그냥 하나님의 뜻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생각하려고 하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자, 욕망으로 잘못된 기도, 욕망으로 우리 잘못된 음성. 그런게 어떤 걸까요? 우리 젊은이들 가운데 교회에서 그런 해프닝들이 많이 있어요. 배우자를 놓고 기도하는 거예요. 어, 하나님 이런 이런 배우자를 주세요 하고 하다 보면 어떤 여자 혹은 남자가 딱 나타나. 음성이군요. 가서 일단 대시를 해. 데 가만히 보면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했지만 그 사람의 인격이나 혹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구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욕망들이 딱 나타나면 그걸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내 안에서 자기 암시를 하는 경우들도 많이 있어요. 우리의 욕망이 제어되지 않으면 우리의 욕망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될 때가 많이 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생각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여기에 있는가를 생각하라. 근데 이거는 지금 우리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2,년 전 예수님께서이 땅 위에 사실 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 통해 하셨던 말씀이에요. 그들은 굉장히 의로운 사람들이었어요. 내 의가 자기의 의였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았어요. 그러면 자기의 의와 진짜 올바른 의는 어떻게 구별될까요? 자기의 의는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어요. 하나님의 올바른 의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내 욕망을 내려놓고 그리고 나의 수치를 감수할 수 있어요. 왜?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내가 내 권리를 포기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변명하지 아니하고 자, 요즘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분쟁들을 보세요. 교회에서 싸움이 딱 나면 어쨌든 양쪽으로 갈리겠죠. 양쪽에서 뭐라고 주장을 하나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는 거예요. 흥미로운데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싸우는데 하나님의 뜻은 나타나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우기는게 정당하고 옳다는 걸 증명할 때까지 싸워요. 결국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의를 투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오래된 교회와 신앙의 공동체 속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자기 욕망을 위해 싸우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목적이겠죠. 사람들이 참 변하지 않아요. 진짜 우리 교회 장로님 어쩌면 저렇게 못 됐냐? 우리 교회 목사님 진짜 못 되지 않았어? 어, 권사님 진짜 전 아니잖아. 이런 사람이 많이 있을 거예요. 이게 미스테리인 거예요. 어떻게 평생 예수를 믿는데 저럴까? 평생 예수를 믿는데 변하지 않는 거예요.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거예요. 그냥 내가 원하는 욕망을 신앙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투영하고 있는 거예요. 요즘 목회자들을 보면서 가장 큰 문제가 뭘까요?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목사님, 교단에 정치를 하는 목회자들을 보면서 성도들은 뭘 느끼냐면 저분이 자기를 위해 일하고 있구나. 자기를 위해 설교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요. 사실은 그 자리에 가고 싶은 욕망이 크다는 걸 교인들은 알아요. 그니까 아무리 강단에서 이야기를 해도 어 저기 하나님의 마음이 없구나. 저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렇게 말하는 나는 얼마나 두려울까요? 지금 누군가적 이런 소리가 막 들려요. 그래, 너 잘났다. 너나 잘해라. 막 이런 소리가 들려요. 끊임없이 내가 물어야 되는게 있는 거죠. 진짜 내가 강단에서 하는이 설교,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이것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일까? 이런 물음을 묻는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조금씩 우리들이 가까이 가지 않겠는가? 좀 정리하자면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음성을 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일방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 좀 나쁘게 변 내 욕망들을 하나님 앞에 투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원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구별하고 그때 이제 음성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이 알게 되는 거죠. 그러려면 우리들에게 명확한 확신이 하나 있어야 된다. 그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능력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는가? 디모데서 3장 16절부터 17절에 보면 유명한 말씀이 있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다음이 중에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그니까 우리들에게 진짜 중요한 확신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표준이 되고 내 삶을 바꿔놓을 수 있는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우리들이 믿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적용하게 되죠. 근데이 믿음이 없으면 말씀을 듣는 것도 말씀을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 이제 성경에 원래 말씀 성경이 캐논이라 하잖아. 캐논. 캐논이 갈대 자. 그 당시에 이렇게 딱 ़ 때 고든 갈로 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정확하게 인도해 주신다라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근데 우리들에게 그런 확신이 없으면 말씀대로 살기가 힘든 거예요. 내가 지난해에 빌리그레안 목사님 박물관을 갔는데 뭐 그분의 업적이 많죠. 뭐 미국에서 몇 명의 대통령의 멘토가 되고 뭐 그런 거에서부터 신화적인 얘기들 참 많잖아요. 거기 가면 빌리그래안 목사님 육성 설교를 들어요. 내가 아는 미국에 정말 설교 잘하는 목사님에 비하면 빌리그레안 목사님은 그렇게 달변간은 아니에요. 근데 그분의 설교가 능력 있는 이유가 딱 하나 있어요. 그분의 설교는 늘 이렇게 얘기해요.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그분의 능력 그분이 끊임없이 그 길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가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대한 권위이었어요. 그니까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는 이유, 음성대로 살아가야 되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 나로 하여금 온전케 한다는 확신이 없다면 그건 참 힘든 일이겠다. 요한복음 10장 2절부터 5절까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문으로 들어가는이는 양의 목자라 문직이는 그를 위하여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라기 양을 다은 에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따라오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요.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걸 알아요.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목자를 따라가요.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얘기를 많해요. 너무 많아요.들을 것도 많고 참고할 것도 많고 너무 많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내가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면 그 음성이 들려요. 내가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묵상 훈련이라는 말. 나는 훈련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우리의 신앙은 아 철저하게 훈련을 통해서 어 이루어져요. 근데 우리는 신앙을 자꾸 감정적인 영역으로 생각해요. 어느 날 은혜를 받고 뭐가 탁 온다. 어 나 은혜 받았어. 문제는 은혜가 우리의 감정에 머무르니까 감정은 시간이 지르면 사라지는 거예요. 우리의 감정의 영역을 어떻게 의지의 영역으로 우리들이 바꿀 수 있는가? 그래서 저는 신앙을 훈련이라고 생각해. 훈련. 훈련하지 않는 신앙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는 훈련, 음성을 들으려는 훈련, 순종의 훈련을 하면 우리들의 삶에서 경험하는게 있어요. 우리가 제일 힘든 건 내가 순종을 하기는 하는데 어, 이게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알아? 그 내가 순종해도 되는 거야? 이런 고민들을 해요. 딱 순종하면 그다음에 우리들이 경험하는 건 뭐냐면 하나님이 막으시든지 인도하시든지 그걸 경험해요. 순종을 안 하면 절대 경험하지 못해요. 그게 내 순종이 훈련이라는게 뭐냐면 지금 내가 하나님이 감동을 주셨어. 근데 아직 내가 신앙이 여려서 구분이 안 돼. 이게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올바른 뜻인지 해 봐. 그러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건 막으셔. 하나님이 원하심은 인도해 주셔.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실지를 기대하게 돼요. 그러면 인도하심이 보여요. 근데 순종 자체를 안 하니까 우리를 인도하심도 경험하지 못하고 우리를 막으시는 것도 경험하지 못해요. 나는 내가 내 삶에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게 목회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잖아. 특히 이제 내가 조용히 기도하는 어머니 기도실에 갈 때면 메모지를 늘 가지고 가요. 기도할 때면 아이디어가 많이 생겨. 그럼 막 적어. 그리고 와서 야 우리 이거 한번 해 보자. 하나님이 원하시면 인도하실 거고 원치 않으시면 막으셔. 괜찮아. Just right now. 그리고 나는 막으시는 일도 많이 경험했어요. 아 이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구나. 이게 하나님 기뻐하시는구나. 그러면 점점 점점 이게 뇌로 다운돼 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이런 방향이구나. 근데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훈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구별하면서 순종해 봐라. 자, 오늘 내가 이제 굉장히 좋은 책을 하나 소개하려고 해요. 로렌스 형제 하나님의 임재 연습. 여러 가지 고전이 있지만요 책은 일반 성도들에게 최고의 책이다. 어렵지 않아요.이 책에서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우리들 삶에서 연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근데 우리가 혹시 로렌스 형제를 아는 사람들은 참 음행인게 로렌스 형제는 그 당시에 어떤 높은 위치 권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에요. 주방에서 수도사들을 위해서 밥을 짓는 주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 그런데 왜 그 당시 사람들이 로렌스 형제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을까? 이유가 딱 하나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보기에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했던 자리가 어디냐면 주방이었어요. 그 책에 보면 되게 흥미로운 어 글이 있어요. 로렌스 영제가 주방에서 그 오랜 시간 수도사들에게 밥을 해 주는 것을 보면서 야,이 사람 참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그의 대단함은 그의 고백에 있어요. 나는 밥하는 일이 좋지 않았다는 거예요. 근데 그 일을 했어요. 왜냐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들이 꿈꾸는게 있어요.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들의 삶에 갈등이 없어지고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죠. 근데 사실은이 욕망을 가진 원처적인 욕망을 가진 우리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면 나는 끊임없는 우리들의 삶에 스트로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고 있다는 표증이에요.요 로렌스 형제이 책 중에 정말 기가 막힌 우리들에게 통찰를 주는 아 말이 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하는데 있어서 그는 사랑이라고 하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우리 젊은이들 주례할 때 이런 얘기를 종종해요. 제가 물어봐요. 결 신랑신한테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지 그러면 네. 그래요. 그러면 아, 너희들 연애하면서 싸웠냐 안 싸웠냐 물어보면 정직한 신랑신부은 좀 싸웠어요라고 얘기하고 어 정직하지 않은 친구들은 우린는 안 싸워요. 이게 분위기상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아 몰라. 진짜 안 싸운 사람 있을지 몰라요. 근데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감정적인 부딪이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결혼을 하고도 아마 많은 갈등들을 경험할 거예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거죠. 결혼하는이 순간부터는 내가 사랑하기 위해 의지 의지를 가질 때 그 의지가 사랑을 붙들어줘요. 만약 감정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관계는 아마 쉽게 끝날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이 이 은혜를 우리들이 어떻게 음성을 듣는 삶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때부터는 의지가 필요한데이 로렌스 형제는이 의지라고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과 기가막게 연결하고 있어요.요 책에 나오는 글을 제가 좀 읽어 드릴게요.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연합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종류의 영적 신체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모두 버리고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나머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의지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 의지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로렌스 형제가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여러분들이 가지는 그 의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그 의지가 생기지 않습니다. 자, 2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오래된 논쟁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의지로 구원을 받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 주셔서 구원을 받나요? 그 뭐 알미니안주의 뭔지 캘빈주의 얘기하는데 사실 감리 교회 자유의지 아 그리고 장로교회 예정설 얘기하잖아요. 이거 가지고 이렇게 막 논쟁들을 해요. 오늘이 로렌스 형제의 말을 빌자면 내가 의지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그 의지가 어디에서 왔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왔어요. 이건 내가 왜이 논쟁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냐면 나는 목사가 돼서 은혜를 받았어요. 내가 27살 때가 군목 시절에 억지로 내가 수련회에 가서 나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아 내가이 집회가 그냥 내려오면 안 되겠다. 그래서 한 주간 그냥 개인 기도실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토요일 날 아침에 나오면서 야 하나님이나 진짜 사랑하시는구나 그런 고백을 내가 처음 했어요. 근데 그때 내가 느낀게 뭐냐면 나는 내가 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거기에 집어넣으셨더라.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더라. 내 의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어요. 내 의지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었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왔구나. 엘리야가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 아 엘리야가 생각할 때는 그 승리로 딱 끝났어야 돼. 근데 끝나지 않고 이세벨 왕비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까 도망가죠. 브엘세바에서 로뎀나무 아래 있게 돼. 유명한 얘기잖아요. 거기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근데 말씀이 되게 흥미로워요. 지진 가운데서도 풍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는데 세미한 음성 가운데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새힘을 얻고 다시 사역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그리고 소통에 대한 문제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든지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연약한 우리 인간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욕망을 바라는 것은 나는 그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거지. 아직 우리가 성숙되지 못한 것이지. 그래서 우리가 통성으로 기도하거나 하나님 앞에 구하는 건 잘못된게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구한 다음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들을 준비가 돼 있는가? 그때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져요. 처음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구별되는 건 아니에요.데 근데 순종의 경험을 통해서 점점 점점 알아가게 돼요. Ja.